'자유총연맹 자금줄 회사' 사장에 캠프 출신 낙하산

한전산업개발 사장에 경력 무관한 국정원 출신 임명

연맹, 20년 전 공기업 민영화로 받아 매년 수십억 수입

윤, 올해 연맹 기념식 참석해 축사하며 '밀월' 드러내

연맹 정관 '정치적 중립' 삭제…총선 개입 의도 의심

2023-08-12     민병선 에디터
윤석열 대통령이 6월 28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자유총연맹 창립 69주년 기념식에 입장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2023.6.28. 연합뉴스

코스피 상장사인 한전산업개발 사장으로 윤석열 대통령 대선 캠프 출신인 함흥규 씨가 내정됐다. 한전산업개발의 최대 주주는 보수 성향의 단체인 자유총연맹이다. 윤 대통령은 6월 자유총연맹 창립 기념식에 참석해 극우 발언을 쏟아내며 이 단체에 힘을 실어줬다. 대통령과 자유총연맹의 부적절한 관계가 다시 한번 드러나는 대목이다.

자유총연맹의 ‘마르지 않는 샘’인 한전산업개발

사장에 임명된 함흥규 씨.

한전산업개발은 18일 기준 시가총액이 2699억 원에 이르며, 지난해 매출이 3460억 원, 영업이익이 187억 원에 이르는 알짜 중견 기업이다. 이 회사는 발전설비 운전과 정비, 전기계기의 검침·송달, 석탄 취급설비 등 연료 환경설비 분야의 운전 및 정비를 담당한다. 이런 전문적인 발전 관련 기업에 관련 경력이 전무한 국정원 출신이 ‘낙하산’으로 온 것이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함 씨는 1990년~2018년 국정원에서 근무했고, 2019년~2020년 통일신문 논설위원, 2019년 10월 적성검사 솔루션 개발 업체인 한국사회교육진흥원 이사장을 지냈다. 대선 캠프에서는 국가안보회의 특별위원회 국정원 분과위원장을 지냈다.

한전산업개발은 자유총연맹의 자금줄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민간 단체가 안정적인 수익원까지 가진 것이다. 자유총연맹은 한전산업개발의 지분 31%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지난해 연맹은 한전산업개발로부터 배당금 21억 원을 받았으며, 2003년 최대 주주가 된 이후 매년 많게는 100억 원대에서 적게는 수십 억에 이른 배당금을 수령했다. 한전산업개발이 마르지 않는 자금줄인 셈이다.

한전산업개발은 1990년 한전이 100% 출자해 만든 회사다. 한전에서 일감을 받아 안정적으로 수익을 올렸다. 외환위기의 여파가 남았던 2002년 말 김대중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흐름 속에 민영화를 추진했다. 자유총연맹이 전북도시가스, 월남참전전우회 등을 제치고 우선 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2003년 연맹은 회사 지분의 51%를 707억 원에 인수했는데, 자체 조달 자금은 1%도 안 되는 6억 6000만 원이었다. 나머지는 은행 대출 등으로 충당했다. 연맹은 2010년 한전산업개발 상장으로 큰 수익을 올렸다. 이후 지분 20%를 팔아 354억 원을 챙겼다.

김대중 정부가 우익 단체에게 ‘선물’을 준 것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1999년 김대중 대통령은 자유총연맹 창립 기념식에 참석해 “과거와 같이 안보를 정치에 이용하거나 민간 단체 활동을 정치적 목적에 동원하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께 말씀하는 바이다”라고 말했다. ‘레드 콤플렉스’가 남아 있던 DJ가 대표적인 우익 단체를 ‘달래기’ 위한 것은 아니었는지 추측해 볼 수 있다. 대표적인 5공 인사인 권정달 씨가 2004년~2009년 초까지 자유총연맹 회장과 한전산업개발의 대표이사를 겸임하기도 했다.

원래 비영리 민간사단법인인 자유총연맹은 수익사업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2002년 정관을 개정하면서까지 특혜를 받았다. 정관 총칙 제4조 2항 수익사업 조항을 통해 “자유민주주의 역량 강화를 위한 국민운동 전개 등의 목적 달성을 위해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수익사업을 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이로써 한전산업개발을 인수할 수 있었다.

