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의 또 다른 집중 표적, 전장연과 투쟁하는 장애인들
1년 동안의 힘겨운 투쟁 결과가 0.8% 예산 증액?
“무관용 원칙” “경찰력 투입” 협박하는 오세훈 시장
절박하고 처절한 요구를 ‘민폐’로 낙인찍고 갈라치기
2022년과 윤석열 정권 첫해를 돌아보면서 가장 집중적 공격과 고난을 겪은 사람들 중에 장애인들을 빼놓을 수는 없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와 장애인 활동가들은 1년 내내 권력과 언론의 십자포화를 맞으면서도 꿋꿋이 장애인 관련 예산 증액을 요구하며 저항했지만, 끝없는 돌팔매질 속에 상처투성이가 됐다.
연말에 가까스로 통과된 예산안에서 중중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 탈시설 지원,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이동권, 교육권, 노동권에 대한 모든 증액 예산은 하나도 반영되지 않았다.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기금으로만 고작 106억 원이 증액됐는데, 이는 전장연의 요구안은 물론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한 것에 비교해도 손톱만큼이었다. 결국 전장연은 ‘1년 내내 짓밟히고 욕 먹으며 싸운 결과가 0.8% 예산 반영인가’라며 절망하고 있다.
전장연이 항의의 뜻으로 1월 2일부터 다시 지하철 타기 투쟁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하자, 오세훈 서울시장은 즉각 “무관용 원칙”과 “경찰력 투입” 협박으로 맞대응하며 냉혹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SNS에 강경한 대응과 탄압을 정당화하는 글들을 올렸다. ‘전장연의 시위 방식이 무고한 시민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다’는 논리였다.
“이 시점에서 가장 경청해야 할 목소리는 ‘아무 죄도 없는 이웃들에게 피해를 전가하지 말라’는 선량한 시민들의 목소리”, “예산안 처리를 촉구하는 방식이 왜 선량한 시민들의 출근길 불편을 초래하는 방식이어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국회 앞에서 평화적인 촛불시위로 차분하게 의사를 표현할 수는 없는 것인가?”, “시민들의 안전과 편익을 최우선시해야 하는 서울시장으로서 더 이상 관용하기 어렵다.”
이런 주장을 보면 서울시와 정부가 매일 출근해서 일하며 먹고 살아야 하는 보통 시민들의 불편을 가장 걱정해서 이런 대응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윤석열 정권과 집권여당은 막상 이번 예산안에서 공공임대주택, 노인 일자리 등 보통 시민들의 삶에 도움이 될 내용들을 반영하지 않고 삭감했다. 거꾸로 재벌 대기업과 상위 1% 초부자들을 위한 각종 감세와 특혜성 지원을 반영한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무엇보다 정부와 여당의 시선에는 이동권, 교육권, 노동권 같은 기본적 인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장애인들이 평생 겪고 있는 고통과 불편에 대한 관심이 빠져 있다. 그래서, 전장연 투쟁으로 등교와 출근에 30분 지각한 시민에 대한 이야기는 하면서도, 학교나 직장에 가보지도 못하고 평생 골방이나 시설에 갇혀서 사는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다.
더구나 학교나 직장에 지각하고 싶지 않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인간으로서 기본적 권리를 보장해달라는 장애인들의 요구는 반드시 대립할 이유가 없다. 당장 이번에 정부와 여당이 깎아준, 매년 5조 원이 넘는다는 재벌과 초부자 감세 비용의 일부만 있으면 장애인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시민들도 불편하지 않을 수 있었다.
재벌 대기업과 1% 초부자들은 세금을 깎아달라고 지하철을 막아서거나 점거 농성을 하고 그러지도 않았다. 전장연과 달리 ‘무고한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차분하게 의사를 표시할 줄 아는 양식 있는 분들’이었기 때문일까? 그러지 않아도 자신들이 가진 사회적 지위와 권력, 인맥으로 얼마든지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고, 정부와 여당이 알아서 들어줬기 때문이다.
반면 장애인들은 다르다. 한국사회에서 장애인들이 차분하게 주장하고 요구하면 아무도 잘 들으려 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목소리를 좀 높이면 듣는 척하지만 한 귀로 흘린다. 비명을 지르고 발버둥을 치면 마지못해 아주 일부를 들어준다. 이것이 지난 21년 동안의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역사가 보여주는, 장애인들이 목격하고 경험한 사실이다.
장애인들이 리프트에서 떨어져 죽고 철로를 점거했을 때 엘리베이터가 약간 만들어졌고, 길바닥을 기어서 한강대교를 건너며 절규했을 때 저상버스가 조금 늘어났다. 그런데 오세훈 서울시장과 윤석열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여기에 중대한 변화가 시작됐다. 절박하고 처절한 요구와 저항 자체를 ‘불법’ ‘민폐’ ‘범죄’로 낙인찍으며 장애인들을 더욱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전환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것은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였다. ‘여성과 페미니즘’을 표적 삼아 갈라치기를 하는 ‘혐오정치’를 통해서 유력 정치인으로 급성장한 이준석 전 대표는 이어서 ‘투쟁하는 장애인과 전장연’이라는 새로운 표적으로 이동했다. 이준석 전 대표는 장애인을 선량한 사회적 약자라고 보는 것을 “언더도그마”로 규정하면서, 장애인을 드러내놓고 적대하고 증오하는 사람들의 양심의 거리낌과 심리적 부담감을 덜어주었다.
