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엔과 주가, 물가-임금인상 선순환구도 제약
급등에서 급락 오가는 일본 엔 시세와 주가
닛케이 주가 하락폭이 미국보다 컸던 이유는 엔 강세
엔 강세, 주가 회복세 모두 완만한 흐름 전망
미국경기 우려, AI 거품 붕괴조짐 등 불안재료들
지난 5일 도쿄 주식시장에서 사상 최대폭(4451엔)으로 하락한 다음 날인 6일 다시 사상 최대폭(3217엔)으로 상승하는 등 급반전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닛케이 평균주가가 7일에는 개장 초에 전날 종가보다 900여 엔 내려가는 하락세를 보이다가 다시 한때 1000엔까지 올라가는 상승세를 이어갔다.
춤추는 일본 엔과 주가
7일 닛케이 평균은 전날 종가보다 553엔 내려간 3만 4122.35엔으로 거래를 시작한 뒤 하락폭을 키웠으나, 우치다 신이치 일본은행 부총재가 홋카이도 하코다테에서 “금융자본시장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금리 인상은 하지 않겠다”고 발언한 사실이 전해지면서 다시 엔 약세 달러 강세 추세가 급속히 진행됐다. 오전 7시 전에 1달러=144엔대 중반이었던 달러 대비 엔 시세는 한때 1달러=147엔대 중반까지로 급락했다.
6일 일본 주가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미국 뉴욕 주식시장 다우 공업주 평균주가는 전날보다 294.34달러(0.76%) 올라가, 4일(영업일) 만에 반등세를 보였다. 하이테크 주식 중심의 나스닥 종합지수와 미국 대기업을 망라하는 S&P 500 모두 1.0% 상승하는 등 주요 주가지수들이 모두 올라갔다.
엔 강세, 주가 회복세 모두 완만한 흐름 전망
일본 주가가 이처럼 급락세를 보인 뒤 다시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7월 말 이후의 급격한 엔 강세 움직임이 완화되면서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이 영향을 끼쳤다.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엔 시세는 7월 중순에 1달러=161엔대라는 역사적인 약세를 보였으나, 이후 급속히 강세를 보이면서 8월 5일에는 1달러=141엔대까지 치솟았다.
엔 강세는 일본 수출 대기업의 수익을 악화시켜 주가 하락의 요인이 된다. 5일 엔 강세는 6일 도쿄시장에서 전날 미국에서 발표된 견실한 경제지표 등의 영향으로 다시 엔 약세로 돌아서면서 한때 1달러 146엔대까지 내려갔다.
전문가들은 이런 흐름 속에 급격한 엔 강세 추세는 일단 멈췄기 때문에 그에 대한 경계감이 완화되면서 기관투자자나 개인 모두 주식 매입에 나서기 쉬운 조건이 조성됐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가가 4만엔을 훌쩍 넘어간 얼마전까지의 고주가 상태를 쉽게 회복할 것으로 보진 않고 있다. 앞으로 엔 강세가 추세적으로 진행되겠지만 매우 느린 속도로 진행될 것이고, 주가 역시 완만한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미국경기 우려 등 낙관을 불허하는 불안재료들
하지만 이런 낙관적 관측이 빗나가게 만들 수도 있는 불안재료들도 많다. 미국의 경우 길게 이어진 인플레(물가고)로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소비가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강해지고 있다. 지난 1일에는 실업률이 올라가고 임금 상승률이 둔화될 것임을 보여주는 경제지표들이 발표됐다. 그 앞 주의 실업보험 신청건수가 시장의 예상치보다 늘었고, 2일 발표된 7월의 고용통계는 시장 예상치를 크게 밑돌았다. 이런 경기선행 지표들에 대한 우려 때문에 미국의 주가지수가 대폭 하락했다. 올해 2분기(4~6월) 결산에서 그때까지 고주가를 견인해 온 하이테크 기업들의 실적이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도 주가 하락에 박차를 가했다.
또 중동정세 악화라는 지정학적 리스크도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커지고 있다.
올해 초 고주가 행진, 7월 정점 뒤 급락
올해 초부터 이어진 일본의 고주가 흐름을 날려버린 것은 미국경제 전망에 대한 강한 우려였다. 경기 전망이 어두워지면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 때문에 미-일 간의 금리 격차가 축소될 것이라는 전망 속에 엔 시세가 급등했다. 엔 시세 급등은 다시 주가 폭락으로 이어졌다. 엔 시세 급등은 엔 약세 혜택을 받아 온 일본 수출 대기업들의 실적 악화 전망과 함께 주가 하락을 예고한다. 그렇게 해서 주가 폭락이 시작되자 리스크 회피를 위한 연쇄적인 팔자 움직임이 이어지면서 주가를 더욱 끌어내렸다.
