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vs 이재명 국감'이라는 언론의 교활한 프레임

'김건희 국정농단 의혹' 제기가 정치공세인가

국힘당 이재명 공격하자 '정쟁국감'으로 몰아

야당 대표가 국감 대상? '양비론'으로 여론왜곡

일부 언론, '정쟁 프레임'으로 김건희 의혹 덮기

김건희 씨 국정농단 의혹 파헤치는 게 '민생국감'

조선, 정권 위태롭자 노골적 '정치 무관심' 조장

2024-10-14     김성재 에디터

22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지난주 시작됐다. 각 상임위 별로 국회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 전반에 대한 감시와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정부가 한 해 동안 국민의 세금을 제대로 사용했는지,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고 법·규정을 준수하며 일을 잘 하고 있는지 감시하고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을 것이다.

국정감사의 대상은 정부의 모든 부처와 지자체, 공공기관이다. 대통령실도 예외가 아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국회는 이들을 대상으로 여러 정책 실패와 과오, 무능, 무책임을 파헤치고 지적하겠지만 그중에서 이른바 ‘김건희 씨 국정농단 의혹’이 단연 최대 이슈다. 최근 언론에는 김건희 씨 관련 국정농단 의혹이 하루가 멀다고 쏟아져 나오고 있다. 김건희 씨 문제는 이 정부의 총체적 국정운영 실패를 불러온 원인이며 그 자체가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국정운영 실패다. 국민들이 김건희 씨 의혹에 분노하며 실체를 알고 싶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통령 부인이면서 민간인인 김건희 씨는 어떤 법적 근거도 없이 정부의 인사와 행정에 개입하고 그 과정에서 세금을 낭비·유용했으며 권력을 이용해 온갖 불법적 행위를 했다는 의혹에 휩싸여 있다. 게다가 김건희 씨 의혹은 정권 반대 세력이나 야당이 정치적 목적으로 제기한 것이 아니라 여러 언론과 심지어 여당 내부 인사를 통해 수많은 증언과 증거로 확인되고 있는 ‘합리적’ 의혹이다. 

 

박성재 법무부 장관이 8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법무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에 대한 야당 의원의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김건희 씨 의혹은 처음에는 논문표절이니 학력·경력 위조, 주가조작, 명품백 수수 같은 개인적 탈선, 부도덕, 불법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지금은 고속도로 노선 변경, 대통령 관저 이전 개입, 정부 고위직 인사 개입, 수사 개입, 선거 개입을 포함해 국정운영 전반에 민간인 김건희 씨가 직접 개입해 국정을 농단하고 있다는 의혹이 짙어지고 있다.

국민은 김건희 씨를 선출한 적도 그에게 권력을 맡긴 적도 없다. 사인(私人)의 국정농단은 나라 전체를 위기로 몰아갈 수 있다. 그런 징후가 경제, 외교안보 등 여러 분야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다. 수사당국이나 정부의 감사기구들은 김건희 씨 의혹을 수사도 감사도 제대로 하지 않아 국민들은 법치주의가 무너졌다고 개탄하고 있다. 탄핵으로 쫓겨난 박근혜 대통령 시절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이 또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닌지 걱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이 김건희 씨 관련 문제를 지적하고 파헤쳐 바로잡도록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민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면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도 의혹을 밝히는 데에 동참해야 한다. 여야 가릴 것 없이 국회가 이것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입법부의 직무유기라고 해야 한다. 그러나 여당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김건희 씨 의혹 제기와 증인 채택을 ‘이재명 대표 방탄을 위한 정치공세’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감장에서 이재명 대표의 테러 직후 헬기 이용 문제나 이재명 대표 부인 김혜경 씨 법카 사용 문제 등을 꺼내 맞불을 놓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일부 주류 언론들은 야당이 김건희 씨 의혹을 제기하고 진실을 밝히려는 것을 ‘정치공세’로 몰아가고 있다. 여당 국민의힘의 이재명 대표 비판을 같은 선상에 놓고 여야가 국감장에서 ‘정쟁’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있다. 여야가 또다시 정쟁에만 골몰해 결국 민생을 외면하고 있고 이것 때문에 국민들의 정치혐오, 정치외면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도 하고 있다. 

