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출국금지' 전원 무죄…보복수사 윤석열 검찰 '완패'

이성윤 "출금 사건은 윤석열의 악의적 프레임 전환"

이광철·차규근·이성윤 등 무죄…이규원만 선고유예

재판부 "출국 금지 필요…직권남용이라 볼 수 없어"

"안양지청 자의적 판단…압력 행사라고 단정 못해"

"윤대진 검찰국장의 두 차례 전화가 더 직접적 압력"

2023-02-15     김성진 기자
이성윤 전 서울고검장이 15일 오후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 전 고검장은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이었던 2019년 6월 불법 출금 의혹을 둘러싼 검찰 수사를 막으려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별도 기소됐으나, 이날 무죄를 선고받았다. 2023.2.15 [공동취재] 연합뉴스

2019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을 긴급 출국 금지한 조치가 직권남용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불법 출국 금지' 수사를 막으려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기소된 이성윤(사법연수원 23기·61) 전 서울고검장(법무연수원 연구위원)에게도 무죄가 선고됐다. 윤석열 검찰의 무리한 보복성 수사가 법원에 의해 결정적 타격을 입은 셈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옥곤 부장판사)는 15일 이규원(사법연수원 36기·46) 검사와 이광철(36기·51)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차규근(24기·55) 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당시 차 전 연구위원은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이 검사는 과거사진상조사단 파견 신분이었다.

2012년 10월 시작된 김 전 차관의 성접대·뇌물수수 의혹은 애초 검찰이 '제 식구 감싸기'로 무혐의 처분하려다가 2018년 검찰과거사위원회의 재조사 결정으로 수사 대상이 된 사건이다. 이듬해 문재인 대통령의 진상규명 지시로 재수사 여론이 높아지자, 김 전 차관은 심야에 태국 방콕으로 몰래 출국을 시도했다.

당시 김 전 차관은 공항에서 체크인한 뒤 출국 심사까지 마쳤으나 탑승 게이트 인근에서 대기하다 법무부 출입국관리 공무원들에게 제지됐다. 이후 김 전 차관은 2020년 10월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벌금 500만원과 추징금 4300여만원도 선고됐다.

그러다 수구보수언론들이 2021년 김 전 차관 출국 당시 절차적 흠결에 의혹을 제기하면서 돌연 문제가 됐다. 법조계에서는 출국금지 조치의 긴급성과 정당성 등을 이유로 수사가 무리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검찰은 법무부와 대검찰청 반부패부 등을 대대적으로 압수수색했다. '불법'과 '불가피성'도 구분 못한 수사였다.

나아가 <동아일보> 등은 조국 전 법무장관이 출국 금지 과정에 개입했다고 의혹을 제기했고, 검찰은 이에 맞춰 공소장을 변경한 뒤 조 전 장관을 소환해 조사하기도 했다. 조 전 장관은 지난해 11월 이 전 비서관 등의 공판에 증인으로 참석해 "(출국금지) 결정 과정에 제가 개입한 바 없었다"고 밝혔다.

검찰은 결국 청와대에 재직한 이 전 비서관이 차 전 연구위원, 이 검사와 함께 출국금지 전반을 주도했다는 혐의를 씌워 재판에 넘겼고, "막강한 권력을 가진 정부가 한 민간인을 사찰한 사건인 동시에 국가적 폭력"이라고 주장하며 이 전 비서관에게 징역 2년, 이 검사와 차 전 연구위원에게 각각 징역 3년을 구형했다.

