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된 내용도 군사기밀?…'천공 의혹' 입막음하는 윤 정부
부승찬 전 대변인, 내일 방첩사서 기밀유출 혐의로 조사
문제삼은 저서 살펴보니…이미 언론 보도된 내용
압수수색 영장도 포괄적…"뭐라도 걸어보려고 찾는 듯"
부승찬 "비밀 회의록 봤다고?…그런 게 있는 줄도 몰라"
윤석열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린 탓일까.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이 재직 시절 기록한 내용을 담아 최근 발간한 저서 <권력과 안보 - 문재인 정부 국방비사와 천공 의혹>에 대한 정권 차원의 압박이 전방위적이다.
<권력과 안보>는 부 전 대변인이 문재인 정부 시절 1년 5개월 동안 국방부 대변인을 하면서 지켜본 국방정책 결정 과정을 기록한 일기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멘토로 알려진 무속인 '천공'이 관저 이전 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담기면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천공 의혹'은 지난해 3월께 무속인 천공과 김용현 대통령경호처장,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고위 관계자가 육군참모총장 공관과 서울사무소를 사전 답사했다는 내용이다. 부 전 대변인은 이를 당시 육군참모총장인 남영신 대장으로부터 확인했다고 서술했다.
이에 국방부는 <권력과 안보> 초판이 나온 지난 달 3일 출판사 측에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 결정을 통보했다. 대통령실은 천공 의혹을 제기한 부 전 대변인과 이를 보도한 최초 보도한 <뉴스토마토> <한국일보> 기자들까지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고발했다.
또 국군방첩사령부(방첩사, 옛 국군기무사령부·군사안보지원사령부)는 부 전 대변인에 대한 신체, 차량,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오는 10일에는 군사기밀 보호법 위반 혐의로 부 전 대변인에 대한 심문도 한다.
세간에서는 국방과 안보 관련 문제에 대해 집필했다는 이유만으로 대통령실까지 나서 수사의뢰를 하고 전방위적인 수사가 이뤄지면서, '천공 필화사건'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종전선언 관련 발언 공개가 윤 정부의 군사 위험?
국방부 법무관리관실과 방첩사는 책 내용 가운데 재작년 열린 한미 국방장관 연례회의인 한미안보협의회의(SCM) 관련한 내용 등을 문제삼고 있다.
부 전 대변인에게 발부된 압수수색 영장은 피의사실과 관련, "2021년 12월 2일 개최된 제53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와 관련하여 업무상 알게 된 군사기밀을 메모하거나 전자적인 방법 등으로 수집하였다가 이를 2023 2월 3일 권력과 안보라는 도서에 수록하여 출판하는 방법으로 누설하였다"고 특정하고 있다.
방첩사는 구체적으로 대북정책 관련 내용과 주한미군 훈련여건 관련 미국 측 발언 등을 문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방첩사가 지적하는 2021년 12월 2일 SCM 당시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의 대북정책 관련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북한 위협과 관련해서는 종전선언 얘기를 꺼냈다. 북한의 도발에 대해 한미의 통합적 전선을 강조하면서 종전선언을 언급했는데, 북한의 약속 이행이 포함되면 의미가 있지만 도발이 지속된다면 종전선언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뉘앙스의 발언도 있었다."
이는 SCM 개최 전인 2021년 9월 22일 뉴욕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 '종전선언' 추진 의사를 밝힌 것에 대한 반응으로, 당시 미국이 종전선언을 회의적으로 보고 있었다는 의중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군사기밀이라고 해야할 지는 의문이 있다. 명문 그대로 비공개 발언 자체가 국방부에 기록으로 남아 관리되고 있더라도, 군사기밀 보호법(제2조)은 군사기밀에 대해서 "국가안전보장에 명백한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종전선언의 발판인 '9·19 남북군사분야합의서'의 폐기까지 검토하는 상황에서, 2021년 문재인 정부 당시 미국의 의중이 2023년에 와서 군사기밀로서 가치가 있는지, 즉 국가안전보장에 명백한 위험인지 의문이 남는다.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국민의 알 권리), 출판의 자유보다 앞서는지도 다퉈볼 문제다.
게다가 종전선언과 관련한 미국 측의 회의적인 시각은 당시 언론을 통해 1년 내내 수차례 보도됐던 내용이다. 실제 당시 미국 외교국방 고위 당국자들의 공개 발언에서도 종전선언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들이 여러 차례 확인된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SCM 9개월 전인 2021년 3월 10월 하원 외교위원회에 출석해 '종전선언을 검토할 때가 됐지 않냐'는 민주당 앤디 김 의원의 질의에 "무엇보다 한반도의 비핵화를 포함해, 동맹국(한국)과 우리(미국)의 안보 진전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는지 확실히 해야 한다"면서 종전선언에 대해 회의적인 뜻을 나타냈다.