2023년 초에 2만엔대 중반이었던 일본 닛케이 평균주가는 그 뒤 약 1년 반 동안 상승세가 지속됐다. 도쿄 증권거래소가 수익의 주주 환원이라는 ‘주가를 의식하는 경영’을 상장기업들에 주문한 덕도 있어서, 지난해 5월에 닛케이 평균주가는 3만엔대를 회복했다. 올해 2월에는 1989년 12월의 거품경제 시기의 최고치인 3만 8915엔을 넘어 34년만에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3월에는 4만엔을 돌파했고 7월 11일에는 4만 2천엔대로 새로운 사상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리고 그 뒤 1개월도 지나지 않아 주가는 1만엔 이상 떨어져, 올해 초의 상승폭을 모두 날려버렸다.
AI 거품 붕괴도 주가 급락 원인
일본 주가 급락의 요인으로 전문가들은 AI(인공지능) 거품이 꺼지고 있는 현실을 든다. 이제까지 반도체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하이테크 기업들은 AI 기술을 살린 서비스 보급 전망 속에 미국과 일본의 주가 상승을 견인했으나, 이 ‘AI붐’이 기대만큼의 실적을 내지 못한 채 퇴조기에 들어설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AI 효과가 나타나겠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는 대신 단기간에 이익을 보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닛케이 주가 하락폭이 미국보다 컸던 이유는 엔 강세
닛케이 평균 주가는 이런 미국 주가 하락의 영향을 받지만, 최근의 닛케이 평균주가 하락폭은 미국보다도 훨씬 더 컸다. 전문가들은 그 원인을 엔 강세 달러 약세로의 추세 반전에서 찾는다.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엔 시세는 7월 중순에 1달러=161엔대의 역사적인 엔 약세를 기록했다. 7월 말 미국의 금리 인하 관측이 강해지는 한편으로 일본은행이 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미-일간 금리 격차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졌고, 그때부터 엔 강세로의 반전이 시작됐다. 엔 약세를 낳은 일본의 장기간의 무제한 금융완화정책(‘아베노믹스’)은 일본 수출기업들에 큰 이익을 안겼고, 그것은 주가 상승으로 이어졌지만, 반대로 미-일 간 금리 격차 축소는 엔 강세, 주가 약세로 그 흐름을 반전시켰다.
여기에다 주식 매매 시스템에도 그 원인이 있다는 지적들이 있다. 해외 투자자들 사이에 주가가 일정 정도 내려가면 자동적으로 매도 주문이 이어지는 시스템이 확산돼 있어서, 주가가 하락하면 그것이 연쇄 매도 주문으로 이어지고 하락폭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는 것이다.
앤 강세, 물가상승과 임금인상의 선순환에 브레이크
엔 강세가 일본경제에 끼칠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또 다른 우려들도 있다. 이번 엔 강세 흐름은 미국의 금리 인하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커진 것도 있지만, 일본은행이 7월 말 금리를 기존 0~0.1%에서 0.25%로 올린데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가 앞으로도 계속 금리를 올릴 수도 있다고 발언한 점도 작용했다. 우에다 총재는 7월 31일 기자회견에서 올해 안에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일본은행이 장기간 실현하지 못했던 0.5% 이상의 정책금리도 “벽으로 의식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 발언 때문에 “엔 캐리 트레이드(금리가 낮은 엔을 사서 고금리의 달러를 사서 차익을 얻는 것)에 반전이 일어났다”고 닛케이기초연구소의 이데 신고 연구원은 말했다.(<아사히신문> 8월 5일) 거꾸로 엔을 사고 달러를 파는 움직임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그것이 급속한 엔 강세를 불렀다.
이런 급속한 엔 강세는 향후 일본은행의 금융정책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다. 엔 강세 때문에 수출기업을 중심으로 실적이 악화될 수 있고, 그럴 경우 최근 순조롭게 진행돼 오던 임금인상에도 브레이크가 걸릴 것이며, 그것은 그러잖아도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개인 소비를 더욱 약화시킬 수 있다. 이는 일본은행이 제시해 온 임금과 물가 인상의 ‘선순환’ 구도에 브레이크가 걸릴 수 있다는 얘기다.
노무라종합연구소의 기우치 다카히데는 “일본은행이 높은 물가 속에서도 이례적인 금융완화(장기간의 무제한 초저금리 정책)를 계속해 온 것 때문에 엔 약세와 고주가 버블(거품)이 만들어졌고, 지금은 그것이 붕괴과정에 들어간 것 아닌가. 금융시장의 동요가 길어지면 다음의 추가 금리인상 시기가 늦춰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적어도 당분간 달러 대비 엔 시세가 엔 약세 달러 강세에서 엔 강세 달러 약세로 반전된 흐름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엔 약세 흐름을 무리하게 유도해 온 일본은행이 이제 그 부작용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그 흐름을 다시 바꾸려 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마냥 순조롭게 진행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기우치 다카히데는 지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