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대통령에 그 장관들…희대의 대정부질문 불참 사태
외교·안보 대정부질문에 외교·국방장관 불출석
윤석열 거부권 남발, 국회 개원식 불참 연장선상
국무위원들까지 예사로 국회 무시…의도적 측면
조태열‧김용현, 'AI 이용 고위급회의' 참석 사유
서울서 열리고 종일 행사장 지켜야 할 일도 아냐
유인촌 장관도 일본 출장 간다며 전날에야 통보
"헌정사 초유…유신, 전두환 독재 때도 안 그래"
결국 본회의 5시간이나 늦춰 저녁 7시에 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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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의 국회 무시가 점입가경으로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21번 행사하고, 국회 동의 없는 고위공직자 임명을 29번 강행했으며, 급기야 1987년 민주화 이후 최초로 국회 개원식에까지 불참하더니, 이번엔 국무위원들이 22대 국회의 첫 정기국회 대정부질문에 연이어 불출석을 통고하는 사태까지 연출했다. 헌정사 초유의 기록을 나날이 갱신하는 듣도 보도 못한 정부의 단면이다.
10일 오후 2시로 예정됐던 외교·통일·안보 분야 국회 대정부질문은 무려 5시간이나 늦춰져 오후 7시에 시작될 예정이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불출석하겠다고 하자 나올 때까지 국회 본회의 개의 시간을 미룬 것이다. 이날 대정부질문은 윤석열 정부의 일련의 친일 매국 행보와 대북 정책 파탄, 계엄령 준비 의혹 등을 국회가 낱낱이 파헤치고 추궁하는 중요한 자리다. 이들 사안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최고조에 달해 있다. 그럼에도 핵심 국무위원들이 자리를 비운 채 차관들이 대신 답변하겠다고 했으니 맥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 점을 노리고 '추석 밥상머리 민심'에 미칠 영향까지 감안해 의도적으로 불참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된다.
조태열‧김용현 두 장관은 '인공지능(AI)의 책임 있는 군사적 이용에 관한 고위급회의'(REAIM Summit 2024) 참석을 불출석 사유로 들었다. 9~10일 이틀간 열리는 이 회의는 AI의 군사적 이용이 국제 평화와 안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국제사회의 이해를 높이고 관련 국제규범 형성에 기여한다는 취지로 마련됐다고 한다. 지난해 네덜란드에서 첫 회의가 열렸고 올해 두 번째 회의는 한국과 네덜란드 공동 주최로 개막했는데 루벤 브레켈만스 네덜란드 국방장관, 응 엥 헨 싱가포르 국방장관, 로셀린다 소이판 투야 케냐 국방장관 등 34개국 외교 및 국방 장·차관급 인사가 참석했다.
이 회의는 멀리 해외도 아니고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이틀 일정으로 진행 중이다. 두 장관이 하루종일 행사장을 지켜야 하는 것도 아니며, 국회의사당까지 차로 30분 거리이니 일정은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다. 주제 발표와 토론, 부대행사 등 전체 프로그램 중 장관 참석이 필수적인 양자 회동 등은 늦은 시간에 진행된다고 한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출국 일정을 이유로 12일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 불출석한다. 유 장관은 10~12일 일본 고베와 교토에서 각각 열리는 제10회 한·중·일 관광장관회의와 제15회 한·중·일 문화장관회의에 참석하는데 이 회의에 주최국인 일본을 제외하고 중국에서는 장정 문화여유부 부부장(차관급)이 참석한다. 게다가 유 장관은 해외 출장으로 인한 불출석 사유를 전날에야 통보했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 측은 "유 장관이 어제 민주당 원내대표실에 불출석을 요청했고, 이를 민주당이 거부했음에도 일방적으로 일본으로 출국했다"고 전했다.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 본청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윤석열 정부의 국회 무시, 입법권 무시가 도를 넘었다. 어제 정치 분야 대정부질문을 보신 국민께서 정말 분통 터져서 못 보겠다는 말씀 참 많이 주셨다"며 "국회와 싸우려고 드는 국무위원들의 오만과 독선, 자화자찬이 어쩌면 그렇게 윤석열 대통령과 똑같이 닮았느냐는 질타였다. 대통령과 정부의 일방 독주에 대한민국의 시스템이 무너지고 국민의 삶이 위협받고 있는데, 정작 권한과 책임을 가진 당사자들은 인정할 줄도, 성찰할 줄도, 반성할 줄도 모르는 뻔뻔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심지어 오늘 예정된 외교안보통일 대정부질문에 출석해야 할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불출석한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아무런 이유 없이 국회 개원식에 불참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최근 '움츠러들지 말고 싸워라' '국무위원들이 국회 때문에 국정을 다룰 수 없다'는 희대의 망언으로 국무위원들에게 국회 무시의 명백한 신호를 보냈고, 국무위원들은 윤 대통령을 따라 대놓고 국회를 무시하고 있다"면서 "헌정사상 이런 일이 있었는가? 유신 독재, 전두환 독재 때도 이러지 않았다"고 개탄했다.
