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애 보훈장관 후보자 "홍범도, 정체성 재점검해야"

"이분 행적이 국가 정체성에서 국민적 합의 어려워"

시조부가 김원봉이 이끈 의열단 단원이었는데?

"건군활동, 발전소 지어 김원봉과 다르다" 이중잣대

'논문 표절' 의혹엔 "그땐 연구윤리지침 없었어"

2023-12-21     김성진 기자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 후보자가 21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3.12.21. 연합뉴스

독립운동가 집안 출신이라는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 후보자가 21일 독립 영웅인 홍범도 장군에 대해 "여러가지 논란을 야기하기 때문에 정체성을 다시 한번 점검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뉴라이트 계열 사관을 두둔했다.

강 후보자의 시할아버지(권준), 시아버지(권태휴)는 윤석열 정부에서 공산주의자로 폄훼하는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과 함께 의열단, 조선의용대에서 활동했지만, 이에 대해선 "김원봉과 결이 다르다"며 '이중잣대'를 들이댔다.

교수 출신인 강 후보자는 유공자 집안 출신이라는 것 외에 보훈과 관련해 아무런 경력이 없어 그동안 자질 문제가 거론돼 왔다. 극우 사관을 두둔하는 후보자가 과연 보훈부 장관으로 적절한지 의문이다.

강 후보자는 이날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보훈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의원이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에 대한 후보자의 입장이 뭐냐"고 묻자, "홍 장군은 독립운동을 하셨기 때문에 독립운동가로 예우를 받아야 하나, (서훈했던) 1962년에는 그것을 몰랐지만 그 후에 이분(홍범도)의 여러 행적들이 우리나라 정체성이나 여러가지 논란을 야기하기 때문에 이 부분은 다시 한번 점검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에 김 의원은 "후보자의 시아버지인 권태휴 선생은 김원봉이 창립한 조선의용대 출신이다. (그러한 관점이라면)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는 중국 공산당의 지휘를 받은 팔로군과 함께 일본군과 태항산 전투를 벌이는 등 좌익 혐의를 가지고 있다. 시아버지가 조선의용대 출신인데 후보자는 이와 같이 애매하게 답변할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자 강 후보자는 "저의 견해에서는 1945년 우리가 광복하기 이전에는 모두가 독립을 위해서 했기 때문에 그것이 여러가지 계열을 달리하더라도 독립운동에 애쓴 부분이 있지만, 1945년 이후에 우리나라 정체성이라는 점에서, 국익과 국가 정체성에서 국민적 합의를 받기 어렵다고 하면 그것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강 후보자 발언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홍범도 장군은 1943년 카자흐스탄에서 숨졌다. 홍 장군이 타계한 시점은 8·15 광복 이전이고, 북한 정권 수립 전이다. 후보자의 관점대로면 1945년 이전에 숨졌으니 사후 80년이 지나서 정체성을 따질 이유가 전혀 없다. 이제 와서 정체성을 재점검하자는 후보자의 발언은, 그가 뉴라이트 계열, 극우 사관을 옹호한다는 의심을 들게 한다. 1945년을 기준으로 좌·우익을 나눠서 보는 관점도 근거가 빈약하고 매우 편협하다.

야당 의원들도 후보자의 '정체성' 발언을 비판했다. 백혜련 국회 정무위원장(더불어민주당)은 "홍 장군은 1943년에 돌아가셨다"면서 "1945년 기점으로 따질 문제가 아니다. 홍 장군이 돌아가신 그 시대에 많은 좌익운동을 하신 분들도 독립운동 일환으로 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박성준 의원은 "1943년에 돌아가셨으면 (그 당시) 제1의 가치가 뭐겠냐. 독립 아니냐"면서 "후보자가 홍 장군과 관련해서 명확한 개념이 없다"고 질타했다.

 

홍범도 장군. 

아울러 강 후보자는 시할아버지인 권준과 시아버지인 권태휴가 김원봉이 이끈 의열단과 조선의용대에서 활동했지만, 김원봉과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는 "저희 시부(조선의용대원 권태휴), 시조부(의열단원 권준)는 김원봉과 결을 달리해서 대한민국을 위해서 독립운동을 한 이후에도 건군도 하셨고 발전소도 지으셨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 했기 때문에 같은 선상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자신의 집안에 대해서만 이중잣대를 적용했다.

