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비·이자·세금 떼고나니 한달 여윳돈 달랑 100만원

가계 흑자액·비율 모두 8분기째 감소…역대 최장기

고금리·고물가 지속에 소득 줄고 이자·생활비 올라

쓸 돈 없으니 소비 줄여 내수 부진, 경기침체 초래

정부는 여전히 수출 호조 타령에 내수 회복중 강변

2024-09-02     유상규 에디터

가계가 벌어서 쓰고 남은 가계 흑자의 금액과 비율이 모두 역대 최장기인 8분기째 감소하고 있다. 번 돈에서 이자나 세금 등 정해진 지출(비소비지출)과 의식주 비용 등 소비지출을 제하고 자산을 구입하거나 대출을 갚는데 쓸 수 있는 ‘여윳돈’이 계속 쪼그라들어 월 100만 원을 겨우 넘었다.

소득은 늘지 않고 고금리에 이자는 불어나고, 고물가에 생활비는 늘어나 따로 쓸 돈이 없으니 소비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가계소비의 감소는 내수 부진으로 이어지고 경기 회복은 꿈같은 얘기다. “경기가 확실히 살아나고 있다”는 윤석열 대통령이 딴 나라에 사느냐, 아니 아예 외계인이냐고 힐난을 받는 이유다. 수출과 설비투자 등 상승세를 보인 지표를 내세워 경기 회복을 주장하지만 소득감소·고물가·고금리에 짓눌린 내수는 살아날 기미조차 없다.

 

고믈기 고금리 (CG) 연합뉴스

2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가구 흑자액(전국·1인이상·실질)은 월평균 100만 9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만 8000원(1.7%) 감소했다. 소득에서 이자비용·세금 등 비소비지출을 뺀 금액이 처분가능소득이고, 처분가능소득에서 의식주 비용 등 소비지출을 뺀 금액이 흑자액이다. 흑자율은 처분가능소득 대비 흑자액의 비율이다.

가계 흑자액은 2022년 3분기부터 8개 분기째 줄고 있다. 2006년 가계동향 통계에 1인 가구를 포함한 이후 가장 오랜 기간 감소하고 있다. 흑자액이 연속으로 줄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고물가로 가계의 실질소득이 줄었기 때문이다.

최근 2년 동안 분기별 가구의 실질소득은 전년 동기 대비로 4개 분기에는 줄었고, 4개 분기에는 늘었다. 언뜻 보면 증가와 감소가 반복된 것처럼 보이지만 줄어든 분기의 감소율은 1.0~3.9%에 이르는 반면 증가는 모두 0%대에 그쳤다. 결국 분기별 실질소득 증가율은 소비지출 증가율에 미치지 못했고 이는 처분가능소득의 감소세로 귀결됐다. 최근 2년간 처분가능소득은 5개 분기에서 각 1.2∼5.9% 감소했다. 나머지 3개 분기에서는 보합 혹은 0%대 증가세를 보였다.

 

월평균 가구 흑자액 추이

고금리 상태가 지속되면서 이자비용이 늘어난 것도 흑자액 감소의 원인이다. 이자비용은 2022년 3분기 이후 6개 분기 연속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하면서 2022년 2분기 8만 6000원에서 올해 1분기 12만 1000원까지 16.4%나 치솟았다.

실질소득 부진, 이자비용 증가로 처분가능소득과 흑자액이 모두 감소했다. 처분가능소득보다 흑자액이 더 많이 감소했기 때문에 흑자액을 처분가능소득으로 나눈 흑자율도 2분기 29.0%로, 8분기째 하락했다.

쓸 수 있는 돈이 계속 줄어드니 가계는 소비를 줄일 수 밖에 없다. 실질적인 재화 소비를 보여주는 소매판매액지수는 지난 2분기 전년 동기 대비 2.9% 감소했다. 금융위기 때인 2009년 1분기(-4.5%) 이후 15년 만에 가장 큰 감소 폭이며, 2022년 2분기 0.2% 하락을 시작으로 9분기 연속 감소이기도 하다. 소매판매액지수는 올해 3분기 첫 달인 지난 7월에도 1.9% 줄어 감소세가 계속되고 있는 양상이다.

 

 자료 : KDI. 소매판매액지수와 소비심리지수 추이.

소매판매지수에 음식점업 서비스까지 포함한 지수는 지난 7월 101.9(2020년 기준 100)로 전년 동월 대비 2.3% 감소했다. 음식점 포함 소매판매액지수는 지난해 4월 이후 16개월째 감소하고 있다. 관련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10년 이후 가장 긴 기간 연속 감소다. 음식점 포함 소매판매지수는 상품소비에 가계 소비와 밀접한 외식 서비스까지 포함돼 실질 소비의 동향을 엿볼 수 있는 지표다.

이러한 내수 부진은 당연히 경기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 7월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98.4로 전월 대비 0.6p 하락했다. 지난 2월(100.1) 이후 5개월 연속 하락하고 있고, 2021년 2월(98.2) 이후 3년 5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현재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지표로 100보다 낮으면 경기가 추세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경기동행지수를 구성지표(계절요인·불규칙요인 제거)별로 보면 건설기성액(-2.4%), 내수출하지수(-1.7%), 소매판매액지수(-0.4%), 서비스업생산지수(도소매업 제외·-0.1%) 등 주로 내수 지표가 전월보다 감소했다. 경기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주된 요인이 내수 위축임을 반증하고 있다.

 

경기 동행 및 선행 순환변동치. 자료 : 통계청

정부는 수출 호조와 설비투자 증가 등을 근거로 경기 회복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고 강변한다. 다만 내수에서 부문별로 회복 속도에 차이가 있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윤 대통령은 아예 내수 부문은 도외시하는 듯하다. 그는 지난달 29일 국정브리핑에서 "우리 경제가 확실하게 살아나고 있고 앞으로 더 크게 도약할 것"이라며 "성장의 과실이 국민의 삶에 더 빨리 확산할 수 있도록 모든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제전문가들의 진단은 다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내수 회복을 기대할 수 있는 요인은 선제적 금리 인하인데 이는 무산됐고 인하는 빨라야 10월"이라며 "금리 인하의 효과가 나타나는 데에는 시차가 있기 때문에 하반기 경제는 생각했던 것보다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최근 경기 동향에 대해 “내수가 미약한 수준에 그치며 경기 개선을 제약하는 모습”이라며 "소매 판매 감소세와 대출 연체율 상승세가 이어지고 건설 수주의 누적된 부진이 건설투자의 위축으로 이어지면서 고용 여건도 점차 악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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