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정민용 진술 누락, '수사·기소 분리 필요성' 입증
수사·기소 분리됐다면 기소 단계서 확인됐을 일
김용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정민용 진술
검찰, ‘증인’으로 출정시켜 신문할 수 있어야
변호인 실체 파악 기회 원천적으로 배제
지난 2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있었던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재판의 정민용 변호사에 대한 증인신문에서 “김용이 1억원이 든 쇼핑백을 들고 나가는 것은 못 봤다”는 정 변호사의 검찰 진술을 검찰이 조서에서 누락시킨 사실이 확인됐다. 이는 수사와 기소가 반드시 분리되어야 할 필요성을 검찰이 스스로 강력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김 부원장 변호인은 "증인(정민용)의 검찰 신문 조서에 김 부원장이 (유원홀딩스 사무실에서) 나갈 때 지켜봤다고 돼있는데 어떻게 자세히 봤냐?"고 묻자 정 변호사는 장황한 설명과 함께 "들어올 때는 통유리로 된 문을 통해 봐서 김용 전체를 다 봤지만, 나갈 때는 회의실 유리에 블라인드가 쳐져 있어서 허벅지 아래, 하반신 밖에 못봤다"고 답변했다.
변호인(이하 ‘변’) 유동규가 김용에게 유원홀딩스 사무실에서 1차로 1억을 전달했다고 하는 4월 말 김용이 사무실에 온 것을 봤고 나가는 것도 봤다고 했는데, 김용이 돈이 든 쇼핑백을 들고 가거나 유동규가 주장하는 대로 옆구리에 끼고 가는 것을 봤나요?
정민용(이하 ‘정’) 제가 있던 회의실에는 블라인드가 반쯤 쳐져 있어서 김용이 나갈 때는 하반신 밖에 볼 수 없었습니다.
변 그러니까 옆구리에 껴서 가든 손으로 들고가든 쇼핑백을 들고가는 건 못봤다는 거네요?
정 네, 블라인드 밑으로 보려고 몸을 숙여서 봤는데도 쇼핑백을 들고가는 것은 못봤습니다.
변 검사님이 질문을 했을 것 같은데, 돈이 든 쇼핑백을 들고가는 것을 봤냐고 검사님이 질문을 하셨나요?
정 네.
변 그래서 뭐라고 하셨나요?
정 지금 말한 대로 “블라인드가 있어서 하반신 밖에 보지 못했다”고 얘기했습니다.
변 그런데 조서에는 그렇게 안 돼있네요.
이 대목에서 재판장이 변호인의 질문을 잠시 끊고 안 그래도 확인하려고 한 부분이었다는 뉘앙스로 증거로 제출된 진술조서의 해당 내용을 그대로 읽어주며 다시 자세히 물어봤다.
재판장 조서에 보면 “김용이 돈을 받으러 온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유심히 지켜봤고, 김용이 사무실 나가는 모습까지 지켜봤다”는 게 한 문장으로 돼있어서, 이같이 답변한 뉘앙스가 들어오는 것도 봤고 나가는 것도 정확히 봤다, 그래서 나갈 때 돈을 숨겨서 불룩하게 가져가거나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게 깔린 듯한 느낌이거든요. 그런데 그런 모습은 본 적이 없다는 것인가요?
정 저는 블라인드가 쳐져 있어서 상반신은 못 봤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재판장 검찰에서도 블라인드가 쳐져서 상반신은 못봤다고 말했다는 것이죠?
정 네.
김용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정민용 진술
이 부분은 재판정에서 오간 문답을 간략하게 줄인 것으로서 실제의 문답은 훨씬 더 길고 상세했다. 김용 전 부원장 측 변호인은 이 부분에 대해 정민용의 기억과 검찰조사에서 검사가 이 부분에 대해 물어봤고, 정 변호사가 법정에서 진술한 것과 같은 내용을 검찰에서도 진술했었다는 사실도 거듭거듭 확인했다.
정민용 변호사는 “김용이 나갈 때 돈을 가지고 가는지 보려고 (몸을 옆으로 기울이며) 이렇게 봤는데도 다리 밖에 못봤다”며 묻지도 않은 부분까지 얘기하며 자세히 진술했다.
“김용이 돈을 들고 나가는 것을 봤다”거나 혹은 그렇게 이해될 수 있는 진술은 유동규의 주장 외에 아무런 물증이 없는 이런 종류의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진술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 검찰 진술 조서에는 재판장이 있는 그대로 낭독하며 인용했듯이 “김용이 돈을 받으러 온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유심히 지켜봤고, 김용이 사무실 나가는 모습까지 지켜봤다”는 단 한 줄로 기록되어 있다.
