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플라스티쿠스의 화양연화

꽃을 좋아하는 건 생존 본능에서 비롯

꽃은 주변에 먹거리가 있다는 징조이기에

페트병 뚜껑을 재활용한 '플꽃단추' 보면서

인류존속의 단초가 되지 않을까 소박한 상상

2024-06-18     신동진 공정귀촌
신동진 마을활동가

지난 몇 주는 꽃 속에서 지냈다. 자라섬 꽃축제에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했기 때문이다. 꽃을 보러 오며 형형색색의 꽃단장을 하고 오는 사람들, 그들의 밝은 모습들도 또 다른 꽃이었다.

난 평소 꽃가게를 지날 때마다 마음이 설레곤 한다. 꽃집 아가씨가 예뻐서? 대개 그렇기는 하지만 꼭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모두가 천사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노래 가사처럼 ‘세상 사람들이 모두가 천사라면 이곳은 천국이겠지, 우린 꿈을 꾸듯 언제나 행복하게 이리저리 날아갈거야’ 하는 신남과 흥분이 마음속에 파장을 만들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누군가에게 사랑과 기쁨을 전달하고, 또 누군가와는 슬픔을 나누기 위해 사용되는 꽃, 그 선한 마음이 산업을 만들고, 전 세계적으로 약 70조 원의 무역 시장을 만들어 낸다는 게, 그러한 강렬하면서도 아름다운 욕구에 인간이 서로 공감하고 이해관계가 일치하고 있다는 게 참 멋지고 신비롭지 않은가?

 

자라섬 꽃축제. 

‘듀센 미소’ 100%, 꽃을 보고 삶의 기쁨 느끼는 인간의 DNA

세계 화훼 시장의 50%를 점유하는 네덜란드는 인간의 아름다운 마음에 가장 크게 빚지고 있는 국가이리라. 개인적으로는 유럽 배낭여행을 할 때 튀르키예에 꽃을 수출하고 돌아가는 네덜란드 컨테이너 트럭을 무료로 얻어 타고 파리까지 갔던 꽃 같은 추억도 있다. 그때 꽃을 팔고 운반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참 꽃 같은 모양이다, 라고 느꼈던 기억이 난다. 의식주에 꼭 필요하지도 않고, 금방 시들고 마는 꽃에 소중한 의미를 담는 인간의 모습, 그리고 나를 화나게도 하고 슬프게도 하는 사람들도 꽃을 보며 예쁜 마음을 갖는다는 사실에 인간에 대한 신뢰가 다시 생기고, 실낱같은 사회적 연대의 끈을 다시 매보겠다는 희망을 품기도 한다. 꽃집을 지나칠 때 나의 설렘은 그런 희망이 만드는 파장일 것이다.

꽃을 보면 좋아하는 인간의 마음은 어디서 생겨난 걸까? 한 실험에 따르면 꽃, 양초, 과일이 든 상자를 선물로 받았을 때, 듀센 미소(도저히 인위적으로 지을 수 없는 자연스러운 미소. 프랑스의 심리학자 듀센이 관찰)를 짓는 비율이 꽃은 100%, 과일은 90%, 양초는 77%였다고 한다. 꽃에 대한 이러한 긍정적 반응은 본능적이고 선천적인 것이라고 한다. 왜 이 반응이 본능적이 된 것일까? 진화심리학자들은 과거 유목생활을 하던 인류가 이동을 하다 꽃을 발견하면 그 주변에 곡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수십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서 생존해 나갈 때 꽃이 있는 곳에 먹을 것이 있었다는 반복된 생존의 경험이 인간의 DNA 속에 박혀있는 모양이다. 꽃을 발견했을 때 ‘아, 이제 난 살았구나’ 하는 그 절정의 기쁨이 지금도 인간에게 전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봄이면 여기저기서 열리는 꽃축제를 가능하게 하는 이유가 수십만 년 전 입력된 생존 욕망의 결과이리라.

그렇게 원시의 고향을 찾은 꽃축제 관광객들, 마치 연어가 자신이 태어난 하천을 찾아오듯 그렇게 인간 안에 각인된 본성에 이끌려 찾아온 것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폭염 속에서 빨리 시들어 버리는 꽃과 쉬 지치는 관람객들을 보며 난 머지않아 닥칠 디스토피아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암울함을 함께 느꼈다. 땡볕 아래 지쳐 몰려다니는 관람객들이 마치 인류 종말을 다룬 재난영화 속 피난민처럼 보이는 착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내가 운영했던 체험 프로그램은 그 디스토피아와 관련이 있다. 플라스틱 업사이클 체험이었다. 재활용한 플라스틱으로 만든 꽃단추. 이름하여 ‘플꽃단추’다.

 

페트병 뚜껑 수거활동.

페트병 뚜껑을 재활용하여 '플꽃단추' 만들기.

꽃축제 한가운데서 산더미처럼 쌓인 투명페트병 떠올린 이유

비록 물성은 다르지만 역시 꽃이다. 페트병 뚜껑을 모아서 씻어서 갈아서 녹여서 금형을 떠서 만든 꽃단추다. 2년 동안 애써 길러서 피운 꽃이다. 페트병 뚜껑 수거함을 마을에, 전철역에, 관광지에 설치해 모으고, 마을 어르신들이 마을회관에 오실 때 집에 있는 페트병을 갖고 오시도록 해서 하나 둘 모은 뚜껑들이다.