마크 램버트 미 국무부 한일 담당 부차관보는 문 대통령의 유엔총회 발언이 있던 2021년 9월 23일 미국 민간단체 한미연구소(ICAS)가 주최한 화상 대담에서 "미국과 한국이 북한 비핵화라는 전략적 목표를 공유하고 있지만 전술에서 차이가 있다"며 "한국 정부는 북한을 협상장으로 데려오기 위해 유인책을 제공하는 데 있어 미국이 더 빨리 움직이길 원하지만 미국의 접근법은 이와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에이브럼스 사령관 발언도…이미 공개된 내용
국방부 법무관리관실은 2021년 3월 17일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의 로버트 에이브럼스 전 한미연합사령관의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관련 비공개 발언을 담은 것도 법에 저촉된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세부과제 수를 설명한 부분을 기밀 유출로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 대변인이 기술한 내용에 따르면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 배석해 "한국의 FOC(완전운용능력) 주장은 투명성이 결여됐다. 미래연합사령부 창설은 (전작권 전환) 조건1의 4가지 과제 중 하나에 불과하다. 조건1과 조건2의 핵심 군사능력 26가지를 확보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군사적 측면에서 FOC 일정에 반대한다. 핵심 군사능력을 확보하는데 4~6년이 소요된다. FOC 실시보다 먼저 핵심능력부터 구축하라"고 말했다.
부 전 대변인은 에이브럼스 사령관의 발언에 대해 "미국은 전작권 전환 의지가 전혀 없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막말을 마구 던졌다"고 서술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에이브럼스 사령관이 이미 공개적으로 상당 부분 발언한 내용으로 <조선일보> <KBS> 등을 통해 보도됐다. 보도를 종합하면,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한미 국방장관 회담이 열리기 약 5개월 전인 2020년 9월 10일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진행하는 한국 문제 관련 온라인 회의 '캐피털 케이블(The Capital Cable)'에 나와 전작권에 대해 세부적인 내용까지 이례적으로 밝혔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당시 회의에서 한국의 전작권 전환에 대해 "한미는 2015년 양국 국방장관이 합의한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 계획'을 이행하고 있고 비밀로 분류돼 공개 석상에서 자세한 내용을 말하기 어렵다"면서도 "조건 3가지 중 첫 번째 조건인 '연합 방위를 주도할 한국군 핵심 군사능력'에 26개 과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과제 이행에 대해선 "2019년 한 해에만 직전 3년보다 훨씬 큰 진전이 있었지만, 솔직히 아직 갈 길이 멀다"라고 했다. 이어 "미래연합사 능력 검증 3단계가 마치 전작권 전환 조건 3가지를 검증하는 게 전부로 잘못 알려져 있는데 그것은 사과와 오렌지만큼 다른 것"이라며 "미래연합사 능력 검증은 전작권 전환의 첫 번째 조건, 한국군이 갖춰야 할 핵심군사능력 과제 26개 중 하나일 뿐"이라고 재차 밝혔다.
아울러 부 전 대변인에 대한 수사와 관련해 절차적인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방첩사가 부 전 대변인에게 제시한 압수수색 영장은 피의사실과 관련, 2021년 12월 2일 개최된 제53차 SCM만 특정했지만 실제로는 포괄적인 수사가 이뤄지는 것으로 보인다. 영장대로면 SCM 외 에이브럼스 사령관 관련 내용 등을 압수·수색·검색하면 안 된다. 군의 한 관계자는 "방첩사가 걸 만한 것을 다 찾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국방부 법무관리관실은 부 전 대변인이 책을 쓰기 위해 비밀 회의록을 열람한 것으로 보고 있다. 부 전 대변인은 <시민언론 민들레>와 통화에서 이에 대해 "비밀회의록을 보면 열람 기록부에 대변인이 열람했다고 기록하게 되어 있다고 한다"며 "(법무관리관실이 주장하기 전까지) 그런 비밀이 있는지도 몰랐다. 국방부도 열람했다는 증거는 제시 못 하는 거 같다"고 밝혔다.
부승찬 "역린 건드린 대가…터무니 없는 혐의 덧씌워져"
부 전 대변인은 10일 군사기밀을 유출했다는 혐의로 경기도 과천시 방첩사에서 군사기밀 보호법 위반 혐의로 첫 피의자 심문을 받는다.
대통령실까지 나선 만큼 부 전 대변인에 대한 기소는 피하기 어렵다는 게 군 안팎의 관측이다. 군사기밀 보호법에 의해 재판에 넘겨진다면 1심은 군사법원에서, 2심부터 민간 법원에서 받게 될 예정이다. 1심은 군사법원 특성상 전 정부 인사이자 민간인 신분인 부 전대변인이 불리한 측면이 있다.
부 전 대변인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군인들을 포함해서 책을 읽으신 많은 분들이 군사기밀이 어느 부분인지 알려달라고 하는데 저 역시 어느 부분이 군사기밀에 해당하는지 모르겠다"며 "책을 집필하는 동안 이 점을 우려해 신중을 기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을 읽어 보시면 아시겠지만 부대명칭, 지역조차도 '○○'으로 처리했을 정도"라며 "국방부가 군사기밀이라고 추정하고 있는 한미 회담 내용도 인터넷을 검색하면 제 책 내용보다 구체적으로 보도된 내용이란 걸 확인하실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부 전 대변인은 국방부의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과 대통령실의 고발, 방첩사의 압수수색 등을 언급하며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 합리적이거나 상식적인 구석은 찾아 볼 수조차 없다. 결국 역린을 건드린 대가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끔 하는 조치라고 밖에는 볼 수가 없다"고 했다.
그는 "제 책은 군을 생각하고, 국방과 안보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집필한 것이다. 오히려 국방부으로부터 터무니 없는 혐의가 덧씌워져 공격을 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며 "성실히 조사에 임하되 결연하게 맞서겠다. 지난한 싸움이 될 것이다.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리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