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혹한 생존의 시대, 여성은 어떻게 전사가 되는가

[오동진 칼럼] 생각과 다른 영화 '매드 맥스 사가'

2024-05-19     오동진 영화평론가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오동진 영화 평론가

예의 주시돼 왔던 영화 <퓨리오사 : 매드 맥스 사가>는 '생각과는 다른 영화'이다. 이 '생각과는 다르다'는 것 때문에 어떤 사람은 그래서 좋다고 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그래서 기대보다 못하다고 할 것이다. 호오(好惡)가 엇갈릴 것이란 얘기다. 그것도 극명하게. 이는 곧 이 영화가 할리우드형(型) 대중영화라기보다는 호주 출신의 대가급 감독인 조지 밀러의 마니아(mania)형 영화 쪽에 가깝다는 것을 보여 준다. 흥행은 숨고르기를 하며 진행될 것이다. 현지 시간 지난 15일에 칸 영화제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된 이후 평점 별 넷도 나왔다.('가디언'지, 피터 브래드쇼)

 

액션보다 ‘이야기’에 방점 둔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 프리퀄

영화의 초점은 제목대로 이 영화가 '사가(saga)'라는 점에 있다. 사가는 대하소설이란 뜻이 있다. 서사가 장대하다는 것이다. 모두들 이 영화가 전편인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처럼 무자비하다 싶을 만큼 난폭하고도 극적인 액션 장면들이 과도하게 넘쳐 날 것으로 생각했지만, 노회한 감독 조지 밀러는 예상을 깼다. 비중과 방점을 '이야기'에 두되 그것도 매우 전통적인 방식의 전개 구조를 차용했다. 한 인물의 성장기를 아이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추적해서 기록하는 식이다.

<퓨리오사 : 매드 맥스 사가>는 공표된 바와 같이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의 프리퀄(prequel), 즉 전편 같은 속편이다. 뒤에 나왔지만 전편에서 다룬 내용의 앞 부분, 곧 전사(前史)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이번 영화는 전편에서 여전사로 나온 인물 임페라토르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의 기구한 성장사를 다룬다. 단순한 성장사가 아니다. 사실 전편에서는 이 인물에 대한 의문이 많았고 왜 이 여전사가 이런 캐릭터가 됐으며 또 왜 이런 행동을 하게 됐는지, 그 동인(動因)이 드러난 것이 하나도 없다. 퓨리오사가 잭(톰 하디)과 벌였던 드라마틱하고 격렬한 액션 씬이 사람들의 눈을 그 모든 이야기에서 돌리게 만든 셈이다.

그 중 가장 큰 궁금증은 이런 것들이다. 퓨리오사의 왼쪽 팔은 언제 잘려 나간 것인가. 그녀의 팔을 자른 자는 누구인가. 독재자 임모탄 조(휴 키스 번, 이번 영화에서는 러치 험)가 그런 만행을 저질렀을까? 더더군다나 독재자 임모탄은 어떻게 모든 권력을 쥐게 되었는가. 그는 어떻게 물과 가스, 무기를 독점하고 문명 멸망 이후의 생존자들을 지배하고 통치할 수 있게 되었는가. 무엇보다 퓨리오사는 어쩌다가(전혀 그런 인물로 보이지 않을 만큼 순수하고 강인한 의지를 지닌 캐릭터로 보이기 때문에) 임모탄 같은 그로테스크한 인물의 근위대장이 되었는가. 퓨리오사가 구해 주게 된 잭(톰 하디, 이번에는 톰 버크)과는 과연 어떤 관계인가. (두 사람은 서로 생존을 돕지만 그 이상의 '썸'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 혹시 둘은 과거 연인 관계였을까?

 

왜 퓨리오사는 모성을 죽이는 자들을 잔혹하게 응징하려 했나

프리퀄은 그 둘의 관계를 풀어낸다. 또 전편에서 퓨리오사가 임모탄으로부터 벗어나 그의 임신녀들, 임모탄이 아들을 얻겠다며 강제로 임신시키고 아이를 낳으면 버리거나 죽이는 씨받이 여자들을 데리고 향하는 그곳(=고향)은 무엇이고 어떤 곳인가. 1편 후반부에 등장하는 퓨리오사의 이모나 고모처럼 보이는 우아한 여전사들은 과연 누구인가 등등. 그리고 퓨리오사는 왜 이마에 검은 탄(炭)을 칠하고 다니게 됐는지까지. 1편의 액션이 보여준 장막의 연기를 거둬내면 해명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 셈이다. 그런데 이 모든 궁금증의 하일라이트는 퓨리오사의 팔이 뜯겨나가는 부분이다. 이번 영화는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춰 강렬하게 이야기를 몰아간다. 영화는 이 장면에서부터 가속페달을 밟는다. 영화가 전반보다 중반 이후가 좋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이다.

어쩔 수 없이 영화의 초반부 약 40분은 다소 장황하고 지루하다. 전체 러닝 타임은 148분이다. 앞 부분에서 설명이 길어진 것은 퓨리오사의 어린 시절(알릴라 브라운)이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굳이 이런 식 말고 어느 정도 성장한 퓨리오사(안야 테일러 조이)로 시작해 어린 시절은 플래시 백(flash back), 곧 회상장면으로 중간중간 삽입했어도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할 거면 굳이 원래 배우 샤를리즈 테론을 버리면서까지 안야 테일러 조이로 교체하지 않아도 됐다는 지적도 맞는 얘기이다.

