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법 폐지]③ 국가보안법과 헤어질 결심
대한민국 헌법 정신 위배하는 ‘자유 탄압법’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일당이 친위 쿠데타를 일으켰다. 전국민적인 저항에 부닥쳐 몇 시간 만에 좌절됐지만 쿠데타가 성공했더라면 수많은 사람들이 ‘국가보안법’에 의해 반국가 세력으로 몰려 ‘처단’될 뻔했다.
국가보안법은 일제강점기 수많은 독립투사들을 옭아넣었던 ‘치안유지법’이 이름을 바꾼 것으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 독재정권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악용돼 왔다. ‘윤석열의 난’에서 보듯이 이 악법은 여전히 날선 이빨로 국민의 안위와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 들어 3대 특검법으로 내란세력에 대한 심판을 서두르고 있지만 이들 세력이 무기 삼았던 국가보안법을 없애지 않는다면 언제 또 정의가 유린될지 알 수 없다.
이에 시민사회에서 이참에 미래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주자며 국보법 폐지 운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7월 1일 100여 개 사회단체들과 이 법의 피해자들 1203인은 ‘민주시민교육을 위한 국가보안법 폐지 선언’을 발표하고 국회 입법청원에 돌입했다.
국가보안법이 무엇이 문제이고, 왜 폐지되어야 하는지 다시 한번 환기하기 위해 10회(예정)에 걸쳐 릴레이 기고를 싣는다. 민들레광장 필진인 강수돌 교수가 이에 동참해 세 번째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 주)
국가보안법의 뿌리는 1925년 일제 치하에서 나온 ‘치안유지법’이다. 올해로 딱 100주년이다. 흔히 볼 수 있는 ‘100주년 기념식’이라도 해야 할까? 기념식 흉내를 낸다면, 당장 ‘없애는 것’이 최고의 의식일 것이다. 왜 그런지는 천천히 보기로 하고, 우선은 치안유지법이란 것이 일본 제국주의가 당시 조선 침략과 수탈, 억압과 착취를 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걸 제거하려는 맥락에서 나왔음을 짚어야 한다. 당시는 1922~3년 조선노동공제회, 조선노동연맹이 출범하고, 1924년엔 농민과 노동자 연대를 지향하는 조선노농총동맹, 이어 조선여성동우회가 발족해 일제에 큰 위협이 되던 때였다. 당시만 해도 조선노농총동맹에는 167개 단체 204명의 대표가 모여, 수만, 수십만 민중을 조직해 나갔다. 이들은 전국적으로 확산하던 각종 쟁의 현장에 개입해 일제의 식민통치에 저항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일제는 치안유지법을 통해 ‘질서’를 확립코자 했다. 그 ‘질서’란 당연히 지배자, 제국주의자 즉, 자본의 질서였다!
그 다음에 나온 것이 해방 후 이승만 정부 수립 뒤 제정된 1948년 12월의 국가보안법이다. 이는 국가를 위해하는 행위를 규제해,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함을 목적으로 한다. 말이 좋아 국가의 안전, 국민의 생존, 국민의 자유이지, 실은 이승만 권력의 안전, 친일·친미 매국노의 생존, 자본의 자유를 추구하는 것에 불과했다! 이 맥락에서 사상 검찰 오제도가 주축이 되어 1949년 4월 이후 “좌익 전향자를 계몽·지도”한다는 명분 아래 국민보도연맹을 조직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실은 ‘계몽·지도’가 아닌, ‘억압·배제’를 의도했다. 이제야 널리 알려진 바, 독일 나치 치하의 홀로코스트(Holocaust)와 맞먹는, 국민보도연맹 학살(國民保導聯盟虐殺) 사건들도 ‘국가보안법’ 아래서였다. 이 보도연맹 학살은 1950년 6.25 한국전쟁 전후로 대한민국 국군·헌병·경찰·반공단체(대한청년단, 서북청년단)가 국민보도연맹원과 양심수, 일반 양민 등 공식적으로 확인된 4934명을 포함, 약 30만 명에서 120만 명의 민간인을 살해한, 국가 폭력의 구체적, 상징적 사건이다. 나중엔 이승만의 정적이었던 조봉암 진보당 대표와 간부들을 1959년 7월 국가변란 및 간첩죄 혐의로 체포, 조봉암을 사형했다. [그러나 2011년 1월, 대법원이 조봉암에 무죄 선고했다. 대다수 양심수 사건들이 이런 식이다. 이 어불성설의 법이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에 빠뜨리거나 삶 전체를 파괴한 뒤, 50년 이상 세월이 지나 ‘무죄’ 판결한들, 또 보상금까지 준들, 그 무슨 소용인가?]
그 후계자이자 더 사악한 형태가 1961년 박정희 일당의 내란(5.16 쿠데타) 이후 “공산주의 활동을 처벌”한다는 명목으로 나온 반공법(1961~1979)이다. 반공법은 국가보안법의 특별법 형태인데, “반국가단체 가입 및 활동 찬양·고무” 등을 처벌 대상으로 삼았다. 이 법은 일제의 치안유지법이나 이승만의 국보법과 마찬가지로 자의적 해석과 선택적 적용으로 인해 반정부 비판을 제약하고 언론을 탄압하는 수단이 됐다. 어떤 면에선 박정희가 (친형을 뒤따라) 남로당 활동을 했고 여순 사건 연루자로 무기징역 선고까지 받은 과거가 있었기에, 남한의 반공 분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으로 “공산주의 활동”을 더 철저히 제거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의 개인적 권력 탐욕 내지 생존 전략보다 더 중요한 측면은, 한국 자본주의를 본격 가동하기 위한 전초전으로서 ‘불온’ 세력을 척결, 배제해야 할 필요성, 나아가 ‘말 잘 듣고, 일 잘 하는’ 노동력을 만들어내기 위한 사회 기강 조성의 차원이다.
