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하면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피해야 하는 이유

헌법학자 헌재 판결 인터뷰 취지 왜곡해 보도

하루아침에 '윤석열 옹호 학자' 둔갑시켜

언중위 오보 판결 나도 명확한 정정·사과 없어

조선, 권투선수 인터뷰 뒤 '일진'으로 허위보도

오보·악의적 왜곡 잦은 매체 안 만나는 게 상책

2025-03-20     김성재 에디터

헌법학자인 모 법학전문대학원 이황희 교수는 지난 1월 9일 조선일보 방극렬 기자와 만나 윤석열 내란수괴의 탄핵소추 사유인 ‘내란죄 철회’ 문제에 관해 인터뷰를 했다. 이 교수는 지난 2021년 박근혜 등 과거 대통령 탄핵 심판 사례들을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는데, 조선일보 기자가 이 논문 내용을 설명해 달라며 집 근처까지 찾아와 인터뷰에 응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교수는 다음 날 조선일보 지면 기사를 보고 충격에 빠졌다. 전날 인터뷰에서 자신이 쓴 논문은 물론 기자에게 설명한 내용이 정반대의 의미로 왜곡된 채 기사로 나갔기 때문이다. 그는 논문에서 “대통령 탄핵심판의 경우 예외적으로 헌재가 형사법 위반 여부(내란죄)를 판단하지 않을 수 있다”고 썼고, 기자에게 ‘헌재가 신속하게 탄핵심판을 해야한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보도된 기사 제목은 “헌재, 내란죄 판단이 원칙/ 대통령 방어권 보장도 중요”였다. 정반대였던 것이다.

이 교수는 인터뷰 당일 밤에도 재차 조선일보 기자에게 같은 취지로 설명을 했고, 자신의 답변이 조선일보 논조에 맞지 않으면 보도하지 말라고도 했다. 조선일보 기자는 “최대한 인터뷰 취지에 어긋나지 않게 보도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거짓말이었다. 그는 조선일보 기사로 하루아침에 ‘윤석열을 옹호하는 헌법학자’로 알려지게 됐다. 이 교수의 항의로 기사의 ‘일부’가 수정됐지만 여전히 원래의 취지와는 달랐다. 삭제 요구는 거절당했다. 결국 언론중재위에 정정보도 신청서를 냈다. (이상 이황희 교수 설명과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기사를 참조함.) 

 

조선일보 1월10일자 6면에 게재된 이황희 교수의 인터뷰 기사. 

조선일보는 기사가 나간 지 두 달여 만에 언론중재위의 조정을 받아들여 ‘정정 보도’를 냈다. 그러나 이름만 ‘정정 보도’일 뿐 ‘바로잡겠다’는 내용이 아니었다. “사실 확인 결과, 이황희 교수 논문과 의견의 주된 취지는...~~이기에 그 취지를 존중해 보도한다”라는 몇 줄의 설명 글이었다. 왜곡 보도에 대한 반성이나 이 교수와 독자에 대한 사과도 없었다. ‘정정 보도문’은 최초 기사와는 달리 지면에는 실리지 않고 인터넷 판에만 게재되었다.

정정보도가 나갔으니 이 교수의 주장은 바로잡힌 것일까? ‘내란 수괴를 옹호한 헌법학자’라는 오해와 불명예는 해소된 걸까? 그럴 리 없다. 혹시 이 교수가 너그러운 마음에 그렇게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이 정정보도는 애초에 보도된 왜곡기사를 명확히 바로잡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교수의 명예를 회복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인터뷰이의 말을 정반대 뜻으로 왜곡해 보도해놓고도 이 ‘정정보도’ 글에서는 잘못 보도된 부분을 정확히 인정하고 바로잡은 것이 아니라 ‘이 교수 논문과 의견의 취지를 존중해 보도한다’고만 했다. 이것은 ‘정정’ 보도가 아니라 또 하나의 왜곡 보도다. ‘애초 이렇게 보도되었으나 잘못된 보도라서 이렇게 바로잡겠다’고 해야 그것이 ‘정정보도’다. 정정보도에는 잘못 보도한 경위 설명과 독자와 피해자에 대한 사과까지 담겨야 한다.

조선일보는 왜곡 보도한 사실과 이것을 바로잡은 사실을 독자가 충분히 알 수 있도록 노력하지도 않았다. 왜곡기사는 지면을 통해 비중있게 보도됐지만, 정정보도는 지면에서 아예 찾아 볼 수 없다. 방극렬 기자의 왜곡·날조된 기사를 본 독자들이 두 달이 지난 뒤 조선일보의 인터넷 홈페이지나 포털에서 정정보도 기사를 애써 찾아보지도 않을 것이다. 이미 많은 독자들의 기억에는 애초 보도된 왜곡된 기사만이 남게 되는 것이다. 많은 윤석열 내란 수괴의 지지자들이 애초 왜곡보도만 보고 잘못된 판단을 내리거나 이를 주변에 퍼뜨릴 수도 있다. 정정보도를 보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계속 이 교수를 ‘윤석열 옹호자’로 오해할 것이다. 

 

이황희 교수 인터뷰 기사가 보도된 지 2개월여 만에 조선일보 인터넷판에 게재된 '정정보도'. 

