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한동훈 사퇴 요구…자중지란? 약속대련?
한동훈 "사퇴요구 받아"…김건희 디올백 일파만파
윤석열 사당화 자초한 국힘, 비판도 제대로 못해
야권 "명백한 당무개입, 정치적 중립위반 탄핵사유"
현실성 떨어지는 사퇴요구…싸우는척 힘실어주기 의혹도
이재명 "한심하다"…조국 "국힘이어도 묵과 못하겠다"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대통령실과 여당이 '김건희 방탄' 문제를 두고 자중지란(自中之亂)을 벌이는 가운데,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대통령실의 사퇴 요구를 거절했다고 밝히면서 윤석열 대통령의 선거개입, 당무개입 사실이 명확해졌다. 대통령의 선거개입, 당무개입은 탄핵 사유다. 야권에선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으로 규정하고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한 위원장은 2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 참석 전 취재진과 만나 대통령실의 사퇴 요구 및 당무 개입 여부에 대한 입장을 질문받고 "그 과정에 대해선 제가 사퇴 요구를 거절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말하기 어렵다"면서, 전날(21일) 이관섭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한 위원장을 만나 사퇴 요구를 했다는 보도 내용을 공개적으로 시인했다.
한 위원장은 그러면서 "제 임기는 총선 이후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안다"며 비대위원장직 유지를 거듭 강조했다.
대통령실은 선거개입, 당무개입 여부에 대해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지만, 한 위원장의 공개 발언으로 대통령의 개입 정황이 명확하게 드러나면서 문제가 쉽게 가라 앉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선거개입 및 당무개입은 헌법과 공직선거법에서 명백하게 금지하는 사항이기 때문이다.
헌법 제7조 2항은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8조 2항은 "정당은 그 목적·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선거법 제9조 1항은 "공무원 기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는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의 행사 기타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한 위원장의 공천이나 김건희 씨 관련 발언 등을 두고 대통령이 사퇴를 요구했다면 헌법과 선거법상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대통령의 노골적인 선거 개입, 당무 개입은 국민의힘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크다. 집권 초 이준석 전 대표를 쳐낸 뒤, 대통령실은 김기현 의원을 사실상 당 대표 낙점하고 노골적으로 '밀어주기'를 했다. 대통령실이 전당대회에 개입하는 과정에서 대놓고 상대 후보들을 축출하거나 무력화했지만, 당내에 제대로 된 비판의 목소리는 나오지 못했다.
김기현 당대표가 선출된 지난해 3월 전당대회장에서는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하던 '어퍼컷'을 하고 손가락으로 '브이'(V)를 그리며 사실상 개인 팬클럽 행사를 했지만, 이를 제지하기보다는 주요 당직자의 '윤비어천가(윤 대통령을 찬양하는 발언)'만 이어졌다. 그 결과, 국민의힘은 '윤석열·김건희 사당' '대통령실의 여의도 출장소' 수준으로 전락했다.
단적인 예가 지난해 10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다. 윤 대통령이 유죄 확정을 받은 김태우 전 구청장을 복권시키면서, 보궐선거의 원인이 된 사람이 3개월 만에 다시 선거에 나가는 비상식적인 공천이 이뤄졌고, 이로 인해 국민의힘은 압도적인 표 차이로 참패했다. 그러나 당내 제대로 된 비판이나 성찰은 없었다. 오히려 보선 참패 이후 비대위 가동이나 당 혁신 논의까지 모두 대통령실에 주도권을 빼겼다.
인요한 혁신위원장은 윤 대통령으로부터 "신호를 받았다"면서 사실상 대통령실의 '오더'를 받아 당 개혁 작업을 했다고 시인했으며, 최근 김기현 의원이 대표직에서 물러나고 그 자리에 한 위원장이 임명된 것도 모두 대통령실 의중이었다는 게 정치권의 공통된 인식이다. 하지만 당은 오히려 한 위원장을 환대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이 많이 당선 되면 좋겠다'는 말 한 마디에 탄핵소추까지 했던 집권 여당은 윤 대통령의 당무개입에 1년 가까이 제대로 목소리도 내지 못한 채 '꿀먹은 벙어리'격으로 끌려가고 있다. 사실상 당권을 대통령이 쥐락펴락하며 마음대로 하고 있지만 견제는 없다. 공당(公黨)으로서 의식은 사라졌고 사당(私黨)만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민생 내팽개치고 김건희 방탄으로 궁중암투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의 '정면 충돌'로 비화되는 이번 사건 자체도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들 충돌의 중심엔 주가조작, 명품가방 수수, 양평 고속도로 종점 변경 등 각종 의혹이 끊이지 않는 김건희 씨의 '방탄' 문제가 있다. 문제가 불거지자 윤 대통령은 민생토론회 생중계 30여 분을 앞두고 취소하기까지 했다. '감기'가 취소 이유라고 했지만, 민생은 뒷전이고 '궁중암투'에만 매달리는 모습이다.
