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잠 승인, 미국 동아시아 전략 중심 이젠 일본서 한국?

한국 핵잠 보유 승인, 북한 대화 유도 포석 시각도

원자력협정, 핵 농축ㆍ재처리 허용 쪽 개정

한국 핵잠 , 동아시아 군비 경쟁 원인 아닌 결과

관세 ㆍ핵잠 합의는 반동ㆍ친미 예속 비판도

2025-11-15     한승동 에디터
14일 서울역 대합실의 TV 화면에 한미 팩트시트 최종 합의 발표 관련 뉴스가 방송되고 있다. 2025.11.14. 연합뉴스

한국과 미국이 14일(미국 동부시각 13일), 10ㆍ29일 경주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내용을 담은 공동문서(팩트 시트) 발표에서 미국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및 보유를 승인한 것과 관련해 “핵잠수함을 보유하려는 북한과 해양진출을 적극화하고 있는 중국을 염두에 두고, 군사면에서 미국의 역할을 대신 한국에 맡기려는 의도가 있다”고 <일본경제신문>(닛케이)이 14일 보도했다.

미국이 동북아시아에서 대북 및 대중국 해양방위 역할을 한국에 (일부) 맡기려 하고 있다는 <닛케이>의 보도는, 일본을 군사ꞏ경제적 핵심 교두보로 삼아 온 미국의 전통적 동아시아전략의 무게 중심이 최근 일본에서 한국으로 옮겨가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들이 나돌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관심을 끈다.

한미 원자력협정, 핵 농축과 재처리 허용쪽으로 개정

<아사히신문>도 이날 한미가 자동차를 포함해 대한국 관세를 15%로 내리고 3500억 달러 대미 투자를 확인했다는 사실과 함께 미국이 한국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아사히>는 핵잠수함 보유 승인과 관련해 이재명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핵잠수함 건조가 “한국의 수십년 숙제”였다며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등에 대한 한국쪽 권한확대를 “매우 의미있는 진전”이라 강조했다고 전했다.

<아사히>는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에 대해서도 미국이 한미 원자력협정 등이 규정하는 범위 내에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는 절차를 지지했다고 지적했다. 현행 한미 원자력협정은 한국의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를 허용하지 않고 있으나, 2035년에 만료되는 한미 원자력협정이 조기 개정될 경우 이를 허용하는 쪽으로 한미간에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그럴 경우 “한미 원자력협정이 규정하는 범위 내”라는 표현은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를 허용하는 쪽으로 개정된 이후를 상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미 정상회담 합의내용을 담은 '팩트 시트' 발표를 전하는 일본경제신문 11월 14일 기사. 사진은 지난 10월 29일 경주 APEC 때 열힌 한미 정상회담 때의 두 정상 모습.  

핵잠 보유 승인은 북한을 대화로 끌어내려는 포석?

<아사히>는 이에 앞서 10월 30일 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핵잠 보유 승인에 대해 “북한에 압력을 가해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를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려는 의도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이제까지 한국의 핵잠수함 보유와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를 허용하지 않은 것은 그것이 한국의 핵무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외에 북한 비핵화 전략과 충돌한다는 것도 그 주요 이유 중 하나였다. 따라서 미국이 한국의 핵잠수함 보유와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 핵 재처리를 승인했다는 것은 북한 비핵화 전략에도 변화가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일 수 있다.

이번 팩트 시트에서 양국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했지만, 그것은 비핵화를 먼저 하지 않으면 대화도 협상도 할 수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대북 비핵화 ‘3단계 접근법’이라는 현실주의 접근법과도 모순되지 않는다.

이 대통령의 3단계 접근법은 1단계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동결’, 2단계에서 핵·미사일 ‘축소’, 마지막 3단계에서 ‘비핵화’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북한이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현실을 일단 인정하고 먼저 대화부터 시작한 뒤 추가적인 핵·미사일 개발을 막고, 그것을 점차 줄이면서 최종적으로 북한 핵을 완전히 없애자는 것이다. 트럼프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아사히>가 한국의 핵잠수함 보유 인정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려는 트럼프의 의도에 따른 것일 수 있다고 지적한 것은 그런 맥락에서 한 얘기일 것이다.

한국 핵잠수함 건조 장소와 핵연료 공급방식,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방향,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시기 등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어 불투명한 부분이 없지 않으나, 미국이 일단 핵잠수함 보유와 핵연료 공급,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 핵재처리를 공식으로 허용해 공표했다는 점에서 그런 문제들은 이후 협의를 통해 조정될 수 있는 부차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고 봐야 할 것이다.

