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너머 마을 4] 마을은, 어디나, 모두 명당

마을의 땅 : '땅'은 생활의 뿌리이자 생업의 바탕

2024-12-25     정기석 시민기자
‘반농반어 경제’로 먹고사는 어촌 율티마을의 농업생산기반, 농지는 마을땅의 20%도 되지 않는다.

율티리의 총 면적은 1.69㎢에 달한다. ‘평’으로 환산하면 511,225평이다. 참고로 여의도는 2.9㎢쯤 된다. 용도지역별 토지현황을 살펴보면, 자연녹지지역이 824.839㎡, 48.8%로 가장 많은 면적을 차지한다. 그 다음이 보전녹지지역으로 599,145㎡(35.4%)를 구성한다.

다른 곳과 달리 율티공단이 들어서 있어 일반공업지역이 계획관리지역보다 더 많은 7.5%를 점유하고 있다. 율티마을에는 사람이 사는 ‘집(주택)’보다 사람 일하는 ‘일터(공장)’이 더 많은 셈이다. 그러나 그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거의 율티마을 사람들이 아닌 동남아이주노동자 등 외부인들이다.

지목 기준으로는, 임야가 1,067,592㎡(63.2%)으로 가장 많은 면적을 차지한다. 대부분 자가소비용이지만 농업의 생산기반인 답은 195,143㎡ (11.6%), 전은 115,247㎡(6.8%)에 불과하다. 공장용지 96,710㎡, 5.7%, 대지는 53,308㎡, 3.2%를 차지한다.

소유자별로는 사유지가 694,479㎡(38.2%)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다음으로 국유지 295,835㎡(16.3%), 법인 124,451㎡(6.8%) 순이다. 어촌계에서는 기재부 소유인 국유지 일부를 매입, 생활복지공간을 신축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렇게 율티마을의 땅을 용도지역별로, 지목 기준으로만 살펴봐도 쉽게 보인다. 물고기와 조개를 잡아 먹고 살기 어려워진 어업의 형편을 대신해줄 농업도, 공업도 그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사람이 살기 좋은 명당’이라고는 할 수 없는 땅을 삶의 터전으로 삼은 율티마을 사람들은, 그렇다고 마을의 터전인 땅을 바꿀 수도, 갈아엎을 수도, 버릴 수도, 떠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다. 그래서 어촌마을에 신활력을 불러일으키려는 마을공동체사업에 큰 희망과 기대를 절박하게 걸고 있는 현실이다.

마을은 ‘집, 길, 땅’의 3위일체로 완성

구체적으로 ‘집’은 인간이 거주하는 주택을 뜻한다. ‘길’은 농가와 인간과 물자의 연결과 소통을 이어주는 도로이다. ‘땅’은 물자 생산과 공급 장소로서의 경지를 말한다.

이때 ‘땅’은 한마디로 마을의 생존조건이자 생업기반이라 할 수 있다. ‘땅’이 있어야 비로소 마을은 ‘집, 길, 땅’의 3위일체를 갖춘 ‘사람 사는 마을’로 완결되고 만다.

따라서 좁은 의미의 마을(취락)은 가장 중심적인 요소인 ‘집’의 결합체로 규정하되, 넓은 의미로는 인간생활과 관련된 생활무대 전반을 포괄한다. 집을 비롯해 경지, 도로, 수로 등의 ‘길’,공한지 등의 ‘땅’까지 포함하는 물리적 공간이다.

무엇보다 마을이 삶의 터전이려면 ‘토지(땅)’에 긴밀히 밀착되고 좌우될 수 밖에 없다. 결국 농촌, 산촌, 어촌은 모두 토지(땅)에 생활환경과 생존조건과 생업기반을 거의 의탁하지 않는가.

