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 첫 폭발, 피폭자 난 곳은 히로시마 아닌 미국
[원폭80년 방미 증언단 기록②]첫 피폭 ‘미국 내부 식민지’
핵실험현장 바람방향 주민들 피폭-‘다운윈더스’
인디언 거주지, 몰몬교도 등 ‘내부 식민지’ 피폭자들
아무런 핵실험 사전통보도 받지 못한 피폭주민들
형제 자매, 딸이 암에 걸린 ‘치카노’ 피폭자 2세
여전히 통제되고 있는 원폭실험지 ‘트리니티 사이트’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원폭 최초 폭발지 뉴멕시코 로스알라모스
우리 증언단은 시애틀에서 LA(로스앤젤레스)를 거쳐 방미 7일째, 뉴멕시코주 앨버커키에 도착했다. 작은 앨버커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렌터카 구역에서 8인승 SUV(스포츠유틸리티 자동차)를 빌렸다. 시애틀과 LA 같은 태평양 연안 지역은 우리의 방미 취지에 공감하는 교민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이동과 숙식에 전폭적인 도움을 받았지만, 미국 50개 주 중 인구밀도 45위인 이 남서부의 내륙주에서는 그런 호사를 기대할 수 없었다. 여기선 우리 힘으로 움직이고 우리 힘으로 먹고 자야 한다. 선발대 6명 중 제일 어린 사람이 차를 몰고 앨버커키에서 제일 싼 모텔,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에 나오는 그런 모텔에 짐을 풀었다.
우리의 첫 행선지는 '국립 핵과학역사 박물관'이었다. 독자들은 지난 1화에서 언급한 ‘미국 원폭 개발 3대 지역’이 생각날 것이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장소, 영화 ‘오펜하이머’의 현장 로스알라모스가 바로 뉴멕시코주에 있다는 것이 기억난다면, 우리가 왜 여기에 왔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로스알라모스에서 핵무기가 최종 완성되고 그 남쪽 338km 지점에서 플루토늄 폭탄의 최초 폭발실험이 있었다. 미국의 원폭 역사를 자랑하는 핵박물관 정문 앞에서 티나 코르도바(Tina Cordova)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티나는 최초 핵실험 피해자들의 단체 공동창립자이자 대표다. 그녀는 자신이 출연한 다큐멘터리 영화 하나를 소개했다. 영화의 제목은 ‘우리가 원폭을 처음 터뜨린 곳은 뉴멕시코다’(First We Bombed New Mexico)였다. 우리는 최초의 원자폭탄이 8월 6일 히로시마에 떨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날 이후 피폭자가 생긴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틀렸다. 최초의 원자폭탄은 7월 16일 뉴멕시코주에서 폭발했고, 그 주변 분지의 모든 이들과 그 후손들은 그이후 피폭자가 되었다. 이 영화는 이에 대한 영화다. 2023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산타페국제영화제, 오스틴영화제 등에서 수상했다.
1945년 7월 16일 깜깜한 새벽 5시 30분, 화이트샌즈 미사일 발사장 안에서 암호명이 “삼위일체”(Trinity)인 인류 최초의 핵실험이 이루어졌다. “장치”(Gadget)라 불린 플루토늄 기폭장치를 철탑 위 30미터 위치에 설치하고 폭발시키자 엄청난 빛, 뒤이어 충격파와 굉음이 발생했고, 11km 높이의 구름이 솟아오르고 지름 800미터의 분화구가 생겼다. 빛과 충격파가 반경 260km까지 미쳤다고 한다. 이 실험 현장을 ‘트리니티 사이트’(Trinity Site)라고 부른다.
핵실험현장 바람방향 주민들 피폭-‘다운윈더스’
티나의 아버지가 4살 때 트리니티 실험이 있었다. 친할머니, 외할머니 모두 암이 발병했고, 아버지는 3종류의 암으로 고통을 겪다 돌아가셨다. 티나 자신도 39세에 갑상선암 수술을 받았다. 트리니티 사이트 근처에 있는 사람들만 피폭당한 것이 아니다. 그곳에서 바람이 불어가는 방향(downwind)에 있는 지역의 모든 사람이 피폭당했다. 그래서 미국에서 핵무기 실험, 핵발전소 사고, 우라늄 채굴 등으로 인한 낙진이나 방사능 오염에 노출된 사람들을 ‘다운윈더스’(downwinders)라고 부른다.