바로 이 반공법을 이은 것이 1980년 전두환 일당에 의해 재정비된 국가보안법인데, 지금까지 이것이 사람을 많이 잡고 있다. 그냥 잡는 게 아니라 물리적으로 죽이거나 심리적으로 죽인다. 그 이유는 앞서 말한 바, 한국 자본주의를 성장, 발전시키는 데 걸림돌이 되는 세력들, 정부 정책에 순종, 협조하지 않는 세력을 모조리 뿌리 뽑겠다는 의도 때문이다. 교사 등 ‘똑똑한’ 지식인들이 유난히 탄압을 많이 당한 배경이기도 하다. 사형이나 무기형, 아무리 약해도 ‘빨갱이’ 낙인으로 인해 온 사회가 “눈도 닫고 귀도 막고 입까지 막고” 살아야 했다. 그리하여 물리적으로 생존해도 심리적으로는 죽는다. 아니, 물리적으로라도 살아남기 위해 심리적으로 스스로 죽어야 한다. 이것이 국가보안법이다! 진정 ‘국가보안’이라면 그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의 자유로운 양심과 활동을 안전하게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말만 국가보안일 뿐, 실제로는 권력보안, 자본보안에 불과한 것이 사태의 진실이다.
정말 이상한 것은, 2000년에 김대중-김정일 두 남북 정상이 만나 6.15 공동선언으로 상호 교류와 평화 분위기 조성을 약속했음에도, 또 2018년 문재인-김정은 두 정상이 감동적인 4.27 정상회담을 가진 뒤 열린 소통의 가능성이 열렸음에도, 아직까지 국가보안법이 생생히 버티고 있는 점! 내 생각에 남과 북이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최선의 길은, 남한의 장점과 북한의 장점을 서로 배우는 길밖에 없다. 그렇게 서로 문을 열고 배우면서 상호 고양되는 ‘제3의 길’(기존 자본주의도, 기존 공산주의도 아닌, 참된 제3의 길)을 찾아 새로운 시스템(예, 생태민주 공화국)을 만들면 평화 통일이 된다. 그 과정에서 상부 지도층이 아닌, 광범위한 민초들의 참여와 숙의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어차피 ‘국힘당’으로 상징되는 보수-극우-권위주의 세력은 자신의 정치경제적 이권(돈벌이)을 위해 국가, 국민, 국토를 밥 먹듯 ‘배신’하는 경향이 있다고 치자. 그러나 ‘민주당’으로 상징되는 민주-진보-혁신주의 세력은 그와 전혀 달라야 하지 않을까? 더 이상 남북 분단, 이념 대립, 좌우 갈등을 근거로 대한민국 헌법 19조에 보장된 양심의 자유, 21조의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22조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억압해선 안 된다.
요컨대, 치안유지법-국가보안법-반공법-국가보안법 등의 계보를 가진 ‘자유 탄압법’은 대한민국 헌법 정신을 정면 위배한다. 따라서 위헌적인 국가보안법을 하루 빨리 폐지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한층 고양하는 길이다. 현재의 사법제도 틀 안에서 얼마나 가능할까도 문제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양심의 자유, 언론의 자유, 결사의 자유, 학문의 자유, 예술의 자유 없이 과연 명실상부 ‘민주 공화국’이 되겠는가 하는, 기본 철학과 집단 의지의 문제다.
사람이 산다는 게 알고 보면, 별 거 없다. 그저 타인이나 자연에 큰 해를 가하지 않고, 더불어 재미있고 의미 있게 사는 게 행복이다. 이런 기본 태도만 가지면 그 엄청난 시스템 변화조차 실은 별 것 아니다. 결국, 탐욕과 중독만 홀가분하게 벗어던지면 만사가 해결된다.
촛불혁명과 빛의 혁명을 완수하려는 이재명 국민주권 정부에서 이 악법, 국가보안법을 당장 없애지 못한다면 언제 또다시 절호의 기회를 맞을 수 있겠는가? 치안유지법 100주년에 국가보안법을 깨끗이 없앤다면, 이 또한 역사의 좋은 이정표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국가보안법을 없애는 그 역사적인 날에는 그간 국가보안법, 반공법 등으로 희생된 양심수들, 또 ‘연좌제’로 인해 직·간접으로 피해 입은 사람들(가족, 친지, 친구들)이 모두 공식 초대돼야 한다. 그들 앞에 국가가 그간의 국가 폭력에 대해 ‘공식’ 사죄하고,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시켜야 한다. 나아가 앞으로 절대 그런 일이 재발하지 않게 철저한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만이 민주 공화국을 진정 발전시키는 길이며, 나아가 평화통일의 초석을 까는 일이다. 더 이상 ‘빨갱이’ 낙인 때문에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억압받는 사람이 없는 사회가 진정 자유(自由) 사회다. (말로만 외치는 국힘당과 달리) 내면이 자유로워야 진짜 자유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