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수용시설 피해자들이 이재명 지지 선언한 이유
[시민활동가를 만나다] 유진수 대표
100만 고아의 대변인, 전국고아시설피해생존자협
유기수용시설 피해 특별법으로 진상규명 명예회복 필수
뿌리찾기, 위원회설치, 조사권 부여, 유전자검사가 핵심
위탁고아 70%, 유기고아 30%, 천애고아는 거의 없어
아동유기는 범죄, 고아산업 육성 고아 양산법 바꿔야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지난 23일, 국회 소통관에서는 매우 특별하면서도 의미 있는 이재명 후보의 지지선언 기자회견이 진행되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들은 대부분 고아출신과 그들을 돕고 있거나 연대하고 있는 단체 등의 회원 1000여 명이었다. 이날 기자회견은 전국고아시설피해생존자협의회 유진수 대표가 국회에 특별법을 만들어 달라고 청원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회견장에는 시설고아 출신, 한국미혼모가족협회, 입양부모 등 10여 명도 함께했다. 전국의 고아원 출신 피해자 등 관련단체 소속 회원 1000여 명이 지지선언에 이름을 올렸다. 이날 기자회견을 주관한 더불어민주당 양문석 의원은 “전국 유기수용시설의 피해에 대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며 현재 국회사무처 법제실에 특별법 초안 입안을 의뢰한 상태”라고 입법 추진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고아수용시설 피해자들은 애초 자신들의 피해사실에 대한 권리회복이 정파적으로 치우치는 것을 경계했다. 그러나 소위 보수정당이라고 불리는 곳에서는 그들의 피해사실을 외면했다. 예를 들어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에게 극우 보수정당이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처럼 고아원이 급성장한 배경에는 전두환 정권의 비호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고아 시설 운영자들은 사학재단이나 아동복지재단 또는 부동산 재벌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아동복지'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자신들의 영리 추구와 불법, 폭력과 횡포를 감추는 일에 극우 보수 정당이 방패막이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극우 보수 정당이 고아원 출신 피해자들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것은 애초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특별법의 제정을 위한 공청회 및 토론회를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적극 돕고 있으니 그들이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복지는 예방적이어야 하며 보편적이어야 한다. 그 예방적 보편적 기준과 관점에서 ‘최고’의 아동복지는 부모와 함께 생활하는 것이다. 국가는 아동이 부모와 분리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국가의 예산은 아동이 부모와 분리되기 전에 사용되어야 고아로 전락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이 복잡하고 불편하다. 그래서 국가는 가장 유리한 방식을 채택한다. 손쉽기도 하고 가장 ‘편리’한 아동복지의 방편으로 국가는 요보호아동이라는 타이틀을 달아서 고아원이라는 곳으로 보내 버린다. 그리고 일정 금액의 돈을 지원한다. 그것으로 국가는 역할을 했다며 수수방관 한다. 국가 입장에서는 가장 편리한 방식이며 나름대로 국가가 역할을 행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편리한 방식의 가장 큰 피해자는 고아들이다. 고아원에 머물고 있는 원생들이 모두 고아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실제 부모 없는 천애고아들은 전체의 1%도 되지 않는다. 고아원에는 위탁고아(약 70%)와 유기고아(약 30%)라고 불리는 아이들도 있다. '위탁고아'는 가난이나 이혼 또는 부모가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 고아원에 맡겨지지만 그 순간부터 부모로부터 영원히 격리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아이들을 고아원에 맡긴 이후 다시 찾으러 오는 경우는 매우 적다.
더욱이 국가는 고아들의 처지에 대해 아랑곳하지 않고 부모들의 처지만 걱정한다. 국가가 예방적 관점으로 조금만 접근해도 이런 위탁고아는 상당 부분 막을 수 있다. 유기고아라고 불리는 이들도 존재한다. 매우 어린 나이에 부모로부터 버려지는 아이들이다. 이 경우에 해당되는 아이들은 부모의 생사는 물론 존재여부조차 파악하기 힘들다. 또한 위탁고아가 자연스럽게 유기고아의 단계로 넘어가기도 한다.
