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게이트' 눈덩이…'처가 카르텔' 정국 흔든다
새 종점 부근에 김건희 일가 소유 12필지+5필지
김선교 "내가 문제 제기"…윤 대통령 처가 '특수관계'
"원희룡이 전화해 강상면으로 하자고…좋다고 했다"
국토부 공문 도착 불과 8일 만에 양평군 '대안' 회신
국힘 전진선 군수 취임 18일 만에 재검토 급진전
"양평 카르텔 전모 밝혀야…'이권 카르텔'의 온상"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종점 변경 과정에서 김선교 전 국민의힘 의원이 막후 역할을 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짙어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 일가의 양평 공흥지구 개발 때도 당시 양평군수로서 '특급 도우미' 역할을 한 것으로 의심받던 김 전 의원이 이번 사건에서는 국회 국토위 위원으로서 또 다시 핵심 관계자로 등장한 것이다. 여기에 원희룡 국토부 장관과 전진선 양평군수도 주·조연급으로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결국 희대의 고속도로 종점 변경 의혹은 윤 대통령 처가를 중심으로 김선교 국토위원-원희룡 국토장관-전진선 양평군수가 일종의 카르텔을 형성해 직간접적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여부를 밝히는 게 진상 규명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원내 1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윤 대통령 처가야말로 '이권 카르텔'의 온상이라고 규정하고 이번 사건을 둘러싼 '처가 카르텔' 실상을 파헤칠 당내 '고속도로 게이트 태스크포스(TF)'를 곧 가동할 계획이다.
'경제성' '교통정체 해소' 타당성 다 뒤집힌 깜깜이 종점 변경
이번 사건은 이미 2021년 4월 30일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해 2031년까지 경기 하남시 감일동(시점)과 양평군 양서면(종점)을 잇기로 결정돼 있던 서울-양평 왕복 4차선 고속도로(고속국도)의 종점이 한 달여 전 갑자기 양평군 강상면으로 뒤바뀌면서 불거졌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5월 8일 '서울-양평 고속국도 건설사업 전략환경영향평가 항목 등의 결정내용'을 공개했는데, 여기에는 도로 종점이 기존 양서면에서 강상면으로 변경된 채 명시돼 있었다.
이 문건에는 '양서면'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다. 게다가 "주민 의견이 있을 경우 공개 기간 내에 의견을 제출해달라"며 5월 8일부터 22일까지 단 15일간 국토교통부 홈페이지와 환경영향평가 정보지원시스템에만 공개해 정작 양평군 군민들은 이 변경 내용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심지어 양평군청 공무원들과 양평군의회 의원들도 이 사실을 대부분 몰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게 종점이 바뀌면 도로 길이가 당초 26.8㎞에서 29.0㎞로 2.2㎞나 늘어나며 공사비도 1조 7695억에서 1조 8661억원으로 966억 증가하게 된다. 경제성이 1000억 원 가까이 차이가 나는 데도 깜깜이로 진행된 것이다. 교통정체 해소라는 원래 목적과 멀어진다는 점도 황당한 대목이다. 양서면 양수리 일대의 인기 관광지인 두물머리는 주말이면 극심한 교통지옥을 만드는 곳이라 국도 6호선의 교통량 분산을 위해 서울-양평 고속도로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그래서 양서면 국수리를 종점으로 하는 안이 지역에서는 당연하게 인식돼왔다.
김건희 일가 5명 공동명의 12필지에 재산공개 신고 안 된 5필지
결정적으로, 변경된 종점에서 불과 500m 이내인 강상면 병산리에는 김건희 씨 일가의 땅이 수천 평 자리 잡고 있어 결국 대통령 처가의 부동산을 의식한 특혜 변경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 수밖에 없었다. 올해 3월 30일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 때 신고된 윤석열 대통령의 재산 내역에는 배우자 명의의 임야, 대지, 창고용지, 도로 등 토지 12필지가 포함됐는데 이 땅의 지번이 전부 양평군 강상면 병산리 1000번지에 몰려 있다. 현재 공시가격은 3억 원대인데 서울-양평 고속도로의 종점이 이 부근으로 바뀌면 땅값이 크게 오를 거라는 전망이 일반적이다. 현지 공인중개사들 역시 같은 의견을 내놓고 있다.
시민언론 민들레가 5일 확인한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해당 토지는 김건희 씨, 모친 최은순 씨, 장남이자 김건희 씨의 오빠인 김진우 씨, 차남 김진한 씨, 장녀 김지영 씨가 각각 5분의 1씩 소유하고 있다. 최은순 씨는 2남 2녀를 두고 있는데 이들이 지분 100%를 소유한 가족회사 ESI&D가 바로 양평 공흥지구 개발 특혜 사업의 시행사였다.
