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 "처벌받을 사람들은 놔두고 왜 '민들레' 처벌하나"

이종철 유족 대표 "민들레가 죄 있나? 우리가 고발했나?"

"아이들 죽인 사람은 소환 않고 왜 시키지도 않은 짓 하나"

대통령실 앞 1인 시위…경찰 50여명이 물리력으로 제압

바닥 기어가며 대통령 면담 요구했지만 결국 끌려나와

분향소에서 희생자 159명 기리기 위해 159배 올리기도

2023-01-31     김성진 기자
이종철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협의회 대표가 31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2023.1.31. 연합뉴스

"기자 여러분들, 사실을 이야기해주십시오. <민들레>가 죄가 있습니까? 우리가 고발했습니까? 왜 그런 데는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냐고요. 우리 아이들은 죽여놓고 처벌받을 사람은 소환조차 하지 않고서. <민들레>가 패륜이라고요? 처벌받을 사람은 가만히 두고서 당사자인 우리도 가만히 있는데 왜 그 사람들을 처벌합니까.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압니까. 앞뒤가 꽉 막힌 정부에요."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이종철 대표(고 이지한씨 아버지)는 31일 낮 12시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정문 앞 1인 시위가 막히자 이렇게 소리쳤다. 이태원 참사 100일 집중추모주간 2일 차인 이날 이 대표를 비롯해 유가족과 시민 등 9명은 대통령실 앞 첫 1인 시위에 나섰지만, 경찰 병력 50여명이 이를 물리력으로 제압하면서 충돌이 빚어졌다.

이 대표는 방어벽을 치고 완강히 버티는 경찰들을 향해 "여러분이 지금 윤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고 있다. 윤 대통령이 이태원 골목에 와서 애들이 깔려 죽었는데 뇌진탕이란 말이 나오냐. 지금처럼 (막아서) 보고를 안 한 것 아니냐"며 "우리 아이들을 경찰들이 보호 안 해줬다. 왜 112 신고를 했는데 안 왔냐. 통지만 했어도 우리 애들 안 죽었다"고 외쳤다.

유가족과 시민은 계속해서 경찰에게 "뭐가 그리 무서워서 1인 시위도 막냐"고 따졌지만 경찰은 "집시법상 1인 시위를 할 수 있으나 경호법상 대통령실 앞에선 안 된다"며 시위를 막았다. 이에 고 이지한씨 어머니 조미은씨는 윤석열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정문을 향해 올라갔지만 금세 경찰들에게 붙잡혔다. 조씨는 바닥을 기어서라도 가려고 했으나 경찰들이 막으면서 좌절되자 바닥에 누워 통곡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지한 씨 어머니인 조미은 씨가 31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출입문에 접근하던 중 경찰에게 저지당하고 있다. 2023.1.31. 연합뉴스

조씨는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누워 "헌법 제 34조,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모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고 소리치면서 "오늘은 꼭 (윤 대통령을) 만나야겠다. 왜 우리 애들이 못 돌아왔는지 물어봐야겠다. 윤석열이 나올 때까지 안 간다. 윤석열 좀 불러달라"고 경찰관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흐느꼈다.

119 구급차를 불러 조씨를 태우려고 했으나, 조씨가 "지한이가 탄 구급차, 나는 안 탄다"면서 트라우마를 호소했고 이에 대통령실 경비단이 구급차를 돌려보내는 일도 있었다. 유가족과 시민, 경찰은 약 30분 동안 대치했지만 끝내 1인 시위가 허용되지 않았고, 정문 앞에 누워서 통곡하던 조씨는 여경 4명에게 팔을 붙들려 방어벽 밖으로 끌려나왔다.

유가족과 시민들은 결국 대통령실 맞은편 전쟁기념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국가책임 인정하고 대통령은 공식 사과하라' '피해자의 참여 속에 성역 없는 진상규명 책임자를 처벌하라' 등이 쓰인 팻말을 들었다.

한 남성이 승합차 지붕에 달린 대형 확성기를 통해 유가족에게 "시체팔이 하지마라"면서 대통령실 앞을 왔다갔다했는데도 경찰은 이를 방치했다. 지나가는 버스에 타고 있던 한 여성은 창문을 열고 "개딸X들아"라고 소리쳤다.

