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대표는 아직도 윤석열의 부하인가?

당정 수평관계?…상하관계만 보여준 90분 회동

윤석열 '당무' 조언에 한동훈 "잘 하겠다" 굽신

제3자 특검법 언급도 없는 회동…'뇌관'은 여전

배짱 없는 한동훈…"당 따른다며 특검 안할 듯"

김건희 문제도 마찬가지…자기 목소리도 못내

당 개편 문제도 소극적…주변인 이용해 압박만

'윤-한 내전' 될까 극도로 경계…기자들도 회피

2024-07-31     김성진 기자
29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창밖 보며 대화 나누는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 2024.1.29.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한동훈 당 대표가 지난 30일 용산 대통령 집무실에서 비공개 회동을 가졌다고 대통령실이 31일 밝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어제(30일) 오전 11시부터 12시30분까지 1시간 30분동안 면담을 진행했다"고 전했다.

이번 비공개 회동은 국민의힘 전당대회 직후 가진 만찬의 후속으로 보인다. 앞서 윤 대통령은 전당대회 다음 날인 지난 24일 한 대표를 불러 만찬을 가졌지만, 독대가 아닌 나경원·원희룡·윤상현 등 낙선자까지 부른 자리였다. 지난해 김기현 대표 선출 당시엔 김 대표만 독대해서 힘을 실어주던 모습과는 정반대였다. 이로 인해 한 대표 쪽에선 "축하 자리도, 위로 자리도 아닌 이상한 자리"라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정치권에서도 한 대표가 추진하겠다고 밝힌 대법원장 등이 추천하는 방식의 채 해병 특검법안(일명 제3자 특검법안)과 김건희 문자 읽씹 논란 등으로 껄끄러워진 윤, 한 두 사람의 관계를 반영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관련 기사

'윤-한 내전'으로 비화하는 두 사람의 관계를 의식하듯, 대통령실도 이날 브리핑에서 "당초 두분께서도 약속이 각각 있었지만 점심약속을 미루면서 면담 시간이 길어졌다"거나 "당정 화합을 위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면서 당정간 화합 메시지를 재차 강조했다. 여당에서도 두 사람의 회동을 계기로 당내 분열, 당정 갈등을 최소화하려는 모습이다. 여권 출신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윤-한 갈등 그리고 한동훈 당 대표를 향한 윤핵관들의 공격, 분열, 이런 것들은 당분간은 끝났다. 정리 싹 됐다"(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는 해석을 내놨다. 대통령과 당 대표가 직접 만나서 화합을 이야기했으니 당분간은 잡음이 없을 것이라는 의미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23일 충남 서천군 서천읍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만나 허리숙여 인사하고 있다. 2024.1.23. 연합뉴스

그러나 회동 내용을 들여다보면 과연 진정한 의미의 화합이나 갈등 봉합인지 의문이 든다. 대통령실이 공개한 회동 내용은 표면상 갈등은 없어 보이지만, 실상 대화 구조는 상급자(윤석열)가 하급자(한동훈)에게 조언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한 대표에게 "당 대표가 됐으니 정치에선 결국 자기 사람을 만드는게 중요하다"며 "이사람 저사람을 폭넓게 포용해 한 대표 사람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또 윤 대통령은 당직 개편과 관련해서도 "당 대표가 알아서 잘 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면서도 윤 대통령은 "조직의 취약점을 (보완하도록) 강화해 조직을 잘 이끌어 나가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에 한 대표는 "대통령님 걱정없이 잘 해내겠다"고 답했다. 실제 90분간 전체 대화 맥락에선 어떤 말이 오갔는지 확인이 필요하지만, 대통령실이 공개한 내용에는 대통령의 말에 한 대표가 고개를 숙이는, 즉 대통령실이 여당보다 상위 조직이라는 주종관계 또는 상하관계의 인식만 엿보인다. 당정 분리라는 민주주의 원칙은 없었다.

이는 전당대회 직후 가졌던 만찬과 연장선상으로 보인다. 지난 만찬에서도 윤 대통령은 덕담처럼 참석자들에게 "우리가 앞으로 하나가 돼 우리 한동훈 대표를 잘 도와줘야 된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혼자 해결하도록 놔두지 말고 주위에서 잘 도와달라"면서 "여러분이 한 대표를 모시고 같이 식사도 하고 술도 마시고, 상갓집도 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주요 당직자들 면전에 대놓고 "혼자 해결하도록 놔두지 말라"거나 술도 안 마시는 한 대표를 "모시고 같이 식사도 하고, 술도 마시고, 상갓집도 가라"고 조언한 것은, 신임 당 대표에 대한 존중보다는 옛 상사가 부하를 대하는 듯한 태도였다. 한 대표 입장에서는 굴욕으로 느낄 수도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파인그라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신임 지도부 만찬에서 한동훈 대표(왼쪽), 추경호 원내대표(오른쪽) 등과 함께 손을 맞잡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24.7.24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연합뉴스

