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발 묶고 두건 씌워’ 선관위 30명 납치 계획 사실로 확인
정보사 정 대령 자백, ‘케이블타이’ 등 계획 시인
김병주 주장 확인, 선관위 계엄군 수사 급진전
선관위 직원 납치, ‘부정선거’ 수사 조작 목적?
민주당 김병주 의원이 19일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주장했던 국군정보사령부 공작요원들의 선관위 직원 납치 계획이 사실로 확인됐다. 해당 작전 명령에 참여했던 정보사 정 모 대령의 변호인이 입장문을 통해 공개한 내용을 통해서다.
20일 오전 정 대령의 법률자문을 맡은 김경호 변호사는 정 대령이 진술한 내용을 정리한 ‘대국민 사과 및 자료 공개문’이라는 입장문을 통해 경찰 수사에서 모든 사실을 자백했다면서, 정 대령이 자신의 잘못된 판단과 행동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를 드린다고 밝혔다.
정 대령은 '롯데리아 계엄모의'로 알려진 12월 1일 정보사 문상호 사령관, 노상원 전 사령관과의 회동 멤버들 중 하나다. 정보사 정 대령과 김 대령은 이 자리에서 노상원과 문상호의 지시를 받았다.
김 변호사는 이와 별도로 정 대령의 진술 내용을 정리하고 자신의 법률적 의견을 덧붙인 ‘제공한 진술서에 기초한 법률 의견서’도 함께 공개했다.
정보사 정 대령 자백, ‘케이블타이’ 등 계획 시인
이 의견서에 따르면, 정 대령은 강압적 수단을 포함해 “출근하는 선관위 직원들을 지정 장소로 이동시키는 방법을 논의하고 실천하려” 했으며, 폭동 실행을 위한 사전 준비행위로 평가 가능하다고 했다. 이 강압적 수단으로서는 “케이블타이나 마스크, 두건 등”이 실제로 검토, 논의됐다.
또 김 변호사는 정 대령이 중간 지휘관급 장교로서 상황 판단 능력이 있고 “계엄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지만” 그럼에도 계엄 발동 당시 명령을 받아들였으며, 결과적으로 폭력적 수단을 동원한 헌법기관 무력화에 실질적 협조한 것이라 평가했다.
또 정 대령은 상급자의 명령을 수동적으로 들은 것이 아니라 명단 정리, 인원 배치 및 차량 편성, 선관위 직원 강제 이동 등을 직접 논의하고 실천하려 했으며, 이는 ‘폭동 실행을 위한 사전준비행위’로 평가 가능하다고 적시했다.
이 같은 의견서를 공개한 김 변호사는 정 대령을 포함한 장군, 대령급 장교들이 자신으로부터 ‘지휘책임’ 관련 강의를 들어온 인연이 있어 정식 자문 선임계를 제출하고 법률 자문을 해왔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정 대령은 수사 대상 정보사 지휘관들 중 최초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한 것으로, 이번 사태에 동원된 유능한 부하 장병들에게 더 이상 책임이 전가되지 않도록 바라며, 잘못에 대한 책임을 본인이 지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병주 주장 확인, 선관위 계엄군 수사 급진전
이 같은 정 대령의 자백 내용은, 대체로 전날 김병주 의원이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폭로했던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 김 의원 폭로의 제보자는 이번 자백을 한 정 대령이 아닌, 정 대령 등으로부터 임무 지시를 받았던 공작요원 38명 중 한 명이었다.
다만 선별한 선관위 직원들을 강제로 이동시키려 계획했던 곳이 ‘수방사 B1 벙커’였다는 김 의원 측 제보자의 구체적인 설명과 달리 정 대령은 ‘회의실’이라고만 표현했고, 아울러 김 의원이 라디오 방송 출연에서 밝혔던 많은 세부 사항들이 빠져있다.