등기부등본에는 강상면 병산리 땅을 1987년 11월 24일 이들 5명이 협의분할로 상속한 것으로 나온다. 양평군에서 태어난 최 씨는 양평군청 공무원이던 김광섭 씨를 만나 결혼했는데 김 씨가 지병으로 사망한 날짜가 1987년 9월 24일이다. 따라서 강상면 병산리 땅은 김 씨에게 물려받은 토지인 것으로 추정된다.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에 신고된 5명 공동명의의 12필지 외에, 김건희 씨는 포함되지 않은 다른 가족 명의의 5필지가 더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윤 대통령의 장모와 처남들은 고위공직자 재산신고 및 공개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 17필지 면적을 더하면 7000평이 넘는다.
김선교 "내가 문제 제기했다"…윤 대통령 및 처가와 '특수관계'
그런데 김선교 전 의원은 본인이 2022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양평군민들의 '관내 IC 신설' 의견을 수렴해 문제를 제기했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 전 의원은 4일 보도자료를 통해 "서울-양평 고속도로 예비타당성 통과안에는 양평군 관내에 IC 신설이 전혀 고려되지 않아 군민들의 IC 신설 요구가 빗발쳤다"며 "이에 해당 지역구 의원인 저의 강력한 신설 요구와 국토부의 검토 결과에 따라 변경안이 마련됐을 뿐이지 특정인에 대한 특혜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2022년 8월 열린 국회 국토위 상임위에서 양평군민들이 해당 도로를 이용할 수 있도록 IC를 신설해 줄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며 "(본인의) 요청을 받은 국토부는 2차 관계기관 협의를 진행하면서 '지역 여건' '경제성' '관계기관 의견' '환경 훼손 여부' 등을 기준으로 양평군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IC 신설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후 해당 사업을 추진하던 한국도로공사는 각 대안별 검토를 거친 후 현재 논의되고 있는 변경안을 타당성 대안으로 의원실에 보고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김 전 의원의 이 같은 설명은 여러모로 미심쩍다. 지난 2008년부터 이 지역에서 고속도로 논의가 시작된 이래 본인이 양평군수를 내리 3선을 하고, 이후 민주당 소속 정동균 양평군수가 재임하는 기간에도 종점 예정지는 변함없이 양서면이었으며 대안으로 강상면이 부각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IC 신설을 이유로 양평군이 회의를 통해 종점에 대한 재검토를 했다거나 주민간담회, 공청회를 열었다는 기록도 없다. 국토부가 예타까지 통과한 고속도로 건설안에 대해 노선 일부 구간도 아닌, 시점이나 종점을 변경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더욱이 김 전 의원은 윤 대통령 및 처가와 '특수관계'라고 할 수 있어 이번에도 그가 개입돼 있다는 사실이 더욱 의구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김 전 의원은 1980년 양평군청 소속 말단 공무원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해 2007년 4월부터 2018년 6월까지 양평군수를 세 번 연임한 뒤 2020년 5월 총선을 통해 국회에 입성했다. ESI&D가 공흥지구 개발사업을 추진하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허가권을 쥔 지자체장이 바로 김 전 의원이었다.
윤 대통령은 2012년 3월 11일 김건희 씨와 결혼했고 2013년 4월 양평군을 관할하는 여주지청장으로 부임했다. 이렇게 해서 김 전 의원은 1960년생 동갑인 윤 대통령과 지역 단체장-지청장으로 인연을 맺었으며 윤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 초창기부터 합류해 경기 선대위원장으로 활약했다. 김 전 의원은 특히 지난해 3월 30일 국민의힘 소속 양평군수 예비후보 행사에 참석한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발언해 자신이 공흥지구 개발사업 편의를 봐줬음을 스스로 실토한 바 있다.
"내일 제가 대통령 당선인하고 점심 먹으러 갑니다. (당선인이) 언제든지 나한테 얘기를 하래요. 왜, 처갓집도 여기고…. 옛날에 인연도 있지만, 지청장 때 인연도 있지만, 장모님 때문에 김선교가 고생한다는 걸 너무나 잘 알아요, 너무나. 나하고 단둘이 있을 때는 '야, 김 의원아', 나하고 (같은) 60년생이니까. '야, 김 의원 당신만 보면 미안해' 왜? 알잖아요? 허가 이렇게 잘 내주고."
김 전 의원은 불법 후원금 문제로 회계책임자가 벌금 1000만 원을 선고받으면서 지난 5월 18일 공직선거법에 따라 의원직을 상실했다. 그러나 내년 4월 총선에는 다시 출마할 수 있어 공천을 받기 위해서도 윤 대통령 및 김건희 씨 측과 관계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국토부 '타당성 검토' 공문 보내자 불과 8일 만에 양평군 '대안' 회신
김선교 "원희룡이 전화해 강상면으로 하자고…나도 좋다고 했다"
게다가 본인의 요구에 따라 국토부에서 변경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는 김 전 의원의 설명은 양평군과 국토부의 논의 과정을 볼 때 시점상 성립하기 어렵다. 김 전 의원이 언급한 상임위 발언은 21대 국회 하반기 원구성 후 처음 열린 2022년 8월 1일 국토위 전체회의 때다. 하지만 그보다 앞선 7월 18일에 이미 국토부는 양평군에 기존 종점인 양서면 안에 대한 타당성을 검토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고, 그로부터 불과 8일 만인 7월 26일 양평군은 양서면에 강상면과 강하면을 추가한 세 가지 '대안'을 담은 의견서를 회신했다. 7월 22일 국회 국토교통위에 보임된 김 전 의원이 8월 1일 관련 발언을 꺼내기 전에 국토부와 양평군은 공문상으로도 벌써 논의를 시작했던 것이다.