 

국정감사가 시작된 직후인 10월8일자 서울신문은 1면에서 “김여사 vs 이재명 첫날부터 블랙홀”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톱으로 올렸다. 기사는 민주당이 “10개 상임위 중 절반 이상에서 김건희 여사 리스크를 거론하며 정부에 총공세를 벌였”고 국민의힘은 이들 두고 “이재명 대표 사법리스크에 대한 방탄 공세라고 비난했다”고 적었다. 사설에서도 “민생 없는 ‘金·李’ 블랙홀…정쟁으로 날 샐 국감”이라며 “국감에서 민생은 아예 설 땅이 없어 보인다”고 했다.

서울신문 보도에 따르면 이번 국감은 정치적 대결일 뿐이고 참으로 비생산적인 국감이다. 민주당이 김건희 씨 의혹을 파헤쳐 ‘총공세’를 하려하자 국힘은 이를 ‘이재명 방탄용’이라며 이재명 대표 사법 리스크를 끄집어내 맞공격하고 있다는 것이니, 국정감사가 아니라 여야의 정쟁으로 보인다. ‘민생 국감’이 아니라 ‘정치 국감’‘정쟁 국감’으로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도 같은 날 1면에 △“검건희·이재명으로 도배된 국정감사장” 제목의 기사를 1면에 올렸다. 한국일보 1면 톱 △“꽉 막힌 국감…‘검건희·이재명 때리기’만 골몰” 기사와 △“또다시 ‘김건희 대 이재명 국감…3년 전으로 퇴행한 국회” 사설, 중앙일보 △“첫날부터 정쟁뿐인 국감…최우선 책무는 정책과 민생/안보·경제·서민 상황 위중, 나라 이끌 ‘정책 국감을’” 제목의 사설도 같은 맥락의 보도다.

그러나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언론이라면 국감에서 야당의 김건희 씨 의혹 제기를 문제삼을 것이 아니라 여당의 이재명 대표에 대한 사법리스크 제기를 비판해야 한다. 국정감사란 야당 대표의 문제를 감시·평가하는 자리가 아니라 대통령과 정부의 잘못을 심판하는 자리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김건희 씨 의혹제기가 그저 정치공세에 불과하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야당 대표의 헬기 사용, 부인 김혜경 씨 법카 사용 의혹을 꺼내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야당 대표와 그의 부인은 국회의 국정감사 대상인가? 여당 국민의힘이 국정감사 자리를 빌려 야당 대표를 공격하고 이를 논란으로 키워 야당의 김건희 씨 의혹제기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정치적 의도가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들다.

 

언론은 이런 여당 국민의힘의 정치적 의도를 모르고 그저 보이는 대로 받아쓰는 것일까? 그럴 리 없다. 일부 주류 언론들이 이번 국정감사를 ‘김건희 vs 이재명 국감’으로 부르는 것은 언론의 전형적인 ‘프레임 왜곡’이다. 어떤 장면에 특정한 모양과 방향의 프레임(틀)을 들이댐으로써 전체 장면이나 그 장면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다.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하고 있는 김건희 씨 의혹을 밝히려는 ‘김건희 국감’에 국민의힘이 제기한 이재명 대표 공격을 갖다붙이고 양쪽이 다 나쁘다는 ‘양비론’과 ‘정쟁 프레임’을 만들어 낸 것이다. ‘정쟁 프레임’은 국민의힘과 친여·친윤 언론들이 그동안 자주 악용해온 여론조작 프레임이다. ‘정쟁 프레임’에 맞춰 보도하면 여당 대 야당의 정치싸움에 덮여 정권의 무능·오류가 가려지기 때문이다. 국민들에게 여당·야당을 싸잡아 늘상 정쟁이나 벌이는 집단으로 각인시키는 ‘정쟁 프레임’은 결국 국민들의 정치혐오, 정치 무관심을 불러오게 된다.

