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야 어찌되든…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치킨게임'

지분율 확보하려 주식 매수값 상향경쟁

부채율 급상승, 누가 이기든 '승자의 저주'

사모펀드가 이기면 인재 이탈 우려

그런데도 이사회는 ‘거수기’ 노릇만

2024-10-14     장박원 에디터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고려아연 최대 주주인 영풍과 사모펀드(PEF) 운용사 MBK파트너스는 지난달 12일 경영협력계약을 체결하고 고려아연 주식에 대한 공개매수에 나섰다. 이에 맞서 현재 경영권을 보유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대항 공개매수에 나서면서 양쪽의 싸움은 치열해졌다.

영풍과 MBK파트너스 쪽은 14일 끝난 공개매수를 통해 고려아연 지분 5.34%를 추가로 확보하며 경영권 확보에 한 발 다가섰다. 그러나 고려아연의 최 회장 측이 공개매수 가격을 대폭 올려 23일까지 자사주 매집에 나선 데다 경영권 확보를 위해서는 이사회와 임시 주주총회 개최 등을 거쳐야 한다. 양쪽 모두 충분한 지분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라 경영권 분쟁은 장기전으로 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창립기념일(8월1일)을 하루 앞둔 7월 31일 울산에서 열린 고려아연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7.31 [고려아연 제공] 연합뉴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세계 최대 비철금속 기업으로 전기차 배터리 등 여러 산업에서 핵심 소재로 쓰이는 제품을 생산하는 우량 기업 고려아연이 망가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영풍·MBK파트너스와 최 회장 쪽은 각각 최대 2조~3조 원을 투입해 공개매수에 나서고 있다. 이중 상당액은 차입금이다. 어느 쪽이 승리하든 경영권 확보를 위해 쓴 자금은 회사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일단을 볼 수 있는 공방이 지난주 벌어졌다. MBK파트너스는 고려아연이 자사주 공개매수를 위해 끌어다 쓴 자금으로 2030년이면 부채비율이 245%까지 오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영풍·MBK파트너스 쪽이 공개매수 가격을 주당 66만 원에서 75만 원으로, 다시 83만 원으로 상향하자 최 회장 쪽은 지난 11일 대항 매수 가격을 주당 83만 원에서 89만 원으로 올렸다. 그러자 MBK파트너스는 공개매수로 부채비율이 급증할 것이라는 내용의 자료를 발표했다.

고려아연이 자사주 공개매수에 3조 원에 육박하는 자금을 투입하면서 연평균 1조 2000억 원의 현금 창출력으로 2030년이면 부채비율이 다시 20%로 낮아질 것이라지만 이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라는 게 요지다. 자사주 공개매수로 인한 차입금 상환과 이자, 배당금에 더해 미래 사업을 위한 투자 등을 고려하면 6년 후 부채비율이 244.7%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MBK파트너스 추산에 따르면 자사주 매입 차입금 2조 7000억 원에 대한 원금 상환과 이자, 최근 5년의 평균 연 배당금과 법인세 등으로 2030년까지 누적 현금 창출액은 7300억 원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 기존 사업에 대한 설비 확충과 신산업 투자 계획 금액은 15조 2000억 원에 달한다. 이를 충당하려면 부채 조달 필요액은 14조 4000억 원이 넘는다. 고려아연의 자사주 매입이 부채비율의 급상승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부채비율을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려면 결국 투자를 줄여야 한다. 결과적으로 최 회장 측의 자사주 매입은 고려아연의 미래 가치를 훼손한다는 게 MBK파트너스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최 회장 쪽은 자사 계획대로 주당 89만 원에 20% 지분에 해당하는 자사주를 매수해 전량 소각해도 부채비율이 100% 미만을 유지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영업이익이 연간 1조 3000억 원이 넘어 차입금을 신속하게 상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영권 사수를 위해 막대한 차입금으로 자사주를 매입하면 고려아연의 투자 재원이 소진된다는 사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매일경제신문이 지난 12일 MBK파트너스가 발표한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바에 따르면 최 회장 쪽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자사주 공개매수를 위해 2조 7000억 원가량을 차입하면 고려아연 부채비율은 기존 36.5%에서 94.4%로 상승한다. 자사주 소각으로 순자산도 27% 감소한다. 여기에 연간 이자 비용이 1860억 원에 달한다. 고려아연은 사업 확장을 위한 설비투자도 올해 1조 6000억 원, 내년 1조 2000억 원, 2026년 2조 3000억 원 등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기로 했다. 자사주 공개매수로 3조 원 가까이 차입하면 계획했던 투자를 포기하거나 투자 시기를 연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려아연의 기업가치가 그만큼 떨어지는 것이다.

영풍·MBK파트너스 쪽이 경영권을 가져온다고 해도 후폭풍을 피할 수 없다. 경영협력계약에 따라 고려아연 경영은 MBK파트너스가 주도하게 돼 있다. MBK파트너스는 아니라고 하지만 사모펀드 속성상 단기 수익에 집착할 수 있다. 공개매수를 위해 자금을 댄 투자자들의 수익성도 고려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사모펀드가 경영권을 인수하면 핵심 인재들이 회사를 떠날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 다른 나라에 기업이 매각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고려아연은 비철금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인재가 떠나면 기술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 신사업도 차질이 빚어질 것이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재벌 일가와 사모펀드의 탐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말로는 고려아연의 ‘경영정상화’를 내세우고 있으나 기업이 망가지든 말든 돈을 벌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현재 진행되는 상황을 보면 누가 이기든 ‘승자의 저주’에 빠질 게 분명하다. 공개매수 가격을 올리며 형성된 거품은 주가 폭락으로 이어질 게 뻔하다. 개인 투자자의 피해가 불가피하다. 그런데도 고려아연 이사회는 총수의 손을 들어주는 거수기 역할만 하고 있다.

이번 경영권 분쟁은 영풍과 고려아연의 재벌 일가 중 한쪽만 승자가 되고 우량 기업인 고려아연과 투자자, 한국 증시는 모두 패자가 된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의 가장 큰 원인이 ‘재벌기업의 지배구조’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사례로 남을 것이다.

 

 

관련기사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