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진작용 추경 거부하더니…일자리도 초토화

올해 취업자 12만 명 증가예상…5만 명 감소

작년에도 연초 발표보다 6만 명 줄어

경제 불확실성에 사업체 채용 규모 축소

수출 증가율 8.6%→1.6%…악재 쌓여

일자리 질도 악화…임시·특수직만 증가

2025-01-02     장박원 에디터

정부와 여당은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내수 진작에 필요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요구할 때마다 줄곧 거부했다. 재정 여력이 안 되니 기존 예산으로 어떻게 해보겠다는 식이었다. 그러나 꽉 막힌 내수 경기는 좀처럼 풀릴 조짐이 없었다.

극심한 소비 침체에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내수 의존도가 높은 중소기업들은 비명을 질렀다. 윤석열 정부 들어 계속된 소비 침체로 문을 닫는 사업체 수는 기하급수로 늘고 있다. 2023년 폐업한 사업자는 98만 6000명에 달했다. 아직 통계가 나오지 않았으나 2024년 문을 닫은 사업자 수가 1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취업자 수가 작년보다 5만 명 감소한 12만 명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은 새벽 인력시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내수 침체에 올해도 취업난 가중될 듯

12.3 내란 사태는 바닥으로 떨어진 내수 경기를 더 깊은 수렁으로 밀어 넣었다. 연말연시 모임이 취소되고 여행객이 줄었기 때문이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중소·중견 기업들도 숨이 넘어갈 지경이다. 내수 경기에 숨통을 트이게 하려면 추경이 불가피했다. 지난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때 추경을 통해 마련한 1차 긴급재난지원금은 소비 활성화의 마중물 역할을 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긴급재난지원금의 소비 진작 효과가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건전 재정을 핑계로 한사코 추경을 거부했다.

윤석열 정부 내내 이어진 내수 침체는 고용 시장에도 한파를 몰고 왔다. 정부는 2일 발표한 ‘2025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올해 취업자 수가 12만 명 증가에 그칠 것이라고 했다. 작년에도 취업자 수는 17만 명 증가하며 부진했는데 이보다도 5만 명이나 적은 수치다. 이 목표도 달성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부는 작년 초에는 취업자 수가 23만 명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실제 증가한 수는 이보다 6만 명이 적은 17만 명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된다.

윤석열 정부 내내 쪼그라든 취업자 수

윤석열 정부의 고용 성적표는 참담할 정도다. ‘일자리 초토화’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었던 문재인 정부와 비교해도 너무 저조하다. 코로나19가 덮쳤던 2020년 취업자 수가 21만 명 줄었으나 2021년 곧바로 36만 9000명으로 회복됐다. 2022년 취업자 수는 81만 6000명에 달했다. 하지만 2023년 약 33만 명 늘어난 뒤 일자리 증가 폭은 축소되고 있다. 작년에는 수출이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하는 호재가 있었는데도 취업자 수가 예상치를 밑돌았다. 그만큼 내수 침체가 극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는 올해 취업자 수가 줄어드는 이유로 생산연령인구(15~64세)가 큰 폭으로 감소할 것이라는 점을 꼽았다. 생산연령인구 감소 폭이 지난해 24만 4000명에서 올해 41만 6000명으로 확대되며 늘어나는 취업자 수도 제한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근본 원인은 내수 부진에 있다. 여기에 더해 올해는 수출 증가율도 지난해 8.2%에서 1.5%로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오는 20일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는 데다 반도체를 비롯한 주력업종 경쟁이 심화될 것이기 있기 때문이다. 악재가 추가되는 셈이다.

 

통계청이 지난해 '9월 고용동향'을 발표한 16일 서울의 한 고용센터에서 구직자들이 일자리정보 게시판을 보고 있다. 통계청이 이날 발표한 '9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15세 이상 취업자는 2884만 2000명으로 작년 같은 달보다 14만 4000명 증가했다. 산업별로는 건설업 일자리가 10만 명 줄었다. 10차 산업 분류로 개정된 2013년 이후 역대 최대 폭 감소다. 2024.10.16. 연합뉴스

1분기 기업 채용계획 인원 5.9% 감소

일자리 고갈 징후는 이미 포착되고 있다. 지난달 30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하반기 직종별 사업체 노동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1분기까지 종사자 1인 이상 사업체들의 채용계획 인원은 52만 7000명으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3만 3000명(5.9%) 감소할 것으로 조사됐다. 300인 미만 사업체의 감소율이 6.2%로 평균보다 높다.

기업들은 작년에도 채용 규모를 대폭 축소했다. 구직구인 사이트 사람인이 기업 414곳을 대상으로 채용 결산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원을 채용한 기업 중에서도 절반가량은 계획했던 수만큼 뽑지 못했다. 경영 불확실성 증가로 인력 충원을 보수적으로 한 것이다.

일자리의 절대 수도 줄었으나 고용의 질도 나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고용부 자료만 봐도 이런 추세를 확인할 수 있다. 상용직이 전년 동월 대비 0.3% 증가하는 동안 임시일용직은 0.7% 늘었다. 봉사료나 판매실적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 기타 종사자는 1.2% 증가했다. 새로 생기는 일자리 중에 정규직보다 비정규직과 특수고용직이 많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2025 경제정책방향 주요 내용. 연합뉴스.

추경 없이 기존 대책만으론 소비 진작 힘들어

정부는 ‘2025년 경제정책방향’에서 내수 경기 활성화를 위한 여러 대책을 내놓았다. 자동차 개별소비세 30% 인하 등 내구재 소비 촉진과 관광 활성화, 소상공인 지원 등 다양한 방안을 담았다. 상반기 재정 집행 규모도 작년보다 5조 원 이상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일부 새로운 내용이 있으나 대부분 기존에 발표했던 정책을 부분적으로 손질한 수준이다. 이 정도로 불씨가 거의 꺼진 소비를 살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12.3 내란의 잔불이 아직 꺼지지 않은 상황이라 기존 정책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추경을 통해 소비를 촉진하는 대책이 시급하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와 경제단체들도 추경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나.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일 경제관계장관회의 모두발언에서 대내외 불확실성이 큰 점을 감안해 필요시 추가 경기보강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했다. 추경이야말로 내수 진작을 위한 가장 확실한 경기 보강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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