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공무원 정치기본권 보장'도 총선 결과에 달렸다
더민주연합, 총선 공약으로 공식화…야권 공감대
근무시간 외 정치 표현, 정당 가입‧후원‧출마 보장
교사 출신 백승아 앞장…"서이초 사태 겪으며 절감"
"당연한 기본권인데 OECD 중 유독 한국서만 박탈"
한국노총 설문에 총선 후보 응답자 대부분이 '동의'
노인 의료돌봄, 아동·청소년 기본소득 공약도 주목
교육계와 노동계를 비롯해 진보 진영에서 오래전부터 요구해온 교사 및 공무원의 정치기본권 보장이 22대 국회에서 실현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범진보 통합비례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이 이를 총선 공약으로 공식화했으며, 조국혁신당을 포함한 다른 야당들도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상태다. 총선에서 야권이 크게 승리할수록 국가공무원법, 공직선거법 등 관련 법률 개정을 위한 동력도 더 강해질 전망이다.
더불어민주연합 백승아 공동대표는 김윤‧박홍배‧서미화‧한창민 후보 등과 함께 2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2대 국회에서 교사와 공무원의 정치기본권을 보장하는 3대 입법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근무시간 외 정치 표현의 자유 보장 ▲정당 가입 및 정치 후원 보장 ▲공직선거 출마 보장 등을 제시했다.
백승아 공동대표는 현직 교사로 재직하며 교사노동조합연맹 사무처장, 초등교사노조 수석부위원장을 지낸 인물이다. 지난 1월 민주당 인재로 영입되면서 교사직에서 의원면직 됐는데, 대한민국에서 교사는 정치적 중립을 이유로 정치 활동을 일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 영입 당시 교사노조연맹과 초등교사노조는 환영 논평을 내고 교사의 정치기본권 입법화를 촉구하기도 했다.
백 공동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저는 작년 서이초 사태를 겪으며 현실에 맞지 않는 교육 관련 입법이 얼마나 교육을 망가뜨려 왔는지, 교사를 무력하게 만들어왔는지 실감했다. 그래서 교육 현실에 맞는 교육 입법을 위해 교직을 버리면서까지 국회 진출을 결심했다"면서 "그런 만큼 교사 공무원의 정치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입법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 중립성은 정치와 교육의 종교 중립성과 마찬가지로 근무시간 중에만 요구돼야 한다. 다시 말해 직무 밖, 근무시간 외 정치 활동의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며 "이것이 모든 선진국이 채택하고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이다. OECD 국가 중 유독 우리나라의 교사와 공무원들만 정치기본권을 박탈당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또 "대의민주주의에서 정당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시민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정치적 기본권"이라며 "정당 가입과 후원 금지로 150만 공무원과 교원의 목소리는 정당의 정책에 전혀 반영될 수 없게 만들어 민주주의 발전을 막아왔다. 다양한 방식으로 정치적 활동이 가능한 대학교수와 비교했을 때도 형평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교사의 공직선거 출마를 금지함으로써 교육입법, 교육정책, 교육예산, 교육행정을 다루는 각급 의회, 교육자치기관에 유·초·중등 교육 전문가의 진출이 막혀 있고 필요한 전문성이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면서 "독일의 경우 의회에 진출한 교원의 비율이 20%를 넘는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거대 정당의 후보로 출마하는 현직 교사 출신은 제가 처음이다. 휴직만으로 출마를 보장하는 선진국들의 경우 전문성과 현장성을 갖춘 교사 출신 의원들이 현실에 맞는 제대로 된 입법과 정책을 만들고 있다"고 한국 현실과 해외 사례를 비교했다.
백 공동대표는 "이제 60여 년간 공무원·교원의 정치적 기본권을 막아온 악법은 철폐돼야 한다. OECD 국가 중 우리나라처럼 공무원·교사가 SNS상 정치 기사에 '좋아요'를 눌렀다고 처벌받는 나라는 없다"며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조차 박탈당한 교사와 공무원의 시민권을 시급하게 회복해야 한다. 교육현장의 실정에 맞는 교육입법을 위해서라도 교사의 정치기본권은 보장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최근 한국노총 측이 여야 총선 후보들을 상대로 교사와 공무원의 정치기본권 보장에 대한 동의 여부를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155명의 대부분인 96.8%가 동의한다고 답했다. 특히 민주당 이재명 대표,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원장,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 녹색정의당 김찬휘 공동대표 등이 각 당을 대표해 적극적인 동의 의사를 밝혀 22대 국회에서 현실화할 수 있다는 기대를 높이고 있다. ☞ 한국노총 관련 자료
한편 더불어민주연합은 이날 노인 의료돌봄 관련 공약도 발표했다. 장기요양보험의 재가급여를 지금의 2배로 확대한다는 게 골자다. 요양시설 대신 집에서 의료돌봄 서비스를 받는 노인들에 대한 요양보호사의 재가돌봄 시간을 기존 4시간에서 OECD 평균 수준인 하루 8시간까지 확대한다는 구상 등을 담고 있다.