그 후 1년간 진행된 과정을 돌아보면 이것이 이준석 전 대표 개인이 아니라 집권세력 전체가 공감대 속에서 함께 한 공세의 출발점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동훈 법무장관은 전장연의 시위가 “무한정 허용되어서는 사회가 유지될 수 없으므로 법과 원칙이 준수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고,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전장연 시위 같은 “불법 행위는 지구 끝까지 찾아가서라도 반드시 처벌을 받도록 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김상훈 비대위원은 전장연을 “국민 민폐 단체”라고 낙인찍었다.
서울시, 교통공사, 경찰의 강경 대응과 함께 갑자기 ‘지하철 운행 정상화를 위한 장애인 연대’라는 단체가 등장해서 전장연을 막아서기 시작했다. 친정부적인 극우 유튜버들은 ‘전장연은 이석기 석방, 반미 자주, 미군 철수를 말하던 친북 단체’라고 색깔론을 폈고, 각종 온라인 공간은 물론 지하철 투쟁 현장에서 전장연과 장애인 활동가들에 대한 혐오, 막말, 욕설들이 폭증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역시 두드러진 것은 <조선일보>였다. 수시로 전장연을 매도하는 기사들을 싣던 <조선일보>는 “지하철 민폐 시위 1년”이라고 전장연의 투쟁을 깎아내리며 “자기들 주장을 펼치기 위해 남을 괴롭히는 방식을 택한” 결과로 “천문학적 사회적 비용을 초래”했다면서 “경찰은 더 이상의 불법을 방치해선 안 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장애인들의 권리’와 ‘출근 지연으로 시민들이 입은 손실’을 비교했다.
이것은 유대인보다 장애인들을 먼저 학살했던 히틀러 시대 독일의 고등학교 수학책에 실렸던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문제 95번 - 정신병원 설립에는 600만 마르크가 필요하다. 일반 주택에 1만 5000마르크가 필요하다면 정신병원 비용으로 주택 몇 채를 지을 수 있는가?” 이런 비용과 손실 계산은 이 나라에서는 너무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정부와 서울시가 전장연의 시위를 막기 위한 ‘지하철 무정차 통과’를 발표한 이후 오세훈 시장은 전장연에게 4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발표했고, 법원은 열차 운행 지연이 될 때마다 전장연이 500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조정안을 판결했다. 이 모든 비용과 손실 계산에서는 이동, 교육, 노동의 기본권도 누리지 못하는 장애인들의 인간적 고통은 얼마이고 과연 계산 가능한 것인지가 통째로 빠져 있다.
물론 정부와 여당이 이렇게 대응하는 배경에는 전장연 시위에 부정적인 여론이 존재한다. 부정적 여론이 우선이었는지, 정부와 여당의 낙인찍기와 갈라치기가 부정적 여론을 만들어낸 것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다만 ‘화물연대를 때려잡아서 지지율이 올라갔다’고 보는 정부와 여당은 장애인이라고 달리 대응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1월 2일부터 서울시와 경찰은 전장연의 선전전은 물론 지하철 탑승조차 가로막는 무자비한 ‘무관용’을 실천하고 있다. ‘서울시는 2024년까지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전장연은 열차운행 시위를 5분 넘게 지연할 경우 500만 원을 지급하라’는 서울중앙지법의 강제조정안조차 거부하며 오세훈 서울시장은 “1분만 늦어도 큰일이 나는 지하철을 5분이나 연장시킬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따라서 전장연의 시위를 ‘출근길의 불편’으로만 보는 사람들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장애는 신체적 생물학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말이다. 수전 웬델은 특히 사회와 삶의 속도는 중요한 요인이며, 그 속도를 따라갈 수 없는 사람들은 장애인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거부당한 몸>)
과연, 그 속도를 늦추고 함께 가자는 사람들이 잘못일까? 기다리지 말고 먼저 빨리 가자는 사람들을 따라가야 할까?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최근에 타계한 소설가 조세희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그려낸 ‘장애인과 도시빈민들을 쫓아내는 기계도시 은강’과 얼마나 달라진 것일까. 전장연 박경석 대표의 노래와 절규를 다시 들어봐야 한다.
“국가는 우리 삶 외면하고 수많은 죽음을 방치하네/ 방 밖으로 시설 밖으로 나와 우리는 이제 살고 싶습니다/ 우릴 가두지 마십시오 우릴 죽이지 마십시오/ 우리 목소릴 들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