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의 대반전…용혜인·조응천 협공에 무너진 '철벽' 이상민
이상민 “행안부가 재난관리 주관기관” 시인
“재난관리 주관기관 안 정했다→정했다”
용혜인 “재난관리 주관기관 역할 전혀 안 해”
조응천 “긴급 구조도 재난관리 주관기관 책임”
모르쇠 일관하다 얼떨결 책임 인정…탄핵 근거
6일 열린 이태원참사 국정조사 2차 청문회에서 하루종일 “행안부는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청문회 막바지로 접어들던 밤 9시 45분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과 민주당 조응천 의원의 협공에 무너졌다.
“재난관리 주관기관 안 정했다→정했다”
이날 오전 10시 2차 청문회가 시작된 지 만 12시간에 접어들던 시각,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의 3차 질의가 시작됐다. 그동안 주로 서울시와 용산구청을 대상으로 했던 용혜인 의원의 질의는 3차 질의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향했다.
“이상민 증인, 이태원 참사 최초로 인지했다던 23시 20분에 재난관리 주관기관 정하셨습니까?”
“정하지 않았습니다.”
“네. 안 하셨습니다. 23일 2차 현장 조사에서 박용수 행안부 상황실장은 재난 유형이 없는 재난이라 행안부가 주관기관이라는 판단이 없었다고 증언했어요. 그런데 재난안전법 시행령에 따르면 행안부 장관이 관장 사무를 기준으로 재난관리 주관기관을 정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거 시행령 안 지키신 거 맞죠?”
“행안부가 그래서...”
“안 지키신 거 맞죠?”
“아니, 행안부가 주관기관이 된 거라니까요?”
“그거 언제 정하셨는데요? 아까 안 정하셨다면서요.”
“그렇게 말씀 안 드렸는데요? 바로 정한 거죠.”
“아까 안 정하셨다면서요. 그리고 23일 현장 조사에서 박용수 상황실장도 그렇게 얘기했어요. 그거 판단 못한다고 얘기했어요. 둘 중 한 분은 거짓말을 하고 계시는 거네요?”
“그것이 아니라 41개 재난유형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아마 얘기를...”
“그러니까 안 정했다는 거잖아요.”
“정했기 때문에 저희 중대본을 구성한 겁니다.”
용혜인 의원과 야당 위원석에서 실소가 쏟아졌다. 재난 총책임자로서의 책임을 물어 즉각 사퇴를 요구하는 야당 위원들의 계속되는 요구에 하루 종일 “이태원 참사 당시 재난관리 책임은 재난관리법 상 소방서가 맡게 되어 있는 긴급통제단장에 있다”며 “행안부는 책임이 없고 해야 할 일을 다 했다”고 강변하고 있었던 이상민 장관이었다.
특히 용 의원의 질의에 "재난관리 주관기관을 정하지 않았다"고 답변했던 그가 불과 1분도 지나지 않아 바로 말을 뒤집고 “재난관리 주관기관을 정했고, 행안부가 재난관리 주관기관”이라고 시인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인’을 했다기보다 “행안부가 재난관리 주관기관을 정하지 않아 시행령을 위반했다”는 용혜인 의원의 지적을 피하기 위해 순간적으로 둘러댄 것에 가깝다.
용혜인 “재난관리 주관기관 역할 전혀 안 해”
이상민 장관은 중대본 구성이 재난관리 주관기관이 해야할 일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스스로 “행안부로 정해졌다”고 시인한 ‘재난관리 주관기관’의 책임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무거웠다.
“그러면 재난관리 주관기관장으로서 위기경보 발령하셨습니까?”
“위기... 발령요?”
“위기경보 발령하셨습니까?”
“중대본 구성을 한 거죠.”
“위기경보 발령 안 하셨죠. 위기관리 매뉴얼의 핵심은 위기경보 발령과 그에 기반한 조치입니다. 위기 경보 발령 그 자체로 재난 대응의 수준과 방향을 정하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거예요. 이태원 참사는 위기경보 심각 수준의 재난이죠. 누가 봐도 그렇습니다. 위기경보 심각 단계 발령 시에 주관기관이 해야 되는 일 뭔지 알고 계십니까?”
“여러 가지가 있어서... 중대본을 일단 가동하고요... 그 다음에 필요한 여러 가지 현장상황관을 파견한다든가 여러 가지 조치가...”