티나는 “(핵실험을) 알지도 못했고 원하지도 않았으며 보상도 받지 못한 아무 죄 없는 사람들”과 함께 수십년 째 싸우고 있다. 티나의 동료 폴 피노(Paul Pino)는 자신을 ‘치카노‘(Chicano)라고 부른다. 미국이 생기고 나서 멕시코 등에서 온 사람들을 ‘히스패닉’(Hispanic)이라 한다면, 자신들은 이곳이 미국땅이 되기 전부터 살던 스페인계 사람이라는 것이다. 즉 ‘이주자’가 아니라 ‘선주민’이라는 정체성과 자부심을 치카노라는 표현은 담고 있다. (치카노 운동은 1960년대 크게 대두되었지만 70년대 FBI(미국 연방수사국)의 탄압에 크게 약화되었다.) 그런데 슬프게도 선주민이라는 것, 바로 그것이 그들이 다운윈더스가 된 이유다.
피폭자가 된 인디언 거주지 등 ‘내부 식민지’ 주민들
트리니티 사이트 근처에는 푸에블로(Pueblo) 아메리카 선주민 지역이 있다. 이들도 모두 다운윈더스다. 미국이 가장 많은 핵실험을 한 곳은 네바다주인데, 무려 928번이나 핵실험을 했다. 그런데 반드시 편서풍(북동쪽 방향으로 불어가는 바람)이 불 때에만 핵실험을 했다고 한다. 핵물질이 주류 백인이 사는 LA, 샌프란시스코, 라스베이거스 쪽으로 날아가지 않도록 말이다. 편서풍 위에 실린 방사능 물질은 ‘인디언 보호구역’에 사는 선주민들과 소수 교파인 몰몬교도들이 사는 유타 쪽으로 날아갔다. 결국 다운윈더스 지역은 미합중국의 ‘내부 식민지’인 것이고, 핵실험은 식민주의적 폭력인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에 분노했다.
워싱턴주 핸포드의 ‘맨해튼 프로젝트 국립 역사공원’에서 보았듯이, 미국 국민은 항상 핵무기의 위업을 언급할 때만 거명된다. 원폭의 기획자, 과학자, 연구자, 제작자로 말이다. 미국의 핵무기 피해자는 '미국 밖'의 존재로 항상 타자화되어 국민적 서사에서 배제되어 왔다. 왜 티나가 원폭이 뉴멕시코에서 제일 먼저 터졌다는 것을 강조하는지 우리는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원폭 하면 히로시마/나가사키를 연상할 때, 미국 국민은 태평양전쟁의 승리자, 전쟁을 빨리 끝낸 구원자, 해방자로 규정된다. 반대로 뉴멕시코와 원폭을 연결시키게 되면, 그것은 미국민 중 가장 힘없고 권력 없는 사람들을 향한 거대한 침략과 지배의 폭력이 된다.
티나는 우리와 함께 할 저녁 식사 준비를 하러 떠나고 우리 6명은 박물관에 입장했다. 입장료는 1인당 22달러(60세 이상은 20달러)였다. 초입부에 미국 원폭 공로자들의 얼굴이 게시되어 있고, 수많은 핵위업과 미사일에 대한 자랑이 가득차 있었다. 미국 핵무기 개발 역사의 도표를 보니, 한국전쟁으로 미소 냉전이 격화된 1950년부터 60년대 초까지 가장 많은 핵무기 개발이 이루어졌고, 소련이 몰락하고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이 체결된 1991년 이후에는 거의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다가, 오랫동안 잠잠하던 핵무기 개발이 바이든 행정부 때 재개되었다.
박물관에는 실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폭과 똑같은 원폭 케이스가 전시되어 있었다. 히로시마 1세 피해자인 박정순 님이 히로시마에 떨어진 리틀보이(Little Boy) 앞에, 나가사키 2세 피해자인 이태재 님이 나가사키에 떨어진 팻맨(Fat Man) 앞에 섰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영원히 괴롭히는 이 괴물 앞에 선 심정이 어떨지 글로 표현할 길이 없다. 두 분의 착잡한 표정 만큼이나 우리의 마음도 가라앉았다.
바로 옆에 트리니티 실험에서 탑 위에서 터뜨린 플루토늄 기폭장치 "Gadget(가젯)"의 복제품이 있었다. 로스알라모스의 과학자들이 실제 만들어 보니, 구조가 너무나 복잡해 제대로 작동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실험을 한 번 해 보고 떨어뜨리기로 했고, 바로 이곳 뉴멕시코가 그 실험 현장으로 선택된 것이다. 그에 반해 농축우라늄을 사용한 히로시마 원폭은 단 한 번도 실험하지 않고 바로 히로시마에 투하했다. 디자인이 단순해서 과학자들은 기대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 확신했다고 한다.
