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예산 '4조6천억 감액'을 '6천억 증액'이라니
정확한 사실은 'R&D예산 전년대비 4조6천억 삭감'
주요 언론, "6천억 증액" 제목으로 독자 오해 불러
독자 눈속임 제목 바로잡아야 언론신뢰 회복될 것
내년도 예산안 657조원이 여야 합의로 2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예산안 가운데 언론이 주목한 항목 중 하나는 바로 연구개발(R&D) 예산이다. 당초 정부가 작성해 국회에 보고한 내년 R&D 예산이 전년대비 ‘무려’ 5조2천억원이 깎였고 이에 대한 과학계 반발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여야는 이번 예산안 합의 과정에서 이를 반영키로 했다. 지난 20일 여야 합의로 확정된 내년도 R&D 예산은 결국 어떻게 됐을까? 애초 정부안 ‘전년대비 5조2천억원 삭감’에서 ‘전년대비 4조6천억원 삭감’으로 바뀌었다. 그러니까 이는 ‘삭감 규모가 정부안에서 6천억원 줄었다’ 또는 ‘예산이 정부안에서 6천억원이 늘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21일자 주요 신문들은 거의 모두 내년 예산안 여야합의 관련 내용을 1면 톱에 실었는데, 제목을 보면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R&D 6천억·새만금 3천억 늘렸다”(국민일보)/ “여야, 657조 내년 예산안 합의…R&D 6천억 늘려”(동아일보)/ “내년 예산안 ‘늑장 합의’…R&D 6천억·새만금 3천억 증액”(서울신문)/ “R&D 6천억, 새만금 3천억 늘렸다”(조선일보)/ “여야 예산안 합의/R&D 6천억 증액”(중앙일보)/“내년 예산안 늑장 합의/ R&D 6천억 ‘찔끔’ 증액”(한겨레)/ “R&D 6천억 증액 예산안 지각합의”(매일경제)/ “R&D 6천억 증액…내년 예산안 지각합의”(서울경제)/ “R&D예산은 6천억 증액”(한국경제)
거의 모든 주요 일간지·경제지들이 ‘R&D 예산 6천억 증액’으로 제목을 붙였다. 그렇다면 독자들은 이 제목을 통해 어떤 사실을 알게 될까? 아마도 ‘정부가 처음엔 내년 R&D 예산을 5조2천억원만큼이나 많이 깎으려 했지만, 여야가 합의해서 오히려 6천억을 늘렸나보다, 참 다행이네’라고 이해하지 않을까?
그러나 정확한 사실은, ‘윤석열 정부가 당초 5조2천억원 삭감하려고 했던 내년도 R&D 예산이 4조6천억원 삭감된 것’이다. 그러니까 이 관련 기사의 정확한 제목은 ‘내년 R&D 예산, 6천억원 증액’이 아니라 ‘내년 R&D 예산, 4조6천억원 삭감’일 것이다. 경향신문만이 이렇게 제목을 달았다.
“내년 R&D 예산, 결국 4조6천억원 삭감”
주요 신문들은 기사 본문에서 대부분 “R&D 관련 예산은 정부안보다 6천억원 늘리는 것으로 여야가 합의했다”고 썼다. ‘정부안’보다 6천억원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부안에서 6천억원이 늘어난 것’보다는 ‘전년대비 4조6천억원이 삭감된 것’이다. 여야 합의 과정에서 전년대비 4조6천억원이나 감액한 정부안보다 6천억원을 증액키로 한 사실이 국민들에게 그렇게 중요한 팩트일까? 어찌됐든 내년 우리나라 과학기술계 발전을 위해 사용되는 정부 예산은 올해보다 무려 4조6천억원이 줄게됐다는 것이 더 중요한 포인트 아닐까?
주요 언론들은 왜 '삭감'이 아닌 '증액'이라는 제목을 달았을까? 애초 정부예산안에서 증액된 것이니 '증액 아니냐'고 생각했을까? 정치권이 '6천억 증액'이라고 불러주니 그대로 받아쓴 것일까? 과학계 불만과 전세계 조롱을 사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R&D예산 감액을 조금이라도 감추고 싶어서였을까?
요즘 독자들은 너무 많은 뉴스가 쏟아지기 때문에 기사 전체를 읽고 뉴스를 소비하기보다는 기사의 제목만 보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언론이 이렇게 교묘한 눈속임 제목을 붙이는 것은 독자에 대한 기망이다. 주류 언론들이 이런 부정확한 제목, 눈속임 제목, 엉뚱한 제목으로 독자를 속이는 사례가 많아, 나중에 정확한 사실을 알게된 독자들이 언론에 대한 불신감을 또한번 쌓게 된다.
기사의 제목을 정하는 기자(편집기자 또는 간부급 기자)가 정확한 기사 내용을 모르고 그랬거나, 아니면 정치적 목적을 갖고 고의로 눈속임 제목을 달았을 것이다. 양심이 있다면, 혹은 언론 신뢰를 조금이라도 덜 추락시키려면 독자를 우롱하는 이런 엉터리 제목달기는 고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