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 전쟁에 한국 골병…경제성장률 ‘반토막’
IMF, 올해 전망치 2.0%→1.0% 절반 싹둑
세계 평균의 1/3…선진국 중 낙폭 최대
미·중 무역 전쟁에 한국 성장률 0.5%p↓
수출 둔화 불 보듯…내수 경기 회복 시급
경제성장 내수 기여도 OECD 국가 꼴찌
고령화와 부동산 쏠림에 소비 여력 줄어
12조 추경은 부족…재정 지출 확대해야
지난해 11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47대 대통령으로 당선됐을 때 한국 경제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컸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기간에 공언한 관세 정책이 대미, 대중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 엄청난 충격을 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미국이 중국 등 각국에 부과하는 고율의 관세와 이에 대한 보복 관세 등을 가정해 시나리오별로 분석한 보고서가 많았다. 이들 보고서는 이구동성으로 글로벌 관세전쟁으로 인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큰 폭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당시에는 긴가민가했는데 지금은 현실이 됐다.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가 반토막 난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22일(현지시간) 세계 성장률과 주요국 성장률을 재추정한 결과를 공개했는데 여기에 이런 내용이 담겼다. IMF에 따르면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직전에 2.0%였는데 관세전쟁 충격으로 1.0%까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됐다 선진국 중에 이렇게 큰 폭으로 떨어진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선진국 평균보다 못한 한국의 올해 성장률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과 비교해도 한국이 관세전쟁에 얼마나 취약한지 확인할 수 있다. IMF는 올해 세계 성장률을 기존보다 0.5%포인트 낮은 2.8%로 예측했다. 하향 조정됐는데도 한국보다 3배 가까이 높은 수준이다. 선진국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1월보다 0.5%포인트 낮아진 1.4%였다. 저성장이 고착된 선진국들의 평균 역시 한국보다 높게 나왔다. 트럼프 관세 정책으로 직격탄을 맞는 멕시코만 올해 성장률 전망치의 낙폭이 1.7%포인트로 한국보다 컸다.
IMF가 이번에 공개한 데이터는 이달 14일 기준으로 중국 제품에 대한 미국의 실질 관세율 115%, 미국의 전 세계에 대한 실질 관세율은 약 25%, 중국의 대미국 실질 관세율 146% 등을 적용해 분석할 결과다. IMF는 “지난 1세기 동안 보지 못한 수준으로 관세율이 높아졌다”며“그 자체만으로도 성장에 대한 중대한 부정적인 충격이며, 무역 정책 불확실성은 단기와 장기 성장률을 추가로 감소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미·중 무역 전쟁으로 등 터지는 한국 경제
한국은 트럼프 행정부와의 통상 협상을 원만하게 해결해도 관세전쟁의 희생양이 될 처지에 놓였다. 수출 1, 2위 국가인 중국과 미국 간 무역 전쟁이 격화하면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 신세를 면하게 어렵다. 연합뉴스가 23일 씨티 보고서를 인용해 보도한 내용을 보면 미국과 중국이 서로 100% 넘는 관세를 부과하는 상황이 지속되면 올해 한국 성장률은 약 0.5%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분석됐다. 김진욱 씨티 이코노미스트는 ‘한미 통상 협상의 경제적 영향’ 보고서에서 “한·미 간 통상 협상이 성공적으로 끝나더라도 미·중 간 갈등이 계속된다면 관세가 성장률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크게 완화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씨티 보고서는 통상 협상이 잘 끝나 미국이 우리나라에 부과하는 상호관세가 기본관세 수준인 10%로 낮아져도 실효 관세율 하락은 6.7%포인트(20.7%→14.0%)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했다. 한국의 대미 수출 중 자동차·부품 비중이 34%에 달하는데 자동차·부품은 여전히 25%의 고율의 관세를 적용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이 2분기 이후에도 100% 이상의 관세 폭탄을 주고받으면 한국의 성장률이 0.5%포인트 떨어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고령화와 부동산 집중으로 내수 경기 최악
관세전쟁은 세계 교역을 위축시켜 한국 수출에 큰 타격을 줄 게 뻔하다. 트럼프 행정부 관세 정책이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이달 들어 수출은 20일까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 넘게 감소했다. 대미 수출은 14% 이상 줄며 트럼프 관세 폭탄의 파괴력을 실감하게 했다.
수출 실적이 저조할 때 성장률 추락을 막으려면 내수 경기를 활성화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 경제에서 내수 비중은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다. 고령화 속도가 빠른데다 부동산에 묶인 돈이 너무 많아 소비 여력이 떨어진 탓이다. 한국은 지난해 12월 23일을 기준으로 65세 이상 노인 비율이 20%를 넘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했다. 가계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70%를 넘는다.
대한상공회의소는 23일 이런 내용을 담은 ‘내수 소비 추세 및 국제 비교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한국의 내수 소비는 1996년까지 성장하다가 이후 하락 추세로 바뀌었다. 1997년 외환위기 직전까지만 해도 9.1%였던 평균 소비 성장률은 이후 4.5%로 낮아졌다. 2003년 카드 대란 후 3.1%(2003~2007년),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2.4%(2008~2019년)로 떨어지더니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인 2020년 1.2%로 급락했다. 국내총생산(GDP)에서 내수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도 점점 줄고 있다.
경제성장률 내수 기여도 OECD 국가 중 최하위
경제성장률에서 내수 기여도는 세계 주요국 중 최하위 수준이다. 2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임광현 의원이 한국은행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내수의 성장 기여도는 0.1%포인트에 그쳤다. 12·3 비상계엄이 선포됐던 4분기에는 성장률에 기여하기는커녕 0.2%포인트 깎아내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경제 규모 상위 20개국 가운데 지난해 연간 성장률과 부문별 지출 기여도가 공개된 10개국의 내수 기여도는 평균 1.6%포인트에 달했다. 한국보다 16배나 높았다. 인도네시아가 5.5%포인트로 가장 높았고 스페인(2.8%포인트), 영국(2.4%포인트), 스위스(1.7%포인트), 캐나다(1.5%포인트) 순이었다. 네덜란드와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도 우리보다 높았다. 한국은 10개국 중 꼴찌를 차지했다.
과감한 재정 투입으로 소비 불씨 살려야
내수 경기를 살리는 방법은 기업 투자와 소비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고물가와 고금리로 지갑이 얇아진 가계는 소비 여력이 없다. 기업들도 실적 부진에 허덕이고 있어 투자할 자금이 부족한 상태다. 그나마 여유가 있는 곳은 정부다.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이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소비 진작을 외면하고 있다. 정부가 편성한 12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으로는 내수 경기를 살리기 어렵다. 임광현 의원은 “정부 추경안을 보면 상황을 안이하게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내수 시장을 회복시키는 데 충분한 수준의 재정 지출 확대로 경기 부양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