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연금·국민연금 통합해 '최저보장연금'으로 가자

[탄핵 이후 사회개혁 구상] 기초연금 구조개혁

정치적 필요 따라 기형화…노인 복지에 취약

재정 부담 급증하고 다른 공적연금과 중복돼

통합 후 최저연금보장으로 전환하는 게 바람직

중복·과다지급 없애고 소득대체율 높이는 방안

절약된 재원으로 연금 약자 보험료 지원에 활용

2025-03-15     임항 편집위원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정책위의장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43%로 하는 국민의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2025.3.11. 연합뉴스

우리나라에서 노인복지의 양대 축 가운데 하나인 기초연금이 현행 공적 연금체계에서 구조적으로 취약한 고리로 부각되고 있다. 기초연금은 올해 기준 월 최대 34만 2510원(기준액)으로 금액이 많지는 않아서 노인 빈곤 완화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지급 대상이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소득 인정액 하위 70% 이상으로 너무 많아서 재정 부담은 날로 커지고 있다. 기초연금은 또한 국민연금의 사각지대를 보완하고는 있지만, 기능이 국민연금과 일부 중첩되는 데다 중복 수령자에 대한 국민연금 수급액 감액 등으로 불만을 사고 있다.

재정 부담이 늘어난다는 게 기초연금의 가장 큰 문제가 아니다. 노령화, 인공지능의 확산 등과 더불어 정부의 복지재정은 어차피 급증할 수밖에 없다. 복지제도 전체와 공적연금 체계에 대한 큰 그림과 연계되지 않은 채 임기응변식으로 변모해 온 기초연금이 제 역할을 충실히 못 하면서도 다른 공적연금들과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는 게 근본적 문제이다.

기초연금 재정 눈덩이처럼 늘어도 노인빈곤 해소는 요원

노인 인구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기초연금에 들어가는 소요 예산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올해 예상되는 기초연금 재정 소요액은 26조 9000억 원이다. 2029년에는 34조 8000억 원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18년 전 제도 도입을 논의할 때 추산한 금액 3조 4000억 원의 10배 수준을 웃돈다.

문제는 이렇게 적지 않은 재정 부담에도 불구하고 기초연금이 노인 빈곤 해소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민연금 수급자의 올해 수급액 평균은 월 66만 9523원이고, 기초연금 기준액은 34만 2510원이다. 그러나 국민연금으로 기초연금 기준액의 1.5배 이상 받는 노인의 경우 기초연금은 감액된다. 띠라서 대부분의 노인들은 이런저런 공적 연금소득을 합쳐 봐야 푼돈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은 OECD 회원국 중에서 독보적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달 25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유럽 주요 8개국의 노인 빈곤율(중위소득 50% 이하)이 독일(11.8%)과 영국(11.8%)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 자릿수에 머물렀으나 우리나라는 35.7%에 달했다. 세 배 이상의 심각한 격차에 해당한다.

 

기초연금은 국민연금과 통합해서 최저보장 연금으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 일러스트=연합뉴스

국민연금과 형평성 논란…보험료 납부 유인 떨어뜨려

전문가들은 기초연금의 제도상의 모순을 숱하게 제기해 왔다. 정부로서는 노인들에게 거저 주고도 좋은 말을 못 듣는다. 우선 노인 인구의 70%가 기초연금을 받다 보니 못 받는 30%는 불만이다. 받아도 국민연금액이 일정 수준 이상이어서 연계 감액되는 사람도 불만이다. 저소득 생계급여 수급자도 기초연금을 제대로 받지 못해 불만이다. 대상자에서 아예 제외되는 공무원연금 등 직역연금 수급자도 불만이다.

기초연금은 국민연금과 비교되며 형평성 논란을 낳기도 한다. 올해 기초연금 기준액은 부부가구의 경우 월 54만 8000원이다. 국민연금 월평균 수급액이 66만 9523원임을 감안하면 양자의 차이가 크지 않다. 아무런 기여 없이 받는 기초연금과 매월 꼬박꼬박 보험료를 내고 받는 국민연금 간의 형평성 논란과 이해 충돌은 국민연금 가입 유인을 떨어뜨린다. 기초연금을 받기 위해 일할 기회를 포기하는 현상도 생길 수 있다.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소득재분배 기능이 중첩되는 것도 문제다. 게다가 지난해 기준 맞벌이 부부가 재산이 없을 경우 월 705만 원의 소득이 있어도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과도한 지급 구간이 존재한다.

때마침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근 정치권의 국민연금 모수개혁 행보에 맞춰 기초연금 개편 방안을 내놨다. KDI는 지난달 25일 발표한 보고서 ‘기초연금 선정방식 개편 방향’에서 지금보다 더 적은 노인에게 더 많은 돈을 몰아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즉 노인 빈곤율이 점차 개선되고 있는 점을 반영해 기초연금 지급 기준을 노인의 몇 퍼센트가 아니라 '전체 인구의 중위소득 대비 일정 비율'로 변경하자고 제안했다. 중위소득이란 총 가구 중 소득 순서대로 줄을 세워 한 가운데를 차지한 가구의 소득을 말한다.