김 전 의원의 요구가 직접적 계기가 됐든 아니든 종점 변경 과정에 김 전 의원이 어떤 식으로든 영향력을 행사한 건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원희룡 장관이 김 전 의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종점을 강상면으로 결정하자고 했다는 증언도 나온 상황이다. 정동균 전 양평군수는 4일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과 인터뷰에서 "제가 얼마 전에 지역 경로당 회장님, 사무장님 보수교육 하는데 인사를 갔는데 김선교 의원이 축사를 하면서 서울 양평 고속도로 이야기를 하더라"며 "그러면서 원희룡 장관이 자기한테 전화가 와서, 강상면으로 하자고 그런 내용으로 통화를 했고 자기도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이런 표현을 하길래 저는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이어 "아니, 그렇게 본인이 (양평군수로) 있을 때도 그렇게 원안대로 계속 주장을 해 왔으면서, 장관님 전화 한 통으로 노선이 그렇게 결정될 수 있는가"라고 개탄했다. 정 전 군수는 "김선교 전 의원이 자기 과시용으로 얘기할 수도 있다. 제가 직접 전화 온 걸 들은 건 아니지만 본인이 공개 석상에서 그렇게 발언을 한 건 들었다"고 덧붙였다.
정 전 군수가 김 전 의원의 이 같은 발언을 들은 것은 지난 6월 9일 양평군 동부지역 노인지도자 보수교육 자리였다고 한다. 원희룡 장관이 직접 전화를 걸어와 강상면으로 노선을 변경하는 게 어떠냐고 했고 자신도 좋다고 대답했다는 취지의 얘기를 김 전 의원이 축사를 통해 스스로 공개했다는 것이다. 이번 특혜 의혹이 불거진 이래 원 장관은 "실무 부서에서 강상면 가는 안을 최적 안이라고 저한테 최근 의견 제시를 했지만 '국민적 의혹을 사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전면 재검토 시켜서 현재 전혀 결정된 바 없다" "국토부 장관이 김건희 여사 집안의 재산을 불려주려고 고속도로 노선을 변경했다는 허무맹랑한 소리들을 하고 있다" "어느 누구로부터도 청탁이나 압력을 받은 사실이 없다" 등의 입장을 밝혀왔다.
국힘 소속 전진선 양평군수 취임 18일 만에 종점 재검토 급진전
"양평 카르텔 전모 밝혀야…윤 대통령이 말한 '이권 카르텔'의 온상"
전진선 양평군수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주목된다. 양평경찰서 서장, 양평군의회 의원을 지낸 그는 지난해 6월 1일 지방선거에서 양평군수에 당선돼 7월 1일 취임했다. 민주당 소속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양평군수가 바뀌어 취임한 지 18일 만에 국토부가 기존 양서면 안에 대한 '타당성 평가 관계기관 협의 요청' 공문을 보냈고, 그로부터 또 8일 만에 양평군이 강상면 병산리 대안을 담은 의견서를 회신했던 것이다. 그 사이에 양평군 측이 지역 주민 의견을 수렴한 흔적은 없다. 이에 대해 전 군수는 지난 3일 민선 8기 1주년 브리핑 자리에서 "지역 주민들을 위해서 강성면으로 종점안이 변경된 노선을 제안한 것"이라며 "정치권의 공세 등으로 착공이 늦어지면 양평 군민들만 피해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1조 7000억 원대 초대형 국가 기간사업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난해 5월 10일 이후 급격하게 틀어지면서 딱 1년이 지난 5월 8일 국토부가 고속도로 종점을 바꾼 공문을 은근슬쩍 공개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야당과 시민단체, 시민언론 더탐사를 비롯한 일부 언론 등에 의해 이 문제가 표현화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착공까지 이어졌으리라는 건 불문가지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은 5일 국회 본청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양평군 국회의원, 국토부, 김건희 여사 처가가 연결된 '양평 카르텔'의 전모를 가차 없이 조사하고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이제 이원석 검찰총장은 수사해야 한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수사 지휘하라"며 "감사원은 국토부, 환경부 등 다 감사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따졌다. 박성준 대변인은 "윤 대통령 '처가 카르텔'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고속도로 게이트'야말로 대통령이 말한 이권 카르텔의 온상"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