한 대표는 당정간 수평 관계를 강조했지만, 윤 대통령이 한 대표를 하나의 주체로 인정하는지도 의문이다. 비공개 회동 형식 자체도 사실상 독대였지만, 대통령실에서만 정진석 비서실장이 배석했다. 대등한 관계라면 한 대표도 신임 박정하 당 대표 비서실장을 배석해야 했지만, 완전히 배제됐다. 전혀 동등하지 않았다. 또 대통령실 관계자는 "두 분은 과거 법조 생활에 대해 말씀을 나누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 면담을 진행했다"며 "윤 대통령께서 한 대표에게 애정 어린 조언을 많이 했다"고 했지만, 이 역시 여러 해석이 나온다. 과거 검사 시절 추억을 매개로 두 사람이 갈등을 봉합했다는 해석도 있지만, 두 사람은 과거 상급자와 부하 관계였다. 역으로 보면 검사 시절 이야기는 두 사람의 상하 관계를 재차 강조한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무엇보다 이번 비공개 회동에서 한 대표가 제안한 '제3자 특검법' 문제나 김건희 씨를 보좌할 제2부속실 설치 문제 등이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는 대통령실 관계자 전언은 두 사람의 신뢰가 완전하게 회복되지 않았다는 점을 방증한다. '채 해병 특검법'과 '김건희 특검'이라는 갈등의 뇌관이 여전히 남아 있는 셈이다. 특히 한 대표는 전당대회 이후에도 제3자 특검법에 대해 "지금도 생각이 같다" "내 입장에 변함은 없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민주당이 세 번째 '채 해병 특검법'을 추진하면서 한 대표의 '제3자 특검법'을 논의할 수 있다고 나오면 얼마든지 당정간 갈등에 불이 붙을 수 있다.

다만 62.8%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도 대통령과의 관계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한 대표의 모습을 볼 때, 제3자 특검법을 추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 대표는 제3자 특검법에 대해 당내 토론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입장인 만큼, 당이 반대한다는 명분으로 자신이 수차례 했던 말을 뒤집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한 대표가) 당과 이 이슈를 가지고 어깃장 나는 길을 가지는 않을 것"이라며 "당 대표 되기 전에 내 의사는 이거다. 내 뜻은 변한 게 없다. 그렇지만 이걸 당의 공식적 민주적 절차에 붙여서 토론했더니 지금 당이 전체적으로 이렇게 가자고 하기 때문에 나도 그것을 수용한다, 이런 식의 절차를 밟을 것 같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4차 전당대회에 입장하며 한동훈 당대표 후보와 인사하고 있다. 2024.7.23.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김건희 씨 문제도 마찬가지다. 한 대표는 '김건희 특검'에는 반대했지만, 당 대표 당선 직후 김건희 씨 비공개 특혜 조사에 대해선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다"면서 과감하게 용산의 '역린'을 건드렸다. 김건희 씨에 대한 당원들의 불만을 반영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그 뒤로는 언급도 없었다. 대통령과 전혀 선을 긋지 못하고 있는 한 대표의 모습을 볼 때, 김건희 씨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내거나 '자기 정치'를 하는 모습을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수세적이거나 방어적인 위치를 한동안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신임 당 대표지만 기대하는 과감한 당 개혁이나 용산과 차별화하는 적극적인 모습을 찾아보기도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한 대표의 소극적인 모습은 주요 당직자 개편을 두고도 드러난다.

친한동훈계와 친윤석열계는 9명의 지도부 구성을 두고 갈등을 빚고 있다. 정책위의장과 지명직 최고위원을 친한계로 교체하면 친한 5 대 친윤 4 구도로 한 대표가 주도권을 쥘 수 있지만, 친윤계인 정점식 정책위의장이 임명된 지 두 달 밖에 되지 않아 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친한계 인사들은 공공연하게 정 의장의 사퇴를 압박하고 있지만, 친윤계는 임기가 많이 남았다며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전날 비공개 회동에서 당 조직 개편에 대해 "당 대표가 알아서 잘 해달라"고 했음에도, 한 대표의 주도적인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보니 친윤계인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은 <채널A>와 인터뷰에서 "(정책위의장) 교체의 생각이 있다면 직접 당사자를 만나서 설득했어야 했다"면서, 한 대표의 태도를 비판하기까지 했다.

정책위의장을 두고 그간 갈등을 빚어왔던 양쪽 진영은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비공개 회동으로 유화 국면을 맞을 것으로 전망됐지만, 이날 친한계 서수 신임 사무총장의 '당직자 일괄 사퇴' 발언으로 다시 갈등 국면에 접어들었다. 서 총장은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한 대표와 면담 직후 기자들과 만나 "대표가 새로 왔으니 새로운 변화를 위해 당 대표가 임명권을 가지고 있는 당직자에게 일괄 사퇴를 해주시라"며 공개 발언을 했다. 특히 서 총장의 발언은 정책위의장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 대표 쪽에서 먼저 강수를 둔 것으로 보이지만, 정 의장이 사퇴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얼마든지 확전될 수 있는 아슬아슬한 상황으로 전환된 양상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나오고 있다. 2024.7.31. 연합뉴스

그러나 한 대표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먼저 강수를 뒀음에도 여전히 '윤-한 내전'으로 비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한 대표는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정 의장과 단독으로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한 대표도 사실상 정 의장을 교체하기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당 주인 노릇을 해왔던 대통령을 제치고 당 주도권을 가져오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이에 대해 기자들이 묻자, 한 대표는 "저희 사무총장이 (일괄사퇴에 대해) 말했으니까…"라며, 즉답을 피한 채 차량을 타고 당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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