갈등의 시작은 알려졌다시피 한 위원장이 지난 17일 '조국 흑서' 저자인 김경율 비대위원을 공개석상에서 서울 마포을 지역구에 출마할 것이라고 깜짝 소개해 사천(私薦)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시작됐다. 당 안팎에선 한 위원장이 그동안 '시스템 공천'이라고 포장했지만, 본격적인 '낙하산 공천'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윤석열 사당'으로 전락한 형편을 고려하면 나올 법한 지적이다.
이어진 한 위원장의 김건희 씨 관련 발언은 이번 사태의 본격적인 발단이 된 것으로 보인다. 한 위원장은 지난 18일 김건희 씨의 명품가방 수수 문제에 대해 "함정 몰카이고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라면서도 "전후 과정에서는 분명히 아쉬운 점이 있다. 국민 걱정하실 만한 부분이 있었다"고 미묘하게 말을 바꿨다. 한 위원장 발언을 두고 김건희 씨의 사과를 시사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특히 정치권에선 김 비대위원의 '마리 앙투아네트' 발언이 김건희 씨 심기를 건드렸다고 보고 있다. 김 비대위원은 JTBC 유튜브 '장르만 여의도'에 나와 "프랑스 혁명이 왜 일어났을까.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치, 난잡한 사생활이 하나하나 드러나면서 감성이 폭발된 것"이라면서 "국민들의 감정을 가라앉힐 수 있게 바짝 엎드려서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 위의 상왕이라는 의미에서 '브이아이피 원(VIP 1)'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김건희 씨를 프랑스 혁명 과정에서 단두대에 처형 당한 여왕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한 것이다.
실제 이 같은 발언 이후 대통령실과 여당 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흘러갔다. 당선인 시절 수행팀장을 지내며 윤 대통령의 복심을 자처한 국민의힘 이용 의원은 전날 국민의힘 의원들이 전원 들어가 있는 텔레그램(메신저) 대화방에 '윤 대통령이 한 위원장의 줄세우기 공천행태에 실망해 지지를 철회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공유했고,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한 위원장을 만나 사퇴를 요구했다.
다만 한 위원장이 전날에 이어 이날도 "제 임기는 총선 이후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안다"며 대통령실의 사퇴 요구에 선을 그었고, 대통령실 요구대로 한 위원장이 사퇴해도 총선을 앞두고 비대위원장 궐위 시 수습 방안이나 대안도 마땅치 않은 점을 고려했을 때, 실현 가능성은 떨어진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때문에 대통령실의 사퇴 요구가 '총선에서 김건희는 건들지 말라'는 경고성 메시지라는 해석이 나온다.
사퇴 요구가 현실성이 떨어지는 점을 고려했을 때, 한 위원장의 정치적 공간을 키우기 위해 '약속대련'(공격과 방어를 사전에 정해서 하는 겨루기)을 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대통령실과 여당이 싸우는 척 연출한 뒤, 사태 수습의 주도권을 한 위원장에게 의도적으로 넘겨 그의 정치적 입지를 키우려는 구상이라는 해석이다. 이러한 연출은 특검 등 다른 정치 이슈를 수면 아래로 가라앉히는 효과도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유튜브 채널 '장윤선의 취재편의점'에서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을 잘 아는 모 인사가 내게 '이관섭 실장을 보낸 건 약속 대련'이라고 이야기하더라"며 "애초에 기획으로 본다"고 했다. 그는 "윤 대통령이 한 위원장을 속된 말로 혼내거나 싫은 소리 할 일이 있으면 전화하거나 텔레그램을 하면 되는 것이지, 굳이 이 실장을 보내 '너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할 이유가 없다"면서, "한 위원장 쪽에 힘이 쏠리는 모양새로 끝을 내려고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의 의도가 무엇이든, 윤석열과 한동훈으로 대표되는 당정 간 '자중지란'은 한동안 여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 비대위원은 이날 '마리 앙투아네트' 발언에 대해 대구·경북 의원들에게 사과했지만, 김건희 씨 사과가 필요하냐는 입장에 대해선 "문제를 거칠게 나눈다면 전 변한 게 없다"고 밝혀, 근본적인 인식에는 변화가 없음을 못박았다.