유가족들은 시위를 마친 뒤 녹사평역 시민분향소로 돌아가는 길에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했지만, 대통령실과 가깝다는 이유로 이조차 허용하지 않으면서 또 한 차례 충돌이 빚어졌다. "우리도 국민이다. 길을 건너지 마라는 근거가 뭐냐"고 따졌으나 경찰은 답을 하지 못했다. 유가족들은 항의 차원에서 분향소로 가는 길에 다시 돌아와 경찰 앞에서 10분 정도 시위를 했고, "대통령은 사과하라"고 외친 뒤 자진해서 해산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31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횡단보도 통행도 막는 경찰들에게 항의하는 차원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대통령은 사과하라" "이태원 참사 진실을 규명하라"고 외친 뒤 분향소로 돌아갔다. 2023.1.31. 김성진 기자

한편 이날 유가족들은 대통령실 1인 시위에 앞서 오전 10시 시민분향소에서 희생자 159명의 평온한 안식과 유가족이 요구하는 진상 규명, 독립적 조사기구 설치, 대통령 사과 등을 촉구하는 159배를 올렸다. 유가족과 시민 20여 명은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2차 가해 방지 대책 촉구, 희생자 명예 회복, 대통령의 진정한 사과 등을 촉구하며 절했다.

또 이들은 103명의 희생자 이름을 일일이 부르면서 절을 올렸으며, 이름을 불리지 못한 희생자와 그 유가족을 위해서도 절했다. 희생자 이름을 부르며 절을 하는 가운데, 곳곳에서 울음이 터져나왔다. 159번의 절을 마친 뒤에는 "애들아 잘가라"고 외치며 유가족들이 오열했다. 일부는 선 채로 눈물을 흘리거나 손을 모아 기도했다. 서로 안으며 위로하기도 했다.

아울러 유가족들은 대통령에게 보내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유가족들은 성명서에서 △대통령의 진정한 사과 △성역 없는 엄격하고 철저한 책임 규명 △피해자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진상 규명 △참사 피해자의 소통 보장과 인도적 조치 △희생자들에 대한 온전한 기억과 추모를 위한 조치 △2차 가해 방지를 위한 입장 표명 및 대책 마련 등 6가지 요구사항을 언급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가 31일 이태원 분향소에서 159명 희생자를 위한 159배를 하고 있다. 2023.1.31. 연합뉴스

유가족들은 "대통령은 대통령비서실에 전달한 유가족들의 요구사항을 직접 보지도 않고 행안부로 이송했다"면서 "유가족들에게 책임을 인정하고 후속 방안을 약속하는 대통령의 사과는 결국 없었다. 경찰 특수본은 셀프수사로 윗선의 수사를 포기했으며 유가족들에게 브리핑 한 번 없이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49일 시민추모제를 마치고 유가족들이 요구사항을 전달하러가자 참사 당시에는 단 한명도 없었던 경찰들을 대통령실 인근에 무더기 배치하며 유가족들을 막았던 기억이 난다"며 "대통령이 진정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159명의 희생자들을 생각했다면, 참담한 죽음에 일말의 책임감을 느꼈다면 이렇게 성의없이 유가족들을 대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제대로된 사과 한 마디 없는 대통령에게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우리 유가족들은 오는 2월 4일 광화문 광장에서 159명의 희생자와 유가족들의 억울함을 외면한 대통령에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유가족들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할 것"이라고 했다.

유가족들은 오후 7시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10·29 이태원 참사 100일 기독교 추모 기도회'를 개최한다. 또 이날부터 다음 달 3일까지 매일 오후 8시 시민들이 참여하는 159배가 진행된다. 이태원 참사 100일 하루 전인 다음 달 4일에는 이태원 광장부터 광화문까지 추모행진을 가진 뒤, 광화문 광장에서 100일 시민추모대회를 연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가 31일 이태원 분향소에서 159명 희생자를 위한 159배를 하고 있다. 2023.1.31.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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