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섭 공무귀국을 "자진귀국"이라며 '여론 물타기'
대통령실·한동훈, 수사협조하는 것처럼 입맞춰
공수처장 공석에 핵심 피의자 조사도 안 했는데
일회성 조사 받아도 유의미한 결과 내기 어려워
황 수석 테러 발언에 유감 표명도 없는 대통령실
진정성 의심돼…수도권 위기론에 눈가리고 아웅
[기사보강 : 오후 3시 50분]
윤석열 대통령이 20일 MBC 기자에게 ‘회칼 테러’ 발언을 한 황상무 시민사회수석의 사의를 수용한 가운데, 대통령실이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핵심 피의자인 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조만간 일시 귀국한다고 전했다. 사안의 본질을 피해가기 위한 전형적인 ‘꼬리자르기’ ‘여론 물타기’로 해석된다.
대통령실 대변인실은 이날 오전 기자들에게 윤 대통령이 황 수석의 사의를 수용했다고 짧게 공지했다. 지난 14일 MBC 등 대통령실 출입 기자들과 오찬에서 1980년대 언론인 회칼 테러 사건과 5·18 민주화운동 배후 의혹 등을 언급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에 휩싸인 지 엿새 만이다.
황 수석이 언제 윤 대통령에게 자진 사퇴 의사를 전했는지는 전해지지 않지만, 전날 국무회의에 황 수석이 불참하면서 정치권에선 거취 고민을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형식은 대통령의 사의 수용이지만, 사실상 대통령실 차원에서 정리했다고 보는 편이 합당해 보인다.
앞서 지난 18일 “특정 현안과 관련해 언론사 관계자를 상대로 어떤 강압 내지 압력도 행사해 본 적 없다”고 주장했던 대통령실이 이틀 만에 황 수석의 사의 수용을 밝힌 것은 수도권 ‘정권 심판론’을 의식한 조치로 해석된다. 총선을 3주 앞두고 이 대사의 ‘도피성 출국’과 황 수석의 ‘회칼 테러’ 발언까지 겹치면서 서울에서 10% 이상 지지율이 빠지자 부정여론 확산을 막기 위해 황 수석 사의 수용으로 ‘꼬리자르기’ 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수석비서관이 부적절한 언행으로 물러났음에도 대통령실이 이에 대한 사과나 유감 표명이 전혀 없었다는 점은 사안을 오로지 정치 공학적으로만 접근했다는 방증이다. 진정성있는 조치로 보기 어렵다.
황 수석은 ‘회칼 테러’ 발언이 문제가 되자 지난 16일 주말 아침을 틈타 개인 차원에서 ‘입장문’을 배포하고 “저의 언행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 사과드린다”고 했지만, 5·18 배후설에 대한 사과는 단 한 마디도 없었다.
황 수석은 기자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5·18 배우설 이외에도 이승만 찬양 등 부적절한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이날 황 수석 사의 발표 직후, 이종섭 호주 대사의 일시 귀국 소식이 대통령실발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20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이 대사가 조만간 국내에 외교안보 관련 회의 일정이 있어 들어올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 선거대책위원장도 입을 맞춘 듯 이날 오전 경기 안양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회의에서 “이종섭 호주대사, 곧 귀국한다”며 “총선을 앞에 두고 절실하게 민심에 반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사의 귀국 목적은 오는 25일 열리는 방산 협력 공관장 회의 참석이 목적으로 전해졌다. 이미 정해진 일정에 맞춰 귀국하는 점을 고려하면, 이 대사의 귀국은 수사를 위한 자진 귀국보다는 계획된 일시 귀국으로 보인다.
이 대사의 귀국의 시점이 이미 정해졌음에도 대통령실과 여당이 이를 적극적으로 띄우는 것은 자진해서 수사에 협조하는 듯한 모양새를 갖춰 부정 여론을 희석시키려는 의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형적인 ‘여론 물타기’라는 비판이다.
법조계에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서 아직 핵심 관계자 조사를 마치지 않은 만큼 이 대사가 귀국해 ‘일회성 조사’를 받더라도 유의미한 결과를 내긴 어렵다는 관측이 많다. 특히 공수처장의 공석 상태가 지속되면서 수사 속도를 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공수처장 공석으로 인해 수사팀 운영도 영향을 받는 모습이다. 채 상병 순직사건 수사 외압 의혹을 수사 중인 수사 4부는 감사원이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에 대해 표적 감사를 벌였다는 의혹도 함께 수사하고 있지만 인력 상황이 녹록지 않아 보인다.
공수처 관계자는 지난 19일 기자들과 만나 이에 대해 “주어진 여건 속에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인력을 투입할 수 있는 여유가 없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국민들이 보시기에 다소 답답하게 진행이 된다고 느끼실 수도 있다”면서 “갖고 있는 여건 속에서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 있어서 여러 애로사항 있다”고 말했다.
이 대사 측은 전날 “언제든 출석해 조사에 응하고 적극 협조하겠다”며 공수처에 조사기일 지정 촉구서를 제출했지만, 외교 상황과 공수처 수사 여건을 고려한 조치로 보인다. 발표 시점 등을 고려했을 때, 대통령실과 사전에 일정을 조율했을 가능성도 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황 수석 사의 표명은 ‘꼬리자르기’라며, 본질은 이 대사의 ‘도주’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 대사 즉시 해임 및 압송을 요구했다.
민주당 이해찬 상임 선거대책위원장은 이날 오전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민주당·더불어민주연합 공동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에서 황 수석 사의 표명과 관련, “언제적 이야기인가. 그이야기 가지고 언론인한테 협박하고”라며 “노태우 때도 안하던 짓이다. 그런 사람을 여태까지 데리고 있었다는 게 가증스럽다”고 했다.
이 위원장은 “본질은 도주대사다. 대통령과 연관된 몸통을 그대로 두고 황상무 하나 ‘꼬리자르기’ 한다고 상황이 끝날 일은 아니”라며 “호주 대사는 귀국시켜야 한다. 아니, 붙잡아 와야 한다. 우리 당이라도 가서 붙잡아 오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했다. 이 위원장은 거듭 “진실을 은폐한 사람은 도주대사”라며 “진실을 끝까지 파헤쳐서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윤석열 정권은 장병 희생은 안중에도 없고 진실 은폐에만 혈안이 돼 있다”며 “국민 무서운 줄 모르는 무도한 정권은 반드시 심판받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황상무 ‘회칼’ 수석이 사의를 수용했다고 하던데 호주 대사, ‘도주 대사’도 즉시 해임하고 압송하기 바란다”며 “이것은 국민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존중하는 최소한의 조치라는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여당 내에서도 이 대사의 자진 사퇴 목소리가 나온다. 4선 중진 김학용 의원(경기 안성)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공수처에서 속된 말로 계속 안 부르고 질질 끌면 민심은 악화될 텐데 언제까지 계속 기다릴 것인가. 이 대사의 대승적인 결단이 필요하다”며 “이번 주 안에 (사퇴가) 마무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황 수석 사의 표명과 이 대사의 귀국을 계기로 ‘문제가 해결됐다’며 여론전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이 이번 사태에 한 목소리를 낸 것은 수도권 위기론에 그만큼 조급증을 보인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권 심판론을 분쇄하기 위한 신호탄으로 읽힌다.
한 위원장은 이날 안양 초원어린이공원 거리 유세에서 “여러분의 마음에 그때그때 반응하고 여러분의 마음을 쫓아서 정치할 것이다. 우리는 민심에 순응하는 정당”이라며 “황상무 수석 문제라든가 이종섭 대사 문제, 저희가 결국 오늘 다 해결됐다는 말씀 드린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