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은 개뿔? 4·10 총선 뒤 되레 막나가는 '노답 용산'
검사 위에 김건희…방탄 인사하더니 대놓고 외부 활동
김건희 컨트롤 할 대통령실은 낙선자 재취업센터 전락
탄핵 부르는 대통령…채해병 특검 거부하고 적반하장
광장에 몰려 나오는 시민들…촛불이 횃불될까
4·10 총선 당선증의 잉크도 마르기 전이지만, 대통령실은 이미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을 잊어버린 듯한 모습이다. 명품백 수수, 주가조작 의혹으로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김건희 씨는 대대적인 검찰 인사로 수사팀들을 망가뜨린 뒤 단독 행보를 시작했고, 윤석열 대통령은 본인과 관련된 채해병 특검법을 거부했다. 이러한 가운데 대통령실은 총선 낙선자를 주요 보직에 재취업시켜주는 것도 모자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인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을 비서관으로 발탁했다. 총체적 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①검사 위에 여사, 김건희
김건희 씨는 지난 16일 한-캄보디아 정상 부부 오찬에 등장, 5개월 만에 공개활동을 재개한 뒤 점점 거침 없는 모습이다. 지난 19일엔 윤 대통령과 함께 불교계 행사에 참석하면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고, 지난 21일엔 우크라이나 아동 그림전을 관람하며 단독 행보까지 했다. 그렇지만 국민적 공분을 산 명품백 수수, 주가조작 등과 관련한 사과나 유감 표명은 전혀 없었다. 대신 대통령실은 불교계 사리 반환, 우크라이나 어린이 그림 전시 등이 모두 김건희 씨의 역할 덕분이라며 '건비어천가'에만 열을 올렸다. 민심과는 한참 동떨어졌다.
김건희 씨가 다시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지난 16일은 공교롭게 이창수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의 취임식날이었다. 검찰 내부에 피바람이 불고 난 직후였다. 지난 13일 서울중앙지검장 교체를 포함한 검찰 고위직 인사 단행의 핵심은 김건희 씨에 대한 수사였다. 김건희 씨 명품백에 대한 신속 수사를 지시했던 이원석 검찰총장은 검사 인사 문제에서 완벽하게 '패싱' 당했고, 김건희 씨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장과 수사를 담당하는 중앙지검 1차장, 4차장까지 모두 교체됐다. 느닷없고 대대적인 인사 단행의 배경은 그야말로 '김건희 방탄'이었다. 야권도 강도높게 비판했다.
그러나 마치 비판 여론은 의식도 하지 않는 듯, 혹은 이런 게 바로 권력이라는 듯 김건희 씨는 '친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취임한 날에 맞춰 모습을 드러냈다. 공개된 사진에서도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이었다. 김건희 씨의 눈치도 보지 않는 행보에, 보수 논객인 <동아일보> 김순덕 대기자마저 자신의 칼럼에서 "(…) 5공화국 때 나돌던 유행어가 '육사 위에 여사'였다. 신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여사를 빗대 나온 말이다. 요즘 야권에선 '검사 위에 여사'라고 조롱한다"라고 썼다.
그럼에도 김건희 씨 행보는 잠잠해질 기미가 없다. 오히려 더 과감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대통령에게 거부 당한 '김건희 특검법'은 22대 국회가 개원하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 원 구성을 하더라도 다시 본회의를 통과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미 10번의 거부권을 행사한 대통령은 온 국민이 보는 기자회견에서 '김건희 특검법'에 또 거부권을 행사할 거라고 못 박았다. '명품백'을 수사하는 검찰은 최재영 목사가 김건희 씨에게 선물한 책을 아파트 분리수거장에서 주웠다는 주민은 소환했지만, 정작 당사자인 김건희 씨는 소환조차 못하고 있다.
②낙선자 재취업센터된 용산
하지만 김건희 씨를 '컨트롤' 해야 할 대통령실은 그럴 의지뿐 아니라 능력조차 없는 것처럼 보인다. 윤 대통령은 총선 참패 직후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들어 국정을 쇄신하겠다"고 했지만, 쇄신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줄 인사는 4·10총선 이전보다 더 후퇴해 '최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통령실 비서실은 총선 다음 날 비서실장과 정책실장, 수석비서관 등 전원이 사의를 표명하며 쇄신 의지를 보였지만, 최근 대통령실 인사는 사의 표명이 어디까지나 '보여주기 쇼'에 불과했음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윤 대통령이 비서실장에 기용한 정진석 의원, 정무수석에 기용한 홍철호 전 의원은 이번 총선에서 낙마한 인사들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통령은 '심복'으로 불린 이원모 전 인사비서관을 신임 공직기강비서관에, 전광삼 전 시민소통비서관을 신임 시민사회수석에 각각 임명했다. 이들은 모두 대통령실에서 근무하다 총선 출마를 위해 사직했지만, 선거에서 패배하거나 공천 탈락했다. 총선 출마로 퇴직한 전직 비서관들의 사직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대통령실로 다시 불러들인 것은 이 정부가 얼마나 민심과 괴리됐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각 수석실의 비서관 자리도 마찬가지다. 정무수석실 비서관 자리엔 '친윤'으로 불리는 국민의힘 이용 의원, 김장수 전 국회부의장 정무비서관 등이 기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도 모두 지난 총선에서 낙선하거나 공천에서 탈락한 인사들이다. 오죽하면 <조선일보>조차 사설로 대통령실 인사에 대해 '회전문 인사'라고 비판할 정도다. 여의도에선 대통령이 '저출생대응기획부' 신설을 공언하자, 초대 장관을 노리며 '셀프 러브콜'을 부르는 낙선 국회의원의 이름까지 돌고 있다. 용산이 '낙선·낙천자 재취업센터'가 됐다는 비아냥을 듣는 이유다.