한 위원장에 대한 사퇴 요구도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진 신평 변호사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한 위원장을 향해 "그는 모든 공을 자신이 차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유치한 사고방식의 틀에서도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었다"며 "가혹하게 들리겠지만 그는 스스로 비대위원장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당 안팎에서 의원총회 요구가 있는 만큼 대통령실과 여당은 이를 계기로 돌파구를 찾으려고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정 간 갈등 수습과 별개로 대통령의 선거 개입, 정치 개입 문제는 반드시 따져야 할 문제로 보인다. 대통령의 노골적인 당무개입은 2000년대 이후 당정 분리를 추구하며 세워온 민주주의 정당의 운영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조국 "탄핵 사유, 민주당 더 싸워야"
야권에서는 대통령의 헌법 및 선거법 위반 문제를 본격적으로 표면화할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도부는 법적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윤심(尹心), 한심(韓心) 나눠 싸울 게 아니라 민생부터 챙겨야 한다"며 "정부·여당에 미안한 말씀이지만 한심하다"고 비판했고, 정청래 최고위원은 "한동훈 자르기이든 가짜 약속 대련이든 윤석열 아마추어 정권이 공당인 국민의힘 대표 이준석과 김기현 내쫓기에 이어 한동훈 비대위원장까지 내쫓는다면 대통령실의 당무개입, 정치적 중립 위반 의무에 대한 법적 책임도 물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고민정 최고위원은 "대통령의 당무 개입 사안으로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내용을 독대 자리가 아닌 여당 지도부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 했을지 의문이고 상식적이지 않다"면서도, 사퇴 요구 자체에 대해선 "명백한 당무 개입으로 불법"이라고 못박았다. 장경태 최고위원은 "국민의힘 당협위원장이 당원을 모아놓은 자리에서 한동훈표 사천을 한 것도 문제지만, 대통령실이 공당의 대표보고 나가라 마라 개입한 것은 더 엄청난 문제"라고 했다.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이날 최고위원회의 후 취재진과 만나 "대통령실의 명백한 당무 개입이고, 정치 중립 위반이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권 수석대변인은 "한 위원장이 스스로 대통령실로부터 사퇴 요구를 받았다고 확인해 준 것 아니냐"면서 "법적 검토를 거쳐서 조치할 것이 있으면 반드시 할 것이다"고 했다. 대통령은 현행법상 형사 소추 대상은 아니지만, 헌법 및 선거법 위반 정황이 확인된 만큼 필요한 조치는 취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페이스북에 "윤 대통령은 여당 대표를 수시로 쳐내고 있다. 국민의힘의 당원에 의해 선출된 초대 대표 이준석을 '체리 따봉'을 신호로 목을 자르고, 용산이 개입해 대표를 만들어준 김기현도 불출마선언을 하지 않자 밀어냈다. 그리고 윤 대통령이 내려 꼽은 '왕세자' 한동훈 비대위원장도 '성역'인 '중전마마'를 건드리자 비서실장을 보내 사퇴를 종용했다. 1년에 두 번 당 대표를 갈아 치운 것도 모자라, 한 달도 안된 비대위원장도 갈아치우려 한다"면서 "국민의힘 노선과 정책을 반대하는 사람이지만, 이러한 행태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고 했다.
조 전 장관은 대통령의 당무 개입에 대해 "헌법 제8조가 규정하는 정당 민주주의의 정면 위반이다. 정당법과 공직선거법 등이 금지하는 범죄인 대통령의 당무 및 공천 개입이다(윤석열은 검사 시절 한동훈과 함께, 박근혜를 이 혐의로 기소해 유죄판결을 받았다)"라면서 "윤석열은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유례 없는 폭군이다. 다가오는 4월 총선은 반헌법적 폭정을 일삼는 폭군을 심판하는 선거"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재임 중 기소되지 않지만 관련 혐의 수사는 가능하고, 공모자에 대해서는 기소도 가능하다"며 "재임 중 대통령에 대한 기소는 불가지만, 혐의가 확인되면 국회는 탄핵소추할 수 있다. 민주당은 더 싸워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