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중동 순방서 이스라엘 '패싱'…곳곳서 '이상 신호'
"네타냐후, 트럼프에 더는 자산 아니고 무임승차"
후티 휴전 협상, 하마스 인질 협상 모두 숨겨
'이-사우디 수교' 요구 없고 민수용 핵 지원할 듯
"오랜 이-팔 분쟁 해결의 중요성 분명히 이해"
"트럼프, 여과 없이 네타냐후 민낯 본다"
인남식 "젤 먼저 바이든 당선 축하에 배신감"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벤야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사이가 심상치 않다.
백악관 복귀 후 첫 공식 해외순방에 나선 트럼프 대통령이 13일(현지 시간) 사우디아라비아를 시작으로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3개국을 방문하면서도 전통적 맹방으로 밀월관계를 유지해왔던 이스라엘은 쏙 뺐기 때문이다.
이번 중동 순방은 팔레스타인 가자 전쟁과 사우디-이스라엘 수교, 이란 비핵화 등 중동의 핵심 현안들에 대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 기조를 확인하고 향후 중동 질서의 방향을 정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순방국 제외는 이스라엘엔 자못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트럼프 첫 순방지는 사우디‧카타르‧UAE
동맹 이스라엘 '패싱'…곳곳서 '이상 신호'
최근 양국 관계의 이상 신호는 이뿐만이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7일 공개된 예멘의 '친이란 반군' 후티와의 휴전 합의를 사전에 이스라엘과 조율하지 않았다. 더욱이 불과 며칠 전 후티가 탄도미사일로 텔아비브 벤구리온 공항을 타격했던 걸 알면서도 백악관은 휴전 합의의 일부로 이스라엘을 향한 탄도미사일과 드론 공격 중단을 요구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가자지구에 억류돼있던 미국‧이스라엘 이중국적 인질인 에단 알렉산더의 석방을 위해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직접 협상'을 진행해온 사실도 미리 통보해주지 않았다. 알렉산더는 12일 풀려났다. 연합뉴스는 영국 텔레그래프 보도를 인용해 네타냐후는 11일 미국이 인질 협상을 공식 발표하기 직전에 관련 내용을 통보받았다고 전했다.
네타냐후가 지난 2일 "하마스가 인질을 석방하지 않는 한 군사행동을 대폭 강화할 것"이라며 가자 점령 공식화와 군사작전 확대를 공언하고 예비군 동원 확대 등 가자 점령을 위해 수만 명의 병력 확충 계획을 마련하는 와중에 미국은 하마스와 인질 협상을 했다는 얘기다.
워싱턴의 이상 기류를 눈치챈 듯 네타냐후는 반발하기보다 트럼프를 추켜세우며 양국 간 '균열'을 부인하느라 애썼다. 더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네타냐후는 알렉산더의 석방과 관련해 12일 영상 메시지를 내고 "우리의 군사적 압박과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적 압박 덕분에 이뤄졌다"며 "승리의 조합"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트럼프와 통화해 모든 인질 석방과 하마스 격퇴란 전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약속했다고 덧붙였다.
후티 휴전 협상, 하마스 인질 협상 모두 숨겨
네타냐후는 '균열' 부인… "승리의 조합"
사실 집권 1기(2017~2021년) 때 트럼프의 중동 정책은 시종일관 '이스라엘의 이익'이 중심이었다. 이슬람 시아파 정권인 이란을 '주적'으로 삼고, 팔레스타인의 존재는 의도적으로 부정했다. 이런 맥락에서 트럼프는 네타냐후를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대표적으로 △ 유대교‧이슬람교‧기독교 모두의 성지인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 그리고 미국 대사관 이전 △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 불법 점령한 골란고원(시리아)에 대한 이스라엘의 주권 승인 △ 이스라엘 정착촌 승인 △ 대규모 재정 및 군사 지원 △ 2020년 이스라엘이 UAE‧바레인‧모로코‧수단과 수교를 담은 '아브라함 협정' 중재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수니파 이슬람의 종주국으로 중동의 맹주인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수교란 '화룡점정'은 찍지 못했다. 조 바이든 민주당 행정부가 아브라함 협정을 이어받아 사우디-이스라엘 수교에 전력을 기울였지만, 2023년 10‧7 하마스의 기습공격 및 인질 억류와 이에 대한 보복으로 가자 주민 5만3000명을 학살한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군사작전으로 전면 중단된 상태다.
