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안보정책 대전환…‘공격력 갖춘 군사대국’ 질주
75년 이어온 ‘전수방위’ 사실상 폐기…평화헌법 무력화
윤 대통령, 일본의 대규모 군사력 증강계획에 ‘묵인’ 시사
윤 정부 ‘일본에 교전권 있는 보통국가’ 길 열어줄 우려도
‘적기지 반격능력’ 보유 일본, 유사시 한반도 개입 가능성
대폭적인 방위력 증강을 꾀하는 일본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기시다 후미오 정부는 이달 말까지 일본의 외교안보 기본지침인 ‘국가안전보장전략’을 비롯한 ‘안보 3문서’를 개정하고 방위력 증강을 위한 대규모 국방예산 증액 계획을 확정한다.
기시다 총리는 내년 1월 초순 워싱턴D.C.을 방문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나 방어적에서 공격적으로 그 방향을 전환하는 내용의 새로운 안보 정책을 설명하고, 양국 외교·국방장관회담(2+2)을 통해 실무적으로 공유할 예정이다.
그 핵심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는 적 기지를 공격할 수 있는 ‘반격 능력’의 확보다. ‘반격 능력’이란 말로 교묘하게 꾸몄지만, 실은 방위력만이 아니라 공격력도 갖추겠다는 게 일본의 진짜 의도이다. 둘째는 방어와 공격이 모두 가능한 전력을 구축하기 위해 장거리 미사일과 공격용 무인기 등 첨단무기들을 직접 개량하거나 미국에서 조달해 실전배치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셋째는 이를 위해 올해 5조4천5억엔(약 51조원) 규모인 방위비를 5년 후에 10조엔 정도까지 두 배 가량 늘릴 계획을 세웠다. 현재 방위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 수준이다. 일본의 우경화 움직임이 본격적인 ‘군사력’ 강화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절치부심하며 준비해온 각본에 따라 ‘공격력을 갖춘 군사대국’으로의 부활을 꾀하고 있다고 하겠다.
일본이 공격적인 군사력 강화의 구실로 내세운 것은 안보 위기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최고조에 이른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그리고 대만해협과 남중국해,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 등지에서 중국의 공세적 움직임 등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일본의 설명이다. 그러나,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로 삼고, 중국과 만주, 동남아를 침공하고 태평양전쟁을 일으킴으로써 주변국 국민에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안기고도 전쟁범죄에 대한 진정한 사죄를 거부해온 지난 역사를 보면, 이런 일본의 설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일본 언론들의 보도를 종합하면, 일본은 우선 원거리에서 적의 공격지점을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을 대량 확보해 실전배치를 추진 중이다. 현재 자위대는 사거리가 200㎞ 이하인 자국산 ‘12식 지대함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은 이 미사일의 사거리를 1천㎞ 이상으로 개량해 2026년부터 실전배치를 하고, 사거리 3천㎞ 극초음속 미사일도 개발해 나갈 방침이다. 다만, 2026년 이전에는 사거리가 1천250㎞ 이상인 미국제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조기에 구입해 실전배치를 할 계획이다. 2027년까지 향후 5년간 최대 500기 구입 의향을 미국에 전했다고 한다. 바이든이 반색할만 하다. 대체로 2030년께에는 일본 전역에 실전배치가 되는 미사일은 약 1천기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되면, 한반도 전역은 물론이고 중국 일부 지역도 사정권에 들어오게 된다. 중국이 “일본의 방위력 증강은 역내 안보 정세를 뒤흔드는 행동”이라고 강하게 반발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또한 공격용 무인기와 소형 정찰위성도 도입할 예정이다. 이런 내용들은 세부적인 방위 장비의 획득 방침 등을 정리한 ‘중기방위력정비계획’에 담길 것으로 전해졌다.
적 기지를 공격할 수 있는 ‘반격 능력’ 확보는 지난 4월 27일 자민당이 제언서를 통해 기시다 총리에게 제시했고, 방위력강화 전문가회의도 보고서를 통해 힘을 실었다. 조만간 공개될 일본의 국가안전보장전략 문서에 ‘반격 능력’ 확보를 명시할 가능성이 크다. 자민당은 반격의 시점을 “상대가 공격에 착수했을 때”라고 상정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시점을 상대의 공격 ‘착수’로 보느냐에 일본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될 소지가 적지 않다. 말이 ‘반격 능력’이지 사실상 ‘선제적인 공격 능력’을 키우겠다는 뜻으로 봐도 무방하다. 주변국의 반발을 고려한 교묘한 말장난이 아닐 수 없다. 75년간 지켜온 ‘전수방위’(專守防衛, 공격받을 때만 방위력 사용) 원칙의 공식 폐기 선언은 시기상조라고 판단했음 직하다. 전수방위 원칙을 노골적으로 벗어던지기 부담스러운 만큼, ‘반격 능력’이란 말로 포장한 셈이다.
교전권과 정식군대를 지닌 ‘보통국가’ ‘정상국가’로 나아가려는 일본의 행보는 집요하다. 패전이후 전범국가인 일본은 미군정이 통치하던 1947년 5월 3일 지금의 ‘평화헌법’을 제정했다. 평화헌법 제9조는 ‘군대 보유 금지’와 ‘전쟁의 포기’, ‘국가 교전권 불인정’을 명시하고 있다. 이 조항을 지키면서도 자위권을 확보하는 절충안이 ‘전수방위’이다. 오직 적의 공격에 대한 방어만이 허용되고, 방어 수단도 ‘최소한’으로 제한하는 게 그 골자다. 다른 주권국의 군대에 해당하는 전력에 자위대(自衛隊)란 이름이 붙게 된 배경이다.