 

이광철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오른쪽), 차규근 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이 15일 오후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2023.2.15 [공동취재] 연합뉴스

하지만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 내용을 완전히 뒤집어, 김 전 차관의 도피성 출국에 대한 금지 조치가 일부 법률상 흠결이 있더라도 특수한 상황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직권남용으로 볼 수 없다며 정당성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김 전 차관이 출국을 시도할 당시 사실상 재수사가 기정사실화 했고 정식 입건만 되지 않은 상태였다"며 "출국을 용인했을 때 수사가 난항에 빠져 과거사에 대한 국민의 의혹을 해소하기 불가능했던 점에서 출국금지의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어 "출국금지는 판례가 없어 검사들에게도 생소하고 증인으로 출석한 법조인들마저 서로 다른 견해를 밝힐 만큼 법률적 판단이 쉽지 않았다"며 "매우 긴박한 상황에서 법률상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해도 직권남용으로 볼 순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피고인들의 김 전 차관 출국 제재는 재수사가 임박한 주요 사건 당사자의 해외 도피를 차단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 개인적인 이익이나 불법 이익의 목적을 실행하기 위한 것으로 볼만한 아무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다만 이 검사가 서울동부지검장 대리인 자격을 허위로 기재해 출국금지 요청서를 만들어 김 전 차관의 출국금지를 사후 승인받은 혐의, 이 서류를 은닉한 혐의는 유죄로 인정했다. 하지만 불법성이 크지 않다고 보고 징역 4개월의 선고를 유예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긴급 출국금지 사후 승인을 요청하는 단계에서 시행령을 준수하려다가 위법한 행위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면서 "범죄를 은폐하거나 증거를 인멸하는 등 부정한 목적에 이르렀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양형 판단 근거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기소된 이 고검장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이 고검장은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재직 당시 김 전 차관의 출국이 불법적으로 금지됐다는 의혹을 둘러싼 검찰 수사를 중단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당시 검찰이 이 사건을 수사하지 못한 것은 윤대진 전 법무부 검찰국장의 전화 연락,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와 안양지청 사이의 소통 부재, 안양지청 지휘부의 자의적 판단 등이 종합된 결과로 보는 게 합리적"이라며 "이 고검장의 행위와 수사 방해라는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윤대진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이 "긴급 출국금지는 법무부와 대검 사이에 이야기가 다 돼 이루어진 일이니 문제 삼지 말아 달라"는 취지로 안양지청 지휘부에 전화한 일, 대검 반부패강력부와 안양지청 사이의 의사소통 부재, 안양지청 지휘부의 자의적 판단에 따른 수사 중단 결정 등이 경합해 수사가 불발됐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특히 "윤대진 당시 검찰국장의 두 차례에 걸친 전화는 반부패강력부 관계자들의 전화와 달리 이규원 검사와 출입국본부 직원들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지 말라는 취지를 포함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더 직접적인 압력으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안양지청 지휘부가 이규원 검사를 수사하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명시적으로 대검에 문의하지 않았고, 수사 필요성을 재차 개진하지도 않았으며 이의제기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면서 "피고인이 반부패강력부장의 직권을 남용해 위법·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이규원 검사(맨 앞)와 이광철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푸른색 넥타이), 차규근 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붉은색 넥타이)이 15일 오후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2023.2.15 [공동취재] 연합뉴스

이 전 비서관은 이날 선고 직후 소감을 묻는 취재진에 "태산이 명동(鳴動·떠들썩하게 움직임)했는데 쥐가 한두 마리 나온 형국"이라며 "사필귀정의 상식적 판단을 내려주신 법원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차 전 연구위원도 "흐린 구름 사이에서 잠시 빛을 잃은 진실과 상식이 정의의 법정에서 다시 환하게 빛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검사는 "재판부 판단을 존중하나 일부 유죄가 선고된 부분은 항소심에서 더욱 상세히 소명하겠다"고 했다.

이 고검장은 "정의와 상식에 맞는 판결을 내린 재판부에 감사하다"며 "'김학의 출국금지 사건'은 윤석열 정치검찰이 악의적으로 프레임을 전환시킨 사건으로, 특정 세력이나 사익을 위해 수사하고 기소한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이에 검찰은 "재판부는 긴급 출국 금지의 위법성, 안양지청의 수사가 부당하게 중단된 사실관계는 인정하면서도 무죄를 선고했다"며 "적법 절차 원칙을 위반하고 수사를 부당하게 중단시킨 공직자들에게 죄에 상응하는 형이 선고되도록 항소할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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