조지 밀러는 이 부분에서 선택의 갈림길에 섰을 것이고 다소 이야기가 길어지더라도 퓨리오사의 행동 동기, 그 복수와 분노의 이유를 상세하게 그려나가는 쪽으로 방향타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퓨리오사의 어머니는 가스(연료)를 장악하고 있는 바이커 군단의 폭군이자 임모탄의 경쟁자 디멘투스(크리스 헴스워스. 맞다. <토르> 시리즈의 토르 역을 맡은 그 배우)에게 잔혹하게 살해 당했다. 퓨리오사의 모든 이야기, 복수를 위한 음모와 위장 잠입 등 모든 이야기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모성의 상실 그리고 그것을 회복해 나아가는 서사인 셈이다. 전편의 퓨리오사가 왜 임신한 여자들을 그토록 구하려 애를 썼는지도 비로소 이해가 된다. 세상의 모성을 죽이는 자들은 잔혹하게 응징 당해야 한다. 그것이 퓨리오사의 모토이다.

 

인간을 저주하며 동시에 희망의 존재로 여기는 감독의 종말론

프리퀄을 보면 문명 붕괴 이후의 세상에서 어떤 세력판도가 펼쳐졌는지 대충 그 지도를 엿볼 수 있다. 임모탄이 권력을 다 쥐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임모탄은 자신의 영역이자 영토인 시타델을 중심으로 물을 독점한 상태이고, 디멘투스는 바이크족을 데리고 다니며 가스연료를, 또 누구는 무기나 농장 등을 장악하고 서로 권력 싸움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퓨리오사는 그 모든, 식인종같이 변해 버린 인간 말종들 사이에서(임모탄은 호스를 단 마스크를 한 채 살아간다), 무엇보다 온통 황무지와 사막만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전설로 알려진 ‘녹색의 땅’ 출신이다.

그녀의 오른쪽 팔에는 그곳으로 가는 지도가 그려져 있고 디멘투스 일당은 그 땅이 어디냐며 퓨리오사의 엄마를 고문해 죽인 후 그녀를 추적하며 괴롭힌다. 퓨리오사는 자신의 눈앞에서 엄마를 죽인 디멘투스를 죽이기 위해 임모탄의 휘하에 들어 간다. 적을 또다른 적의 힘으로 공격한다는 식의 전법이다. 임모탄이 1편과 같은 제1의 권력을 쥐기까지(물과 연료, 무기 모든 소스를 장악하기까지)는 그의 근위대장 퓨리오사의 재능이 컸다. 퓨리오사에게는 다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

원래의 <매드 맥스> 시리즈는 호주에서 1편이 나온 1980년에도 1980년 현실이 아닌 가까운 미래 얘기를 다룬 것이었다. 맥스 로카탄스키라는 고속도로 순찰대원(멜 깁슨)이 자신이 아내를 강간 살해한 폭주족을 난도질해 응징한다는 이야기이다. 이때 드러낸 조지 밀러의 종말론적 세계관은 3편 <매드 맥스 썬더돔>(1985)부터 급격한 디스토피아, 곧 문명 붕괴 직후의 상황으로 이야기를 변이(변질이 아닌)시켰다. 30년 후에 나온, 이번 영화의 전편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에는 세월이 가는 동안 극대화 된 CG와 특수효과 기술, 조지 밀러의 노련하고 고양된 세계관이 모두 덧칠해져 대형 SF종말영화로 거듭났다. 사람들은 이 전설적 영화의 전이에 열광했다.

 

조지 밀러의 종말론은 다분히 요한계시록스럽다. 인간에 대한 그의 저주가 읽히며 한편으로는 인간은 결국 희망의 존재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는 반대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다. 희망이란, 사라지지 않는 사랑의 마음에서 나올지도 모른다. 퓨리오사와 잭(톰 버크)은 격렬한 싸움 속에서 둘 간의 우정과 애정을 확인하지만 늘 사랑보다 생존이 먼저인 관계로 매듭이 잘 지어지지 않을 뿐이다.

남성 서사를 완벽하게 여성 서사 영화로 바꾼 '정치적 올바름'

분명한 것은 이번 작품으로 조지 밀러는 1980년의 1편에서 보여 준 남성 서사의 영화를 완벽하게 여성 서사의 작품으로 그 존재를 이전시켰다는 것이다. 그 점이 좋기도 하지만 정치적으로 올바르기도 하다. 잔혹한 죽음의 시대, 생존의 위기에 몰린 세상에서 여성들은 어떻게 저항하고 또 어떻게 전사가 되어 가는가를 보여 준다. 그 점이야말로 이 영화가 이룬 가장 위대한 성취이다.

뭐, 초반에 다소 지루할 수 있지만 좀 참고 기다리면 된다. 그 사이 이 영화가 디스토피아적 감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극단적으로 튜닝(개조)한 차량들을 구경하는 맛이 있다. 비행기 엔진을 얹은 16기통 차량까지 등장한다. 임모탄의 전용 차량이라는 기가 호스, 그의 전투군단 차량들은 바퀴의 크기가 차체의 몇 배인 것들이어서 그 자체가 괴물처럼 보인다. 종말의 시대가 보여 주는 왜곡된 인간의 욕망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영화 <퓨리오사 : 매드 맥스 사가>에는 그런 장면들이 넘쳐난다. 어쩌면 지금의 시대를 역설적으로 암시해 내고 있는 셈이다.

 

1980년 작 '매드 맥스' 1편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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