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국 노동자들의 상반된 정당지지 성향…왜?

영, 노동당 권익 옹호·지위 향상 동반자 믿어

한, ‘빨갱이’ 낙인찍기 영향 위험하다는 인식

‘보수는 성장, 좌파는 분배’ 잘못된 고정관념

한국 노동자, 좌파 정당에 대한 편견 버려야

2025-06-17     김성수 시민기자

영국에서 35년을 살면서 발견한 흥미로운 일은 노동자들의 상반된 정치적 선택이다. 영국 노동자들은 전통적으로 노동당을 중심으로 한 좌파 정당은 지지한다. 반면, 한국 노동자들은 대체로 보수 우파 정당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느껴진다. 같은 노동자인데 왜 이렇게 다른 성향의 선택을 할까?

 

2024년 7월 영국 총선에서 승리한 영국 노동당 대표 키어 스타머가 선거에 앞서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공약 발표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역사적 경험의 차이

먼저 두 나라 노동자들의 역사적 경험이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영국은 18세기 산업혁명의 발상지로서 노동자 계급의 형성과 조직화가 일찍부터 이루어졌다. 19세기부터 노동조합 운동이 활발했고, 20세기 초 노동당이 창당되면서 노동자들의 정치적 대변자 역할을 해왔다. 영국 노동자들에게 좌파 정치는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켜준 역사적 동반자였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전혀 다른 역사적 경험을 했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그리고 분단 상황에서 좌파 이념은 종종 '빨갱이'로 낙인찍혔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한국 노동자들은 경제성장의 수혜자가 되었고, 이 과정을 주도한 것은 보수 정권이었다. 좌파 정치는 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위험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사회보장제도의 발달 정도

영국은 1948년 국민보건서비스(NHS)를 도입한 이후 포괄적인 사회보장제도를 구축했다. 지금도 실업급여, 의료보험, 주택수당 등 광범위한 사회안전망이 존재한다. 이런 제도들은 대부분 노동당 정부나 좌파 정치인들의 주도로 만들어졌다. 영국 노동자들에게 좌파 정치는 곧 더 나은 복지와 사회보장을 의미한다.

한국은 사회보장제도의 발달이 상대적으로 늦었고, 그 수준도 영국에 비해 미흡하다. 오히려 한국 노동자들은 국가나 정치권보다는 개인의 노력과 경제성장을 통한 계층 상승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상황에서 좌파의 분배정책보다는 우파의 성장정책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계급의식과 정체성의 차이

영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계급 구조가 뚜렷하고, 노동자들의 계급의식도 상당히 발달해 있다. 대학을 나오지 않고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노동자로서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런 계급의식은 자연스럽게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하는 좌파 정치 지지로 이어진다.

한국 사회는 급속한 산업화와 교육열로 인해 계급 이동이 활발했다. 많은 노동자들이 자신을 '중산층'으로 인식하거나 중산층이 되기를 열망한다. 노동자로서의 정체성보다는 '언젠가는 더 나은 계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 이런 상향 이동에 대한 열망은 기득권과 현 체제를 옹호하는 보수 정치 지지로 나타난다.

 

대표적인 보수 우파 개신교 목사 전광훈, 손현보 씨.

종교 문화적 배경과 미디어 정보 환경

영국의 노동자 계층은 상대적으로 세속적이고, 종교의 영향력이 크지 않다. 반면 한국의 노동자들은 개신교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한국 개신교는 대체로 보수적 성향이 강하고, 반공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역설한다. 교회를 통해 형성된 사회적 네트워크와 가치관이 노동자들의 정치적 선택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다.

노동자들이 접하는 미디어 환경도 상당히 다르다. 영국은 BBC를 중심으로 한 공영방송이 발달해 있고, 다양한 정치적 성향의 언론이 공존한다. 노동자들도 상대적으로 균형잡힌 정보에 노출될 기회가 많다. 이에 비해 한국은 언론의 정치적 편향성이 심하고, 특히 보수 언론의 영향력이 강하다. 많은 노동자들이 보수적 시각으로 편집된 정보에 주로 노출되면서, 좌파 정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화되고 있다.

노동조합의 역할과 인식

영국의 노동조합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으며, 노동당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노동조합 활동이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강하다.

한국의 노동조합은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고, 정치적으로 분열되어 있다. 더욱이 일부 노조의 과격한 투쟁 방식이나 특권 논란 등으로 인해 일반 노동자들로부터 거리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노조가 좌파 정치와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이 오히려 부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한국 노동자들도 이제는...

한국과 영국 노동자들의 상반된 정치적 선택은 각각의 역사적 경험과 사회적 맥락에서 보면 나름의 이유가 있다. 영국 노동자들에게 좌파 정치는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켜준 역사적 동반자였다. 반면 한국 노동자들에게는 보수 정치가 경제적 기회를 제공하고 사회적 상승을 가능하게 해준 실질적 도구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두 나라를 모두 경험한 나는 이제 한국 상황이 달라졌다고 본다. 과거 고도성장기에는 보수 정권의 성장 우선 정책이 노동자들에게도 실질적 혜택을 주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 한국도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고,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었다.

영국에서 35년을 살며 체험한 것은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은 성장보다는 분배라는 사실이다. NHS로 대표되는 무상의료, 든든한 실업급여, 주택수당 등 포괄적 사회안전망이 있기에 영국 노동자들은 실직에 대한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살 수 있다. 이 모든 제도들은 노동당을 중심으로 한 좌파 정치의 산물이다.

반면 한국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병원비 걱정을 하며, 자녀 교육비 부담에 허덕인다. 집값 상승으로 내 집 마련은 헛꿈이 되었고, 노후 준비는 오롯이 개인의 몫이다. 이런 상황에서 '성장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보수 정당의 공약은 더 이상 현실성이 없다.

좌파 정당을 선택해야 할 때

한국 노동자들이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좌파에 대한 불신과 오해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자본주의가 오래된 영국 노동당의 역사를 보면, 좌파 정치는 결코 경제를 망치거나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지 않는다. 오히려 더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성장 모델을 제시한다.

물론 한국의 좌파 정당들이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들의 이익과 반대되는 정당에 계속 표를 던져서야 되겠는가? 노동자들이 좌파 정당을 지지하고 압박해야 그들도 더 나은 정책을 내놓게 된다.

비록 몸은 영국에 살고 있지만, 한국 노동자들의 미래를 위해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게 있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진정한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 즉 좌파 정당에 표를 던져야만 한국도 영국처럼 든든한 사회복지와 사회안전망을 갖춘 나라가 될 수 있다.

더 이상 '빨갱이' 프레임에 속지 말고, 더 이상 '언젠가는 내가 부자가 될 것'이라는 허황한 꿈에 매달리지 말자. 지금 당장 우리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해줄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은 좌파 정치뿐이다. 이것이 두 나라를 모두 살아본 내가 한국 노동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진심어린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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