그래서 특정한 입지조건의 ‘땅’에 장기간 뿌리를 내리고 대대로 고착되는 마을은 보수성이 강한 지역주민 특유의 생활양식으로 체화되기 마련이다. 나아가 지방색(地方色) 또는 지역감정이라는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고유성격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좋게 보면, ‘땅’에 기반한 지역성, 동질성으로 인해 내부주민 상호간에 일종의 사회적 자본으로서 결속력과 공동체성이 강해지기도 한다. 농산어촌 지역마다 마을과 마을을 본질적이고 실제적으로 구분하고 특징짓는 장소성, 지역성, 공동체성 등 마을 고유의 정체성이 결국 ‘땅’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백제와 신라를, 전라도와 경상도를 넘나드는 관문, 정감록 십승지 무주 무풍면의 ‘나제통문’

마을의 이상적 입지 조건, ‘십승지 명당’

결국 ‘살기에 좋은 마을’이란 ‘살기에 좋은 땅’ 즉, 명당에 들어선 마을이라는 의미와 다를 바 없다. 조선 후기에 민간에 널리 유포되었던 도참서 ‘정감록’에 그런 ‘명당에 자리잡은 마을’들이 등장한다,

명당이라고 하면, 이른바 한국인의 전통적 이상향 ‘십승지(十勝地)’가 떠오른다. 여기서 승지(勝地)라는 말은 현실의 이상향을 표현한다. 길지(吉地), 낙토(樂土), 복지(福地), 명당(明堂), 가거지(可居地) 등의 용어들과 유사하게 쓰인다.

일종의 조선 후기 사회적 담론인 십승지 관념은 당시 국가적인 정치·사회의 혼란, 민간사회의 경제적 피폐라는 역사적 배경에서 개인의 안위를 보전하며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피난지를 말했다. 정감록에는 ‘몸을 보전할 땅이 열‘로 십승지를 설명하고 있다.

당시 피폐한 육체와 불안한 정신을 맡길 무엇인가를 찾던 민간인들은 정감록의 십승지론을 믿었다. 실제로도 당시 거주지의 선택, 인구이동, 공간인식에 큰 영향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심지어 1959년 기준의 조사연구에 의하면, 풍기로 전입한 주민들의 이주동기 중에 8%가 정감록의 영향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주한 주민들은 대부분이 한국전쟁을 피해 평안도와 황해도에서 월남한 피난민 출신들로서 현재도 소백산 자락 오지산골마을인 금계마을에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십승지는 ‘정감록’의 문헌에 따라 위치와 장소가 조금씩 달리 나타나는데 대략, 영월의 정동(正東)쪽 상류, 풍기의 금계촌(金鷄村), 가야산의 만수동(萬壽洞), 부안 호암(壺巖) 아래, 보은 속리산 아래의 증항(甑項) 근처, 남원 운봉 지리산 아래의 동점촌(銅店村), 안동의 화곡(華谷, 현 봉화읍), 단양의 영춘, 무주의 무풍 북동쪽 등을 들고 있다.

한결같이 자연환경이 좋고, 외침이나 정치적인 위해요인이 없으며, 자족적인 경제생활이 충족되는 입지조건을 갖춘 곳이다. 십승지 모두 산과 하천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의 자연환경과 배산임수의 풍수지리를 갖추고 있다.

또한 마을을 이루어 농경을 영위할 수 있는 지리적 조건으로서, 토지의 규모, 토양의 비옥도 및 생산성, 수자원 이용의 충족성, 온화한 기후 조건이 구비된 곳이었다. 그래야 장기간, 안정된 농업경제를 통해 자급자족이 가능한 생활과 생존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특히 전란이 미치지 않아서 몸을 보전할 수 있는 입지 조건이야말로 생사를 가르는 필수조건이었다. 정감록의 십승지가 모두 지리적으로 내륙의 산간 오지에 위치하며, 조선시대 한양 등 큰 마을로 이어지는 큰길에서 벗어난 곳에 자리잡은 근본적인 이유이다.

가령 이중환의 택리지에서도 ‘복지(福地)'로 거론된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이 그런 곳이다. 정감록에도 ’무주 무봉산 북쪽 동방 상동으로 피란 못할 곳이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특히 무풍면 북리마을에는 1890년경 고종과 명성황후가 피신할 적지로 여겨 99칸짜리 행궁 '명례궁'을 지었을 정도다.

