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회동 열사 마지막 가는 날 종일 비가 내렸다

분신 50일 만에 노제·영결식 엄수

출근길 시민들 운구행렬 지켜보며 애도

영정 차량 막는 경찰과 몸싸움 벌어지기도

"동지의 죽음 헛되지 않도록 함께 싸우자"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 안장

2023-06-21     김성진 기자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21일 오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 미사를 마친 민주노총 건설노조 간부 고 양회동 열사의 장례행렬이 경찰청으로 향하고 있다. 2023.6.21. 연합뉴스

간 밤부터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한 건설노조 노동자가 "하늘도 슬퍼서 우나보다"라고 조용히 읊조렸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옆 흡연 공간에서 담배를 태운 이들은 우비를 챙겨 입었다.

정권의 노조 탄압으로 분신한 고 양회동 열사의 발인일인 21일 오전,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 하기 위해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 운집했다. 양회동 열사 장례위원회 대변인을 맡은 김준태 건설노조 교육선전국장은 "새벽녘까지 노제·영결식에 사용할 장례물품을 준비했다"고 전했다.

오전 8시부터 천주교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김시몬 신부 주례로 봉헌된 발인 미사가 끝난 뒤, 8시 50분께 장례식장 지하 비탈길을 따라 건설노조 노동자들의 손에 들린 양회동 열사의 관이 천천히 올라왔다. 양 열사의 중학교 2학년생 아들은 영정 사진을 들었다. 운구차에 관이 실리고 양 열사의 아내가 오열했다.

운구 행렬이 시작되기 전, 양 열사의 친형 양회선 씨는 장례위원과 시민, 취재진을 향해 "동생을 이렇게 보낼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마음, 나중에라도 그 한을 꼭 풀어주시고 동생이 하느님 곁에서 편하게 쉴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라며 목례를 했다.

 

지난달 분신해 숨진 민주노총 건설노조 간부 양회동 씨의 발인이 21일 오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되고 있다. 2023.6.21. 연합뉴스

"우리도 사람이다" 도심에 울려퍼진 상엿소리

9시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까지 4.5㎞의 운구 행진이 시작됐다.

풍물패가 선두에 서고, 상엿소리를 하는 방송차와 운구차, 유족과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 정의당 심상정·배진교 의원, 진보당 강성희 의원 등이 그 뒤를 따랐다. 이들 뒤로 시민들과 영정 차량, 만장기를 든 노조원들, 양회동 부활도 행렬이 이어졌다.

"건설노조 그만 괴롭혀라 우리도 사람이다(에헤 에헤 에헤이야), 경찰들의 강압적인 수사 우리들의 자존심을 마구마구 짓밟네(에헤 에헤 에헤이야), 우리가 원하는 건 사람답게 사는 세상, 일하는 만큼 대접받는 세상(에헤 에헤 에헤이야)…"

상엿소리와 요령소리가 들리자 출근길 버스를 탄 시민과 길을 걷는 시민들도 고개를 돌려 행렬을 지켜봤다. 인근 상가나 카페 등에서 상인들이 나와 행렬을 지켜보기도 했다. 한 시민은 "누구 장례냐"고 물었고, 다른 시민이 설명해주기도 했다.

유족들과 건설노조원들은 구성진 상엿소리에 울음을 삼켰다. 한 배달플랫폼 노동조합원은 정동 사거리에 배달 상자가 달린 오토바이를 세우고 건설노조 조합원들에게 주먹을 들어보이며 힘내라는 인사를 보냈고, 조합원들이 고개를 숙여 답했다.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동사거리에서 배달플랫폼 노조원이 고 양회동 열사 운구차를 따라 장례행렬 중인 건설노조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건설노조원들도 목례로 답했다. 2023.6.21 김성진 기자

행렬은 종로 4가와 종로 3가를 지나 종각역에서 10분 정도 쉰 뒤, 광화문역을 지나 서대문역까지 총 2시간을 걸었다.

경찰, 영정차량 막아세워 몸싸움 벌어지기도

10시 14분쯤 운구차가 세종대로 사거리(광화문역)를 지날 때 경찰이 운구차 뒤를 따르던 영정 차량을 막아세웠다. 유족과 건설노조원들이 항의하면서 몸싸움이 벌어졌다.

유족과 함께 행진을 하던 진보당 강성희 의원은 영정 차량을 막아세운 경찰들을 향해 외쳤다. "비키라고! 지금 장례식이야! 장례식이라고!" 양 열사의 친형 양회선 씨도 노조원과 몸싸움하는 경찰들에게 강력 항의했다.

만장기를 든 노조원 수십 명이 경찰들을 밀어내면서 소란은 정리됐지만, 10여 분 행렬이 중단됐다.

