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이 불러낸 '박정희 망령' 새마을운동
새마을운동은 유신독재 연장 위한 정치도구
박정희 "10월 유신은 곧 새마을운동이다"
아스팔트 보수·뉴라이트의 '구시대 추억 상품'
'박정희는 위대한 지도자'…독재자 미화 아닌가?
“이러한 의지와 신념을 이끌어준 위대한 지도자도 있었다.” (2023.11.12.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 축사)
“박정희 대통령께서는 ‘하면 된다’는 기치로 우리 국민을 하나로 모아, 이 나라의 산업화를 강력히 추진하셨다.” (2023.10.26. 박정희 44주기 추도사)
“새마을운동의 비전과 과제에 대해 깊이 공감한다.” (2022.10.13.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 축사)
윤석열 대통령의 새마을운동 찬가가 이어지고 있다. 새마을운동은 박정희가 1970년 새마을가꾸기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초대형 국가 캠페인이다. ‘하면 된다’는 새마을운동의 구호였다.
새마을운동의 공과에 대해서는 요즘도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아스팔트 보수나 뉴라이트 세력 등은 오늘도 새마을운동을 추억처럼 불러내 찬양한다. 그러나 새마을운동에는 그들도 외면하기 어려운 깊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새마을운동은 박정희가 유신독재를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사용한 정치적 도구였다. 이같은 사실은 박정희 스스로도 자백한 바 있다.
“10월 유신이라고 하는 것은 곧 새마을운동이다, 새마을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곧 10월 유신이다, 이렇게 해도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 10월 유신 과업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도 우리 모든 국민들이 범국민적으로 한 사람도 방관자나 낙오자가 있어서는 안 되겠으며, 모든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겠으며, 또한 참여해 주실 것을 특별히 당부하는 바입니다.” (대통령 기록관)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73년 1월 12일, 박정희가 연두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새마을운동=10월 유신’이라는 등식에서, 이 운동이 군사정권의 정치적 도구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박정희는 기자회견에서 ‘유신’이란 말을 42회 사용했다. “10월 유신의 이념이라는 것은 우리 민족의 주체성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5·16혁명과 그 기조를 같이 하고 있다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10월 유신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올바른 역사관과 주체적인 민족 사관의 정립을 우리는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박정희의 논리대로 등식을 다시 정리하면 ‘새마을운동=10월 유신=5·16쿠데타’가 된다. 새마을운동이 10월 유신이라면, 새마을운동의 이념은 유신정권의 통치이념과 맞물려 있을 수밖에 없다. 실제 박정희는 정권내내 주요 정책을 발표할 때 새마을운동을 갖다 붙여 약방의 감초, 전가의 보도처럼 써먹었다.
5·16군사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박정희는 정권이 위협받자 헌법까지 뜯어고쳐 유신독재라는 기형적 체제를 구축했다. 이는 사실(事實)이자 사실(史實)이다. 이에 대해서는 뉴라이트가 됐건 뭐가 됐건 부인할 수 없다. 그 앞에 ‘선의’라는 말을 붙이는 건 그들의 자유다.
윤석열 대통령은 제2의 새마을운동이라도 벌일 기세다. 그러나 정권이 강제 혹은 반강제로 밀어붙였던 새마을운동의 이념은 윤 대통령이 부르짖는 ‘자유 민주주의’와도 거리가 멀다. 새마을운동에는 자유도 민주주의도 없었다.
그래도 윤 대통령이 새마을운동을 주장하려면 박정희한테 두어 가지는 배우는 게 좋다. 하나는 술이고 또 하나는 미신이다.
박정희는 논두렁에서 농민들과 어울려 막걸리라도 마시면서 새마을운동을 했다. 누구처럼 청담동인지 어딘지에서 비싸고 좋은 술을 마셨다는 소문은 내지 않았다. 마지막 술자리에 시바스리갈이 있었다는 소문 때문에 이미지를 구기기는 했다.
박정희는 새마을운동 차원에서 미신 타파 운동을 장려했다. 시골 마을 입구마다 으레 있던 서낭당을 부수고 신목(神木)을 잘라내 민속문화를 말살했다는 비판은 받았다. 딸 박근혜가 사이비 종교의 교주인 최순실 아버지 최태민과 만나는 걸 막지 않아 훗날 대한민국을 혼란의 도가니로 빠트린 실수도 저지르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