또 "국무총리와 국무위원들은 헌법에 따라 국회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국회에 출석해 답변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국무위원들이 중대하고 특별한 사유 없이 대정부질문에 불출석하는 것은 국회와 헌법을 무시한 것"이라며 "외교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은 대외 일정을 핑계로 대고 있지만 행사 내용을 살펴보면 기념 촬영과 주제 발표 및 토론, 만찬 등이 중심인 행사로, 장관 참석이 필수적인 양자 회동 등은 늦은 시간에 진행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외교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에 이어 문체부 장관도 불출석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왔다. 대놓고 국회를 무시하고 헌법을 무시하는 행정부의 행태를 강력하게 규탄한다"면서 "삼권분립의 헌법 정신을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이자 민주주의 파괴 행위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오늘 국회에 출석해 헌법상 의무를 다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 만일 국회를 무시하면서 불출석을 고집할 경우 이에 따른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고 경고했다.
조국혁신당 의원총회에서도 이 문제가 제기됐다. 당 외교안보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준형 의원은 퇴임을 3주 앞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박 2일간의 방한 일정을 마치고 희색이 만면한 채 일본으로 돌아간 외교 참사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김 의원은 "자화자찬에 푹 빠진 깡통 윤 정권과 뻔뻔한 일본 정부, 역시는 역시였다. 더 큰 문제는 윤석열 정부가 기꺼이 일본의 공범을 자초했다는 것"이라며 "임기 3주 남은 총리가 왜 방한했겠는가? 윤석열 대통령은 '남은 3년도 일본을 위해 힘써주십시오!' 이런 말이라도 들은 것 아닌가?"라고 따져 물었다.
그러면서 "오늘 대정부질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외교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의 불참을 어제 밤 9시에 통보받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단순히 이 사건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국회 개원식 불참을 포함해 대정부 질문에서 총리가 국회의원과 농담 따먹기를 한다거나 오히려 역으로 질문을 하면서 다그치는 모습을 보인 것도 큰 문제다. 심지어 박성재 법무부 장관은 단상에서 내려오면서 야당 의원들을 째려보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의 조직적인 국회 무시, 헌법 무시를 목격했다"고 탄식했다.
이날 대정부질문 질문자로 예정된 야당 의원들은 국회 소통관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민주당 정동영‧한정애‧이재정‧장경태‧박선원‧김영배 의원과 조국혁신당 김준형 의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김용현 국방부 장관의 불출석을 그것도 대정부질문 직전인 어제 알게 됐다. 헌법 제62조에 따르면 국회 요구가 있을 때에는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등은 출석‧답변을 하여야 한다고 분명히 명시돼 있다"며 "지난 2일 국회 본회의에서 9월 10일 외교‧안보‧통일 분야 대정부질문 날에 맞춰 국무총리와 관계부처 장관에 대한 출석 요구의 건을 여야가 함께 통과시켰다. 외교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의 출석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사안으로 법적 효력을 가진 것"이라고 전제했다.
이어 "그럼에도 국무위원이 이런 식으로 대정부질문 전날 불출석을 통보한 것은 국회와 헌법을 무시한 행위다. 헌정 사상 이런 일이 있었는가?"라며 "외교·국방부 장관 없이 외교·통일·안보에 관한 대정부질문을 하라는 것은 국회 무시를 넘어 국회를 능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성토했다. 나아가 "윤석열 정부에게 강력히 경고한다. 정부는 국회 능멸을 당장 멈추고 국회에 출석해 대정부질문에 응하기 바란다"면서 "오늘 예정된 대정부질문이든, 아니면 일정을 새로 잡든 장관이 출석하는 외교‧안보‧통일 분야 대정부질문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저희는 이들에게 정치적·법적 책임을 끝까지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우원식 국회의장을 찾아가 장관들의 출석을 촉구해달라고 요청했다. 외통위 간사인 김영배 의원은 기자들을 만나 "오늘 밤 12시가 돼도 좋으니, 차수 변경을 해서라도 기다릴 테니 외교·국방 장관을 반드시 출석시켜달라고 국회의장께 요청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불출석 통보에 대해서도 "아예 대놓고 국회를 경시하겠다는 것"이라고 어이없어했다.
결국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협의한 끝에 본회의 개의 시간을 오후 2시에서 7시로 5시간 연기했다. 외교부 장관은 개의 시간에 맞춰, 국방부 장관은 밤 9시쯤 대정부질문에 참석하기로 했다. 국회의장실 관계자는 "여야 원내 수석부대표들이 대정부질문 진행 문제를 논의해서 국회의장실에 공유했다"며 "본회의 시간이 미뤄진 만큼 두 장관이 출석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