언론이 정치권의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고 ‘양비론’ 또는 ‘정쟁’의 프레임을 이용하면서 언제나 강조하는 것이 정치의 ‘민생 외면’이다. 여야가 싸우느라 민생을 챙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쟁 프레임’에는 국민이 혐오하는 ‘정쟁’과 국민이 갈망하는 ‘민생’이 짝을 이룬다. 그러나 도대체 ‘민생’이란 무엇인가? 민생은 단순히 국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만은 아니다. 안전, 안보, 복지, 의료, 교육, 고용, 주거, 인권 같은 문제가 다 민생이다. 가난이 해소된다고 민생이 다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고 좋은 교육, 좋은 일자리, 좋은 주거 환경 속에서 살면서 인간답게 사는 것이 모두 민생의 문제라고 할 것이다.

민생이 좋아지려면 권력의, 혹은 권력을 이용한 부패·비리·남용·횡포가 없어야 한다. 민주주의가 잘 발달된 나라의 민생 – 경제, 안전, 안보, 복지, 의료, 교육, 고용, 주거, 인권이 좋은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야당이 국감에서 김건희 씨 권력 비리 의혹을 파헤치는 것을 ‘민생 없는 국감’이라고 말하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민생을 살리려면 권력을 남용·오용한 김건희 씨의 부패·비리와 국정농단 의혹을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다. ‘김건희 국감’이 바로 민생국감이라고 할 수 있다.

언론이 야당의 김건희 씨 의혹제기를 ‘양비론’과 ‘정쟁 프레임’으로 몰아가는 목적은 국민들의 정치 무관심, 정치혐오를 끌어내 김건희 씨 문제를 덮어주기 위한 것이다. 언론의 못된 여론조작·여론왜곡이다. 아니나 다를까, 조선일보는 이미 국정감사 직전에 국민들에게 정치 무관심과 정치혐오를 조장하고 나섰다. 국정감사가 시작되는 7일 아침 지면의 “정치를 ‘끊는’ 사람들”이란 칼럼(전상인 교수)을 통해 조선일보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요즘 내 주변에 정치를 ‘끊었다’는 사람들이 꽤 많다. 정치와 일부러 멀어지기 위해 신문도 안보고 방송도 틀지 않는다는 이들의 기백은 ‘백해무익’한 담배끊기에 필적할 정도다. 노년층만이 아니라 청년층에서도 정치적 무관심이 크게 늘고 있다.”

 

칼럼에서 조선일보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고 했던 30년 전의 말을 다시 불러와 한국 정치를 비하했다. 민주주의 정치 자체의 한계와 한국에서 민주정(民主政)의 사회문화적 인프라 부족을 거론하며 “그런 만큼 한국 정치는 민주주의 타령 속에 맨날 싸우는 게 일이다. 팩트가 가짜나 거짓에 밀려나고 특권의식과 권위주의, 선동과 궤변이 이성적 소통을 가로막는 정치 문화는 오늘날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까지 왔다”고 했다. 그리고 결론은 “정치적 무관심이 약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정치의 수준을 갑자기 30여년 전 군사독재가 끝나가던 시절과 비교하며 비하하는 것은 소가 웃을 일이다. 한국 정치와 절차적 민주주의는 조선일보가 추앙하던 권위주의 세력이 정권을 놓친 시기에 놀랄 만큼 발전했다. 한국의 현재 정치 문화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라고 쓴 조선일보 칼럼니스트는 도대체 어느 나라에서 살다 왔는지 묻고 싶다.

조선일보 칼럼이 말하는 ‘가짜와 거짓’ ‘특권의식과 권위주의’ ‘선동과 궤변’의 가장 맨 앞에 조선일보와 그 아류 언론들이 서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길 바란다. 권위주의 정권이 위태로울 때마다 양비론과 정쟁 프레임으로 여론을 왜곡·조작하고 정치 무관심을 조장해 한국 정치와 민주주의를 퇴행시켜온 주범은 누구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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