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수통일 없다" 선언한 광복 80돌 대통령 경축사

김정은·김여정 '흡수통일' 우려에 응답

'실용적인' 이 대통령 남북관계 접근법

'통일' 대신 '평화'…'민족' 대신 '주민'

"9.19 군사합의 선제적, 단계적 복원"

북핵 문제도 '평화' 프리즘 통해 접근

2025-08-15     이유 에디터

"우선, 현재 북측의 체제를 존중하고, 어떠한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 일체의 적대행위를 할 뜻도 없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광복 제80주년 경축식에 참석해 경축사를 통해 에두르지 않고 이렇게 선언했다. 지난달 28일과 14일 두 차례 걸친 대남 담화에서 북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비난했던 '흡수통일' 관련 발언에 대한 응답 성격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80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2025.8.15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이재명 "북 체제 존중, 흡수통일 없다"
김정은·김여정 '흡수통일' 우려에 응답

김여정은 '조·한 관계는 동족이라는 개념의 시간대를 완전히 벗어났다'란 1차 담화에선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통일부 정상화' 계획에 "조선반도에 국가 대 국가 간 관계가 영구 고착된 현실과 더불어 해체돼야 할 통일부의 정상화를 시대적 과제로 내세운 것을 보아도 확실히 흡수통일이라는 망령에 정신적으로 포로가 된 한국 정객의 본색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서울의 희망은 어리석은 꿈에 불과하다'는 2차 담화에서도 "서울의 대조선 정책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으며 변할 수도 없다는 것을 확신한다"며 "한국은 자국 헌법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흡수통일하려는 망상을 명문화해 놓았다"고 또다시 '흡수통일'을 언급했다.

'흡수통일' 우려는 2023년 12월 30일 노동당 중앙위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교전 중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고 체제 수성에 나선 실질적 배경이기도 했다. 당시 김정은은 "우리 제도와 정권을 붕괴시키겠다는 흉악한 야망은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면서 '통일 노선' 폐기에 대해 남측이 "외세와 야합해 정권 붕괴와 흡수통일의 기회만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된 전 대통령 윤석열은 작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역대 한국 정부가 유지해온 화해·협력, 남북연합, 통일국가의 3단계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무시하고 ‘자유 통일’이란 ‘8.15 통일 독트린’을 발표해 북한을 흡수통일하겠다는 뜻을 대놓고 밝힌 바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4일 평양 개선문광장에서 열린 조국해방(광복) 80주년 경축대회에 참석해 연설을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5일 보도했다. 2025.8.15

김여정 "한국, 미국의 충성스런 하수인"
핵협의그룹·한미연습·비핵화 주장 '비판'

김여정은 또 전날 담화에서 "미국의 충성스러운 하수인이고 충실한 동맹국인 한국과의 관계를 개선할 의지가 전혀 없다...이 결론적인 립장과 견해는 앞으로 우리의 헌법에 고착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 대북 핵선제 타격에 초점을 맞춘 한미 핵협의그룹을 가동하고 △ 침략적인 각종 전쟁 연습을 벌이며 △ 계속 비핵화 주장을 하며 "우리 국가의 헌법을 정면 부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김여정은 한국을 "항시적인 안전 위협을 가해오고 있는 위태하고 저렬한 국가"라고 규정짓고 "우리의 국법에는 마땅히 대한민국이 그 정체성에 있어서 가장 적대적인 위협 세력으로 표현되고 영구 고착돼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여정은 "국가 대 국가 관계가 영구 고착"돼 동족 개념에 따른 남북관계는 이젠 사라졌다는 취지에서 "조·한 관계"(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 대한민국)란 표현을 일관되게 사용했다.

한편, 김정은 위원장은 14일 평양 개선문 광장에서 열린 '조국해방 80돌 경축대회'에서 연설을 통해 "조선과 로씨야(러시아)는 지금 나라의 존엄과 주권,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투쟁의 한 전호에서 또 다시 정의의 력사를 창조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미국과 한국에 대한 비난이나 언급은 없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자주통일평화연대와 양대 노총,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독립유공자유족회 등으로 구성된 '광복 80년 평화·주권·역사정의 실현 8.15범시민대회 추진위원회' 관계자들이 11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한미연합군사연습 전면 중단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5.8.11

'실용적인' 이 대통령 남북관계 접근법
'통일' 대신 '평화'…'민족' 대신 '주민'