 

서울 중구 장충단로에 있는 자유총연맹 본부의 정문. 연합뉴스

대통령과 특정 민간단체의 ‘부적절한 결탁’

현 정권이 들어서며 정권과 자유총연맹의 관계는 어느 때보다 가까워졌다. 윤 대통령은 6월 28일 자유총연맹 제69주년 창립기념행사에 참석했다. 1999년 김대중 대통령이 이후 대통령의 참석은 24년 만이다. 윤 대통령은 기념식에서 “반국가 세력들이 북한의 유엔 안보리 제재를 풀어달라고 읍소하고,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선언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라는 극우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난한 것인데, 자유총연맹과 코드를 맞추는 분위기였다.

대통령과 특정 단체의 유착은 위험한 일이다. 정치권은 조직과 자금을 가진 단체를 선거 등에 이용하고 싶은 욕심을 떨치기 쉽지 않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졌다. 2017년 1월 뉴시스의 보도에서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가 자유총연맹을 동원해 국정교과서 찬성 집회 등 ‘관제 시위’를 벌인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청와대 행정관이 2015년 하반기 당시 자유총연맹 고위 관계자에게 ‘세월호 진상조사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반대 집회’와 ‘국정교과서 찬성 집회’를 열어달라고 보낸 문자 메시지가 언론 보도에 드러났다.

자유총연맹은 최근 정치 활동 제약의 족쇄를 벗었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연맹은 2018년 정관에 넣은 ‘정치적 중립’ 문구를 올해 삭제했다. 이런 조항이 없어지면서 내년 총선에서 정치 활동의 공간이 열린 것이다. 연맹은 정관을 개정하며 행정안전부의 승인까지 받았다. 원래 2018년 10월 정관에는 “총연맹은 사업을 행함에 있어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 전 항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정치중립심사평가위원회를 둔다”고 명시돼 있었다. 정치 중립 문구는 2016년 보수단체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서 김경재 전 자유총연맹 총재가 연설한 것이 문제가 되면서 삽입됐다.

문재인 정부에서 박종환 전 총재가 취임하며 '정치 중립' 문구를 넣었다. 연맹은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임성학 교수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서현진 성신여대 사회교육과 교수 등으로 구성된 정치중립심사평가위원회를 만들었다. 연맹 활동이 정치적으로 문제가 없는지를 외부 위원들로부터 검증받는 기구를 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6월 21일 연맹 임원들을 청와대로 초청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국민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진정한 보수의 길을 만들어가는 박종환 총재님과 임원, 회원 여러분께 감사와 격려 인사를 드린다”며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한국자유총연맹의 앞길에 정부도 동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맹의 정치적 중심 잡기에 공을 들였다.

문재인 정부, 자유총연맹 자금줄 차단 실패

하지만 문재인 정부도 한전산업개발의 제자리 찾기에는 실패했다. 특정 단체에 공기업을 자금줄로 준, 누가 봐도 특혜였던 한전산업의 재공영화를 시도했지만 소득이 없었다.

정부는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낙탄을 정비하다 사망한 고 김용균 씨 참사를 계기로 2019년 한전산업개발 등 연료·환경설비 관련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한전산업개발을 한전의 자회사로 편입하는 재공영화를 추진했다. 한전은 연맹에 이어 한전산업개발의 2대 주주(지분 29%)였다.

매일노동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2020년 1월 발전공기업 연료·환경설비 운전업무 정규직 전환 노·사·정 협의체는 한전산업개발 공기업화를 결정했다. 한전은 2021년 2월 자유총연맹에 공문을 보내 한전산업개발 매각 의사를 밝혀달라고 요청했다. 같은 달 연맹은 “지분인수를 위한 매입의향서를 작성해 요청해 오면 정식 협의가 가능하다”며 회신했다. 하지만 이후 연맹은 지분 가격 책정에 필요한 실사를 거부하는 등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고, 현재도 매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연맹 입장에서는 보수 정권이 들어선 마당에 자금원을 뺏길 수 없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듯하다. 더구나 현재 대통령과 연맹은 어느 정권보다도 가까운 사이다.

 

관련기사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