페트병 뚜껑을 모으는 것은 투명페트병의 분리배출을 활성화하기 위한 목적이기도 하다. 2020년 12월부터 공동주택을 시작으로 투명페트병 분리배출을 시작했고 2022년 12월부터는 분리배출 위반 시 과태료를 부과해도 여전히 투명페트병 분리수거율은 높지 않다. 2022년 기준 투명페트병 생산량 대비 별도 수거량은 약 24%에 불과하다. 자판기처럼 생긴 투명페트병 전자식 수거 장비가 설치되기도 하지만 가격이나 사용 편의성 등의 문제로 가난하고 고령자가 많은 농촌에 적용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투명페트병 재활용률은 떨어지는 데 재활용률을 높이라고 하니 재활용 페트병을 외국에서 수입하는 일도 생긴다고 한다. 탄소배출을 줄인다고 하면서 오히려 더 늘리는 역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투명페트병 분리배출은 왜 잘 안 될까? 전국에 선별장 341곳 중 투명페트병 별도 선별시설을 갖춘 곳은 57곳으로 16.7%(2022년 기준)에 불과하다. 분리해서 배출해도 섞인다는 얘기다. 투명페트병 1kg은 500원에 좀 못 미친다. 낮은 가격에 비해 부피는 크다. 모아놓은 투명페트병을 압축해서 수거 트럭 한 대에 가득 실을 정도의 양은 모아놓아야 수거 트럭을 부를 수 있다. 때문에 보관의 비용도 발생한다. 영리를 보고 달려들기 쉽지 않은 구조다. 페트병 뚜껑으로 업사이클 제품을 만드는 것은 투명페트병의 재활용 수익률을 높여 분리배출과 수거가 지속가능한 농촌형 자원순환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

인류의 재앙으로 변한 위대한 발명품 플라스틱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이었던 플라스틱은 탄소배출, 환경오염, 생명파괴의 주범으로 이제 가장 위험한 발명품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만장자처럼 소비하라는 이커머스 기업들의 주술에 걸린 소비자들의 구매품들도 플라스틱이 아닌 것이 없을 것이다. 1주일에 신용카드 1개 정도(5g)의 플라스틱을 먹는다는 인류, 이제 미세플라스틱이 모유를 통해 유아에게도 전달되고, 태아의 태반에서도 플라스틱이 발견된다고 한다. 이렇게 자녀에게 전달된 플라스틱은 신경발달장애와 소아비만 등을 일으킨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가히 호모 플라스티쿠스의 탄생이다. 꽃을 보며 생존의 희망을 가졌던 호모 사피엔스처럼, 기후재앙 시대를 맞이한 지금의 호모 플라스티쿠스는 ‘플꽃’을 보며 인류 존속의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나조차도 그런 희망을 가지지 않는데 어찌 다른 이에게 그 희망을 바라겠는가. 그저 할 일을 할 뿐이다.

 

쑥갓꽃.

올해 처음 쑥갓꽃을 봤다. 참 예쁘다. 50대 후반에 접어들어서야 이 꽃을 보다니 나 스스로가 참 안됐다 싶은 마음도 든다. 이 꽃을 보고 쑥갓을 따 먹은 초기 인류가 이 꽃을 보는 기쁨은 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을 것이다. 이 꽃을 보게 된 이유는 씨앗 받는 농사, 꽃 보는 농사를 짓고 있기 때문이다. 토종씨앗으로 디스토피아를 대비하며 지은 농사 덕분이다. ‘플꽃’이 기후재앙의 흐름을 뒤집을 희망을 만들어 내지는 못해도 그냥 ‘플꽃’을 키웠던 것처럼, 토종씨앗 농사도 그냥 이렇게 그저 하다 보면 얻는 기쁨이 있다. 그 덕에 수십만 년 동안 씨앗으로는 이어져 왔지만 사람이 외면했던 기쁨의 맥락을 알아차렸고 다시 이어가게 됐다. 내가 그 먼 인류와 미미하게나마 교감을 나누는 기쁨을 얻게 되었다. 그저 내가 할 일을 할 뿐이다.

각자도생의 꽃만 피우려는 인간이 쑥갓꽃보다 나을까?

예초기로 풀을 베며 드는 생각이 있다. 이 풀은 어느 날 이렇게 한순간에 훅 베어질 것을 알고 기를 쓰고 자라는 걸까? 아마 아닐 것이다. 언젠가 꽃을 피우리라 하며 그저 주어진 몫을 할 뿐이다. 인간도 그런 만물 중 하나라면 그 풀처럼 어느 순간 훅 베어진들 무엇이 이상한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해왔지만 지금의 기후재앙적 상황에서도 과거 삶의 관성을 끊지 못하는, 아니 오히려 더 확장까지 해대며 각자도생의 꽃을 열심히 피워보려는 인간이 그 풀보다 못한 종이라고 한들 이상할 것이 없다. 예전과 다른 삶을 살려 노력한 덕에 지금이나마 쑥갓꽃을 보는 행복한 순간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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