 

21일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경찰이 고 양회동 열사 영정 차량을 막으면서 장례행렬 중이던 건설노조원과 몸싸움이 벌어졌다. 2023.6.21. 김성진 기자

우여곡절 끝에 11시쯤 노제가 열리는 경찰청 앞에 도착했다. 그곳에서도 경찰의 방해는 계속됐다.

당초 건설노조는 경찰청 정문에서 서울역 방면으로 70m 정도 앞까지 집회를 신고했으나, 경찰은 이를 불허하고 정문 앞에 펜스를 치고 경비 병력 수백 명을 배치했다. 이로 인해 유족의 헌화 등 상징 의식은 무산됐다.

장례위원회 대변인을 맡은 민주노총 한상진 대변인은 "(정문을 지나) 70m 앞까지 집회 신고를 하고 경찰과 협의도 했다"며 "윤희근 경찰이 경찰청 정문을 내주는 것은 자존심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2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민주노총이 연 건설노동자 고 양회동 열사 노제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6.21. 연합뉴스

"양회동의 삶, 전태일 열사와 발걸음과 일치"

노제는 예정보다 10분 정도 늦어진 11시 10분쯤부터 시작됐다.

참가자들은 "열사의 염원이다 윤석열은 퇴진하라" "강압수사 자행하는 경찰청은 자폭하라" "열사의 염원이다 원희룡은 사퇴하라" "열사정신 계승하여 공안탄압 박살내자" "열사정신 계승하여 책임자를 처벌하자" 등의 구호를 외쳤다.

추도사에서도 슬픔을 표현함과 동시에 양 열사의 유언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양 열사는 유서에서 '노조 탄압 중단'과 '윤석열 퇴진',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 등을 노조와 정당, 언론 등에 당부한 바 있다.

김정배 강원건설지부장은 추도사에서 "열사가 목숨을 바쳐 호소한 길이 우리의 길임을, 윤석열 검찰 독재를 무너뜨리는 것만이 노동자, 국민이 살 수 있는 길임을 알았다"며 "오늘 우리는 다시 시작할 것이다. 당신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했던 건설노조를 열사의 고귀한 뜻 앞에 반듯하게 세우겠다"고 말했다.

윤장혁 금속노조 위원장은 "양회동 열사의 삶은 53년 전 남보다 주변을 더 생각했던 전태일 열사의 발걸음과 일치한다"며 "열사가 우리에게 남긴 그 정신을 산 자들이 가슴에 새기고, 열사가 염원했던 '윤석열 정권 퇴진'과 '노동자가 주인된 세상'을 2500만 노동자들이 반드시 실현하겠다"고 했다.

 

2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진행된 민주노총 건설노조 고 양회동 열사의 노제를 마친 참가자들이 세종대로 방면으로 행진하고 있다 . 2023.6.21. 연합뉴스

"끝이 아니고 시작…하나되어 윤석열과 싸우자"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영결식에서도 '열사 정신' 계승을 다짐했다. 영결식에는 비가 오는 날씨에도 노동자와 시민 6000여 명(주최 측 추산)이 참가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추도사에서 "윤석열 정권을 끌어내릴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양회동 동지는 알려줬다"며 "동지의 희생을 헛되지 않도록 하겠노라 너나없이 나섰다. 양회동 동지의 억울함을 푸는 길은 윤석열 정권을 끝장내는 것이다. 양회동이 옳고, 윤석열이 틀렸다고 증명하자"고 외쳤다.

박석운 전국민중행동 공동대표는 "양회동 동지의 억울한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건설 노동자들이 앞장서고 사회각계 시민·민중들과 양심세력들이 함께 나서는 거대한 사회연대투쟁을 통해 함께 승리하고, 그리하여 더이상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함께 힘과 정성을 모아 나가자. 살아서 함께 싸우자"고 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노동당, 녹색당 등 야당 대표들의 추도사가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1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에서 열린 민주노총 건설노조 간부 고 양회동 씨 영결식에 참석해 조사를 읽은 뒤 무대에서 내려오고 있다. 2023.6.21. 연합뉴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정당한 노동권을 부정하고 노동인권을 탄압하는 정부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조작으로 진실을 잠시 가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진실을 영원히 가둘 수 없다"며 "노동이 존중받는 세상, 노동자들이 정당하게 대접받는 세상을 향한 열사의 꿈을 살아남은 우리가 함께 이뤄가겠다"고 말했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상임대표는 "영결식은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서로 영원히 헤어지는 자리라고 한다. 그러나 오늘의 이 영결식은 떠나보내지만 그 뜻만큼은 떠나보낼 수 없다고 여기모인 우리가 함께 다짐하는 자리"라며 "열사가 남긴 소원, 먹고 살려고 노동조합했던 사람들의 존엄과 자부심만은 지켜달라던 그 애틋한 소원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함세웅 신부는 야당 대표들을 향해 "양회동 동지는 목숨을 바치면서 야당대표를 한 자리에 모았다"며 "여러분들, 하나가 되십시오. 뜻을 모으십시오. 윤석열 독재와 싸워야 합니다"라고 외쳤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의 담화, 그게 대화인가. 그게 공갈협박"이라며 "우리 시대 공갈협박범들을 모조리 몰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21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에서 열린 고 양회동 열사 영결식에서 참가자들이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2023.6.21. 연합뉴스

