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오염수 백화사전] ㉙전문가도 고개 저을 일본의 OO
일본의 조사 보고서 보니…OO으로 일관
'메이드 인 재팬 재해'라는 기발한 OO도
미 전문가의 '6가지 재난책임 변명' 흡사
후쿠시마 원전 핵물질 오염수에는 인체에 치명적일 수 있는 온갖 핵물질이 포함돼 있다. 어떤 물질은 생물학적 유전자 손상까지 가져온다. 백가지 화를 불러올 백화(百禍) 물질이 아닐 수 없다. 오염수 문제에 관한 한 ‘모르는 게 약’일 수 없다. 오염수와 관련된 정보와 지식을 하나하나 짚어본다. 알아야 대처할 힘이 나온다. [편집자주]
대지진과 쓰나미, 후쿠시마 원전 참사 이듬해인 2012년 일본의 도쿄전력·국회·민간조사위 등은 연이어 조사보고서를 내놓았다. 보고서는 참사의 근본 원인을 ‘상정외'(想定外·예상 밖의 일이나 상황을 뜻하는 일본식 표현) 사고’로 돌리는 등의 변명으로 가득 차 있었다.
국회조사위원회는 도쿄전력 직원, 총리를 포함한 관료 등 116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방대한 보고서를 내놨다. 조사위원장인 구로카와 기요시는 보고서에서 “누가 책임을 맡았어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본의 문화가 만든 “메이드 인 재팬형 재해”라며 그 예로 “매뉴얼에 대한 집착”을 들기도 했다. 보고서는 누구도 책임자(들)를 특정하지 않았다.
같은 해 민간 기구인 ‘후쿠시마 원전사고 독립검증위원회’가 내놓은 보고서도 대동소이했다. 보고서는 ‘원자력 비리구조에 대한 역사적·구조적 요인분석’ 항목에서 “도쿄전력과 이를 통제해야 할 시스템의 결함”을 문제 삼는 것으로 결론냈다. 또 도쿄전력은 “사고의 근본 원인은 상상을 초월한 쓰나미에 있으며, 그것에 충분한 대비책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어땠을까. 미국은 참사 직후 미군 항공기를 활용해 원전 누출 방사선 농도를 측정해 제작한 지도를 일본 정부에 보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지도를 무시했다. 주민 피난 대책을 마련할 때 전혀 활용하지 않은 것이다. 그 결과 방사선 농도가 짙은 위험 지역으로 주민들을 대피시키는 터무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일본 정부는 “당시 그런 자료가 있었는지 몰랐다”고 변명했다.
미국의 재난 연구가 리처드 스튜어트 올슨 플로리다 국제대 교수는 지난 2000년 발표한 논문 <참사의 정치학>에서 재난 책임자들의 변명을 6가지로 분류했다. 요약하면 ①예측불가의 누구도 막지 못할 자연재해라고 주장하기 ②전임자 책임으로 돌리기 ③매뉴얼 등 자원의 부재나 부족을 탓하기 ④우리 모두의 탓으로 물타기 ⑤꼬리 자르기 ⑥무지와 무식 내세우기 등이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 여러 조사기구의 변명을 보면 올슨 교수의 ‘6가지 변명’과 거의 일치한다. ‘상상 초월 쓰나미’ ‘상정외 사고’ ‘누가 책임을 맡았어도 비슷한 상황’ ‘그런 자료가 있었는지 몰랐다’ 등의 변명이 그렇다. ‘메이드 인 재팬형 재해’ ‘매뉴얼에 대한 집착’ 운운은 ‘메이드 인 재팬형 변명’으로 들린다. 이런 변명은 참신하다는 생각마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