KDI는 기초연금지급 대상자를 처음엔 소득 인정액이 기준중위소득 100% 이하인 경우로 설정하되, 점진적으로 50% 이하 수준으로 조정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선정기준액을 기준중위소득 100%로 고정하면, 2070년에는 전체 노인의 57%가 기초연금을 받지만, 기준중위소득 50%로 설정하면 2070년 전체 노인의 37%가 받을 거로 예측했다. 빈곤율을 따질 때 기준선이 되는 중위소득 50%로 선정기준액을 낮추면, 재정이 연평균 9.56조 원씩 절감된다. 이 경우 추가적인 재정지출 없이 2026년 기준 기초연금액을 44.7만 원으로 현행 대비 10만 원가량 인상할 수 있는 걸로 파악됐다.

그러나 KDI의 이런 기초연금 개편 방안은 앞서 언급한 다른 공적연금과의 기능 중복 및 이해 충돌 등의 문제를 해소하지 못한다. 따라서 전체 공적 연금체계에 대한 구조개혁 과제의 하나로서 기초연금의 위상과 역할을 재정립하는 게 시급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이승희(왼쪽), 김도헌 연구위원이 2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KDI FOCUS '기초연금 선정방식 개편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2025.2.25. 연합뉴스

'최저보장연금', 초기엔 높지 않게 설정해도 매년 큰 폭 인상 가능

먼저 노인을 대상으로 하거나 대상에 포함하는 기본소득과 같은 새로운 복지제도가 도입되지 않을 경우에 기초연금은 국민연금과 통합해서 최저보장 연금으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 이는 현재 너무 넓은 국민연금 사각지대를 줄이면서도 중복 지급이나 과다 지급 구간을 없앰으로써 장차 공적연금의 재원을 아끼고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스웨덴은 1998년부터 연금개혁에 착수해서 최저보장연금제를 도입했다. 3년 이상 스웨덴에 거주하고 65세에 도달한 모든 노인에게 정액으로 지급하던 기초연금을 폐지하고, 연금 조사를 통해 취약 노인을 선별해 지급하는 제도로 전환했다. 최저보장연금은 16세부터 64세까지 40년 이상 스웨덴에 거주하고 공적연금이 최저보장 수준에 미달하면 그 차액(보충급여 원칙)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프랑스는 최저연금보장제도를 도입해 국민이 130만 원 미만의 노령연금을 받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최근 연금 개혁을 단행 중인 일본도 최저연금보장제도를 검토중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통합한 후 초기에는 최저보장연금 수준을 높게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올해 34만 원 대의 기초연금액보다 최저보장연금이 큰 폭으로 더 많을 경우 무엇보다 올해 평균 수급액이 67만 원인 국민연금의 보험료 납부 유인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최저보장연금 지급에 드는 예산은 현행 기초연금보다 훨씬 더 적을 것이고, 앞으로 국민연금 평균지급액이 계속 늘어나므로 최저보장연금과 지급 대상도 매년 큰 폭으로 확대할 수 있다.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이 '거대 양당 연금개혁 졸속합의 시도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2.25. 연합뉴스

남는 재원으로 연금 약자 소득대체율 높이거나 연금보험료 절반 지원 바람직

이런 구도하에서는 2029년에 연간 34조 8000억 원 규모로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기초연금 재원 가운데 많은 부분이 절감된다. 이를 연금약자인 여성, 영세자영업자, 특수고용형태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보험료납부 예외자인 전업주부 들을 위한 연금크레디트에 사용하거나 이들의 소득대체율을 높이기 위한 연금 추가 지급금으로 활용할 수 있다. 또는 이들 연금 약자에 대해 국민연금 보험료의 절반을 기초연금재원의 남는 예산으로 지원하는 게 장기적으로는 더 좋은 방안으로 보인다. 국민연금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이것이 가장 좋은 방안이다.

어떤 경우에도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통합은 공적 연금체계의 구조개혁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필수불가결한 첫 단계라는 점이 강조돼야 한다. 유경준 전 통계청장은 지난해 9월 언론 기고문에서 “향후 연금 구조 개혁으로 (세금이 투입되고 있는) 기초연금이 국민연금과 통합한다면 지금이라도 소득대체율을 당장 7.4%포인트 정도는 높일 수 있다”면서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통합하는 최소한의 구조 개혁은 필수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모든 논의가 지금 기초연금을 포함해 비교적 많은 연금을 받는 노인들의 기득권 포기를 전제로 한다. 한 번 주기 시작한 복지급여를 다른 대안 없이 끊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5~10년의 일정 기간을 정해 단계적으로 기초연금에 해당됐던 혜택을 줄여나가고, 대신 최저보장급여를 매년 큰 폭으로 올려가는 그림을 제시한다면 정치권이 국민적 합의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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