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교묘하게 미화… 청와대 전시의 ‘혹세무민’

전직 대통령 소품 선보인 ‘우리 대통령들의 이야기’

대중 유화책이었던 전두환 통금해제 찬양기사 배치

이명박은 4대강, 이승만은 한미동맹과 관련된 소품

민주당 계열 대통령은 일상적 활동만 소개해 대조돼

박보균 문체부 장관이 기획·소품 선정 등 전시 주도

2023-06-08     민병선 에디터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청와대에 전시된 전두환의 방한모. 통금 해제와 관련된 방한모에 대한 설명과 기사는 전두환을 미화한다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시민언론 민들레.

청와대에서 열리고 있는 전직 대통령 관련 전시가 전두환을 미화하는 등 정치적 편향성으로 논란이 일고 있다. 보수 진영인 전두환 이명박 이승만 대통령 등의 소품에는 구체적인 정치적 성과 등의 의미를 부여한 반면, 진보인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의 소품에는 인물의 개인적인 면모만 강조돼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전시가 정치적으로 편향됐다면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는 1일부터 청와대 본관과 춘추관에서 청와대 개방 1주년 기념 특별전시를 열고 있다. 전시 제목은 ‘우리 대통령들의 이야기-여기 대통령들이 있었다’이다. 박보균 문체부 장관은 1일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전시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청와대는 74년간 역대 대통령들이 격동의 대한민국 역사를 써 내려간 최고 리더십의 무대였다. 대통령들의 상징적인 소품을 통해 그들이 권력의 정상에서 고뇌하고 결단을 내리던 순간들을 보여줄 수 있도록 전시를 준비했다. 이번 전시는 대통령의 공과를 다루는 기존의 전시방식을 벗어나, 스토리텔링을 통해 예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방식으로 우리 대통령들을 접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소품을 통해 대통령들의 인간적인 면모들 보여주는 게 전시의 의도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8일 둘러본 전두환 코너에서는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전두환은 현재 손자 전우원 씨의 폭로로 비자금 은폐 등의 논란이 사후에도 끊이지 않고 있는 문제적 인물이다.

통금해제를 찬양하는 당시 기사.

전두환을 소개하는 글의 제목은 ‘전두환의 스포츠 사랑, 프로 축구 첫 시축, 프로 야구 첫 시구자였다’이다. 글에는 전 씨가 대구공고 시절 축구부 골키퍼를 맡으며 시작된 스포츠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다. 글 옆에는 전 씨가 사용한 축구공을 전시했다.

문제는 다른 소품과 사진이다. 축구공과 함께 전시된 방한모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붙어 있다. ‘1982년 1월 그는 36년 만에 야간통행금지 해제 조치를 발표했다. 통금 조치 이후의 현장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방한모를 쓰고 경찰서를 돌았다.’ 방한모 위쪽에는 ‘차분하고 느긋했다… 되찾은 4시간 여유 있게 즐겨’(1982년 1월 6일자 동아일보)라는 제목의 기사를 붙여놓았다. 마치 통금 해제를 전 씨의 업적처럼 찬양한 당시 기사를 전시한 것이다. 방한모 옆에는 ‘통금 없는 밤 첫 시찰’이라는 제목의 다른 신문 기사를 배치했다.

통금 해제는 정통성이 약했던 전두환의 대중 유화책이었다. 12·12 쿠데타와 광주 학살로 집권한 전두환이 성난 민심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3S(sport, screen, sex) 정책’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통금이 없어지며 나이트클럽 등 유흥업소의 밤샘 영업이 가능해졌다. 대중을 기만하고 정치적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꼼수였다.

 

이명박 대통령을 소개하는 코너. 시민언론 민들레.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표 소품은 자전거 헬멧이다. 그의 헬멧도 구체적인 실적과 연관지었다. 소개글 제목은 ‘이명박의 실용주의는 4대강 자전거 길 위에서 완성되었다’이다. 현재도 논란이 뜨거운 4대강 사업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소품을 소개하고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도 구체적 성과를 강조하는 소품을 택했다. 그가 사용한 타자기 옆에는 ‘1953년, 78세의 이승만은 한미동맹의 역사를 한 글짜 한 글짜 써 내려갔다’는 글이 게시됐다. 글에는 ‘영문 타자기는 이승만 대통령의 필수품이었다. 독립운동 시절부터 그의 가방에 들어 있었다. 이승만은 신생국가의 대외 전략을 직접 수립했다. 최고 지도자이면서 최고 외교관이었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이승만 대통령의 타자기. 문체부 제공.

반면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의 소품은 각각 ‘원예가위’ ‘독서대’ ‘등산스틱’인데, 이에 관해서는 구체적인 정치적 성과보다는 인간적인 면모에 의미를 두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독서대를 소개하는 글은 다음과 같다.

‘노무현 대통령은 특허 보유 대통령이다. 그가 존경하는 링컨 미국 대통령 역시 특허 대통령이다. 그는 1974년 사법시험 준비 시절 ‘개량 독서대’를 만들었다. (중략) 그는 장애물에 부딪혔을 때 우회하지 않았다. 문제 해결을 향해 직진했다. 근본 원인을 해부했다. 그리고 새롭거나, 파격적인 해법과 개선 방식을 제시했다. 그런 장면은 5공 청문회를 비롯한 ‘노무현 드라마’에서 등장한다.’

논란을 예상해서인지 문체부 보도자료에는 전두환, 이명박 대통령의 소품에 관한 소개가 빠져 있다. 시민언론 민들레와 통화에서 문체부 관계자는 “(대통령의 소품 등 전시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보도자료에 나온 내용을 참고해달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전시의 기획, 소품 선정 등은 박보균 장관의 주도하에 이뤄졌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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