막대한 핵잠수함 운용비용 등도 해결해야 할 문제지만, 북한이 남쪽과의 재래식 무기경쟁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핵무기 개발에 더욱 집착했다는 지적이 있을 정도로, 핵잠수함 보유와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권한 확보가 오히려 재래식 무기 개발을 둘러싼 무제한 경쟁보다 비용면에서 가성비가 높을 수도 있다.

그리고 핵의 비인도성과 부도덕성을 따지기 이전에 이미 핵무장은 동아시아의 현실이 돼 있다.

 

버지니아급 고속 공격 잠수함 USS 미네소타(SSN-783)가 2025년 3월 16일 호주 서호주 해안에서 포착되었다. 2025.3.16. 로이터 연합뉴스

한국 핵잠 보유, 동아시아 군비경쟁 원인 아닌 결과

<닛케이>는 한국의 "공격형 핵잠수함" 보유가 동아시아의 군비경쟁을 가속시켜 안보환경의 지도를 바꿀지도 모른다며, 중국의 반발도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이는 원인과 결과를 뒤바꾼 평가일 수 있다. 한국의 군사비 증강과 핵잠수함 보유는 동아시아 군비경쟁의 결과로서의 측면이 군비경쟁을 촉발시킨 측면보다 훨씬 더 강하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한국의 핵잠수함 보유 움직임은 중국, 북한, 일본, 그리고 미국 등 한반도 주변 동아시아 국가들의 가속화하고 있는 최근 군비확장의 결과이거나 상호경쟁의 결과이지 그 단독 원인 제공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반도 주변국들은 예외없이 핵보유국들이거나 잠재적 핵보유국(일본)이며, 비핵보유국은 사실상 한국뿐이다.

최근 항공모함들을 잇따라 진수시킨 중국 해군은 지난 6월 항공모함 ‘랴오닝’과 ‘산둥’을 제1 도련선(일본 규슈에서 오키나와, 대만 등을 거쳐 남중국해에 이르는 섬들로 이어진 해양 구분선으로, 군사전략적 개념) 너머로 전진시켜 처음으로 태평양에 진출하게 했다. 그 뒤 랴오닝은 제2 도련선(오가사와라 제도에서 괌, 팔라우를 거쳐 파푸아뉴기니로 이어지는 선)까지 처음으로 넘었다.

 

도련선(섬들을 연결하는 선). 빨간 화살표가 가리키고 있는 검은 점선이 제1도련선. 맨 오른쪽 검은 점선이 제2도련선.  중국은 그 선들을 돌파해 태평양으로 진출하려 하고, 미국은 그것을 저지하려 한다. 나무위키

항공모함 전단에는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12척 핵잠수함들 일부도 포함돼 있다. 한번 잠항할 경우 적어도 수개월씩 물속에서 일관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핵잠수함을 디젤잠수함 등 한국과 일본이 보유하고 있는 재래식 잠수함들로서는 추적 및 대응이 불가능하다.

일본에서는 방위성 산하 ‘방위력의 발본적(근본적) 강화에 관한 유식자회의’가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 핵잠수함 얘기가 나오기 전인 지난 9월 핵잠수함 건조를 염두에 둔 “차세대 동력” 활용 잠수함 도입 검토를 제안했다. 10월 21일 출범한 자민당과 일본유신회의 연립정권 구상을 위한 합의서도 같은 내용을 명기했다. 유식자회의와 연립정권 구성 합의 과정에서는 ‘핵잠수함(원자력잠수함)’이란 명칭을 써가며 논의를 진행했으나,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폭발 이후 강해진 일본사회의 ‘핵알러지’를 자극할 경우 선거에서 불리하다고 보고 표현을 완화시켰다.

이미 상당량의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은 2021년의 제8차 조선노동당대회에서 핵무기를 탑재한 신형 핵잠수함(SSBN) 개발를 비롯한 국방력강화 5개년계획을 발표했다. 매년 1조달러에 가까운 군사비를 쓰는 미국은 최근 극심한 쌍둥이(재정, 무역) 적자에도 군사비를 유지하는 한편으로 그 부담을 유럽연합(EU)과 한국, 일본 등 동맹국들에게 상당부분 떠넘기기 위해 동맹 각국의 군사비 대폭 증액을 압박해 왔다.

미국 동아시아전략 무게중심, 일본에서 한국으로?

<아사히>는 팩트 시트에서 한국이 가능한 한 빨리 국방비(방위비) 지출을 GDP(국내총생산) 대비 3.5%(현재 2.32%)로 올리고, 2030년까지 미국산 군사장비를 250억 달러어치 구입하기로 했으며, 주한 미군을 위해 330억 달러 상당의 포괄적인 지원도 제공하기로 했다면서 “미국도 이를 환영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한국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위해 양국이 계속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는 점도 아울러 전했다.