유족 "어떤 고난과 역경에도 동생 뜻 이어가달라"

양회동 열사의 형 양회선 씨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기획분신설'을 제기한 것에 대해 "그 순간 저희 가족들은 동생의 죽음을 들었던 순간만큼 가슴이 찢어지는 심정이었다"며 "정권의 말을 들으면 국민이고,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으면 죽음도 외면 받아야 하는 것이냐"고 했다.

이어 야당 대표들에게 "앞으로 동생과 같은 안타까운 일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면 안 된다"면서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위협하는 장애물들을 없애주는 데 힘을 보태달라"고 호소했다.

또 "오늘 장례는 동생을 차가운 곳에서 따뜻한 곳으로 편히 잠들 수있게 하는 우리의 도리인 것이지, 끝이 아니"라며 "어떤 고난과 역경이 닥치더라도 먼저 떠난 열사들과 동생의 죽음의 고통을 상기하면서 계속 이어가는 게 남겨진 우리의 의무"라고 했다.

양 씨는 노동시민사회에 감사를 전한 뒤, "120만 민주노총 조합원들께도 감히 당부드린다. 유례없는 이 힘든 시기를 극복하는 것을 넘어 똘똘 뭉쳐서 우리의 생존권과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함께 나아가야 하는 이 현실을 잊지 말아달라"고 다시 당부했다.

 

21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에서 열린 민주노총 건설노조 간부 고 양회동 씨 영결식에서 유족들이 헌화하고 있다. 2023.6.21. 연합뉴스

그는 끝으로 동생인 양회동 열사에게 말했다. "아내, 아이들을 두고 떠나면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알아주지 못해 미안하다. 너의 형제들과 조카들이 뭉쳐서 최대한 부족함을 채우도록 노력할게. 너가 다시 만나는 그날, 형이 너가 혼자 고통받으며 힘들어 했을 모든 말을 들어줄게. 그때까지만 외로워도 하늘에서 우리 가족들 잘 지켜봐줘. 내 동생으로 태어나 함께 살아가줘서 고맙다."

영결식 말미에 양 열사의 아들과 딸이 쓴 편지글이 고인의 생전 사진과 함께 영상으로 소개되자 모여든 운집한 시민들 여기저기서 오열이 터졌다.

장례위원회 호상을 맡은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은 "양회동 열사가 산화하신 그날부터 오늘까지, 전국의 수많은 시민들이 양회동 열사의 죽음을 슬퍼하고, 유가족을 따뜻하게 위로해 주셨다"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러면서 "열사가 염원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건설노조가 가장 앞장서서 투쟁하겠다는 것을 결의한다"고 했다.

 

21일 오후 4시 20분부터 경기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서 고 양회동 열사 하관식이 엄수됐다. 2023.6.21. 사진 에큐메니안 임석규 객원기자

양 열사는 오후 4시 20분 경기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묻혔다. 지난 17일부터 이날까지 5일간 진행된 장례 절차가 그렇게 마무리됐다.

장옥기 위원장, 장례 마치자마자 남대문경찰서 출석

한편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은 내일(22일) 자진해서 경찰 조사에 임한다. 앞서 장 위원장은 장례를 마친 뒤 경찰 조사에 자진해서 임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경찰은 지난달 16~17일 1박 2일로 서울 도심에서 열린 총파업 결의대회 등이 집시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지난 9일 건설노조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집시법을 이유로 압수수색을 하는 것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과잉수사였다.

장 위원장은 22일 오후 1시 남대문경찰서 앞에서 경찰 출석 조사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장 위원장은 앞서 지난 14일 기자회견에서 자진 출석 의사를 밝히며 "건설노조가 양회동 열사 앞에 사과를 요구하며 진행했던 지난 집회들을 모조리 불법이라 몰아세우는 공권력의 부당함에 강력한 이의를 제기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 양회동 열사 및 유가족을 비방하거나 2차 가해성 댓글 작성시 경고 없이 삭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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