더불어민주연합 의료개혁특위(상임공동위원장 김윤‧임미애‧전종덕‧허소영)는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에서 "노인 인구 천만 시대를 목전에 두고 있다. 초고령화 사회에서 어르신들의 건강하고 존엄한 노후를 위한 '노인 의료돌봄' 개혁이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라며 "'간병 살인' '돌봄 독박' 등 대한민국 노인 의료돌봄의 현실은 암울하다. 이대로 방치하면 대한민국 노인 의료돌봄은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노인 10명 중 7명은 집에서 노후를 보내고 싶어 하지만 노인 10명 중 5명은 요양병원·요양시설에 맡겨지고 있다"며 "재가 의료돌봄 서비스가 턱없이 부족하고 집에서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가정 호스피스도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현재도 의료돌봄에 적지 않은 비용을 투입하고 있지만 그 돈들이 '적시적소'에 쓰이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면서 "요양병원·요양시설에 입원하지 않아도 될 어르신들이 재가 의료돌봄 서비스를 받도록 하고 그만큼의 재정을 재가급여로 전환하면 추가 재정 확보 없이 재가급여를 2배 늘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위는 이와 함께 ▲'노인주치의' 의원 1만 개, '노인의료돌봄센터' 5만 개를 설치하고 여기에 '노인단골약국' 제도 결합 ▲요양병원·요양시설을 '보호형'에서 존엄한 노후의 삶이 보장되는 '주거·생활공간형'으로 전환 ▲미국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간호·간병 인력을 2배로 확대 ▲요양병원 간병비 급여화 전면 시행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특위는 의사 증원 문제와 관련해 윤석열 정부에 '민-의-당-정 의료개혁 4자 협의체'를 구성해야 한다는 제안도 내놨다. 윤 대통령이 증원 숫자만 고집하는 '총선용 꼼수'에 매몰된 나머지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진료대란 등의 해결을 위한 의료개혁 로드맵은 실종됐다며 더 늦기 전에 밀실이 아닌 4자 협의체를 통해 '의료개혁 10년 로드맵'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위는 "의대 증원은 반드시 필요한 과제이며 국민 모두의 염원이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의대 증원을 총선용 표몰이 수단으로만 앞세웠고 국민과 환자의 생명을 볼모로 삼았다"면서 "결국 정부와 의사들의 대립은 점점 파국으로 치달았고, 지역·필수·공공의료 해결이라는 의료개혁의 본질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민·의·당·정 의료개혁 4자 협의체'를 즉시 구성해 합리적·실질적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전했다.
더불어민주연합은 전날 '아동·청소년 기본소득' 공약도 발표한 바 있다. 2023년 합계출생률이 0.72명(4분기 0.65명)까지 떨어진 초저출생 시대에 인구 소멸을 막을 비상 대책으로 ▲초등학교 취학 전 0세부터 7세까지 아동에게 월 50만 원 ▲8세부터 24세까지 청소년과 사회 초년생에게 월 30만 원을 조건 없이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기본소득당 대표이기도 한 용혜인 공동상임선거대책위원장은 1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기본소득은 모든 사회 구성원에 조건 없이 지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초저출생 사회의 위기와 재정 제약이라는 현실을 감안하면 만 24세 이하 아동과 청소년으로 범위를 좁혀 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동청소년 기본소득이야말로 인구 위기, 지역소멸 위기 앞에서 충분히 초당적 합의가 가능한 사회적 투자이자 비상 대책"이라며 "현 재정‧조세 체계의 큰 조정과 변화 없이도 우리 사회가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아동청소년 기본소득의 소요 재정은 연 44.5조 원 규모로 추정된다. 이는 아동수당, 부모급여 등 이미 확보된 현금 지원성 저출생 예산의 조정·통합을 통해 마련할 수 있으며,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부자 감세만 원상 복구해도 추가 재정 부담 없이 당장 시행할 수 있다는 게 더불어민주연합의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