'이-사우디 수교' 요구 없고 민수용 핵 지원 예상
집권 1기 때 접근법과는 사뭇 달라져
실세 총리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이끄는 사우디는 바이든의 회유와 압박에도, 지금까지 가자 집단학살에 대한 아랍 민중들의 들끓는 분노를 의식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고 '두 국가 해법'을 수용하지 않는 한 수교는 없다고 버텨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사우디 방문에서 사우디의 민수용 핵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 대가로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를 요구할 것 같지 않다는 텔레그래프의 보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떻게든 이스라엘-사우디 수교를 성사시키려 했던 집권 1기 때의 접근법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점에서 네타냐후에겐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이란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트럼프는 이란의 우라늄 농축 허용 여부를 두고 기존의 '절대 불가'에서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란 취지의 발언을 함으로써 네타냐후를 긴장시키고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가자지구를 둘러싸고도 이견을 보이고 있다. 네타냐후는 가자 점령을 목표로 군사작전을 확대하고 있지만, 트럼프는 사석에서 '헛된 노력'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트럼프가 지난 2월 가자를 "중동의 리비에라"(휴양지)로 만들겠다고 한 상황에서 네타냐후의 군사작전 확대가 방해가 된다고 보고 불만을 표출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이를 의식한 듯 네타냐후는 트럼프의 중동 순방이 끝날 때까지 가자 군사 작전을 중지하기로 했다.
"트럼프, 여과 없이 네타냐후 민낯 본다"
"이-팔 분쟁 해결의 중요성 분명히 이해"
이런 워싱턴의 이상 기류와 관련해 지정학 분석가인 살만 알-안사리는 11일 사우디의 '아랍뉴스' 기고를 통해 네타냐후에 품었을 만한 트럼프의 불만들을 정리했다. '거래 관계의 선구자'인 트럼프로선 네타냐후가 받기만 했을 뿐 되돌려 준 건 아무것도 없다고 본다는 것이다.
살만 알-안사리는 "네타냐후의 대응은 네 가지 주요 문제가 있다"면서 △ 가자에서의 융통성 부재 △ 끊임없이 이란과 전쟁하도록 미국을 유도 △ 시리아에서 난폭한 군사적 모험 △ 미국 정치에 개입 의혹 등을 거론했다. 알-안사리는 "트럼프는 이제 여과 없이 네타냐후의 민낯을 보고 있다"며 "또한 역내의 지속적 평화를 위해선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이 중요하다는 사우디의 오랜 입장을 이제 분명히 이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알-안사리는 "트럼프는 이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최종적 종식이란 21세기의 가장 역사적인 업적을 달성할 기회를 얻고 있다"며 "목표가 없는 끝없는 협상을 통해서가 아니라, 지속적 평화를 향해 양측을 밀어붙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그런 돌파구는 미국의 이익과 지역 안정을 강화할 뿐 아니라 늘 혼란과 증오 속에서 번창하는 극단주의자와 근본주의자들에게 치명적 타격을 가할 것이다"라면서 "또한 이스라엘 시민을 극단적 리더십이 추진하는 위험한 자기 파괴적 정책들로부터 해방시켜 이스라엘 시민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남식 "젤 먼저 바이든 당선 축하에 배신감"
알-안사리 "네타냐후를 더는 자산으로 안 봐"
네타냐후에 대한 트럼프의 불만을 보는 다른 시각도 있다. 중동전문가인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지난 3월 2일 페북 글을 통해 "바이든이 당선됐을 때 (네타냐후가) 해외 정상 중 제일 먼저 당선 축하 전화를 한 데 대한 트럼프의 불만과 비난은 컸다"고 소개했다. 인 교수 역시 집권 1기 때 아브라함 협정 등 네타냐후에 대한 트럼프의 전폭적 지원을 소환한 뒤 "네타냐후가 배신했다고 생각했을 법하다. 그 기억은 트럼프 장부에 정확히 기록되어 있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알-안사리는 "트럼프는 네타냐후를 더는 자산으로 여기지 않고, 무임승차로 볼 것이다. 워싱턴이 '아메리카 퍼스트' 외교정책에 진지하다면 더는 (네타냐후를) 책임지려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그렇다고 미국이 이스라엘을 버린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뉴욕타임스는 "전략적 측면에서 이번 순방의 목적은 여전히 불투명하다"며 트럼프가 순방 기간에 1조 달러(약 1400조 원) 넘는 경제 관련 합의를 발표하길 원한다고 참모들에게 밝혔다는 내용을 전하면서 경제와 비즈니스 거래에 주목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일가는 사우디 부동산 회사와의 거래, UAE 정부 기업과의 가상화폐 관련 합의, 카타르 정부가 지원하는 골프장과 고급 빌라 건설 프로젝트 등 6건의 사업을 진행 중이라고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