언론의 오보나 왜곡보도로 인한 피해는 심각하다. 그런데 이를 바로잡고 사과하고 피해에 대해 보상하는 데에는 너무나 인색하다. 이는 사실 조선일보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부분의 주류 언론들도 그러하다. 주류 언론들은 오보·왜곡보도를 낸 뒤 (이 교수처럼) 당사자가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해도 잘 받아주지 않는다. 나중에 오보임이 명백하게 밝혀져도 정정이나 사과를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언론중재위나 법원의 판결을 통해 오보임이 확인돼도 이미 긴 시간이 흘러 오해와 피해가 원상회복되기 힘들다. 다행히 언론이 오보를 인정하고 정정보도를 내더라도 처음 왜곡된 기사 만큼의 비중으로 보도하는 일은 없다. 1면 톱으로 오보를 내고도 몇 달, 몇 년 뒤 3~4면 구석 어느 한 귀퉁이에 조그맣게 정정보도를 게재할 뿐이다.

지면에 남은 오보는 삭제되지도 않는다. 인터넷에 실린 정정보도는 독자가 상당한 노력을 들여서 찾아내지 않으면 확인할 수 없다. 대중들의 머릿속에는 정정보도가 아니라 왜곡보도만 남게 되는 것이다. 오보·왜곡보도로 어떤 피해자는 끝내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하고, 어떤 기업은 문을 닫기도 한다. 이번 조선일보 왜곡보도의 경우도 정정보도를 냈음에도 왜곡된 사실이 완전히 바로잡히거나, 이 교수에 대한 오해와 불명예가 완전히 회복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여러 주류 언론들이 이런 나쁜 관행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조선일보는 사례가 많기도 하고 질적으로도 악질인 경우가 많다. 불과 2년여 전인 2023년 조선일보는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 ‘분신 방조’와 ‘유서 대필’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를 썼다. 사실이 아님이 명백히 드러나자 정정보도를 냈다. 그러나 이 신문은 해당 기사를 한동안 인터넷에서 삭제하지 않은 채 남겨놓았다. 정정보도 낸 사실을 모르는 독자들은 시간이 흘러도 노조를 ‘패륜적인 집단’으로 인식했을 것이다.

그보다 한 해 전인 2022년에도 이 신문은  ‘술판 벌이며 쿠팡 본사 점거한 민주노총’이란 제목-내용의 악의적 왜곡기사를 보도했다. 나중에 민주노총이 술판을 벌인 적이 없다는 게 확인됐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오보임을 인정하지 않고 버텼다. 법원이 오보라고 판정하자 2년여 뒤에야 정정보도를 게재했다. 2년여 동안 민주노총 관계자들은 ‘술판이나 벌이는 파렴치한 세력’으로 취급받았다. 아마 노조를 혐오하는 극우세력들은 조선일보의 왜곡 기사들 때문에 지금도 ‘노조=패륜’ ‘노조=술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조선일보가 2012년 1월11일 1면에 보도한 국가대표 권투선수 신종훈 인터뷰 기사(왼쪽)와 이 기사가 왜곡되었다고 보도한 미디어오늘 기사. 

이번 이황희 교수의 인터뷰 왜곡 사건과 비슷한 사례가 있다. 조선일보는 2012년 1월11일자 1면에 올림픽 출전 예정인 권투선수 인터뷰 기사를 게재했다. “나는 일진이었다...런던 금으로 속죄하겠다” 제목의 기사에서 조선일보 기자는 이 권투선수가 “매일 아침 체육복 차림으로 경북 구미에 있던 학교로 가서 학생들 돈을 빼앗았다”며 그를 ‘일진(학교 폭력배)’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사실이 아니었다. 이 권투선수는 기사를 보고 “조선일보가 대부분 거짓말로 기사를 꾸몄다”면서 “이후 엄청난 피해를 보고 있다”고 항의했다. 당시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그는 기자에게 정정보도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조선일보는 이때도 인터뷰이가 하지도 않은 말을 지어내 왜곡·날조 보도를 하고 기사 정정이나 사과도 하지 않은 것이다.

조선일보가 왜곡·날조 보도를 다른 매체에 비해 더 자주, 더 극악스럽게 한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져 있다. 조선일보의 오보·왜곡 보도로 가장 자주 피해를 보고 있는 노동운동계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인·학자·문화예술인들도 ‘웬만하면 조선일보와 인터뷰는 안하는 게 좋다’는 말을 자주 한다. 이황희 교수는 이번에 인터뷰 왜곡보도를 경험한 뒤 <미디어오늘>에 “애초에 왜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했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조선일보와 인터뷰한 뒤 이런 말을 들었을 것이다.

정식으로 하는 인터뷰가 아니더라도 정치인이나 공직자, 유명인들의 말을 악의적으로 편집해 오보를 내는 경우도 많다. 언론은 앞뒤 문장을 자르거나 앞뒤 순서를 바꿔 원래 취지와는 전혀 다른 말을 기가 막히게 잘 만들어낸다. 정파성 때문이든, 조회수 때문이든 이런 보도가 언론 불신을 키우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주류 언론들이 이런 나쁜 보도를 하지 않도록 스스로 노력하는 이른바 ‘자율정화’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인가? 더는 오보와 악의적 왜곡보도로 인한 피해가 없도록 법과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정말 해서는 안되는 언론자유 침해인가? 일단 각자가 피해를 당하지 않으려면 오보와 왜곡을 밥먹듯 하는 매체와는 만나지 않는 것이 상책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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