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어선 이태원 참사 유족들…"특별법, 마지막 보루"

"국힘, 여전히 특별법 거부…민주당이 역할 해달라"

이재명 "깊은 책임감 느끼고 반드시 통과시키겠다"

국회 행안위 법안심사 기간 최대한 단축시킬 방침

특별법에 독립적 진상조사 기구, 특검 임명 등 담아

유가협, 2기 운영위 구성…국회까지 오체투지 예정

2023-08-01     김호경 에디터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이정민 10·29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 31일 오후 국회 더불어민주당 당대표회의실에서 열린 10·29이태원참사 유가족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이재명 대표. 2023.7.31. 연합뉴스

이상민 장관 탄핵 기각이라는 허망한 결과를 보면서 좌절했던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다시 기운을 내고 일어섰다.

이들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만나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 보장과 진상 규명 및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법'을 통과시켜달라고 간곡히 당부했다. 새롭게 운영진을 꾸린 유가족협의회는 향후 특별법 제정에 모든 것을 걸겠다는 각오다. 이 대표도 반드시 특별법을 통과시키겠다고 확언했다.

이정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31일 오후 국회 본청에서 열린 민주당과의 간담회에 참석해 "작금의 대한민국 현실이 너무 참담하다"며 "이상민 장관 탄핵 기각을 보면서 유가족들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특별법을 통해 (이태원 참사의) 문제점들을 확연하게 밝혀내서 책임자들이 법망에서 도망갈 수 없도록 확실한 증빙과 물증으로 그들에게 책임을 지우는 역할을 해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고 밝혔다.

또 "앞으로 이런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면서 "야당에서 저희와 끝까지 함께해주실 것을 믿고, 여전히 특별법을 부정하며 우리 유가족들과 만나지 않는 국민의힘과 정부를 상대로 (민주당이) 야당으로서 강력한 역할을 다해 줄 것을 당부드리려고 이 자리를 함께했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청구 기각으로 직무에 복귀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25일 오후 수해를 입은 충남 청양군 인양리를 찾아 안전모를 착용하고 있다. 2023.7.25. 연합뉴스

이에 이재명 대표는 "정치권에 몸담고 있는 사람의 한 명으로서 이 참혹한 참사에 대해 함께 책임감을 느낀다. 다시 한 번 깊은 위로 말씀을 드린다"며 "일상을 영위하던 우리 국민 159분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당했다. 159개의 우주가 무너졌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이 현실이 참으로 참담하다"고 했다.

이 대표는 "더 이상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하겠다는 다짐을 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면서 "제가 가장 황당하고 분노했던 지점은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기각됐다고 마치 면죄부를 받기라도 한 것처럼,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이 확인된 것처럼 공격적 태도를 취하던 정부와 여당의 태도"라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형식적‧법률적 책임이 부정됐다고 책임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세월호 참사를 겪은 이후에 우리 사회가 참으로 많은 논쟁을 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최근에는 또 오송 지하차도에서 수많은 사람이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느냐. 정확한 원인 규명을 하지 않고 분명한 책임을 지지도 않고 재발 방지를 위한 구체적 대책들을 충분히 마련하지 않으니 자꾸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우리 민주당도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만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한 축으로서 깊은 책임감을 느끼고 진상 규명과 충분한 지원 대책, 그리고 재발 방지를 위해 반드시 특별법을 통과시키겠다"면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특별법 심사를 하게 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인 김교흥 의원은 이 자리에서 "국정조사를 하긴 했지만 국조특위는 물리적으로, 여야 협상에 어려운 점이 많아서 제대로 했다고 볼 수가 없다"며 "그래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담은 객관적이고 공정한, 독립적인 조사기구를 띄워서 전문가들이 실질적인 분석을 할 수 있는 틀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조사를 제대로 해야 진상 규명이 되고 사후 대책을 정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소명'이라고 생각한다는 김 의원은 "8월 17일, 18일 이틀간 법안심사 소위를 연다. 법안 심사가 제대로 돼야 특별법이 이뤄질 것"이라며 "앞으로 많은, 긴 여정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를 최대한 단축해서 특별법이 (행안위에서) 빨리 통과되고 발효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나 "유가족은 탄핵 기각 후 수해 복구 현장을 찾은 이상민 장관의 표정이나 말을 보고 '국민을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다"며 "특별법 통과를 위해 노력해달라는 당부의 말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상민 탄핵이 기각된 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시민대책회의 관계자들이 입장을 밝히고 있는 동안 유가족들이 오열하며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2023.7.25. 연합뉴스

유가협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의 국회 통과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여당에도 대화를 요구했으나 국민의힘은 이를 시종 묵살하고 있다. 이정민 위원장은 기자들에게 "여당에 수차례 저희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다고 했지만 반응이 없다"면서 "(우리) 목소리를 아예 들으려 하지 않고 외면하려는 태도 때문에 유가족이 참담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지난 6월 30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국회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했다. 법안에는 이태원 참사의 독립적 진상조사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을 비롯해 특별검사 수사가 필요할 경우 특검 임명을 위해 국회 의결을 요청할 수 있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되면 상임위 심사가 기존 최대 180일에서 90일로 줄어든다. 상임위에서 의결이 안 돼도 자동으로 다음 논의 단계인 법제사법위원회에 부쳐진다. 최장 330일 계류 기간을 거쳐 21대 국회 임기 내인 내년 5월까지는 본회의 처리가 가능하다. 민주당은 이 기간을 최대한 단축하겠다는 방침이다.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변호사회관에서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하반기 사업 계획 발표 기자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2023.7.31. 연합뉴스

한편 유가협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변호사회관 조영래홀에서 '하반기 사업 계획 발표 기자간담회'를 갖고 2기 운영위원회를 구성해 하반기 활동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2기 운영위원회는 지난 29일 유가족 전체가 모인 임시총회에서 선출됐으며 10명으로 구성됐다. 고(故) 이주영 씨의 부친인 이정민 대표직무대행이 2기 운영위원회 위원장을, 고 유연주 씨의 부친 유형우 씨와 고 박가영 씨의 모친 최선미 씨가 부위원장을 맡았다.

최선미 부위원장은 "이태원 참사에서도 오송 참사에서도 이 정부의 책임자들은 그 어떤 책임도 반성도 사과도 없다"며 "이 억울함을 해소할 마지막 보루로 이태원 특별법에 모든 기대를 건다"고 말했다. 이어 "국회는 신속히 특별법이 통과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달라"면서 "가족을 잃고 하루하루 힘겹게 버텨가는 유가족의 눈물을 닦는 진정한 국민의 대변인 역할을 해달라"고 했다.

유가협은 8월 7∼12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들에게 특별법 심의를 촉구하는 엽서 보내기 캠페인을 진행하고, 22∼24일 4대 종단 종교인·시민들과 함께 서울광장 분향소에서 국회까지 오체투지로 행진할 계획이다. 오체투지 마지막 날에는 국회 앞에서 이태원 참사 발생 300일 추모제를 연다.

10월에는 서울과 수도권에서 도심 릴레이 걷기를 시작한다. 또 이태원 참사 1주기인 10월 29일 추모 대회를 열고 추모 다큐멘터리 제작 및 전국 상영회 개최, 학술 심포지엄, 진상 규명 조사 계획 수립·발표, 이태원 참사 유가족·생존자 구술 기록집 발간 및 북콘서트 등 추모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11∼12월에는 국회 앞 천막 농성과 전국 행진에 나서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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