GDP 대비 3.5%의 군사비는 유럽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이 관련 인프라 건설비를 제외한 핵심 국방비로 미국과 합의한 비율과 같고, 일본도 3.5% 방위비 인상을 비공식적으로 미국과 협의하고 있다.

일본 언론은 미국이 이와같은 한국의 군사비 증액과 핵잠수함 보유를 승인한 것을 한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대중, 대북, 대러시아 견제에 활용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 보자면, 핵잠수함 보유와 핵 억지력 확보, 전시작전통제권 회수를 위해 군사비 증액과 미국 무기 구입, 대미 직접투자를 그 대가로 지불한 셈이 된다.

이 거래의 우선 순위에서 일본이 빠지고 한국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갖는 의미가 적지 않다. 근대 이후 한반도가 결국 국권까지 침탈당하고 일제로부터 해방된 뒤에도 분단과 전쟁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한 데에는 ‘내부 원인’보다, 미국과 영국이 동아시아 진출과 러시아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늘 일본을 우선거래 대상자로 활용해 한반도를 그 거래의 흥정거리로 삼아 희생시켜 온 사실, 즉 ‘외부 원인’이 더 크게 작용했다는 지적들이 많다.

그 미국이 지금의 일본을 우선거래 대상자로 지목할 수 없게 된 이유를 ‘잃어버린 30년’이 상징하는 경제적 쇠퇴, 다카이치 극우정권 등장에서 보듯 흔들리고 있는 자민당 집권체제하의 정치적 불안정, 반도체와 AI(인공지능)를 기반으로 한 산업 디지털화, 조선업, 방위산업의 상대적 낙후 등에서 찾는 지적들이 일본에서도 나오고 있다. 그리고 통제하기 어려울 수 있는 일본의 핵무장을 바라지 않는 미국의 전략적 계산도 작용했을 것이다.

이용가치라는 면에서 지금 미국에겐 일본보다는 한국이 더 나을 수 있다. 한국은 통제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지금 미국에게 절실하지만 결여돼 있거나 부족한 것들, 예컨대 반도체와 AI 관련 첨단제품 제조능력과 베터리, 조선, 통신, 방산 등 제조업에서 앞서 있고, 그런 분야의 대미투자에서 비교우위를 갖고 있다.

기존의 동맹 개념이나 전략은 트럼프 2기 정권 들어 세계적 차원에서 급속히 해체돼 가고 있다. 이제 동맹도 상호이익을 추구하는 냉정한 거래(딜)관계로 대체되고 있다. 문제는 중국을 '주적'으로 설정한 미국의 패권전쟁이 초래한 이런 전환기적 변화를 한국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해 가느냐는 것이다. 최근의 관세협상 과정을 통해 미국은 한국을 EU 및 일본과 같은 급의 거래 대상자로 간주하고 있다는 걸 보여 주었다. 수동적, 방어적 자세를 버리고 대등한 입장에서 적극적, 주도적으로 사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2025.10.29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관세 및 핵잠 합의, 반동적 친미예속 노선?

핵잠수함 연료 공급은 연료로 사용하는 고농축 우라늄을 5대 핵보유국(핵확산금지조약[NPT]이 인정하는 핵보유 5개국=P5) 외의 나라가 사용하는 것은 NPT체제 위반이지만, P5 국가 중 어느 한 나라라도 그것을 허가하거나 지원할 경우 제3국이 사용할 수 있다. 인도의 경우 P5 중에서 러시아가 지원해 핵잠수함을 보유하게 됐다. 소수 대국들의 납득하기 어려운 핵독점의 횡포라고 할 수밖에 없지만, 인도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의무도 받아들였다.

따라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보유도 P5 중 하나인 미국이 승인하거나 지원할 경우 NPT체제에 저촉되지 않는다.

핵 협력을 포함한 미국과의 군사·경제적 협력 강화가 대미종속 강화로 귀결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들이 있다. 마땅히 귀를 기울여야겠지만, 이미 한국은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군에 맡겨 놓고도 구성원 다수가 그 비정상성을 의식하지도 못할 정도로 비정상적인 대미종속국가다. 핵잠수함 보유 및 전시작전권 회수와 그것을 위한 대미협상을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로 읽기보다 이른바 ‘윤 어게인’을 부르짖는 한국 극우세력의 ‘반진보 내지 반이재명’의 반동적 친미예속 노선과 다를바 없는 것으로 매도하는 소리도 들린다. 심각한 상황인식 오류, 전략 부재를 입에 올리기조차 머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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