지금의 대덕산5일장터 뒷쪽으로, 건축물은 외지로 다 뜯겨 팔려나가고 궁터와 표지석만 남아있을 뿐이다. 일부 건축물 자재는 무풍면청년회가 따로 회수해 보관하며 일부라도 명례궁의 복원을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

리립조랑말박물관, 풍력발전소 등이 들어선 서귀포 가시리마을의 200여만평에 달하는 ‘마을공유목장’

마을의 자립적 생업 기반, ‘28가지 땅의 지목’

마을이 들어선 입지인 ‘땅’은 또한 마을의 자립적 생업기반이다. 이런 의미와 기능을 띠는 토지의 지목, 토지의 종류는 다종다양하다. 주택을 짓는 대지를 비롯해, 농업의 기반인 전, 답, 과수원, 임업의 기반인 임야, 축산업의 기반인 목장, 그리고 어촌의 염전과 광천지, 농산어촌 마을의 생활기반인 학교, 주차장, 공장용지, 주유소, 창고, 도로, 철도용지, 제방, 하천, 구거, 유지, 양어장, 수도용지, 공원, 유원지, 체육용지, 종교용지, 사적지, 묘지, 잡종지 등 28가지에 이른다.

​‘전(田)’은 우리 농촌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농업기반이다. 물을 상시적으로 이용하지 않고 농사를 짓는 묘목, 곡물, 식물, 원예작물 등에 적합한 재배공간이다. ‘답(畓)’은 논농사를 위해 물을 상시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조건이라야 한다. 벼는 물론, 보리, 밀 등 이모작 식량작물을 비롯, 미나리, 왕골, 연 등 대체식물까지 재배한다.

‘과수원’은 과일을 재배하는 땅이다. 사과, 배, 포도, 밤, 호두, 귤나무 등 과수류를 집단적으로 재배하는 농경지와 과수원에 부속된 저장고 등 부속시설물을 조성하는 부지를 말한다. 임업의 생업기반인 ‘임야’는 산림은 물론 수림지, 죽림지, 암석지, 자갈땅, 모래땅, 습지, 황무지 등의 토지를 포괄하는 부지이다. ‘목장용지’는 축산업과 낙농업을 영위하는 초지를 조성한 토지, 가축을 사육하는 축사 등의 부지, 관련 부속시설물의 토지를 아우른다.

‘광천지(鑛泉地)’는 온천뿐만 아니라 지하에서 온수, 약수, 석유류가 나오는 땅을 부르는 용어다. ‘염전’은 바닷물을 끌어들여 소금을 재취하기 위하여 조성된 토지와 이에 접속된 제염장등 부속시설물의 부지를 말한다. ‘구거​(溝渠)’는 용수 또는 배수를 위해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은 둑이나 수로를 가리킨다.

‘유지’는 물이 고이거나 상시적으로 물을 저장하고 있는 댐저수지, 소류지, 호수, 연못 등의 토지, 연. 왕골 등이 자생하는 배수가 잘 되지 않는 토지에 해당한다. 특히, 소류지(沼溜地)는 하천이 잘 발달하지 않은 농촌지역에서 경작지에 공급할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극히 규모가 작은 저수시설로써 평지를 파고 주위에 둑을 쌓아 물을 담아 놓은 형태를 말한다.

‘양어장’은 육상에 인공으로 조성된 수산생물의 번식 또는 양식을 위한 시설을 갖춘 부지와 이에 접속된 부속시설물이 조성된 부지이다. ‘잡종지’는 갈대밭, 실외에 물건을 쌓아둔 곳, 돌 채석장, 흙 굴토장, 야외 시장, 비행장, 공동우물, 영구적 건축물 중 변전소, 송신소, 수신소, 송유시설, 도축장, 자동차운전학원, 다른 지목에 속하지 않는 토지를 총괄한다.

제주도 서귀포 표선면 가시리에는 2백만여평에 달하는 마을공유지가 있다. 마을 주민들로 구성된 공동목장 조합이 운영을 책임진다. 1970년대 매각 및 개발 위기의 마을공유지를 지킨 가시리 마을사람들이 1978년 공동목장이 가시리 마을의 공동재산이라는 판결을 이끌어낸 결과이다.

가시리 마을주민들은 공유하는 이 ‘땅’을 자원이자 자산으로 삼아, 전국 최초의 리립조랑말박물관를 비롯해 유채꽃플라자, 풍력발전소 부지 임대수입 등 성공적인 마을공동체사업의 방법론과 실천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어쨌든, 사람들이 모여, 집을 짓고, 함께 마을을 이루어 살아가고 있는 땅이라면, 어디나, 모두 명당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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