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의 역습…물가 비상에 기업 비용도 급상승
수입물가지수 두 달 연속 상승세
‘고환율→고물가→고금리’로 연결
원자재 가격 폭등해 기업도 비명
트럼프 2기 달러 강세 고착화 위험
고환율 지속 땐 성장률 더 떨어져
정치적 불확실성 빠른 제거 시급
원/달러 환율이 치솟으며 우리 경제 곳곳을 강타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2기를 앞두고 상승하던 환율은 비상계엄 사태 이후 가파르게 오른 뒤 1430원 선을 오르내리는 중이다. 환율이 급등한 탓에 수입 물가가 오르고 기업들도 예상하지 못한 비용 증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입 물가는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를 자극한다. 고환율이 고착되면 고물가와 고금리로 이어지며 그렇지 않아도 최악인 내수 경기에 치명타를 입힐 것이다. 원자재를 수입하거나 외화부채가 많은 기업들도 비용이 늘며 수익성이 나빠질 게 분명하다. 전문가들은 환율이 더 상승하거나 지금과 같은 고환율 상황이 길어지면 내년 경제성장률이 더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고환율 탓에 수입물가지수 전달보다 1.1% 상승
한국은행이 13일 발표한 지난달 수출입물가지수 통계에 따르면 11월 기준 수입물가지수(원화 기준 잠정치·2020년 수준 100)는 139.03으로 10월(137.55)보다 1.1% 올랐다. 지난 10월에도 전달 대비 2.1%가 올랐다. 두 달 연속 상승한 것이다. 원/달러 환율 급등이 결정적인 원인이다. 그나마 국제 유가가 하락한 게 수입물가지수가 더 치솟는 것을 막았다. 만약 국제 유가마저 상승 전환하면 수입 물가는 더 가파르게 오를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고환율 영향으로 모든 품목의 수입 물가가 오름세를 보였다. 원재료는 농림수산품을 중심으로 전월 대비 0.2% 상승했고, 중간재는 1차 금속 제품과 석탄·석유제품 등이 오르며 전월 대비 1.5% 올랐다. 자본재와 소비재도 각각 전월 대비 1.2%와 1.5% 뛰었다. 가장 많이 오른 품목은 커피(6.4%)와 프로판가스(4.0%), 알루미늄정련품(4.0%), 이차전지(3.9%) 등이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10월 달러당 평균 1361.00원에서 11월 1393.38원으로 2.4% 상승했다.
반면 국제유가는 두바이유가 기준으로(월평균·배럴당) 10월 74.94달러에서 72.61달러로 3.1% 하락했다. 전년 동월 대비로는 13.1% 하락했다. 한국은행은 “국제유가가 하락했지만 원/달러 환율 상승 영향으로 수입 물가가 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달 들어 국제유가가 소폭 하락했으나 환율이 상승해 상·하방 요인이 혼재돼있고 국내외 여건 불확실성도 큰 상황이라 전망이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고환율·고물가·고금리 시대로 회귀할 수도
수입 물가는 몇 개월 뒤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준다. 예컨대 식품업체가 설탕과 밀가루 등 원자재를 수입할 때 환율이 오르면 생산원가가 상승할 수밖에 없다. 곧바로 소비자가격에 반영할 수는 없으나 고환율 기간이 길어지면 어쩔 수 없이 제품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 다른 분야도 구조는 똑같다.
최근 들어 소비자물가 상승 폭은 많이 줄었다. 하지만 국민이 체감하는 생활물가는 여전히 높은 편이다. 한 번 오른 물가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낮은 물가 상승률 지표는 이런 기저효과를 보여주지 않는다. 현실과 경제 지표가 괴리되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고환율이 수입 물가를 밀어 올리면 고물가와 고금리로 회귀할 수 있다. 한국은행은 물가 안정을 위해 기준금리를 내릴 수 없다. ‘고환율→고물가→고금리’의 악순환 고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달러 대비 주요국 통화도 큰 폭으로 하락
국회에서 윤석열 탄핵이 가결돼 지금의 혼란이 어느 정도 가라앉아도 원/달러 환율 하락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내년 1월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 관세 전쟁으로 달러 강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12일(현지시간) 트럼프의 관세 위협 등에 따른 미국 달러 가치 급등으로 신흥국 통화 가치가 2년 만에 최대 폭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JP모건이 산출하는 신흥국 통화 지수는 올해 10월 이후 두 달 반 동안 이미 5% 넘게 하락했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올해 4분기 분기 기준으로 2022년 3분기 이후 가장 높은 하락률을 기록할 확률이 높다. 신흥국 통화뿐 아니라 주요국 통화는 대부분 달러 대비 약세를 보이는 중이다. 다른 통화에 비해 원화 가격 하락은 더 가파르다. ‘비상계엄 사태’라는 대형 악재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취임하자마자 수입품에 고율 관세를 물리고 정부 재정을 적극적으로 풀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달러 가치를 올리는 요인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기준금리를 내린다고 해도 대세가 된 달러 강세를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외환시장에서는 이미 달러 강세에 베팅하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 전부터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 주식시장을 이탈했는데 이런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고환율 장기화 땐 내년 성장률 더 떨어질 수도
고환율 장기화는 내수 경기 침체와 기업들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게 뻔하다. 경제 성장을 견인할 동력이 약해지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이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수익도 쪼그라들 수 있다. 13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3분기(7~9월) 해외 직접 투자액은 141억 90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151억 달러)보다 6.0% 줄었다. 세계 경제 불확실성과 고금리 지속, 지정학적 리스크 등 영향으로 1분기부터 3분기째 하락 중이다. 해외직접투자는 국내 기업이 외국에서 영업망을 확충하거나 시설과 설비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면 수익원이 될 수 있다.
기업의 국내외 투자와 수익이 줄고 내수 경기가 회복되지 않으면 성장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국내외 주요 기관들은 한국의 내년 경제성장률을 속속 하향 조정하고 있다. 고물가와 고금리, 기업 실적 악화를 초래하는 고환율의 역습은 내년 성장률을 추가로 끌어내릴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2년 8개월 동안 망친 경제를 단기간에 살릴 묘수는 없다. 정치적 불안 요인을 빨리 제거하고 잘못된 경제 정책을 하나하나 바로 잡아나가는 게 시급하다. 내란의 우두머리 윤석열 탄핵과 처벌 프로세스를 빨리 마무리하고 새로운 정부를 출범시키는 것이 지금의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