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너머 마을'은 '사람 사는 세상'
'사람 답게 살아가는' 생활현장 르포 '마을학 각론'
한달 전, 창원시 진전면 율티 어촌마을로 또 한번의 ‘자발적 유배’를 감행했다. 2002년 첫 귀농 이후 10여 차례 정처가 바뀐 셈이다. 가히 귀농인이 아니라 유목민이라는 소리를 들을만 하다. 심지어, 이번이 생애 마지막이라는 자신이나 보장조차 없다.
60여년 전 가을, 태어났다는 호적등본 상의 민법적, 가족사적 사실과 이유 때문에 늘 갈구했던 고향 근처 어촌마을이다. 물론, 지금 고향에는 그 누구도 나를 기다리지 않고, 그 무엇도 남아있지 않다.
다만, 고향의 마을에서는, 오래된 시장에서 파는 거의 모든 밥과 반찬 맛이, 엄마가 한끼도 잊지 않고, 기를 쓰고 지어먹인 밥과 반찬의 맛과 같다.
시장통에 수십년 좌판을 차리고 겨우 먹고 살았을 거의 모든 할매의 말투와 표정이 엄마의 그것과 얼른 구분하기 어렵다. 뻔히 남인 줄 아는데도 자꾸 뒤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것만으로도 더 늙어 꼬부라지기 전에,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의 힘마저 소진되기 전에, 고향에 돌아오고 싶었던, 돌아와야만 했던 뚜렷한 이유로 충분하다.
진주에서 가장 가까운 어촌마을, 율티마을에서 앞으로 나의 일상과 여생은 물론, 마을주민들의 ‘삶’과 ‘일’과 ‘쉼’이 하나가 되는 ‘국가 너머 마을, 사람 사는 세상’을 실천해보고 싶은 소박하고 정의로운 욕망 때문이다.
도시난민에서 마을의 세계시민으로 전향
진주에서 태어났지만, 주로 서울에서 자라면서, 일개 도시난민으로 성장했다. 말단 은행원, 비민주노조 간부, 군소언론 기자, 소호벤처 경영자로 꾸역꾸역 생활했다. 국립난민촌같은 수도 서울특별시에서 좀처럼 일은 삶과 하나가 되지 않았다.
'악의 평범성'을 핑계와 변명 삼아 도시민으로 저지른 죄는 다종다양했다. 마흔에 이르자 제 정신이 들었다. 국가와 도시에서는 더 해야 할 일도, 더 하고 싶은 일도 없다는 최후의 심판을 내리고 2002년 봄, 국가 너머의 마을로 자발적 유배를 떠났다.
자본과 국가와 도시와 제도와 패거리의 위협 또는 위험으로부터 적극적으로 자가 격리된 것이다. 자본의 노예와 권력의 부하와 명예의 인질과 욕심의 포로와 체면의 광대와 사유의 바보 상태에서 불가역적으로 해방되고 반영구적으로 독립한 것이다.
그런데, 먹고살기에 적절하지 않은 조건과 환경의 농촌마을에서, 먹고 사는 일은 고역이자 고행이었다. 농업회사 농장관리자, 유령작가, 생태마을 막일꾼, 농촌․귀농 컨설턴트, 마을연구원, 농촌사회학자 행세를 제멋대로 하며 조선팔도를 마구 싸돌아다녔다.
어쨌든, 도시난민에서 마을시민으로, 그리고 마을주의자로 변태, 진화하는 과정이었다. 결국, 오늘날 마을(commune)의 세계시민 계급으로 정착한 셈이다.
오늘날 비인가 ‘마을연구소(Commune Lab)’의 연구원, 무허가 ‘마을학개론’ 강사 노릇을 하며 밥벌이에 일생을 마저 소진하고있다. 사회적 자본의 힘으로 지속가능하게 진보하는 마을공동체와 농촌지역사회의 해법과 대안을 발견하거나 개발하려는 숙제에 매달려 있다.
나름대로 애와 기는 쓰고 있으나, 물론, 자신은 없다. 심지어, 누가 시킨 일도 아니고 돈도 되지 않고 폼도 나지 않는 일이다. 다만, 적어도 스스로 부끄럽거나 남을 괴롭히거나 세상에 죄를 짓지는 않는 일이라고 믿고싶다. 어쩌겠는가.
끝으로, 결국 아무 짓도 안 하고 싶다. 최소한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남에게 시키거나 바라지 않겠다. 반드시 정신노동은 그만 하고 싶다. 그냥, 산과 물은 맑고, 하늘과 들은 밝고, 바람과 사람은 드문, 작고 낮고 느린 어느 마을의 마을사람이고 싶다. 그 무엇도 아닌 마을에서, 아무 것도 아닌 마을사람으로 겨우 살아가다 깨끗하게 죽고 싶다. 마치 나무나 풀, 돌이나 흙, 비와 바람 같은 자연과 우주가 당연히 그런 것처럼.
어느 마을에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나
앞으로, 이 <국가 너머 마을-마을학각론(各論)>을 쓰는 것으로 마을사람으로서 개인적 욕심과 사회적 책무를 마치려 한다. <국가 너머 마을>은 어쩌면 10여년 전에 펴낸 <마을학개론>의 속편으로서 일종의 마을현장르뽀이자 생활매뉴얼이라할만 하다.
<마을학개론>은 ‘마을에서 사람답게 먹고 사는 법’을 공부하는 기본교재를 표방했다. 그러자면 마을, 공동체, 시민. 기업, 정책, 사회 등에 대해 다시, 새로, 열심히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다만, 공부에 그치지말고 현장에서 행동하고 실천하고 체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마침내 마을에서 사람답게 먹고 살 수 있다고 주의를 환기했다.
특히, ‘마을' 이려면 최소한 삶(생활)과 일(생업)이 하나의 시공간에서 조화롭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으며, 거기에 쉼(휴식)과 놀이(문화)까지 보태 누릴 수있다면 더 할 나위가 없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어서 그 구체적인 실천방법과 실행사례를 정리해보려 한다. 그러자면, 마을(농촌지역사회)의 역사, 문화, 정치, 경제, 사회, 산업, 생활, 인물, 교육, 자연 등에 대한 지식, 정보, 이야기 등 ‘일상적인 마을생활의 진실과 기술’을 열심히 공부하고 훈련하는 게 상책일 것이다.
우선, 마을의 탄생, 마을의 진화, 마을이 현실을 통해 ‘마을이 흘러온 역사’부터 시작할 생각이다. 마을의 땅, 마을의 집, 마을의 자연으로 ‘마을을 둘러싼 환경’도 살펴봐야 한다. 마을의 구조, 마을의 자산, 마을의 공동체 등 ‘마을을 이루는 사회’도 탐구할 필요가 있다.
‘마을을 꾸리는 체계’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마을의 규약, 조직, 권력 등이다. 마을의 산업, 마을의 직업, 마을의 기술로 ‘마을의 경제’도 파악해두어야 한다. 마을의 전통, 마을의 예술, 마을의 교육같은 ‘마을을 즐기는 문화’는 삶의 질을 높인다.
‘마을과 누리는 오늘’도 정확하게 진단해야 한다. 마을의 생업, 마을의 생활, 마을의 일상은 매우 중요하다. 이로서 ‘마을이 꿈꾸는 내일로 나아가는 지도’를 그릴 수 있을 것이다. 마을의 자조, 마을의 자립, 마을의 자치야말로 ‘국가 너머 마을’로 가는 정도이자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