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생활고에도 '서민 증세'…케냐 전역서 '격렬 시위'

집중적 '부자 감세, 서민 증세' 윤석열과 오십보백보

경찰, 의회 진입 시위대에 '발포'…"최소 10명 사망"

식료품서 금융결제까지 '서민 증세 종합세트'

디지털로 무장한 케냐의 Z세대가 시위 주도

루토 "반역적 사건에 효과적이며 신속한 대응"

2024-06-26     이유 에디터

고물가로 서민들의 생활고가 극심한데도 케냐 정부가 공공 부채 감축을 구실로 부가가치세 인상을 포함한 대대적인 '서민 증세' 입법을 강행하면서 참다못한 시민들이 들고 일어섰다. 항의 시위는 수도 나이로비와 몸바사, 키수무, 나쿠루, 엘도레트 등 전국 주요 도시에서 이어졌다.

 

케냐 수도 나이로비 도심에서 대대적인 세금 인상안을 담은 재정법안이 의회에서 표결하는 동안 시위대들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서 싸우고 있다.  2024. 06. 25 [AFP=연합뉴스]

극심한 생활고에 '서민 증세'…케냐 전역 '격렬 시위'

경찰, 의회 진입 시위대에 '발포'…"최소 10명 사망"

케냐 의회가 윌리엄 루토 정부의 대규모 세금 인상안을 담은 재정법안을 표결한 25일(현지시간) 급기야 유혈 참극이 벌어졌다. 로이터와 AP, 알자지라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이날 나이로비에서 재정법안 표결 저지를 위해 의회로 가는 길을 경찰이 봉쇄하자 일부 시위대가 돌을 던지며 저지선을 뚫고 의사당에 진입했고 진압 과정에서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실탄사격까지 했다. 이와 관련해 아직 정확한 사상자 수치는 확인되지 않지만, 알자지라는 현장에 있던 응급구조사를 인용해 지금까지 최소 10명이 숨지고 50명 넘게 부상했다고 전했다.

그 시각 케냐 의회는 문제의 재정법안에 대한 3차 회독을 진행한 뒤 표결에 부쳐 총 395명 의원 중 찬성 195표, 반대 106표, 무효 3표로 통과시켰다. 분노한 시민들이 몰려들자 표결을 마친 의원들 일부는 의사당 지하 터널을 이용하거나 앰뷸런스를 이용해 긴급 대피했다. 의사당 건물 일부에 불이 났고 시위대는 집기를 부수거나 깃발을 찢고 창문을 깨기도 했다.

이날 통과된 재정법안은 이자 상환에만 연간 정부 수입의 37%가 필요한 막대한 부채를 감축하려는 노력의 하나로 27억 달러(약 3조7500억 원)의 세금을 추가로 인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루토 대통령은 14일 이내에 법안에 서명하거나 의회에 재의를 요구해야 한다. 그가 예고대로 법안에 서명한다면, 시민들의 항의 시위는 더 격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케냐 수도 나이로비 의회 의사당 바깥에서 대대적 세금인상 내용을 담은 윌리엄 루토 정권의 재정법안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는 도중,  시위대가 부상자를 구하려는 순간 최루탄 가스통이 폭발하고 있다.  2024.. 06. 25 [AFP=연합뉴스]

루토 "반역적 사건에 효과적이며 신속한 대응"

'세금 인상' 법안 서명 땐 더 격렬한 시위 예고

알자지라에 따르면, 케냐의 공공 부채 규모는 820억 달러(약 114조 원)에 달하며 대부분이 중국에 진 빚이다. 전임 우후루 케냐타 대통령 시절, 수도 나이로비와 몸바사항을 잇는 스탠더드 게이지 철도(SGR)를 포함한 인프라 건설 계약에 서명하면서 빌린 자금이다.

루토 대통령은 이날 밤 TV를 통한 대국민 연설에서 안보가 "최우선"이라면서 "오늘의 반역적 사건에 대해 완전하고 효과적이며 신속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케냐 국방부 장관은 안보 비상사태를 관리하고 중요 기반 시설 내 침입에 대비해 군 병력을 배치하고 경찰을 돕도록 지시했다.

루토 정부는 대대적 세금 인상 계획을 담은 재정법안을 의회에 제출한 때는 5월 초였다. 여기에는 은행 간 송금과 디지털 결제에 대한 세금 5% 인상, 빵 부가가치세(VAT) 16% 인상, 케냐산 천연‧정제 식물성 식용유 소비세 25% 인상이 포함됐다. 또한 국민건강보험에 등록된 급여 생활자의 소득세를 일률적으로 2.5% 올리고 연례적인 자동차세도 2.5% 인상한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플라스틱 제품에 대한 "환경 부담금"과 급여 생활자에 대한 의료보험과 주택보험 부담금 부과도 담겼다. 한마디로 서민 증세의 종합세트였다.