경축사를 보면, 최악의 남북관계에 대한 이 대통령의 접근법은 역시 '실용적'이다. 북한도 거부하는 '민족' '동족' 개념을 굳이 쓰지 않고 "남과 북의 주민"이란 표현을 사용한 데서도 엿볼 수 있다. 또한 기존 남북관계 합의를 문제 해결의 출발점으로 삼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특히 남북관계를 북한이 알레르기를 보이는 '통일'이 아닌 '평화'란 프리즘을 통해 접근하는 방식이 돋보였다. 이 대통령은 "평화는 안전한 일상의 기본이고, 민주주의의 토대이며, 경제발전의 필수조건이다. 싸워서 이기는 것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보다, 싸울 필요가 없는 상태, 즉 평화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이 대통령은 "적대 상태의 지속은 남과 북 주민 모두에게 아무런 이익이 되질 않는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 평화가 흔들릴 때 어떤 불행이 생기는지 우리는 이미 지난 역사를 통해 가혹할 정도로 체험했다"며 "낡은 냉전적 사고와 대결에서 벗어나 평화로운 한반도의 새 시대를 열어가야 할 때다"라고 호소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80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공연을 지켜본 뒤 박수치고 있다. 2025.8.15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한반도 평화'로 가는 첫 출발점
기존 남북 간 합의들부터 이행

절실한 '한반도 평화'로 나아가는 첫 출발점으로 이 대통령은 기존 남북 합의의 이행을 강조했다. 물론 북한은 이미 이를 모두 부정한 만큼 호응할 가능성은 당장은 없어 보인다.

이 대통령은 "우리 정부는 기존 합의를 존중하고 가능한 사안은 바로 이행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남북관계를 "서로의 체제를 존중하고 인정하되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의 특수관계"로 본 남북기본합의서(1991년)의 정신이 6.15 공동선언(2000년), 10.4 선언(2007년), 판문점 선언과 9.19 공동선언(2018년)을 관통하는 만큼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얘기다.

남북 대화 복원을 위해 일관된 행동과 인내심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숱한 부침 속에서도 이어지던 남북 대화가 지난 정부 내내 끊기고 말았다. 엉킨 실타래일수록 인내심을 갖고 차근차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먼 미래를 말하기에 앞서 지금 당장 신뢰 회복과 대화 복원부터 시작하는 것이 순서다. 신뢰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만들어진다"고 덧붙였다.

김여정이 "한국이 확성기를 철거하든, 방송을 중단하든, 훈련을 연기하든 축소하든 우리는 개의치 않으며 관심이 없다"면서 이재명 정부가 취해온 △ 대북 전단 살포 중단 △ 확성기 방송 중단 및 철거 △ 4개 대북 선전 라디오 방송 중지 △ 18일부터 시작되는 '을지 자유의 방패'(UFS) 연합훈련 일부 연기 등의 조치를 평가절하했지만, 앞으로도 남북 간 실질적 긴장 완화와 신뢰 회복을 위한 조치를 일관되게 취해나가겠다는 게 이 대통령의 뜻이다.

 

북한은 지난 11일 전군의 전쟁수행능력과 임전태세를 완비하기 위한 인민군 총참모부의 전투훈련계획에 따라 조선인민군 대연합부대관하 전술적 포병구분대들의 사격훈련경기를 진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2일 보도했다. 이번 훈련은 박정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겸 당 중앙위원회 비서가 참관했으며, 리영길 인민군 총참모장이 동행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참관하지 않았다. 2025.8.12 연합뉴스

"9.19 군사합의 선제적, 단계적 복원"
북핵 문제도 '평화' 프리즘 통해 접근

특히, 남북 간 우발적 충돌 방지와 군사적 신뢰 구축을 위해 '9.19 군사합의'를 선제적, 단계적으로 복원해 나가겠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2018년 평양에서 합의한 '9.19 군사합의'는 남과 북이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약속함으로써 군사적 긴장 완화에 크게 기여했지만, 작년 6월 당시 윤석열 정권이 북한의 오물 풍선을 구실로 9.19 군사합의 전면 효력 정지를 결정했고 북한이 그 뒤를 따르면서 폐기됐다.

이 대통령은 또한 "공리공영·유무상통 원칙에 따라 남북 주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교류 협력 기반 회복과 공동 성장 여건 마련에 나서겠다"며 "광복 80주년인 올해가 대립과 적대의 시대를 끝내고, 평화공존과 공동 성장의 한반도 새 시대를 함께 열어갈 적기다. 신뢰를 회복하고, 단절된 대화를 복원하는 길에 북측이 화답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북핵 문제도 '평화'의 프리즘을 통해 접근했다. 이 대통령은 "평화로운 한반도는 핵 없는 한반도"라고 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선 현존하는 북한 핵도, 미래의 남한 핵도 없어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 대통령은 "비핵화는 단기에 해결할 수 없는 복합적이고 어려운 과제이지만, 남북, 미북 대화와 국제사회의 협력을 통해 평화적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나가면서,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발전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공감대를 넓혀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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