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과 주가 요동, 일본은행과 투기꾼들의 합작품

"일본은행이 키운 시장왜곡, 금리 정상화 발목 잡을 것"

일본은행도 예상 못한 급격한 ‘엔 캐리’ 청산

도쿄 증시 거래 60~70% 차지 외국자본 주식 대량 매도

7월 금융정책결정회의 발표 뒤 엔 캐리 급감

2024-08-09     한승동 에디터
6일 빨간색 일색인 일본 도쿄 시내 대형 증시 현황판을 한 행인이 쳐다보고 있다. 이날 일본 증시의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225 평균주가(닛케이지수)는 장중 8%대 급등하며 전날의 급락세를 멈추고 반등했다. 2024.08.06. AFP 연합뉴스

일본은행의 금리 정상화 시도가 투기 자본의 움직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7월 31일 일본은행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금리 인상(0~0.1%에서 0.25%로) 결정을 내린 뒤 외환시장에서 그때까지의 엔 약세 수정(엔 강세)이 시작돼 주가가 대폭 하락했다. 일본은행은 물가가 예상대로 움직여 가면 추가 금리인상도 단행하겠다는 시나리오를 썼지만, 10년 안팎의 무제한 초저금리 완화정책(아베노믹스)로 쌓인 방대한 ‘엔 캐리 트레이드’(금리가 낮은 엔을 팔아 금리가 높은 달러를 매입해서 차익을 노리는 거래)로 시장은 요동쳤다.(<니혼게이자이> 8월 8일)

엔 주가 요동치게 만든 원인 제공자는 일본은행 자신

이렇게 쓰면 마치 투기꾼들 때문에 일본은행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해자처럼 보이지만, 그런 투기꾼들이 꼬여들게 만들고 세계 전체에서 20조 달러가 넘는다는 ‘엔 캐리 트레이드’를 그처럼 거대한 규모로 키운 일등공신은 바로 일본은행 자신이고 일본정부다.

<닛케이>의 분석을 따라가 보자.

일본은행은 8일 추가 금리인상을 결정한 7월 30~31일의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오간 ‘주요 의견’을 공표했다. 이에 따르면 정책위원들은 “적시에 단계적으로 금리를 인상해 갈 필요가 있다”며 앞으로도 추가 금리인상을 해야 한다는 의견들을 내놨다.

 

8월 6일 일본 도쿄의 증권사 바깥 주가, 엔 시세 게시판. 2024.8.6. 로이터 연합뉴스

일본은행도 예상 못한 급격한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일본은행은 경제 물가 정세가 전망한 대로 움직여 가면, 정책금리를 경기를 가열하지도 차갑게 식히지도 않을 ‘중립 금리’까지 되돌리겠다는 방침을 정해 놓고 있다. 7월의 금융정책결정회의 때 위원들 사이에서는 중립 금리를 “최저 1% 정도”로 가져가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런데 7월 회의 뒤에 시장이 급변했고, 8월 5일에는 닛케이 평균주가가 사상최대의 하락폭을 기록했다. 게다가 일본은행으로서는 생각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저금리의 엔을 시장에서 빌려 각종 자산으로 운용해 이익을 얻으려는 ‘엔 캐리 트레이드’의 급격한 청산(역행)이 시작된 것이 그것이다.

그때까지의 엔 약세 국면에서 헤지펀드 등(투기꾼들)은 엔 매도(팔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으나, 그때 이후 엔 시세는 5일 1달러=141엔대를 찍어 7월 상순의 1달러=161엔대에서 무려 20엔 정도 내려가는(시세 상승)의 엔 강제, 달러 약세로 반전됐다.

도쿄 증시 매매 60~70% 차지하는 외국자본가들 주식 대량 매도

이런 급격한 엔 약세 수정(엔 강세)가 사상 최대의 주가 폭락을 불러 일으켰다. 도쿄 증권거래소의 매매 주체들 중 60~70%는 해외 자본가들이고, 그 중에서도 엔저 고주가 시나리오에 올인하고 있던 외국의 투기꾼들이 보유자산 조정에 내몰리면서 대량의 주식 매도로 이어졌다. 엔 캐리 트레이드로 조달한 투기 자금 중 일부는 미국의 하이테크 주식 등에도 흘러 들어간 것으로 보이는데, 하이테크 주가 하락으로 세계적인 자산가격 하락 압박 현상이 일어났다.