“네, 유관기관 협조체제 유지하고 중대본 등 범정부적 대책기구를 운영할 책무, 그리고 피해자 가족 연락 체계 구축할 책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보건복지부 장관한테도 연락 안 하고, 중대본은 촌각을 다투는 문제가 아니다, 당시에 중요한 게 아니었다라고 밀어두고, 유가족 연락처는 오늘까지도 유가족 명단을 갖고 있지는 않다라고 오전에 얘기하셨어요. 위기관리 매뉴얼 다 위반하신 겁니다.”
그러나 이상민 장관은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생각을 합니다”라며 발뺌을 이어갔다.
조응천 “긴급 구조도 재난관리 주관기관 책임”
민주당 조응천 의원이 그 공격을 이어받아 이상민 장관의 발뺌에 쐐기를 박았다. 조 의원도 지난 12월 27일 1차 기관보고 때부터 재난안전법과 시행령 등의 규정에 따라 “참사 당시 재난관리 책임이 행안부에 있다”고 주장해왔으나 그때마다 이상민 장관의 반복되는 철벽 부인에 가로막혀 왔다.
“아까 용혜인 의원의 질의에 대해 10·29 참사 재난관리 주관기관장이 행안부 장관이라고 답변을 하셨습니다.”
“네.”
“재난관리 주관기관장이 되시면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의 장이 됩니다.”
“네.”
“중수본의 장이 되시면 재난정보의 수집 전파, 상황관리, 초동조치 지휘를 위한 수습본부 상황실을 설치 운영해야 합니다. 그리고 재난을 수습하기 위해서 필요하면 관계 재난관리책임기관장에게 행정상 재정상 조치, 직원 파견, 필요한 지원 요청할 수 있습니다. 이런 거 하셨나요? 안 하셨습니다.”
조응천 의원은 이어 행안부 중수본 구성 및 운영에 관한 규정 등을 제시하며 현장지휘, 응급조치 등 긴급구조 상황관리와 기관 간의 협조 등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수행해야 하는 중수본의 임무들을 조목조목 나열했다.
“이런 거 아무 것도 안 하셨고, 긴급 구조 자꾸 말씀하시는데 중수본에는 긴급 구조 기능이 있습니다. 지난 12월 27일 국조위 3차 회의 1차 기관보고 때 ‘10·29 참사 재난관리 주관기관장은 행안부 장관이 맞다고 보여지는데 어떻습니까’라는 제 질의에 증인께서는 ‘주관기관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아까 용혜인 의원의 질문에 대해서는 ‘행안부 장관이 재난관리 주관기관’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재난관리 주관기관이 되심과 동시에 중수본부장이 되십니다. 왜 아무 것도 하지 않으셨습니까. 답변해주십시오.”
모르쇠 일관하다 얼떨결에 책임 인정…탄핵 근거 확보
그동안 정부와 여당은 빗발치는 112신고에도 전혀 대응하지 않았던 경찰의 책임에는 크게 이견이 없으면서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던 참사를 방지하지 못한 책임을 용산경찰서와 용산구청에 국한시키고, 특히 경찰의 현장 통제 부재로 참사의 피해가 극단적으로 커지게 된 데 대해서는 재난안전관리기본법 상 “중앙통제단 단장은 소방청장이 된다”는 조항을 들어 그 책임을 오로지 소방에 뒤집어 씌우고 있었다.
이날 2차 청문회에서 이상민 장관은 야당의 책임 추궁에 “책임을 통감한다”면서도 “현장 지휘 책임은 소방에 있었다”는 강변을 반복했다. 한 줄로 요약하면 “책임을 통감하지만 책임이 없다”는 말이었다. 참사 당시부터 이상민 장관을 극력 옹호하던 윤석열 대통령도 조선일보와의 신년 인터뷰를 통해 “정무적 책임도 책임이 있어야 묻는 것”이라며 ‘이상민 책임론’에 대한 방어벽을 더욱 굳건하게 세우고 나선 터였다.
이상민 장관은 조응천 의원의 질의에 여전히 “할 일을 다 했으며, 그 내용을 서면으로 제출하겠다”고 둘러댔지만 스스로 “행안부가 재난안전법 시행령에 따른 재난관리 주관기관”이라고 밝힌 이상, 기관 간 협조체제의 부재로 이태원 참사의 피해를 키운 책임을 더 이상 회피하기 어렵게 됐다.
국민의 비판과 야당의 공격을 특유의 ‘말바꾸기’와 ‘모르쇠’로 뱀처럼 빠져나가던 이상민 장관이 또다시 자기 말을 뒤집으며 책임을 피해나가려다가 제 발에 걸려 넘어진 것이다. 이로써 이상민 장관에 대한 탄핵을 벼르고 있는 민주당으로서는 정부와 여당이 더 이상 부인하기 어려운 확실한 근거를 확보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