자신의 시조부모 등이 이른바 '건국' 이후에도 업적이 있으니 광복 후 월북한 김원봉과는 다르다는 설명인데, 후보자의 이같은 관점은 김원봉이 공산주의자라는 윤석열 정부의 역사 인식이나, 1948년 '건국절'을 주장하는 뉴라이트 게열 극우 사관과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김원봉을 단순히 공산주의자로 보는 관점은 매우 편협할 뿐만 아니라, 역사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국민통합을 지향해야 하는 보훈부 장관으로서 가져야 할 관점과는 거리가 멀다.

특히 윤석열 정부가 좌익 공산주의자로 낙인찍어 폄훼하는 독립운동가 김원봉의 독립운동 공적은 매우 뚜렷하다. 강 후보자의 시할아버지와 시아버지가 활동했던 의열단과 조선의용대는 모두 김원봉이 주도해서 만들었다. 의열단은 일제 경찰서 및 수탈기관 폭파, 일제 고관대작 저격, 일왕 궁성 폭탄 투척 등을 통해 일제에 항거했으며, 의열단의 명맥을 이어받은 조선의용대는 우리 국군의 뿌리가 된다.

윤석열 정부와 극우 언론들이 김원봉을 '공산주의자'로 몰면서 역사를 왜곡하는 핵심은, 그가 1952년 북한에서 김일성으로부터 훈장을 받았다는 부분이다. 그러나 김원봉이 받은 훈장은 김일성에게 받은 것이 아닌 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인 김두봉으로부터 받은 '로력 훈장'이며, 훈장을 추서 받은 이유도 전쟁 중 살상이 아닌 '보리 파종' 실적이 이유였다.

김원봉이 공산주의자였는지도 의문이 있다. 김원봉 월북에 대해선 여러 설이 있지만, 당시 이승만 등을 추종한 극우세력의 '백색테러'가 월북하게 만들었을 것이라는 학설이 있다. 특히 일제 강점기 고등계 형사였던 친일파 노덕술이 해방 이후 항일독립투사이자 의열단장이었던 김원봉의 따귀를 때린 사건은 상징적이다. 그가 월북할 만한 상황은 충분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서의 삶도 김일성의 공산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평양 주재 소련 대사 알렉산더 푸자노프는 1958년 김원봉이 "체포 직전에 남쪽으로 도주하고자 온갖 방법을 사용했다"고 기록했다. 학계에서는 김원봉이 김일성의 반대파 숙청을 피해 월남을 시도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지도 않고, 김원봉을 단순히 공산주의자로 재단하는 것은 보훈부 장관 후보자로서 자질을 의심케 한다.

반대로 북한 노동당 비서로서 주체사상을 완성하고 김일성의 독재체제 확립에 앞장선 황장엽이 대한민국에서 1등급 훈장인 무궁화장을 추서받고 국립대전현충원에 묻힌 것에 대해선 강 후보자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후보자의 관점대로라면 황장엽은 1945년(혹은 1948년) 이후 공산당에 이바지한 흔적이 매우 뚜렷한데, 지금이라도 그를 무덤에서 파내야 하는가.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 후보자가 21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2023.12.21. 연합뉴스

강 후보자는 민주당 조응천, 국민의힘 유의동 의원 등 질의에 자신이 "뉴라이트가 아니다"라며 여러 차례 반박했다. 그러나 국민의힘 송석준 의원이 친일파였던 백선엽 퇴역 장군을 옹호하며 "다부동 전투에서 패배했다면 한반도가 공산화가 이미 실현되지 않았을까 끔찍한 생각이 든다"고 하자, 강 후보자는 "그런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곧바로 옹호했다.

한편 이날 청문회에선 후보자의 논문 표절 의혹도 제기됐다. 민주당 김한규 의원은 "2년 전 논문을 그대로 복사해서 표현만 바꿨고, 인용 표시도 없이 자기 표절을 했다"며 "서론 부분은 토씨 하나 다르지 않고 동일하다.  논문 전체를 봤더니 서론도, 가설도, 전개 과정도, 근거자료도, 표현도, 결론도 다 똑같다"고 지적했다.

강 후보자는 이에 대해 "연구윤리 지침이 제정되기 이전이라 자기표절 개념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부분까지 신경쓰지 못한 거 같다"고 해명했다. 그는 숙명여대 총장까지 역임했다. 강 후보자는 "자기논문을 표절한 사람이 신청하면 (교수로) 임용했을 것 같냐"는 김 의원 질의에 "현 시점에선 안 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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