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압수수색]무법투성이 영장 집행…사본 교부 의무 위반

경찰의 광범위한 언론사 압수수색 사법부가 용인

피의자도 특정 안된 영장…사본 교부 의무도 위반

비상식적인 영장 유효기간…야간 압색까지 준비

이태원 명단 관련 없는 회계자료까지 광범위 사찰

강압 분위기 조성…기자 휴대전화 손으로 치기도

2023-01-26     김성진 기자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 수사팀이 26일 오전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기 위해 시민언론 민들레 편집국에 진입하고 있다. 2023.1.26. 시민언론 민들레

26일 경찰이 기습 단행한 <시민언론 민들레> 편집국에 대한 압수수색은 시민의 상식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무법 투성이'였다. 경찰은 피의자도 전혀 특정하지 못한 채 시민이 만든 언론사를 광범위하게 압수수색하며 헌법이 정한 언론 자유를 침해했고 사법부는 이를 용인했다.

이날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책임자 노정웅 경정, 2계장)가 서울중앙지법(김정민 판사, 청구검사 김영식)으로부터 발부받아 <민들레>에 제시한 압수수색 영장을 보면, 피의자 성명과 직업, 주거 등이 전부 불상, 미상으로만 표기됐다. 경찰은 그동안 서울시 등을 대상으로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보도' 경위를 광범위하게 수사했지만 영장에 특정한 것은 <민들레> 편집국 주소 하나뿐이었다. 이는 <민들레> 홈페이지에서도 확인 가능한 정보다.

이에 <민들레> 대표와 고문, 에디터, 기자 등은 피의자도 특정하지 못한 영장 집행에 항의하며 정당한 압수수색 영장 사본 교부를 수십차례 요구했지만, 경찰은 이를 완강하게 거부했다. 사건 관계인의 열람 요구를 막기도 했다. 특히 <민들레> 편집국이 압수수색 대상이고 대표가 입회하고 있는데도 영장 사본을 교부하지 않은 점은 위법한 수사 행위다.

형사소송법 제118조에 따르면 압수수색 영장은 처분을 받는 자에게 반드시 제시해야 하고 사본을 교부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경찰은 "<민들레>에 대한 압수수색이기 때문에 사본을 교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을 하며 계속 거부하다가 압수수색이 끝난 뒤에야 교부했다. 위법한 압수수색을 방어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마저 침해한 것이다.

아울러 영장은 유효기간을 이달 20일부터 다음 달 15일까지 설정해 27일 동안 압수수색할 수 있도록 하면서 동시에 일출 전, 일몰 후에도 집행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주소지가 명확한 언론사의 압수수색에 대해 30일 가까이 유효기간을 준 것도 이례적이지만, 특정하지도 못한 피의자의 직업을 기자로 추정해 야간 압수수색까지 사전 허용한 것은 법원의 과잉 해석으로 볼 수 있다.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 수사팀이 26일 오전 시민언론 민들레 편집국에 모여든 시민들을 물리력으로 저지하고 있다. 2023.1.26. 시민언론 민들레

게다가 경찰은 사실상 '언론사 사찰'이라고 부를 만큼 광범위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법원이 발부한 영장에는 압수할 물건을 '범죄 혐의와 관련된 부분으로 제한한다'고 명시했지만, 경찰은 <민들레> 기자들의 노트북과 휴대전화, 취재메모뿐만 아니라 회계자료와 후원자 관련 자료, 이태원 명단과 관련 없는 개인메모까지 압수를 시도했다.

경찰의 부당한 회계자료 압수 시도에 대해 <민들레> 기자들이 "이태원 참사 보도와 회계자료가 무슨 관련이 있냐"고 따지자, 경찰은 처음에 "(보도가) 영리 목적이 있는지 들여다보려고 했다"고 설명했다가 나중에 "<더탐사>와 <민들레>의 공모관계를 들여다보기 위한 목적"이라고 말을 바꾸기까지 했다. 

또 경찰은 영장에서 성명불상 피의자로 <민들레>와 <더탐사> 소속 기자를 언급하고 있고, <민들레>와 <더탐사>의 공모관계를 수사한다고 설명하면서 정작 <더탐사> 강진구 기자가 압수수색 과정에 입회하는 것을 막았다. 경찰은 압수수색을 저지하기 위해 모여든 시민들이 항의하자 그제서야 강 기자의 입회를 허용했다.

강압적인 분위기도 조성됐다. 경찰의 기습적인 압수수색에 <민들레> 기자들이 사진과 영상을 촬영하자 휴대전화 등을 손으로 거칠게 치면서 취재 활동을 막았고, 이후 보복하듯이 "휴대전화를 제출하라"고 강압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또 압수수색 소식을 듣고 달려온 취재진과 시민 20여 명의 사무실 진입을 물리력으로 저지했다.

이 밖에 경찰이 이날 제시한 영장에는 "언론사라는 <민들레>의 특성을 고려할 때 취재원 보호 등의 이유로 임의제출 요구를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며 <민들레>의 언론 활동이 통상적인 범위라는 점을 확실히 했다. 그러나 공익 목적의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보도'에 대해서는 시종일관 '영리 또는 부정한 목적'을 언급하며 처음부터 수사 방향을 설정한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많았다.

<민들레>는 당초 이날 오전 9시쯤부터 시작된 경찰의 편집국 압수수색에 협조했지만, 경찰이 납득이 가지 않은 행태를 보임에 따라 정오를 지난 시점부터 협조를 일시 중단하고 고문변호사가 도착한 뒤에야 경찰의 자료 열람과 복사, 전자기기 압수에 응했다. 압수수색은 약 6시간 뒤인 오후 3시쯤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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