미국의 대형 헤지펀드인 ‘포인트 72’의 아시아경제 리서치 책임자 조이 센은 일본은행의 7월 말 금융정책결정회의 뒤에 “7월의 금리 인상은 예상하지 못힜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엔 10월에 한 번, 그리고 내년 봄에 한 차례 이상 단계적인 금리 인상이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7월 금융정책결정회의 발표 뒤 엔 캐리 급감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따르면, 헤지펀드 등 비상업부문(투기 자본)의 엔 매도 규모는 7월 2일 시점에서 2조 3027억 엔으로, 사상 최대였던 2007년 6월의 2조 3509억 엔 이후 약 17년 만에 최대 규모로 부풀어 있었다.

이 엔 매도 규모가 일본은행이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연 7월 30일 시점에는 그 절반에도 훨씬 못미치는 수준으로 급속히 줄었다. (사상최대였던 7월 2일 이후) 4주 연속 (엔 매도 규모) 축소로, 4주 합계 축소폭 1조 3845억 엔은 2007년 3월 중순의 1조 4331억 엔 이후 최대였다. 금리 인상 결정 뒤에 (엔과 주가가) 크게 요동칠 가능성이 있었다.

일본은행에서도 7월 회의 직전에는 “거대한 엔 캐리 트레이드에 줄 영향이 크다”며 경계하는 소리가 있었으나, “이렇게까지 대규모의 엔 캐리 청산이 일어날 가능성은 예측하지 못했다”고 일본은행 관계자는 말했다. 일본은행의 금융시장국은 일상적으로 헤지펀드와의 정보교환 장을 만들어 놨기 때문에, 정책 입안을 담당하는 기획국에 면회를 신청하는 헤지펀드도 있다. 그들은 그런 통로를 통해 정기적으로 보유 외환(포지션) 등에 대한 정보를 들은 뒤 그것을 해석, 분석하고 있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가 7월 31일 금융정책결정회의 뒤 기자 회견에 참석했다. 이날 회의 뒤의 금리 인상 발표로 엔과 주가가 요동쳤다. 2024.7.31. 로이터 연합뉴스

일본은행이 키운 시장왜곡이 금리 정상화 발목 잡을 것

“이(異)차원 완화(무제한의 초저금리 금융완화 정책)로 실질 금리가 오랫동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으면서 역사적인 엔 캐리 규모 팽창을 조장했다. 그 반동이 이번 사태다.” 재무성과 금융청, 일본은행이 국제금융자본시장에 관한 정보교환 회의(3자 회의)를 지난 6일에 열었을 때 어느 대형 은행 간부가 한 얘기다. 일본은행 관계자도 “오랜 완화정책으로 우리의 리스크(위험) 감각이 둔해져 있었다”고 했다.

일본은행은 대규모 금융완화정책을 장기간 지속함으로써 스스로 엔 캐리 트레이드가 팽창하는 환경을 조성해 왔다. 일본은행에 따르면, 엔 캐리 트레이드의 규모를 반영한다는 외국은행들 일본지점의 ‘본점 지점 감정’(자산)은 이차원 완화정책을 해제한 지난 3월 시점에 13조 5000억 엔으로 부풀어, 이차원 완화정책 기간에 약 2배로 팽창했다. 특히 미국-일본의 금리차가 커지기 시작한 2022년 후반부터 눈에 띄게 팽창했다.

일본은행은 8년간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지속하면서, 국채 시장에서는 자신이 발행한 국채의 절반 이상을 자신이 매입해 보유하고 있다. 7월 회의 결정에 따라 금리는 올리고 국채 매입액은 줄이기 시작했다. 상장투자신탁(ETF)과 일본 부동산투자신탁(J-REIT)의 보유 국채를 처리할 방도가 마련돼 있지 않다.

일본은행이 강행해 온 약 30년간의 금융완화로 환율과 국채, 부동산 등에 (시장 왜곡) 폐해가 잔뜩 쌓여 있는 현실이 일본은행 자신의 금리 정상화 노력을 구속(제약)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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