현재 국가는 고아 인당 매월 약 500만 원의 돈을 고아원에 지원하고 있다. 고아원은 이런 국가의 지원금을 포기하고 싶지 않기에 고아원생들이 부모 찾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부모가 다시 아이들을 데려가려는 것도 이런 저런 이유를 붙여 방해하곤 한다. 심지어 고아원을 퇴소한 이후에도 고아원은 출신자들의 부모 찾기에 협조하지 않는다. 그런 저런 이유로 현재까지 고아원 출신자는 100만 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고아원 출신으로는 그나마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례라고 할 수 있는 유진수 씨는 관악구에서 의료생협을 만들어 현재는 상임이사로 일하고 있다. 비고아 출신들에게는 그리 남다를 것도 없는 직업이라고 하겠지만 고아 출신으로는 상당히 드문 사례이다. 대부분의 고아원 출신자들이 대체로 일용직에 종사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유진수씨의 경우는 매우 특별한 사례이다.
그는 7살에 고아원에 들어갔다. 그의 집은 당시 부촌중 하나인 성북동에 있었으며, 아버지는 미국에서 소비재를 수입하여 판매하고 있었다. 그가 기억하는 부친은 민주화운동가였다. 당시 수배를 피해 도망 다니던 학생과 활동가들이 유진수 씨 집에 며칠씩 은거하기도 했다. 넓은 정원이 있는 할아버지 댁에서 뛰어놀던 기억도 있다. 그러나 부친이 어느 날 갑자기 사망했다. 장준하 선생이 서거하던 1975년도에 그의 부친도 의문사 당했으며 그 후 2~3개월 만에 그는 고아원에 맡겨졌다.
아동일시보호소를 위탁 운영하던 소년의집에서 몇 개월 머문 다음 신림원이라는 곳으로 보내졌다. 신림원(현재 관악세무서 자리)의 소유주는 3억 원에 고아시설을 매입하여 18억 원에 부지를 매각하고 부여로 이전한다. 부여로 이전 후 또 다시 40억 원에 매각돼 신림원의 소유주는 부동산 재벌이 된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의 비호 하에서 벌어진 일이다. 겉으로는 세상에 둘도 없는 천사지만 속 내용은 고아산업으로 큰 돈벌이를 이어갔다. 아동복지라는 이름으로 부동산에 투자하여 떼돈을 번 것이다.
학창시절 공부를 제법 잘했던 유진수 씨는 신림원에 머물던 당시 경기상고,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있었던 정보처리과를 다니던 중이었다. 그가 다니던 중학교에서 3명만이 입학할 정도로 ‘가난한 수재’가 다니던 고등학교였다. 그런데 갑자기 부여로 이전을 하게 되면서 그의 운명은 다시 바뀌게 된다. 그가 원치도 않던 농업고등학교의 화훼과로 강제 전학된 것이다. 관리자에게 항의도 해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폭력뿐이었다. 이러한 일로 인해 잠시 공부에 대한 미련을 접기도 했다.
그의 고아원 선배들은 무서웠지만 매우 생활력이 강했다. 퇴소 후 그는 고아원 선배가 운영하는 인력회사에 들어가 일용직으로 일을 했다. 그러던 중 동갑내기 고학력자 알바생의 학업 권유로 뒤늦은 공부를 시작한다. 늦은 나이에 연세대학교 보건의료 관련학과를 졸업하고 병원에서 일하다가 몇 년 전 의료생협을 만들었다.