1980년대 초 반핵운동에서 만든 패러디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모든 영화를 끝장낼 영화" "역사상 가장 폭발력있는 러브 스토리" "밀턴 프리드먼(신자유주의를 대표하는 경제학자)이 미 국방부 프로덕션과 합작" 등의 패러디 문구와 함께, 신자유주의의 첨병으로 야수적 군사확장 정책을 편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를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의 주연 배우로 묘사하고 있다. ‘바람’이라 하니 ‘다운윈더스’가 연상되지 않을 수 없고, 기발한 포스터이긴 하지만 불편한 마음은 달랠 길이 없었다.
아무런 핵실험 사전통보도 받지 못한 피폭주민들
박물관을 나온 후 나의 불편한 마음과는 달리, 원폭 1세 피해자 박정순 님은 “속에 응어리진 것이 다 풀리는” 느낌이라고 말씀하시며 “미국은 사죄하라. 배상하라”는 구호를 외치신다. 1934년생으로 고된 일정이 아닐 수 없는데, 그녀는 단 한 번도 일행의 일정에서 빠져 혼자 쉬신 적이 없다. 몇 번 휴식을 권해 보았지만 절대 수용하지 않으셨다. 아마도 그녀에게 이것은 해방의 여정이기 때문일 거다. 이 92세 반핵활동가의 마음과 뜻이 우리 모두의 가슴에 깊이 스며들었다.
저녁에는 티나의 집을 방문했다. 이태재 님은 2024년 12월 일본 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피단협)의 노벨평화상 시상식에 참여했던 기념품을 전하고, 여성 피해자들은 손을 맞잡고 포옹하고 어깨동무를 한다. 미국의 모녀와 한국의 모녀는 서로의 피폭 경험과 활동 내용을 나누었다. 뉴멕시코에서 실험이 있기 전 미국 정부는 ‘실험이 있을 것이다, 어떤 실험이다’ 등에 대해 전혀 알려 주지 않았고 실험 이후에도 한동안 알려 주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들을 하나의 실험동물(guinea pig)로 삼은 것이라고 티나는 분노한다. 또한 단체의 대표로서 반핵활동가로서, 스스로 조사한 피해자들의 비참한 죽음과 환자들의 실상을 얘기하면서 눈물을 흘린다.
식사를 마치고 티나의 어머니가 디저트를 먹자고 한다. “아이스크림 먹을래, 사과파이 먹을래?”라고 그녀가 묻는데, 우리 대부분은 “둘 다요!”(Both)라고 대답한다. 연대는 계획을 세우고 과업을 정하고 실천을 함께 하는 것이지만, 그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마음이 오고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요에 의해서만 성립되는 연대는 얄팍하다. 티나가 선물한 반핵 티셔츠를 입으니 그 마음이 더 진하게 전해진다. 오늘의 소중한 기억을 우리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형제 자매, 딸이 암에 걸린 ‘치카노’ 피폭자 2세
다음날은 트리니티 사이트를 가는 날이다. 티나의 남동생이 신장 수술을 하는 날이라 우리와 동행할 수 없어서 티나는 피해자단체의 동료 한 명을 소개시켜 주었는데, 그가 바로 ‘치카노’ 폴 피노다. 폴은 2세 피폭자로서, 폴을 제외한 모든 형제, 자매가 암에 걸렸고 폴의 딸도 피부암에 걸렸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25년간 특수학교 교사를 했다. 폴의 아버지는 미국 선주민 피가 약 1/10 정도, 엄마는 ‘1/4미국선주민’이었다고 말한다. 폴은 음악 그룹활동을 하는데 드럼이나 베이스, 싱어를 하면서 컨트리와 록 등등 다양한 음악을 연주한다고 했다. 좋아하는 록 그룹을 물어보자, 레드 제플린, 비틀즈, 크로스비 스틸스 앤 내시가 제일 먼저 튀어 나온다. 폴이 하루 빌려준 카우보이 모자를 모두 쓰고 트리니티 사이트로 향했다.
푸에블로 선주민 마을을 지나 2시간 넘게 달려 도착한 곳은 소코로(Socorro)라는 작은 도시. 사막 한가운데 쓰레기 처리장 옆의 작은 집에 웨슬리(Wesley Burris) 부부가 살고 있었다. 티나가 폴을 소개한 셈인데, 폴은 또 웨슬리를 찾아(이번에 처음 만났다고 한다) 함께 트리니티 사이트를 방문하려는 것이다. 웨슬리는 84세의 피폭 1세로서, 500만명 회원을 자랑하는 미국 최대 로비단체 ‘전미총기협회’(NRA)의 모자를 쓰고 있었다. 트럼프의 강력한 지지자로서, 기후변화는 늘 있었던 것이고 지구는 뜨거워졌다 차가워졌다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으니 이제 뉴멕시코의 피폭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기대도 한다. 폴을 포함한 우리와, 생각의 공통점이 많지 않은 그도 피폭 문제 해결에는 의욕적이다. 정말 생명과 평화의 문제는 보수/진보의 한 편에 머물지 않는다. 반핵운동의 중심은 흔들려서는 안 되지만, 그 외연은 모든 인간/비인간 생명들로 확장되어야 한다.
