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아베'가 '산 시진핑'을 그물에 가두다
[창간기획: 먹구름 몰려드는 인도태평양] ⓶
대중 군사포위망 쿼드, 경제포위망 IPEF…인·태전략 양 날개
'쿼드 부활'은 트럼프, 'IPEF 창설'은 바이든
시진핑 “IPEF, 경제협력을 정치화하고 범안보화” 반발
‘자유·민주주의·인권' 가치 공유한 나라끼리 교역망·공급망 구축
‘아시아·태평양’(Asia-Pacific)에서 ‘인도·태평양’(Indo-Pacific)으로!
아시아의 중심을 자처하는 중국이 빠지고, 그 자리를 인도가 차지했다.
얼핏 보면 이름만 달라졌지만, 오랫동안 숙성해온 ‘국제질서의 재편’이라는 미국의 전략과 연결되면 그 무게는 자못 남다르다. ‘인도·태평양’은 인도를 활용해 전방위로 세력을 확장하는 중국을 저지하고, 미국 위주로 국제질서의 구도를 재편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공세적’ 전략 개념이다.
패권국가인 미국은 동맹국, 우방국들로 연합전선을 만들어 자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중국을 저지하고, 그 결과 바야흐로 대중 포위망 구축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지금까진 대체로 미국의 전략대로 진행돼온 양상이지만, 시진핑 국가주석의 집권 3기에 들어간 중국도 쉽사리 물러설 태세는 아니어서 역내 정세는 그 어느 때보다 위태로운 국면에 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태동은 15년 전인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리적이 아니라 전략적 의미에서 ‘인도·태평양’이란 개념은 그 해 1월 공개된 인도 해군장교의 논문에서 처음으로 언급됐다. 하지만, 국제정치적 차원에선, 당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집권 1기)가 첫 제안자라는데는 별다른 이견은 없다. 뒤에서 전략을 기획하고 미국의 등을 떠민 것은 아베였다는 얘기다.
아베 총리는 2007년 8월 인도 의회에서 ‘두 바다의 합류’라는 주제로 연설을 했다. 그는 “인도양과 태평양은 자유와 번영의 바다로서 역동적 커플을 이룰 것”이라고 주장했다. 두 바다를 잇는 해상교통로의 안전이 연설의 초점이었다.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대만해협 등에서 주변국과 영유권·항행권 갈등을 빚는 중국을 겨냥한 발언이었지만 당시엔 큰 주목을 끌지는 못했다.
아베가 인도를 소환한 배경을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사회주의 인구대국인 중국이 경제대국으로 급부상하는데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다. 인구로든 역사로든 중국에 못지 않은 개방적 자유주의 체제인 인도를 끌여들어 중국을 견제하는 일종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수법을 썼다고 하겠다.
중국 경제는 미국의 지원을 받아 2001년 WTO(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한 것을 계기로 그야말로 폭풍성장을 했다. 후진타오 정권이 들어선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중국의 성장률은 연평균 10%가 넘었다. 2004년 세계 최대 수출국에 오른 데 이어, 2009년에는 독일을 넘어 경제규모 세계 3위를 기록했고, 2010년에는 세계 2위로 일본마저 제쳤다.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미국 국채의 최대 보유국으로 떠올랐다.
이 시기에 즈음해 중국은 공세적 외교로 전환한다. 경제적, 군사적으로 막강한 국력을 내세워 주변국을 압박하는 일명 ‘전랑’(戰狼·늑대전사) 외교를 펴기 시작했다.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는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 전략도 폐기했다. 시진핑은 2012년 11월 총서기에 이어, 2013년 3월 국가주석이 되면서 ‘시진핑 신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중국몽’(中國夢)을 내걸고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 추진을 천명했다. 이 사업은 중국-중앙아-유럽을 잇는 육상 실크로드 경제벨트와 중국-동남아-서남아-유럽-아프리카를 잇는 해양 실크로드로서 인구 40억명, 60여개국을 아우르는 유라시아경제권(경제규모 21조 달러) 구축을 목표로 내세웠다. 공세적인 중화주의 부활의 서막이 아닐 수 없었다.
바로 이 때가 일본이 인도·태평양 전략을 본격화한 시기이다. 때마침 아베 총리가 5년 3개월 만인 2012년 12월 재집권하면서 다시 불을 붙였다. 이 무렵 중국은 아베가 인도·태평양 개념을 처음 제안했던 2007년 당시의 중국과는 체급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중국은 ‘잃어버린 30년’이란 장기침체에 빠진 일본을 이미 경제력에서 압도한 상태였다.
미국도 중국의 거침없는 부상과 공세적 세력 확장을 경계하고 나섰음은 물론이다.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라는 아시아 중시 정책을 폈지만, 경제와 군사 등 전방위로 힘을 키워가는 중국을 막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시 주석은 2013년 방미 당시 오바마 대통령에게 “태평양은 미·중 양국을 모두 포용할 만큼 충분히 넓은 공간”이라면서 ‘신형 대국관계’ 구축을 제안했다. 미국 위주의 국제질서에 도전할 뜻을 드러낸 것이다. 미·중 전략경쟁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중국의 본심’을 확인하자, 미국은 중국과의 공존·공영에서 방향을 완전히 틀어 견제, 저지, 배제, 봉쇄로 대중 압박을 단계적으로 높여 나갔다.
때마침 미국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 것이 바로 아베의 인도·태평양 전략이었다. 미국의 대중 정책 전환에는 당시 서방 전문가들의 일반적 분석과는 달리, 중국이 시장경제의 급속한 발전에도, 사회주의적 권위주의 정치체제를 청산하기는커녕 한층 더 강화해 나가는 데 대한 전략적 고민도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 중동과 유럽 문제에 신경을 쓰느라, 중국에 집중하기 어려운 미국의 사정도 일본을 ‘동아시아의 대리자’로 내세운 데 한 몫을 했다.