검, ‘증인’으로 출정시켜 신문할 수 있어야
이런 부분에 대한 질문은 온갖 시시콜콜한 것까지 캐며 묻는 것이 보통이다. 유무죄 심증과 관계없이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려면 얼핏 관계없어 보이는 것까지 확인하며 사실관계를 특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 부분이 단 한 줄로 요약하듯 기록돼있는 것에 대해 제3자라면 당연히 의아한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기소권을 가진 검찰이 수사까지 맡아 하면 수사 단계에서의 유죄 심증이 기소 단계에서 확증 편향으로 이어지고, 기소를 의식해 의도적으로 피고인에게 불리한 증거만 집중적으로 찾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 사건과 같은 ‘정치적 사건’에서는 그런 경향이 훨씬 더 강해진다.
만약 수사와 기소가 분리돼있다면 기소 여부를 검토하는 검사는 이 부분에 대해 그것이 검사든 경찰이든 수사를 맡았던 담당자에게 “이 부분이 단 한 줄로 간략하게 기록돼 있는데 이렇게 진술한 게 맞나요?”라고 확인했어야 했다. 만약 고의든 실수든 수사담당자가 이 부분에 대한 진술을 누락시킨 것이 확인됐다면 기소 여부에 대해 좀 더 신중하게 판단했을 것이다.
특히 이렇게 중요한 부분에 대해 검찰 진술 조서의 내용과 법정 증언의 내용이 다르다면 진술자인 정민용에 대해서만 질문할 게 아니라 수사담당자를 ‘증인’으로 불러 “수사 담당자가 정 변호사의 진술을 고의로 누락한 것인지, 정 변호사가 검찰에서는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는데 법정에서 다른 얘기를 한 것인지” 등의 여부에 대해 변호인과 재판장이 ‘신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검찰은 그 이유에 대해 끝내 얘기하지 않거나, ‘증인’이 아닌 ‘공판 검사’의 자격으로 재판장에게 간략하게 설명하고 넘어갈 것이다. 이 경우 피고인과 변호인은 ‘진술 누락’의 실체에 대해 깊이 있게 파악할 기회를 구조적으로 갖지 못하게 된다.
변호인 실체 파악 기회 원천적으로 배제
변호인이 지난 7일 첫 공판 모두 진술을 통해 밝힌 ‘유동규 자필 진술서 전 장시간 면담’도 마찬가지다. 이것 역시 검찰이 수사담당자가 아닌 기소담당자로 역할을 했다면 기소 단계에서 의문이 제기되었어야 할 사항이었다.
검찰은 14일 열린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에 대한 증인 신문에 앞서 “변호인이 휴식 시간과 식사 시간까지 모두 합쳐 12시간 15분이나 면담했다고 주장해 시민언론이라고 하는 데서(<시민언론 민들레>를 지칭) 가짜뉴스를 보도했다”고 발끈했다.
그러나 이날 검찰이 해명한 것은 4시간 30분(2022.10.6.), 2시간 15분(2022.10.13.) 등 ‘장시간 면담’이 아니라 25분, 35분 등 짧은 시간의 ‘짜투리 면담’에 대한 것이었다. 만약 수사와 기소가 분리되어 있었다면 ‘수사담당자’를 ‘증인’으로 불러 이렇게 이례적으로 장시간 이루어진 면담의 내용에 대해 신문하고 추궁하고, 검찰이 해명하지 않은 ‘장시간 면담’에 대해 더 깊숙이 파악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김용 전 부원장이 직접 발언 기회를 얻어 ‘기록되지 않은 12시간 15분의 면담’에 대한 근거를 제시한 것이 고작이다. 검찰의 주장에 항변할 수만 있을 뿐 ‘수사담당자’를 불러 그 실체에 대해 추궁할 기회가 원천적으로 배제되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3일 수사기소분리 법안에 대한 권한쟁의 심판 결정에서 “행정부 내에서 수사권 및 소추권의 구체적인 조정·배분은 헌법사항이 아닌 입법사항이므로 헌법이 수사권 및 소추권을 행정부 내의 특정 국가기관에 독점적·배타적으로 부여한 것이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이는 같은 쟁점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그간의 일관된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헌재의 이같은 결정과 함께 ‘유동규의 진술’ 말고는 직접 증거가 전혀 없이 진행되고 있는 김용 전 부원장 등 이재명 대표와 관련된 재판은 수사 기소 분리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검찰이 스스로 명확하게 입증하는 장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