여전히 통제되고 있는 원폭실험지 ‘트리니티 사이트’
웨슬리를 태우니 8인승 SUV를 빌리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트리니티 사이트에 도착해 보니, 제일 먼저 우리 눈에 들어오는 것은 ‘경고’ ‘멈춤’ ‘제한구역’ 등의 푯말이다. 그때처럼 미 육군이 관할하고 있는 이곳은 여전히 군사 시험장으로 쓰이기 때문에 1년에 두 번 개방한다고 한다. 아쉬운 마음에 깃발을 펼치고 사진을 찍는데, 미 육군 초병이 나온다. 사진 속의 우리가 서 있는 곳 뒤에 보이는 큰 산의 앞에서 트리니티 실험이 이루어졌다. 여기서 17마일(차로 20분) 정도 거리라고 한다. 초병에 아랑곳하지 않고 폴, 웨슬리 등 모두 트리니티 사이트를 등지고 한 명씩 발언을 했다. 다른 곳에서 고통을 겪었지만 그들의 삶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서로의 경험을 말하고 듣는 것만으로도 이 만남은 너무나 소중하다. 서툰 영어지만 우리는 힘차게 구호를 외쳤다. “비핵평화!” “반핵” “평화를 만들자.”
웨슬리를 집에 내려주고 떠나려는데 웨슬리가 손수 피들(바이올린)을 들고 와서 연주를 해 준다. 여전히 두 명의 어린 제자들이 있다고 한다. 컨트리 뮤직의 흥겨움에 흠뻑 젖었다. 웨슬리와 이별하고 온 곳은 폴의 친구, 토니의 집. 토니는 멕시칸 레스토랑을 운영했던 요리사로서 우리를 위해 콩과 칠리가 듬뿍 든 정통 멕시칸 요리를 해 주었다. 토니는 피폭 2세로서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었고 뇌졸중 이후 회복중이라고 한다. 넓은 목장을 벗 삼아 부부가 소박하고 조용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모두 트리니티 실험의 피해자지만,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식사 이후 그의 목장을 산책했다. 서부극의 장면 하나를 보는 느낌이었다. 토니는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지만 쉐프다운 특유의 유머로 우리를 계속 즐겁게 했다.
토니의 환대를 뒤로 하고 우리는 폴이 태어난 곳, 폴과 그의 아빠 엄마 형제 자매가 살았던 곳으로 이동했다. 그곳은 피노 가족 목장(Pino Ranch). 500만평에 달하는 그의 가족 농장은 1892년에 생겼다. 증조부는 홈스테드(Homestead) 법에 따라 넓은 땅을 불하받았고 그것이 지금의 가족 목장으로 이어졌다. 홈스테드 법은 노예제도에 기초한 남부의 대농장 제도를 제압하고 자영농을 늘리려는 북부(링컨)의 계획에 따라 실행된 것으로, 21세 이상이 5년간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면 무상으로 그 토지를 불하했다. 1862-1986년의 120여년 동안 미국 영토 10%가 이 법에 따라 무상 증여되었다.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이 결혼하기 전 같이 주연한 파앤어웨이(Far and Away) 영화를 보면, 홈스테드 시대의 모습을 흥미롭게 구경할 수 있다.
폴의 목장을 잘 구경하고 4시간 이상 모텔로 돌아오는 길은 힘들었다. 피곤이 몰려와 운전 중에 자꾸 고개가 떨어지려 했다. 하지만 멋진 노을과 풍경, 사막을 가르는 끝을 알 수 없는 화물열차가 눈을 즐겁게 해 주었고, 무엇보다 폴이 좋아하는 비틀즈의 노래 10여 곡을 틀어놓고 함께 따라 부르다보니 금방 시간이 흘렀다. 함께 일을 하다보면 서로 닮게 된다. 서로 닮은 두 사람, 티나와 폴의 따뜻함과 친절은 잊을 수 없다. 새로운 곳에서는 새로운 벗이 생기는 법. 새 벗 티나와 폴의 건강을 빌며,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해 본다.
[알림]
올해는 원폭 80년을 맞아 많은 행사가 벌어집니다. 5∼6월에 열리는 행사만 먼저 안내드리겠습니다. 5월 24일 합천과 5월 31일 부산에서는 피폭 2세이자 반핵운동가였던 고 김형률 님의 20주기 추모행사가 열리고, 6월 10일 7시 서울 조계사에서는 평화의나무합창단의 기념공연이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