이는 정 대령 측의 이번 입장문 등이 모든 세부적 사실들을 밝히려는 목적보다는 결과적으로 내란에 동참하게 된 자신의 죄를 자백하는 취지에 치중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편, 이렇게 적극적으로 수사에 협조하고 있는 정 대령과 달리 협조하지 않고 있는 김 모 대령에 대해서는 경찰과 공수처로 구성된 공조수사본부가 19일 체포한 데 이어 곧바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에 앞서 검찰이 경찰의 긴급체포를 방해했던 정보사 문상호 사령관은 공수처가 다음날 다시 체포했으며, 20일 오전에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선관위 작전을 총 지휘했던 것으로 보이는 전직 정보사령관 노상원은 경찰이 지난 15일에 긴급체포한 데 이어 18일에 구속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정보사의 선관위 작전과 관련된 핵심 인물들을 모두 확보한 것이다. 또 그중 하나인 정 대령이 자백하고 적극적으로 진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만큼, 정보사를 중심으로 진행됐던 선관위 관련 음모에 대한 수사가 급진전할 것으로 보인다.
선관위 직원 납치, ‘부정선거’ 수사 조작 목적?
이번 정 대령의 자백은 전날 김 의원의 폭로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그대로 사실로 확인됐다는 점에서 중요해 보인다. 특정 선관위 직원들 30명을 선별해 계엄 선포 다음날인 4일 아침 출근하는 직원들을 신원확인을 거쳐 강제적으로 이동시키려 했다는 점이다.
이는 계엄 선포 직후 비밀리에 선관위를 점령했던 계엄군이 휴대폰은 물론이고 유선전화와 컴퓨터 사용까지 금지해 외부와의 연락을 완전히 차단하고, 또 선관위 조직도 문서를 들고 청사 내부를 수색하는 모습이 CCTV에 포착된 것과 그대로 연결된다. 특정 직원들을 강제 구인할 준비를 한 채로 그런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지 않게끔 한 것이다.
구체적 범죄 혐의가 있는 것도 아니고 긴급체포의 요건에도 전혀 맞지 않는 선관위 직원들을 사전에 모의해 강제 구인하는 것은 어느 법에도 근거가 없는 불법적인 행위다. 계엄법 제9조에서 ‘군사상 필요할 때’ 체포 구금 등을 할 수 있다고 되어 있지만, 해당 조항은 그 조건으로 ‘계엄사령관이 미리 공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계엄사령관의 공고도 없이, 계엄령 선포 이전부터 체포할 준비를 한 상태로 강제 구인하는 것은 정상적인 계엄령 하에서 계엄법에 따른 행위라 하더라도 불법, 초법적 행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법적 근거조차 없는 이런 행위는 ‘체포’라기보다는 ‘납치’라고 평가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전날 기사에서 지적했던 대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상태에서 한 술 더 떠서 불법적 납치까지 동원해 소위 ‘부정선거’ 수사를 한다고 해도 그 수사의 결과가 정상적이고 진실에 입각한 수사결과일 리는 없다. 과거 군사정권들이 계엄이나 긴급조치를 명분으로 벌였던 수많은 사건 대부분이 줄줄이 조작됐던 사실이 밝혀지고 있는 것에 비추어보면 더욱 그렇다.
계엄군의 이런 계획은 정보사와 방첩사가 확보한 선관위 서버를 검찰과 국정원이 맡을 예정이었다는 방첩사 현장 지휘관의 제보와 연결해보면 윤석열 등 계엄 수뇌부가 ‘부정선거’ 음모론을 현실화, 기정사실화 하려는 의도였던 것이 아닌지 의심하게 만들고 있다.
한편, 경찰 및 공수처와 내란 수사의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검찰은 유독 정보사와 선관위 관련 수사 쪽으로는 거의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검찰이 당초 구속한 내란 관련 군 지휘관들이 박안수 계엄사령관, 곽종근 특전사령관, 이진우 수방사령관, 여인형 방첩사령관까지로 그치고 문상호 정보사령관은 제외했던 데다, 경찰이 긴급체포하자 불승인 조치로 풀어주도록 강제하기까지 했다.
검찰의 이런 수사 행태가 계엄군이 확보한 선관위 서버를 검찰 등이 맡을 예정이었다는 사실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는 의심도 감수하면서까지, 검찰은 철저히 선관위 방향만은 모르쇠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