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인에게 이름‧얼굴 찾아주고 싶었다"

페북에 팔' 희생자 사진 올렸던 이스라엘 교사

'반역 의도' 혐의로 독방 감금…교사직도 박탈

가자 주민 동정하면 매장…숨 막히는 이스라엘

대테러법도 개정…표현의 자유 노골적인 탄압

"전쟁 반대, 휴전 촉구한 유대인 시민도 박해"

2023-11-23     이유 에디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전쟁이 한달째 지속되는 가운데 6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남부 라파에서 어린이들이 이스라엘의 폭격을 피해 달리고 있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까지 팔레스타인인 1만22명이 숨졌으며 어린이 사망자는 4104명이라고 주장했다. 2023.11.07. AFP 연합뉴스

"나는 팔레스타인인에게 이름과 얼굴을 찾아주고, 이스라엘인에게 소개함으로써 더 많은 이스라엘인이 그들을 인간으로 여길 수 있도록 하고자 했다. 이것이 내가 페이스북에서 했던 일이다. 경찰은 이걸 싫어했고 나를 체포했다."

페북에 이스라엘에 의해 살해된 팔레스타인인의 이름과 사진, 사연 등을 포스팅해 '반역 행위 기도와 공공질서 교란 의도를 지녔다'는 혐의로 체포돼 나흘간 독방에 구금됐다가 풀려난 이스라엘 교사 메이르 바루친(Meir Baruchin‧62) 박사는 22일 미국 비영리 매체인 '데모크라시 나우'와의 인터뷰에서 "대다수 이스라엘인에게 팔레스타인인은 정말로 희미한 이미지이며 그들에겐 이름도 얼굴도 가족도 희망도 계획도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바루친 박사는 이스라엘 페타 티크바의 한 고등학교에서 시민사회와 미국역사를 가르쳤으나 이번 일로 교사 자격증까지 박탈됐다.

 

페이스북에 팔레스타인 희생자의 이름과 사진, 사연을 올렸다가 반역 의도 혐의로 체포돼 나흘간 독방에 감금됐던 이스라엘의 한 고교 교사인 메이르 바루친 박사. [더 뉴아랍 홈페이지 갈무리] 

페북에 팔'인 희생자 이름‧사진 올렸다가 곤욕

'반역 의도' 혐의로 독방 감금…교사직도 박탈

런던 소재 언론매체인 '더 뉴아랍'에 따르면, 바루친이 페북에 가자 전쟁에서 이스라엘군과 정부의 행위에 비판적인 내용들을 포스팅하자 교사를 관할하는 페타 티크바 시 교육 당국이 경찰에 고발했고, 경찰의 요구에 따라 지난 9일 출두하자 곧바로 영장을 제시하며 그의 손과 발에 수갑을 채우고 집을 압수 수색한 뒤 휴대전화와 랩톱 2대를 압수했다. 경찰은 두 차례의 심문을 거쳐 10년 징역형이 가능한 반역 혐의를 적용했으나 검찰에서 제동이 걸렸다. 그러나 교사 자격증이 박탈됐고, 이스라엘에선 더는 교사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바루친은 "정부가 교육 시스템과 군, 미디어를 장악하면 시민들의 양심을 바꿀 어마어마한 힘을 갖게 된다"며 "이것이 오늘날 이스라엘의 분위기로 정치적 박해 말고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는 14일 '아랍인과 좌익인사 체포. 이스라엘은 가자 전쟁에 대한 국내 반대 의견을 어떻게 진압하나'란 제목의 사설을 통해 "실수하지 말라. 바루친은 정치적 메시지를 전하는 정치적 도구로 활용됐다. 그의 체포 동기는 이스라엘 정책에 반대하는 어떤 비판이나 항의의 조짐도 잠재우겠다는 '억제'다. 바루친은 개인적 대가를 치렀다"고 썼다. 그러면서 사설은 "반대 의견 중 일부가 설사 이스라엘인이 듣기에 거북하다 해도 진짜로 선동하는 것이 아닌 한 허용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호주 멜버른 중심가에서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중앙에는 팔레스타인 기와 같은 색깔로 이뤄진 팔레스타인 상징인 수박 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2023. 11. 23 [EPA=연합뉴스]

가자 주민 동정하면 매장…숨 막히는 이스라엘

바루친 "내 아이들은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

바루친 박사는 '데모크라시 나우'와의 인터뷰에서 교사 사회를 포함해 숨 막히는 현재 이스라엘 사회 분위기도 소개했다. 그는 "그들은 목소리를 높이면 직업을 잃을까 두려워한다"며 "그들은 요즈음 가자 주민에 일말의 동정심이라도 표시하거나 무고한 민간인 살해를 반대하는 이스라엘 시민들은 정치적으로 박해받고 공공의 비난에 처하며 직업을 잃고 감옥에 간다는 점을 아주 명확하게 알고 있다"고 말했다. 동료 교사들의 분위기에 대해 그는 다들 지지와 격려를 보이면서도 "돌봐야 할 아이들이 있다" "모기지를 내야 한다" "딸이 결혼한다" "집을 재단장하기 시작했다"는 등의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네 아이의 아버지인 바루친 박사는 '자녀들은 뭐라고 하느냐'는 질문에 "내 아이들은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22일 뉴욕의 유니언 스퀘어에서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를 벌이고 있다. 펼침막에는 "팔레스타인 순교자를 공경하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2023. 11. 22 [EPA=연합뉴스]

대테러법 개정…표현의 자유 노골적인 탄압

"전쟁 반대, 휴전 촉구한 유대인 시민도 박해"

'더 뉴아랍'에 따르면, 가자 전쟁이 본격화하면서 베냐민 네타냐후 극우 이스라엘 정권은 집회시위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노골적으로 탄압하고 있으며 팔레스타인인 상대로는 특히 심하다. 11월 초에 이스라엘의 크네세트(의회)는 대테러법을 개정해 "테러리스트 조직의 출판물을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소비할 경우" 최대 1년 징역형에 처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의 아랍 소수자 권리를 위한 법률센터인 아달라(Adalah)는 "프라이버시 침해이고 가혹하다"면서 "이 개정안은 개인의 사고와 신념의 영역에 침범해 소셜미디어 사용에 대한 국가의 감시를 엄청나게 증폭시킨다"고 비판했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이스라엘 대법원은 팔레스타인 마을인 움 엘-파헴과 사크닌에서 반전 시위를 허가해달라는 청원을 각하했다.

최근에는 나자렛에서 팔레스타인 정치인들과 전직 의원들이 반전 시위를 시도했다가 곧바로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또한 지금까지 수십 명의 팔레스타인 언론인, 정치인, 운동가, 보통 주민이 온라인에 포스팅하거나 당국이 선동적이라고 보는 견해를 피력하거나 반전의 의미가 담겨 있다는 이유로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심지어 알-아크사(성전산) 모스크의 이맘들에 대한 검열도 심해졌으며, 경찰은 무슬림 성직자들에게 금요 설교 시간에 가자 전쟁 관련 설교를 하지 말도록 경고했다. '더 뉴아랍'은 기사에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만 표적 삼는 게 아니라 전쟁에 반대하거나 심지어 휴전을 촉구하는 유대인 이스라엘 시민도 박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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