이번 법안이 서민에게 특히 고통스러운 것은 식료품 등 케냐의 생활물가가 치솟고 지난해 이미 세금을 대폭 올린 상황에서 또 대대적인 세금 인상을 강행하기 때문이다. 2022년 9월 집권한 루토 대통령은 세금을 연이어 인상하고 있지만, 공공 서비스는 개선되는 게 없고 정권의 부정부패에 사용되고 있다는 게 야당과 시민들의 시각이다. 작년만 해도 루토 대통령은 급여 생활자 총소득의 1.5%를 주택세로 부과하고, 석유제품에 대한 부가가치세를 8%에서 16%로 2배로 인상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한-케냐 정상회담에서 윌리엄 루토 케냐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2024.6.4 [대통령실 제공] 연합뉴스

식료품서 금융결제까지 '서민 증세 종합세트'

'부자 감세와 서민 증세' 윤석열과 오십보백보

야당과 시민들의 분노와 반발이 지난 18일 항의 시위로 옮겨붙기 시작하자 케냐 의회는 빵과 식용유, 자동차 관련 세금과 모바일 결제 등 금융거래세는 철회하는 긴급 수정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예산 삭감으로 2천억 케냐 실링(약 2조2천억원)이 부족할 것이라는 재무부의 경고에 정부가 연료 가격과 수출세 인상 등을 추진하자 시위는 케냐 전역으로 확산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애당초 시위는 대체로 평화롭게 진행됐지만, 경찰이 최루탄과 물대포를 동원해 강경 진압해 200명 넘게 체포됐다. 이 과정에서 21세와 29세 청년 2명이 숨지기도 했다. 루토 정권이 재정법안 강행 방침을 굽히지 않자, 20일 시위대는 법안 2회독 중인 의회에 대한 점거를 시도했고 시위대는 재정법안 전체 폐기와 루토의 대통령직 사퇴를 요구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루토는 국가재정을 본궤도로 돌리는데 필요하다는 이유로 강력한 경제 조치를 하면서 국내 지지가 곤두박질쳤다"며 "많은 케냐인이 루토 정부가 수십 년간 이어져 온 고위층의 부정부패를 엄단할 기미가 없다고 느끼는 것도 그 이유가 됐다"고 진단했다.

높은 집값에 고금리, 고물가에 막대한 가계부채 등으로 민생은 파탄 직전이고 국가재정은 역대 최대 세수 펑크가 불 보듯 하는데도, 법인세와 종합부동산세, 상속세 대폭 인하 같은 '부자 감세'에 여념이 없고, 정부 재정을 목적도 불분명한 사업에 물 쓰듯 쓰며, 소득세와 부가가치세와 같은 '서민 세금'은 대폭 인상을 추진하는 '윤석열 한국'의 상황도 케냐와 오십보백보다.

 

케냐 수도 나이로비 도심에서 대대적 세금인상 내용을 담은 윌리엄 루토 정권의 재정법안이 의회를 통과한 데 대한 항의 시위가 벌어진 가운데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발사하고 있다. 2024. 06. 25 [(AP=연합뉴스]

디지털로 무장한 케냐의 Z세대가 시위 주도

"기존 질서를 흔들고 뒤엎는 방식으로 행동"

이번 케냐 시위의 최대 특징은 청년층인 케냐의 Z세대(1990년대 중후반∼2000년대 초반생)가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재정법안 거부, #의회 점령 같은 해시태크를 달고 서로 소통하면서 폭넓게 결집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일요일인 지난 22일 '트위터 스페이시즈'(Twtter Spaces)에서 6만 명이 모여 진행한 7시간의 마라톤 토론이었다. 이들은 온라인 플랫폼들을 활용해 시위 계획을 세우고, 기금을 모으고, 부상자를 위한 의료팀을 조직하고 있다.

제네바 소재 비영리 언론매체인 '더 뉴 휴머니타리안'의 파트릭 가타라 선임 에디터는 25일 알자지라 기고에서 "지금의 (케냐)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정치 행동을 조직하고 성과를 내기 위해 기존 질서를 흔들고 뒤엎는 방식으로 인터넷, 디지털 기술, 소셜 미디어 같은 첨단 도구를 활용한다"고 전했다. 또한 가타라는 "지금의 운동은 그동안 루토(대통령)가 마주했던 그 어떤 운동보다 훨씬 덜 위계적이고 훨씬 더 동등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케냐 나이로비 도심에서 세금 인상 법안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경찰의 물대포 차에 올라타고 반정부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4. 06. 25 [AFP=연합뉴스]

한편, 조 바이든 행정부는 케냐의 대규모 시위와 경찰의 유혈진압 사태에 우려 섞인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루토 대통령이 5월 22일 미국을 국빈방문해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미국의 주요 비(非)나토 동맹국(MNNA)으로 지정된 지 한 달여 만에 이런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친미국, 친서방 성향의 루토 정권이 흔들린다면 아프리카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를 저지하는 미국의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공산이 크다. 이에 뉴욕타임스는 "이날 케냐 수도를 휩쓴 혼란은 미국의 영향력이 빠르게 줄어드는 아프리카에서 미국의 강력한 우군인 윌리엄 루토 대통령을 단단히 끌어안으려는 바이든 행정부에 타격을 줬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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