미국이 인·태 전략을 공식화한 계기는 2017년 1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이었다. 그 시점에 집권 2기에 들어간 시 주석은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 건설을 통한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야심 차고 도전적인 선언을 했다. 미·중 패권 경쟁으로 비화하는 순간이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정상회담을 통해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을 양국 공동의 외교 전략으로 삼기로 합의했다.
그로부터 5년간 미·일·인도·호주(쿼드·Quad)의 주도아래 인·태 전략은 확산됐고,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과 EU(유럽연합) 국가들까지 참여했다. 미 행정부가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바뀌었지만, 2021년 취임한 조 바이든 대통령도 인·태 전략은 이어받았다. 유보적이었던 한국도 이달 11일 공식으로 동참을 선언해 마침내 ‘반중 포위망’에 가담했다. 지난 7월 선거유세 중 암살된 아베가 기획하고 추진해온 구상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중국은 중국대로 이달 초 시진핑 3기 정권을 출범시켰다. 예상을 넘어 친위인사들로 지도부를 꾸려 ‘시진핑 1인 지배체제’를 구축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전방위로 조여오는 서방의 공세에 대한 대내 결속 필요성도 작용했을 것이다. 방어를 위해 고슴도치처럼 털을 빳빳이 세우고 잔뜩 웅크린 모양새다. ‘죽은 아베’가 ‘살아있는 시진핑’을 포위망에 가둬놓은 형국이다.
‘인도·태평양 대중 포위망’은 거듭 진화해왔다. 이 과정에서 ‘쿼드동맹’(Quad alliance)이 보여준 역할과 위상은 거의 절대적이다. 쿼드는 2007년 아베가 인·태 전략과 함께 제안한 미·일·인도·호주 4국의 비공식 안보협의체로 출발해 15년후인 2022년 ‘동맹’으로 격상된 군사안보협의기구다. 해양세력이 뭉쳐서 대륙국가인 중국과 러시아를 봉쇄하는 그림이다. 지금은 한국·베트남·뉴질랜드를 끌어들여 ‘쿼드 플러스’(Quad Plus)로 그 세력을 넓히고 있다. 쿼드의 역사가 인·태 전략의 역사이다. 중국이 쿼드를 구소련에 군사적으로 대항하고자 만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아시아판’이라고 거세게 비난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쿼드가 대중 군사 포위망이라면, 지난 3월 바이든 대통령의 주도로 만들어진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는 대중 경제 포위망이다. 그 틀 안에 한국·미국·일본·대만 4자 간 반도체공급망대화(‘칩4’)도 포함된다. 중국을 배제하고 미국의 동맹과 우방 14개국이 참여했다는 점에서 경제를 ‘국가안보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이른 바 ‘경제의 안보화·정치화’이다. 경제안보협의체인 IPEF의 출범으로 인.태 전략은 쿼드와 함께 양 날개를 갖게 됐다.
호주의 불참으로 휴지기를 보냈던 쿼드를 소환한 것은 트럼프였다. 2017년 11월 마닐라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미·일·인도·호주 4국 정상은 따로 만나 ‘쿼드동맹의 부활’을 선언했다. 남중국해를 비롯한 인·태 지역에서 군사적, 외교적으로 중국을 저지하자는데 의기투합한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 들어서, ‘쿼드동맹’은 본격 가동되기 시작했다.
2021년 3월 화상 정상회의에서 4국 정상은 ‘쿼드의 정신’이란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성명은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을 위한 공동의 비전’ 아래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규칙에 기초한 해양질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쿼드동맹’은 탄력이 붙었다. 첫 대면 정상회의(2021년 9월. 워싱턴D.C.), 2차 화상 정상회의(2022년 3월), 2차 대면 정상회의(2022년 5월. 도쿄)로 이어지며 결속력을 더했다.
남중국해, 동중국해, 대만해협 등에서의 영유권·항행권 문제와 맞물린 중국의 군사적 공세에 맞서, 쿼드는 양자, 다자 연합군사훈련을 지속해왔고, 태평양에서는 미군과 일본 자위대의 연합훈련에 이어 급기야 지난 9월 독도 인근 동해상에서 한·미·일 연합 대잠훈련까지 벌였다.
오늘의 IPEF를 있게 한 ‘경제안보’ 개념은 트럼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12월 국가안보전략보고서를 발표하면서 행한 연설에서 “미국의 전략은 사상 처음으로 경제안보가 국가안보임을 인정한다”고 선언했다. 당시만해도 그의 말을 눈여겨 본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이렇게 탄생한 ‘경제안보’ 개념은 미·중 무역전쟁, 관세전쟁 등 숙성 과정을 거쳐 바이든 행정부에서 국제기구로 실체를 갖췄다.
IPEF는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 등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국과 우방국만으로 교역 및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미국의 의지를 상징한다. 중국을 배제한 ‘경제안보동맹’ 구축이 목표다. 바이든 대통령은 IPEF에 대해 “21세기 경제에 새로운 규칙을 만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5월 도쿄서 열린 IPEF 창설국 정상회의에선 △ 공정하고 회복력 있는 교역 △ 공급망 회복력 △ 인프라·청정에너지·탈탄소화 △ 조세·반부패 등이 주요 협력분야로 제시됐다.
현재 미국은 미래 산업 주도권 선점 차원에서 미국 중심의 공급망 구축과 기술경쟁 우위 확보, 제조업 부활 등을 위해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은 “경제협력을 정치화·안보화”(시진핑)하는 것이라면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양보 없는 미·중 패권 경쟁의 종착지는 어딜지, 주변국들은 다들 긴장된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