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혁 방통위원장 구속 면했지만…해임? 직위해제?
법원 "혐의, 다툼 여지 있다" 구속영장 기각
검, 기소 뒤 해임 또는 직위해제 수순 밟을 듯
언론계·시민사회 "윤정부 언론장악" 반발 예고
방송통신위원회의 종합편성채널 재승인 심사 의혹과 관련해 청구된 한상혁 방통위원장의 구속영장이 30일 기각됐다.
서울북부지법 이창열 영장전담판사는 “현재까지 수집된 증거자료의 정도, 수사의 경과 등에 비춰 볼 때 피의자의 자기방어권 행사 차원을 넘어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구속 영장을 기각했다. 주요 혐의에 대해서는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봤다. 결정적 증거로 볼만한 ‘스모킹 건’이 없고 TV조선에 불이익을 주기 위해 점수를 조작했다는 증명이 안됐다는 얘기다.
앞서 검찰은 지난 24일, 2020년 방통위의 종합편성채널 재승인 심사 때 한 위원장이 TV조선의 평가 점수가 하향 조작된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했다며 위계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한 위원장은 이날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동부구치소 앞에서 기자들에게 “장시간에 걸쳐 항변을 들어주고 현명한 판단을 해준 재판부에 감사하다”며 “앞으로 무고함을 소명하고 우리 (방통위) 직원들의 억울함을 풀어드리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구속영장 기각에 따라 검찰은 조만간 한상혁 방통위원장을 불구속 기소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기소할 경우, 다음 단계로 한 위원장에 대한 해임이나 직위해제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
첫째, 검찰이 기소하고 방통위를 감사해온 감사원이 ‘감사 결과’를 근거로 대통령실에 해임을 제청하면 윤석열 대통령이 직권으로 한 위원장을 해임하는 시나리오다. 이런 상황이 되면 한 위원장은 효력 집행정지와 무효소송 제기로 대응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다른 시나리오는 직위해제다. ‘형사사건으로 기소된 자의 경우 직위해제를 할 수 있다’는 국가공무원법의 관련조항(제73조 3항)이 근거다. 이 조항을 들이대 한상혁 위원장을 직위 해제하면 한 위원장은 ‘방통위 위원장’이라는 직위를 빼앗기고 ‘방통위 소속 공무원’ 신분이 된다.
안형환 방통위 부위원장이 최근 “한 위원장이 TV조선 재승인 심사 조작 의혹과 관련해 기소될 경우 공무원법에 따라 직위 해제가 될 수 있다”고 언급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나온 얘기다. 안 부위원장은 “한상혁 위원장과 내가 같이 물러나면 내 자리는 야당이 차지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위원장을 임명하면 된다”는 동반 사퇴론을 내세우기도 했다. 안 부위원장은 국민의힘이 야당 시절 추천한 인사다. 직위해제가 현실화되면 한상혁 위원장은 효력 집행정지로 법정에서 시비를 다툴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는 이제 한상혁 위원장에 대한 해임과 직위해제라는 두 가지 시나리오를 만지작거리며 고민할 것이다. 아마도 해임보다는 직위해제 쪽으로 가닥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해임은 정치적 부담이 클 수 밖에 없다. 반면 직위해제는 상대적으로 정치적 부담이 덜하다. ‘수사 진행에 따른 절차적 인사’라는 점을 명분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시나리오 모두 언론계와 시민사회의 거센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한상혁 위원장에 대한 퇴진 압박이 ‘윤석열 정부의 언론 및 방송 장악’이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언론노조는 29일 성명을 통해 “검찰은 (한상혁 위원장에 대해) 무조건 기소를 강행할 것”으로 예상하며 “윤석열 정권 출범 직후부터 시작되어 끝날 줄 모르는 KBS와 방문진 감사, 공영방송 수신료 분리 징수 추진, TBS 지원조례 폐지, 공기업 의사를 무시한 YTN 지분 매각 등이 각개전투처럼 벌어지고 있다”고 성토했다. “모든 사안은 결국 공영미디어 체제를 해체하고, 집권여당 인사들의 입버릇처럼 권력의 전리품으로 ‘먹기 위한’ 수순이자, 일부 재벌 대기업과 족벌 언론에 베풀 특혜의 일환”이라는 비판이다.
이에 앞서 언론계 원로 단체인 언론비상시국회의 등도 지난 22일 <‘검찰독재-언론탄압’ 윤석열 정권의 방송장악 음모를 규탄한다>는 성명을 통해 “방통위 재구성은 윤 정권으로서는 필수적인 선결 과제”이기 때문에 “방통위 직원들, 심사위원장을 맡은 교수, 방통위원장에 대한 검찰의 압박이 선을 넘은 배경”이라고 주장했다. 자유언론실천재단도 28일 “윤석열 정권은 방송장악 기도를 즉각 중단하고 검찰은 정권의 검찰에서 국민의 검찰로 돌아오라”는 성명을 냈다.
시민사회의 비판도 예사롭지 않다. 시민단체인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이 지난 27일부터 이틀간 진행한 ‘공영방송의 공공성과 독립을 지켜주시기를 탄원한다’는 탄원서에는 5618 명의 시민들이 이름을 올렸다.
시민들이 “윤석열 정부는 총선 이전에 언론을 장악하겠다는 정치적 시나리오 속에서 KBS, MBC, EBS, TBS, YTN 등 공영방송을 권력에 순치시키려는 의도로 공영방송 대표와 이사진 선임권 등을 갖고 있는 방송통신위원회 수장에 대한 인위적 교체부터 나선 것”이라는 탄원 내용에 공감을 표했다는 방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