집단자위권과 전수방위의 역사는 일본이 어디를 향해 가는지를 잘 보여준다. 유엔 헌장 제51조는 개별자위권과 집단자위권을 주권국가의 고유 권리로 규정하고 있다. 개별자위권은 외국의 직접적인 공격을 받았을 때 무력을 사용할 권리이고, 집단자위권은 ‘밀접한 관계에 있는 국가가 공격받는 경우 자국이 공격받은 것으로 간주해 무력을 사용할 권리를 말한다.
평화헌법 9조에 근거해 일본은 개별 자위권은 가지고 있되, 집단자위권은 없다는 해석이 34년간 이어졌다. 그러나, 1981년 5월 스즈키 젠코 내각이 주권국인 일본도 집단자위권을 ’보유하되, 행사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하지만, 개헌을 통해 집단자위권의 법적 근거를 만들려다가 반발에 부딪힌 고(故) 아베 신조 총리가 2014년 7월 각의 결정문을 통해 “일본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타국에 무력 공격이 발생해 일본의 존립이 위협받고, 국민에게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 최소한도의 실력행사는 헌법상 허용된다”라고 선언했다. 대일본제국의 부활을 꿈꿔온 그가 자의적 헌법 해석을 통해 집단자위권 ’행사‘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이듬해인 2015년 4월 27일에는 미일 군사동맹의 지리적 범위를 ’일본 주변‘에서 ’전 세계‘로 확대하는 미일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이 개정되고, 그해 9월에는 집단자위권 행사를 규정한 안보법제를 도입하면서 사실상 평화헌법 9조를 무력화됐다.
연내에 발표될 일본의 새 국가안전보장전략에 담길 ’반격 능력‘ 확보는 실제론 적 기지에 대한 선제공격 능력까지 보유하겠다는 얘기라는 점에서, 자위권의 행사는 ’수동적‘이고 그 범위도 ’최소화‘하도록 정한 전수방위 원칙은 폐기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미일 동맹을 주축으로 해서, 일본은 방어에 전념하고 타격 능력을 지닌 미군이 적에 보복한다는 일본의 방어적인 안보 정책이 공격적인 안보 정책으로 대전환을 예고한다.
’기시다 정부는 “일본은 물론 일본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타국에 대한 무력 공격이 발생해 일본의 존립이 위협받을 경우” ‘반격 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여기서 ’일본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타국‘은 현실적으론 한국과 대만을 꼽을 수 있다. 그 경우 무력 사용 우려가 있는 나라는 북한과 중국이 된다. 엄청난 피해를 각오하지 않는 한 일본이 중국을 선제타격하는 것은 선택지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북한이다. 한국이 북한의 공격을 받을 경우 ’밀접한 관계에 있는 타국‘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한반도 개입을 정당화할 공산이 크다. 윤석열 정부의 과도한 대일 밀착 행보는 한반도 유사시 “한국은 밀접한 관계가 있는 타국”이란 일본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
일본의 공격적 안보 정책 채택과 대대적인 방위력 증강 계획을 바라보는 윤 정부의 시각은 지나치게 단선적이다. “일본 열도 위로 미사일이 날아가는데 그냥 방치할 수는 없지 않느냐”(로이터통신 11월 28일 인터뷰)는 윤 대통령의 발언이 잘 보여준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것으로서 충분히 ’용인‘할 수 있다는 뜻으로 여겨진다. 윤 정부 들어, 급진전 되는 한·일 및 한·미·일 군사협력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독도 해상에서 진행된 한미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의 첫 대잠전 훈련(9월 30일), 한국 해군의 자위대 관함식에서의 욱일기 경례 사건, 북한 미사일 경보 정보의 실시간 공유 합의(11월 13일, 프놈펜 한·미·일 정상회담), 지소미아(GSOMIA·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복원 등이 그 대표적 사례들이다.
이런 추세와 속도라면, 윤 정부 집권 기간에, 미사일 방어 3국 공동훈련과 한일 간 상호군수지원협정(MLSA) 체결과 상호전력운용 협의, 교전수칙 논의 등으로까지 이어지면서 한일 동맹을 향해 ’폭주‘하지 않겠느냐는 우려 섞인 시각도 적지 않다. 또한, 한일 관계의 ’밀월‘이 마냥 이어지지 않고, 독도 영유권 등을 놓고 일본의 공격적 압박으로 양국 간 분쟁이 발생할 경우 장거리 미사일 1천기를 실전배치한 일본의 방위력은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에 윤 정부는 눈을 감고 있다.
윤 정부가 심모원려 없이 일본 정부가 그토록 원하는 ’한일 과거사‘라는 족쇄를 풀어줌으로써 ’교전권이 없는’ 자위대가 ‘정식군대’로 인정받고, 평화헌법을 고쳐 일본이 ‘정상 국가’로 발돋움하는 한편, 유사시 한반도에 개입할 길을 열어주는 게 아니냐는 우려는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