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팔' 문제 해결 '5원칙' 천명…관건은 의지와 역량

가자 재점령, 강제 이주, 가자 영역 축소 등 불가

"전후 가자‧서안 재통합…팔' 인민이 미래 결정"

이스라엘에 레드라인…네타냐후 재점령 의지 확고

안보는 이스라엘군, 행정은 비무장 팔' 당국 구상

2023-11-13     이유 에디터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누가 자신들을 다스릴지, 자신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팔레스타인 인민에게 달려 있고, 미국은 그 프로세스를 지지할 것이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2일 방영된 CBS '페이스더네이션' 인터뷰에서 '전쟁 이후' 가자지구를 포함한 팔레스타인의 미래상과 관련해 자결권을 인정한다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

 

 18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확대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2023 10.18 [AFP=연합뉴스]

가자 재점령, 강제 이주, 가자 영역 축소 불가

팔' 문제 해결 5원칙, 이스라엘엔 '레드라인'

설리번 보좌관은 특히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 정부가 견지할 다섯 가지 기본 원칙을 정리해 내놓았다. 그는 5원칙으로 △ 이스라엘의 가자 재점령 불가 △ 팔레스타인 인민의 강제 이주 불가 △ 향후 테러 세력 근거지로 가자 활용 절대 불가 △ 가자 영역 축소 불가 △ 팔레스타인 리더십 하에서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 간 통제의 재연결, 재통합 등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설리번은 "지금은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가 서안을 통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가자지구를 초토화하고 최소 1만1000명의 팔' 민간인 사망자를 낳은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공세가 33일째로 접어들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전쟁 이후' 팔레스타인의 미래로 초점을 옮기는 것은 다소 시기상조인 측면도 있고 미국이 하마스 섬멸을 내건 이스라엘군의 '살육 행위' 지속을 용인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베냐민 네타냐후 정권은 이 중 '테러 세력 근거지 불가'를 빼곤 가자 재점령 등 다른 4개 기본 원칙에선 전혀 다른 생각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스라엘에 넘지 말아야 할 '레드라인'을 그었다는 데 나름 의미가 있다. 한마디로 말해 하마스 제거 이후 이스라엘은 가자에서 손을 떼라는 얘기다.

CBS 인터뷰에서 설리번은 크게 세 가지 점을 분명히 했다. 첫째는 이스라엘의 자위권과 하마스 제거 목표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했다. 설리번 보좌관은 이스라엘을 완전히 파괴할 때까지 영원한 전쟁 상태를 원하는 하마스가 통치하던 "10월 6일 상황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계속 위협이 되도록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스라엘군의 폭격이 진행된 후 가자지구 마을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2023. 11.12 [AFP=연합뉴스]

"전후 가자‧서안 재통합…팔' 인민이 미래 결정"

미, 쏟아지는 비난에 "민간인 희생 최소화하라"

둘째는 가자지구의 민간인 희생 최소화를 이스라엘에 다시 촉구했다. 그는 '하마스의 병원 활용, 인간 방패 활용'으로 민간인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이스라엘의 주장을 받아들이면서도 "우리는 병원들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는 걸 보고 싶지 않다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팔레스타인인이든, 이스라엘인이든, 무고한 모든 사람의 인명 손실은 절대적 비극이며 그들 모두를 애도한다"고 말했다. 하마스 섬멸전 과정에서 이스라엘군의 무자비한 공격으로 제노사이드(집단 학살) 수준의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이스라엘뿐 아니라 이를 두둔하는 미국을 향해서도 아랍‧이슬람권을 위시해 국제사회의 비판이 급속히 고조되는 것에 자못 부담을 느낀다는 반증인 셈이다. 설리번은 이스라엘이 주장하는 '하마스의 병원 활용'에 대해선 "전쟁법 위반"이라고 비난했지만, 이스라엘의 무차별 폭격과 지상 작전에 따른 팔' 민간인 대량 살상에는 "전쟁법을 따라야 한다"고만 말하고 '전쟁 범죄'란 용어를 쓰지 않았다.

셋째는 하마스 제거 이후 가자지구 통제권은 재점령한 이스라엘이 아니라, 현재 서안을 관할하는 마무드 아바스 수반의 팔 자치정부(PA)에 귀속돼야 한다는 점을 내비쳤다. 그렇게 되면, PA가 가자와 서안 양쪽을 모두 관할하게 되며 추후 팔레스타인 주민의 선거를 거쳐 합법적인 통치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게 미국의 구상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독립된 주권 국가로 공존하는 '두 국가 해법'의 한 과정인 셈이다. 존 커비 백악관 NSC 전략소통조정관도 이날 MSNBC 인터뷰에서 "우리가 지지하는 것은 팔레스타인인들의 목소리와 투표, 자결권을 포함하는 일종의 장기적 거버넌스(통치체제)"라고 말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톤에서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펼침막에는 "자유로운 팔레스타인"이란 글귀가 씌어 있다.  2023. 11. 12 [AFP=연합뉴스]

네타냐후 "가자 안보 통제권 포기 못해"

안보는 이스라엘군, 행정은 비무장 팔'당국 구상

그러나 네타냐후는 재점령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그는 6일 "가자지구의 전반적 안보를 무기한 책임질 것"이라고 말했고, 11일에는 "어떤 경우라도 우리는 그곳의 안보 통제권을 포기할 수 없다"고 재확인했다. 12일에는 CNN 인터뷰를 통해 전쟁 이후 가자에서 이스라엘의 안보 역할은 "최우선적이고 확장된 군사 활동이 될 것"이라며 "여기에는 재건된 민간 당국, 테러리스트와 기꺼이 싸우고, 이스라엘 말살이 아니라 이스라엘과의 평화, 협력, 번영의 미래를 아이들에게 교육시키는 일종의 민간 팔레스타인 당국이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 네타냐후는 NBC '미트더프레스' 인터뷰에서도 전후의 가자는 "다른 당국"에 의해 통치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종합해보면 이스라엘군이 가자를 재점령해 안보 통제권을 갖고, 기껏해야 '무장을 포기한' 민간 팔레스타인 당국이 행정 사무만 보는 제한된 역할을 허용하는 방안을 염두에 둔 듯하다. 가자지구의 통치권도 PA에 맡기려는 바이든의 구상과는 사뭇 다르다. 관건은 바이든 대통령이 막무가내인 네타냐후를 강하게 '압박'해 이 다섯 가지 기본 원칙을 관철해 낼 진정성과 의지, 역량이 있느냐 하는 점이다. 국제사회 대부분이 반인도적 전쟁 범죄라고 비난하는데도 이스라엘 감싸기에 급급한 자세론 이런 구상도 결국 공염불로 그칠 공산이 크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왼쪽)이 11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오른쪽)와 만나고 있다. 양국은 지난 3월 중국의 중재로 베이징에서 관계 정상화에 합의했다. 이란 정상의 사우디 방문은 10년 만이다. 2023 11. 11 [로이터=연합뉴스]

한편, 아랍‧이슬람권 57개국 정상들은 11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채택한 합동 특별정상회의 결의안에서 팔레스타인 인민의 유일한 합법적 대표기구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지목한 뒤 "모든 팔레스타인 정파는 PLO를 중심으로 뭉치라"고 촉구했다. 또한 이스라엘의 점령 종식을 촉구하는 한편 '두 국가 해법' 추진 과정에서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서안 지구와 가자를 분리하고 이 상태를 영구화하려는 어떤 제안들도 거부한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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