밖으로만 돌던 부친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가 기억하는 모친의 이름은 뚜렷하다. 유병택. 몇 년 전 경찰을 통해 어렵게 모친을 찾았지만 모친은 유진수 씨와의 만남을 거부했다. 경찰은 강남의 고급아파트에서 모친이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고 전해 주었다. 부친의 사망 후 고아원에 맡겨진 그는 몇 개월 후 느닷없이 사망신고가 된다. 모친이 재혼을 위해 고아원에 맡긴 아이를 죽은 것으로 서류를 꾸몄다. 모친은 죽은 부친의 유산을 독점하고 재혼한 것이다. 이후 고아원에서 유진수 씨에게는 새로운 호적이 만들어졌다. 자신의 새로운 인생을 위해 자녀를 유기하고 사망신고마저 서슴지 않으며 유산상속마저 독점한 이를 우리는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하는가. 권리는 누리고 싶지만 책임은 지고 싶지 않는 이기심 때문에 고아아닌 고아들이 지금도 까맣게 타들어 가는 가슴을 부여잡고 있다.
유진수 씨는 현재 유기수용시설 피해자 관련 특별법 제정에 온 힘을 쏟고 있다. 특별법은 우선 고아들의 뿌리찾기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들이 누구이며 왜 고아원에서 생활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자신의 정체성 확보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둘째, 국가기관으로 위원회가 설치돼 고아시설 피해자의 진상조사가 필요하다는 내용도 포함되어야 한다. 실제로 어떤 폭력이 자행되었으며 국가는 왜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로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위원회에 반드시 조사권을 부여해야 할 필요성도 있다. 셋째, 유전자 검사를 받도록 강제해야만 한다. 국가기관이 부모를 찾았으나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부모들이 만남을 거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현재의 법체계로는 실효성을 거둘 수 없기 때문에 특별법은 반드시 필요하다. 아동유기는 범죄이며 아동을 유기한 자들은 범죄자이다. 그들의 세탁된 인생을 개인정보라는 이유를 들어 보호해서는 안 될 것이다. 넷째, 출생책임제를 도입하여 아동이 유기되지 않고 끝까지 양육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며, 아동실명제를 도입해 아동을 유기하더라도 그 기록은 영구히 보존되도록 하는 내용도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천부인권이 적용된다면 특히 고아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인권법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는 아동수용시설이나 다름없는 고아원의 지원을 위해 연간 1조 원이 넘는 예산을 사용한다. 고아원을 퇴소하는 청년들을 위해 정착지원금으로 1인당 1000만 원씩 연간 1000억 원을 투입한다. 매월 지원금으로 27세까지 월 50만 원씩 약 8년간 5천억 원의 세금을 사용한다. 이같이 국가가 지원하는 고아산업으로 인해 오히려 끝없이 고아들이 양산되는 아이러니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막대한 예산투입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다수의 고아들이 고아원을 퇴소한 이후 전과자나 노숙자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당장 목돈이 필요한 고아들을 노리는 검은 손들은 고아들이 성실하게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명의를 빌려주면 목돈을 준다는 말에 현혹되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수십 개의 대포통장을 만들어준 사기꾼이 되기도 하며 순식간에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기도 한다.
한번 범죄의 늪에 빠지면 조언해 줄 부모 등의 도움을 받지 못하기에 사실상 회생이 불가능하다. 교도소 등의 재소시설 수감자 50 ~ 60 %가 고아 출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들의 재범 발생률도 50%를 상회한다. 여기에도 국가 예산은 막대하게 투입된다. 이들이 범죄의 소굴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결국 쪽방촌 생활을 거쳐 노숙자로 인생 나락은 계속된다. 노숙자의 70%가 고아원 출신이라는 비극적인 통계가 이를 증명한다. 이후 그들은 무연고자 사망으로 쓸쓸히 생을 마감한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에서 아직도 펼쳐지고 있는 고아들의 열악한 삶의 모습이다. 대한민국의 화려한 국가 위상 뒤에 숨어 있는, 썩어 문드러진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고아들이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흘리는 눈물을 국가는 어떻게 닦아줄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아동복지라는 이름으로 투입되는 예산이 오히려 고아산업을 육성하며 고아들을 양산하는 현실. 이를 밑바닥부터 뜯어 고치는 대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고아들의 비참한 삶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