그러나 변화는 없고, 후퇴만 보인다. 박근혜 정부에서 '문고리 3인방'으로 불렸던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을 시민사회수석실 3비서관에 발탁했다는 소식은 도대체 대통령이 어떤 세상을 사는지 의문이 들게 한다. 야권은 기가 찬다는 반응이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이날 MBC라디오에서 정호성 전 비서관 발탁에 대해 "기가 막히다" "박근혜 정권을 망쳤던 사람 중 한 명이고, 윤 대통령 자신이 수사하고 기소한 사람 아니냐"면서 "그 사람의 특별한 능력이 있거나 무슨 연고가 있나본데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③'탄핵' 부르는 채해병 특검 거부
무엇보다 이 모든 문제의 핵심에 있는 대통령 자신은 채해병 특검법으로 막다른 골목에 몰린 형국인데, 적반하장이다. 대통령은 지난 21일 국민 다수가 찬성하는 채해병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지만, 그 이유는 더 가관이었다. 대통령의 뜻을 대신 전한 정진석 비서실장은 수사기관이 수사 중인 사안이고, 야당이 특별검사를 추천하는 게 불공정하며, 특검법의 언론 브리핑 조항은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독소조항이라는 등의 이유를 들어 거부권 행사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모두 윤 대통령이 검사 시절에 용인했던 일들이다. ☞ 관련 기사
대통령 자신이 수사팀장을 맡았던 '최서원(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개입 의혹 특검'은 공정성을 위해 여당의 추천권을 배제했고, 수사기관이 수사 중임에도 수사의 객관성·공정성을 위해 특검을 추진했으며,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언론에 브리핑까지 했다. 대통령 자신이 검사 시절에 했던 특검 수사는 모르쇠면서, 자신과 관련된 특검법은 '위헌소지' '독소조항' 운운하며 거부권을 행사하는 게 과연 정당한 것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세간에서는 자신의 수사를 막기 위해 채해병 특검법을 거부한 대통령을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 비유하기까지 한다. 1974년 스스로 권좌에서 물러난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 위기에 몰린 건 도청 때문이 아니라 수사담당 특별검사를 해임한 사법방해 행위 때문이었다. 권력 수사를 하고 있는 검사를 좌천시키고, 자신의 수사와 관련된 특검법을 막아 사법방해를 한 윤 대통령을 닉슨에 비유하는 게 무리로 보이진 않는다.
여기에 최근 채해병 사건의 스모킹 건이 될 'VIP 격노'와 관련해 해병대 간부의 증언이 추가로 나오고, 물증인 녹취 파일까지 발견됐지만,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미동도 없다. 지난 총선 기간 '도주 대사'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국내 소환하면서 민심을 듣는 정당이라고 홍보했던 국민의힘이 국회 재의결에서 이탈표가 나올까 표 단속만 궁리하는 모습에서 국민은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권력이 4·10 총선과 다르지 않다는 것만 본다.
거리의 촛불, 광장의 횃불될까
대통령실은 4·10총선 이전보다 더 심한 후퇴를 거듭하며 집권 후반기를 대통령 자신과 부인의 '방탄'에 올인하는 모습이지만, 국민들의 저항에 직면할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내일(25일) 야당과 시민사회는 오후 3시부터 서울역 4번 출구 앞에서 범국민대회를 예고했다. 집회는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진보당·기본소득당·새로운미래·정의당 등 야 6당뿐 아니라 해병대예비역 연대, 정의자유해병연대, 해병대사관 81기 동기회 등도 동참하는 만큼 대규모로 열릴 전망이다. 아울러 같은 날 오후 5시 시청역~숭례문 앞 대로에서는 '윤석열 퇴진 김건희 특검 5월 전국집중 촛불대행진'도 열린다.
그러나 4·10 총선 이후 행보를 종합해 본다면, 서울역에 몰려나올 수만 명의 국민의 목소리에 용산이 귀를 기울일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6명 이상이 특검 거부권 행사시 탄핵이 필요하다고 응답했지만, 대통령실은 이를 귀담아 듣지 않은 모습이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범국민대회 포스터를 올린 뒤, "끝내 국민을 거역한 무도한 정권에 책임을 묻고 해병대원 특검법을 반드시 통과시키기 위해 주권자의 힘을 보여달라. 어떤 거짓도 진실을 이길 수 없음을, 어떤 권력도 국민을 이길 수 없음을 일깨워 달라"며 "국민과 함께 무너진 국가의 책무를 바로 세우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